[꿈이야기]2024. 1. 20. 06:53

방학을 맞이하며 만 8세 첫째와 함께 영화 Wish를 봤다. 아래 포스터의 별이 너무너무 귀여웠고, 보자마자 악역이 누구인지 알게 하는 디즈니 영화를 보니, 디즈니 영화와 함께 성장한 나의 어린시절들이 떠올랐다.

우리 첫째도 디즈니 영화를 보면서 성장하려나? 하는 궁금증도 생겼다. 마냥 행복해 보이는 주인공이 어느 순간 본인의 상황을 자각하게 되고, 발견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생을 걸고, (디즈니니까 당연히) 문제해결에 성공하며, 그 행동이 주변인들에게까지 긍정의 영향을 미치는 스토리는, 90년대에 십대를 살고, 2000년대에 직업을 갖게 된 우리 세대에게는 주요했으나, 2020년대~2030년대 에 십대를 살고, 2040년대에 직업을 갖게 될 나의 자녀들에게도 주요할지는 사실 알 수 없는 노릇이니까. 나는 그저 첫째 덕분에 내 삶에 큰 영향을 미쳤던 디즈니 애니를 보러 극장에 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영화를 마치고 나오면서 첫째가 물었다. "엄마는 꿈이 뭐였어?" 

"엄마의 꿈은 여전히 진행 중이야. 전략 쟁이의 인생을 살고 있지만, 엄마는 인문학/사회학을 계속 공부하고 싶고, 무엇보다 누군가에게 꿈꿔도 된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 세상에는 돈이 없어, 여건이 안 되, 꿈꾸는 것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을 돕고, 그 사람들에게 꿈꿔도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될거야" 

나에게는 그 외에 여러 꿈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주요하게 반드시 이루고 싶은 꿈은 저것이다. 그러려면 건강도 재력도 필요하고, 또 좋은 마음도 필요하다. 어쩌면 내가 삶을 꾸준히 살아오는 것은, 나의 귀여운 두 딸들 덕분이기도 하지만, 저 꿈을 꼭 이루고 싶은 간절함 때문일 것이다. 

최근에 나는 또 새로운 기부를 추가했다. 자립준비청년들을 위한 밥집이다. 12월에 주보를 보다가, 기부를 해야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야기도 딸에게 해줬다. 

영화 Wish에서 주인공의 할아버지는 백세가 되어도 꿈을 이루고 싶어한다. 모두의 선한 꿈은  본인이 포기 하지 않은 한 이루어질 수 있다. (디즈니적 영향으로 "선한" 꿈) 

그래서 언제나 질문은 "꿈이 뭐였어"가 아닌 "꿈이 뭐야?" 

 

 

Posted by Sophie03
[꿈이야기]2017. 4. 27. 05:33

새벽에 눈을 뜨고, 문득,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머릿 속에 쓰려고 생각한 주제는 많으나, 좀처럼 글을 쓸 시간이 없다. 직장인이고,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니, 도무지 시간을 내서 책을 읽거나 요가를 하거나 글을 쓸 시간이 없다. 나를 위한 시간 자체가 없다. 


그런 내가 요즘 윤식당을 챙겨보고 있다. 정말 꿈만 같은 이야기다. 


꿈같은 발리에, 꿈같은 집에 살며, 꿈같은 저녁식사를 하고, 꿈같은 여가시간을 즐기며,

꿈같은 식당을, 꿈같은 동료들과 함께, 꿈같은 손님들과 함께 하는 꿈같은 이야기. 


현실 직장인인 내 눈에 가장 꿈같은 이야기는, 저녁 먹으며 신메뉴를 상의하고 나면, 다음날 아침에 DP샷까지 첨부된 신메뉴가 컬러인쇄되서, 꿈같은 메뉴판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미 setting된 스토리이겠지, 하면서도 계속 보게 되는건, 그냥 처음부터 그것은 누군가(결국 우리모두의) 꿈같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꿈이라고 인정했기 때문에, 그 누구도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우리모두의 일장춘몽.


꿈도 대리로 꿔주는 세상에 살고 있을 뿐이다. 그냥, 책을 읽거나 요가를 하거나 글을 쓰거나 수다를 떨거나 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내게 주어진 일들을 Mission Completed 하기조차 어렵다. 그저 묵묵히 계속 해나가도 미완의 일들이 가득해진다. 


나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 공동의 문제인데, 현 시스템은 우리 모두를 각각의 적으로 만들고 있다. 공동의 적은 시스템임에도 불구하고, 시스템은 한발짝 물러나,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얼마전에 워킹맘 선배와 이야기하다가, 집에서 노는 여자들이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니, 어린이집에 자리가 없다는 이야기를 해서 약간의 정신적 충격이 있었다. 이 프레임이야 말로,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하는 위정자들이 비난 받아야 할 대상이 누군지 모르게 교모하게 내분을 조장하는 프레임이기 때문이다. 탓해야 하는 것은, 무상교육이라고 어린이집에 맡기는 전업맘이 아니라, 무상교육이 될 거라고 하고는 어린이집 공급, 특히 국공립 어린이집 공급을 확대하고 있지 않은 정책의 문제이고, 그 정책 결정자의 문제이다. 무상교육이 당연시 되야, 전업맘들이 재취업을 할 기회가 생기고,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 두는 비율이 감소되는데도 불구하고, 이 로직을 모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시스템에 제시하고 있는 갈등의 프레임을 그대로 흡수하는 것 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나영석PD는 꿈은 우리가 대신 꿔줄께요 하고 이야기 하고 있고, 당연히 그저 잠시 꿈같은 이야기를 보게 되는 것 뿐이다. 아주 서글픈 꿈. 

Posted by Sophie03
[꿈이야기]2014. 10. 20. 23:02

Just Do it!

내가 무척 싫어하는 말이다, 누구나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세상에서 당신이 이룬 것이 없다는 것은 당신이 아무 것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세상의 이분법을 담고 있다고 생각되어서 싫어하는 말이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알고 보면 나는 "jump in"하는 사람이라는 것이고, 결국 두 표현은 일맥상통한다. 사실은 봄에, milestone을 찾는 것이 어떻게 쉬운 일이냐는 질문을 직장후배에게 듣고는 그 글을 쓰다가,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서 흐지부지 되었었다.


아니, milestone을 찾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나는 사실 요즘 긴 글을 써보는 중인데, 그 내용 중에 이 이야기가 들어간다. 우리 세대에게 milestone이란 무엇인가, 당신은 당신의 milestone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물어보면 하나같이, 박사학위를 받았거나, 고시 같은 시험에 합격하거나, 직장입사가 결정되는 순간을 이야기 한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삼사십대에게는 10여년전에 일어난 milestone 외에 최근의 milestone이란 없었다.


그래서 지난번 글에서 "인생에서 가장 milestone적인 목표는 무엇이었으며, 달성하는 과정/결과에서 무슨 생각을 하였습니까?"하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질문에는 오류가 있었다. 어쩌면 그 후배는 그 오류를 지적했는지도 모른다. milestone의 사전적 의미는 1. 이정표 2. [역사.인생 등에서] 획기적 사건, 중대 시점 3. [연극] 100회째 상연이라고 한다. milestone은 달성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도달하고 보면 보이게 되는, 지나고 보면 알게 되는 중대시점이다. 누군가가 미리 목표를 정해 놓고, 이것만 달성하면 내 인생은 완성된다고 말하는 것은 삶의 목표이지, milestone일 수는 없다. 그래, 그냥 말장난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시합격을 하고 난다고 해서 당신의 인생이 바뀌지는 않는다. 나는 고시합격을 한 사람이 아니니까, 모른다고 할지 모르지만, 주변에 고시합격한 사람들이 좀 많고, 그들을 보면 그들의 인생이 바뀌지 않는다. 물론, 그들의 불확실성을 지닌 고생의 순간은 끝이 나고, 공부를 종료하며, 삶의 새로운 국면이 열리게 된다. 그러나 고시합격이 반드시 milestone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그럴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삶의 새로운 목표가 없으면 불안하고, 삶이 잘못 굴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에게는 milestone이라는 것이 끝까지 없을 수 있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삶이 변화하는 순간, 그들의 스스로의 삶에 변화의 빛을 주는 순간이 그들에게는 milestone이 의미가 없어지며 새로운 milestone을 찾아야 하기 때문에, milestone에 대한 생각조차 못한 채 흘려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고시합격 안 한 나에게로 돌아와서, 나는 고시를 보지도 않았고 박사학위도 없으므로 그런 것들을 꼽을 수도 없지만, 회사입사확정과 이직 또한 milestone이라고 꼽지 않는다. 사실 스스로 milestone이라고 꼽는 것들이, 남들의 그것과 다르기 때문에, 그냥 “인생에서의 획기적 사건” 정도로 두고 지금 기준으로 세 가지만 적어볼까 한다. 역시 어이 없는 사건들일 것이라는 귀뜸을 미리 해 둔다.


일단 대학교에 입학하며 한 졸업할 때까지 연간 100권 즉 400권 정도는 대출해서 읽고 졸업하자는 결심이다. 왜 그런 결심을 했느냐고 물어 보는 분도 계시는데, 사실 나는 나의 대학교가 탐탁치 않았다. 하지만 고3 열심히 살았고 후회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수능 열흘 전에 쓰러졌기 때문에 재수를 할 체력도 없었다. 어쨌든, 나는 그 대학교에 들어갔고 그래서 혼자만의 entertainment가 필요했다, 그 대학교를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4년만에 서둘러 졸업했고, 졸업할 때 확인하니 400권이 넘는 책을 대출한 것이 맞았다. 그 때의 그 시간이, 그 인문학과 사회학책들이 현재의 나를 만들었다. 물론, 책과 관련되서는, 독일인의 사랑을 읽고 독일어를 공부하게 되었다던가 하는 찰나의 순간들이 있지만, 어쨌든 나도 목표를 정하고 달성한 것들이 있으니, 대학교 시절에 도서관 대출한 책을 400권이상 책을 읽은 순간을 milestone으로 적어둔다.


두번째는 스위스에 살았던 3개월의 시절이다. 목표라고 해야 할지 모르지만, 대학원에 입학하며 마음 먹은 것 중에 하나가 교환학생을 간다는 것이었다. 처음에 생각했던 곳은 독일이었지만 결국은 스위스로 가게 되었고, 그 결정이 결론적으로는 내게 좋은 전환점이 되게 된다. 자연이 가지고 있는 위로와 치유, 스위스 사람들이 삶을 살고 즐기는 자세를 체감하게 된 시간이었다. 그리고 또한, 여행을 대하는 나의 자세가 완전히 바뀌게 된 시점이었다. 그 때의 나는 다시는 그 도시에 오지 않을 것 같은 여행자였다. 여행할 도시는 언제나 많고, 시간과 재화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최대한 빡빡한 일정으로 보고 다녔던 배낭여행 때와는 정반대의 여행자가 되었다. 배낭여행 이후로 5년만에 루체른에 가서, 천천히 걸어다니며 그 도시를 즐겼었다. 길을 가다가 너무 맛난 샌드위치를 먹는 사람에게 어디서 산 건지 물어봐서 그 집에 가서 먹었던 샌드위치의 맛은 아직도 기억한다. 5년 전의 루체른과 당시의 루체른은 완전히 다른 도시였다. 남겨진 사진으로만 기억되는 배낭여행 시절의 루체른과는 달리, 스위스 교환학생 시절에 방문한 루체른은 따뜻한 샌드위치의 향기와 커피향을 가지고 있는, 햇살이 찰랑거리던 물위에서 반짝거리던 광경이 참 아름다운 곳으로 지금의 나는 여전히 기억한다. 이후에 두번째로 방문한 파리에서도, 피렌체에서도 그랬다. 도시들의 인상은 유유자적할 때야 비로소 그 민낯을 드러냈었다. 이후로 나의 여행은 바뀌었다. 서두르지 않는다, 나는 다시 그 도시에 갈 것이기 때문에, 늘 모자란 듯 돌아다니고, 벤치에 앉아, 카페에 앉아, 어디 성당이나 박물관에 앉아 도시를 즐긴다. 재미난 것은, 이후로도 나에게 자꾸 여행의 기회가 생겨, 현재까지 파리를 세 번, 바르셀로나를 세 번, 로마를 세 번, 피렌체를 세 번 다녀오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더욱 서두르지 않게 되었다. 내게 예비되어 있는 시간들은 나의 계획보다 더 환하고 즐거운 것이라는 것을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설사 그렇지 않은 순간에라도 그렇게 믿는 순간 삶이 변화된다.


마지막으로는 눈이 안 보였던 순간이다. 나의 두번째 직장은 힘들었다. 너무 잦은 야근과 주말 근무로 체력이 늘 방전된 상태였다. 그러다가 어느날 한시간 정도 눈이 보이지 않았다. 눈 앞에 간유리가 있는 듯 저 너머의 색상만 구분이 되었고, 그 영역은 점점 확대되었었다. 그러다가 그 상황은 종결되었지만, 내 마음 속에서는 종결되지 않았다. “나의 눈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인가. 나를 잃고 혹은 시력을 잃고, 내게 남겨지는 것은 무엇인가.” 그래서 그 때서야 비로소, 스위스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삶의 자세를 되새겨볼 수 있었다. 내게 남겨지는 것은 온전히 나여야 한다. work and life balance가 중요하다지만 공허한 언어뿐이었다가, 어느 순간 절실한 바람이 되었다. 그래서 다시 방법을 찾게 되었었다.


과거의 이야기를 접고, 현재로 돌아와서 보면, milestone이라는 것이 그 시간을 지나고 나서야 그것이 milestone임을 알게 된다는 것이 개인적인 의견이다. 처음부터 이것은 나의 milestone이 될 것이야!라고 생각하고 시작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것이 나의 삶의 획기적 순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한 적은 없다. 그냥 불현듯 마음을 먹고, 그냥 실행하다보면, 그것이 어느 날 milestone이 되어 있기도 하고, 삶의 디딤돌이 되기도 변화의 마중물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그냥 뛰어든다. 해볼까 생각이 들면 밀가루를 끊기도, 요가를 배우기도 한다. 완성의 순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시작의 순간과 그 과정이 더 중요하다. 지나고 보면 해냈다는 결과보다는 그 과정에서의 생각이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순간이 더 많으니까 말이다.


오랜 숙제 같았던 milestone을 찾는 것이 어떻게 쉽냐는 후배의 질문에 대한 글이 마무리 되어 간다. 어려운 일이다. 어려운 일인 이유는, milestone이 뭔가 거창해야 한다는 우리 모두의 관념 때문이다.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어마어마한 사건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소한 질문이, 의미없이 시작된 질문이, 소소한 결심이기도 한데, 그런 것들은 왠지 milestone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기에는 격이 떨어져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면 어떤가. 나의 꿈이 나의 것이듯 milestone은 나의 것인데! 그러니 그냥 그 순간에 마음이 동하면 jump in! 그러다 보면 어떤 사건이 나의 milestone이 되어 있음을 뒤돌아보면 알게 될지도!

Posted by Sophie03
[꿈이야기]2013. 2. 2. 22:08


[Sophie' Think+ing] 꿈꿔도 됩니다 ③을 쓰며 이것은 부록으로 쓰겠다고 생각했었다. 일종의 참고 자료.


'꿈'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그 기간동안의 행복을 유예해야 하는가, 포기해야 하는가, 현재의 자신은 없고 미래의 나만을 꿈꿔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나는 살면서 계속 해 왔었다. 또한 지인들에게 '엉뚱하게' 본인을 행복하게 만드는 세가지 질문의 답을 들으면서 흔히 많은 사람들이 하는 "목표달성=행복"이라는 사고에 대해서도 늘 고민해 왔다.


우선 내 생각에는, '꿈을 위해서라면 과정도 즐거워야 한다'는 것은 사실 거짓말이다. 어른들이 쉽게 어린이/청소년들을 교화하기 위해 '참아라, 과정도 즐겨라, 그그그 훌륭한 사람들은 과정도 즐겼기에 훌륭한 사람이다'라고 이야기 한다. 그 거짓말에 속아 어른이 되고도 과정을 즐기지 못하는 스스로를 자책하게 된다. (사실은 그 이야기를 하는 어른들도 전혀 과정을 즐기지 않고 있을 것이다. 만약에 그 과정이 즐겁다면 저 당위적 명제를 내세울 때, 본인의 사례를 들어 이야기할 수 있었을 것이다. 대개 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어른들은 버럭 화를 내며 즐기라고 한다. 사실은 그 이야기를 하면서 본인도 즐겁지 않으면서 말이다)


솔직히 과정은 힘겹다. 손쉽게 다이어트 이야기. 살이 빠져서 날씬해지면 옷을 입을 때 태가 다르다. 당연하다. 그런데 날씬해지거나 날씬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아주 힘겹다. 운동도 해야 하지만 식이조절을 해야 하는 것은 정말 큰 일이다. 후일 날씬해질 내 몸매를 생각하며 지속하기에는 과정은 너무도 힘겹다. "날씬해지기=행복"이므로, 과정의 고통을 고통으로 생각하지 말고, 행복으로 생각하여 과정을 즐겨라! 라고 말하기에는 사실 힘겹다. (나는 사실 본격 몸관리를 할 때는 허기를 즐긴다. 배가 고프니까 어서 자고 내일 아침에 따뜻한 밥을 먹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다독이게 된다. 이 때도 나는 날씬해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과정을 참는 것은 아니고, 좀 있으면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작은 행복을 품고 잠들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과정을 즐긴다기 보다는 생각을 다른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 뿐이다)


그리고 '목표달성=행복'의 사고보다는 난 사실 '목표는 목표이고 행복은 행복이다' 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목표달성을 위해 노력하고, 그 과정동안 재미도 있고 과정 자체가 즐거울 때도 있긴 하지만, 사소한 행복들을 느끼기 위해서도 노력하는 편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행복이란 지속가능하거나 축적가능한 자산이 아니다. 행복은 휘발성이 강한 일회적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milestone적인 목표의 달성을 행복을 느낀 순간의 행복이 엄청나게 큰 행복일지라도 그 행복은 곧 휘발되고 일상의 삶으로 돌아오게 된다. 즉, 행복그래프를 그렸을 때 [Sophie' Think+ing] 꿈꿔도 됩니다 ③의 A씨처럼 목표달성의 경우에 아주 큰 점을 찍어 놓는다면 행복이 일차적인 차원으로 보여지게 된다. 그런데 B씨의 경우에는 숲을 걷는 순간, 이웃과 함께 하는 순간, 하느님께 기도하는 순간, 말하자면 아주 사소한 순간순간마다 점을 찍을 수 있고, 결론적으로 선으로 연결되는 이차원적인 행복을 가지게 된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인 듯 하다. 다만 A씨와 같은 행복 그래프를 가진다고 해서 인생이 잘못 되는 것은 아니지만, 커다란 행복점을 찍기 위해 애쓰는 과정 동안의 행복의 유예는 안타까운 것 뿐이다. 그러니 한번쯤 '행복=목표달성'이라는 생각을 접고 꿈/목표라는 거창한 단어를 제외하고 "나를 행복하게 하는 세가지 것들"을 떠올려 보는 것은 어떨까 제안한다. 그것이 1초 1초를 스스로의 것으로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 중의 하나이다. 


아래의 사진은 오빠에게 선물받은 독일어사전 뒷면에 오빠가 써준 글이다. 고등학교 시절의 나는 이 글을 보며 "그래 열심히 공부해야 해"하고 다독였지만, 나이를 먹고 나서는 목표달성을 위해 행복을 유예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나이를 먹으며 나도 조금씩 성장하는구나 하고 생각한다... 시간은 그렇게 흐른다.








Posted by Sophie03
[꿈이야기]2013. 1. 23. 00:55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 3가지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아마도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허를 찔린 듯한 이 질문을 받으면 대개 말을 멈추면 생각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럴 때 꼭 30초 이내로 생각나는 대로 3가지를 대라고 재촉한다. 그러면 더 당황해서 나한테 왜 이러는 거지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경우가 많았다. 


A씨의 답변은 박사학위를 땄을 때, 승진이 결정났을 때, 그리고... 세번째는 아직 없다고 했다.

B씨의 답변은 숲, 사람(이웃), 하느님이었다.


나는 사실 B씨의 답변을 듣고 놀랐었다. B씨를 15년 정도 알아왔는데, 질문이 떨어지자마자 스피드퀴즈를 풀듯이 답변을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A씨와 같은 유형의 답변을 하며, 대부분은 30여분 동안 띄엄띄엄 답을 이야기 한다, 적어도 내 주변사람들은 성취적인 꿈을 이야기 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틀린 것이 아니고,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므로 다른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도 나도 그랬었다. 나의 고등학교 때 꿈은 S대 진학이었다. 사실 어린 시절부터 읽는 것을 좋아해서 눈에 보이는 것은 가리지 않고 많은 것을 읽었기 때문에, 현상황의 내가 고등학교 때 꿈이 무엇이었냐고 묻는다면 인문학공부라고 말하겠지만, 그 때는 당연히 S대 진학이 나의 꿈이었다. 꿈이란 누구든지 쉽게 듣고 이해하며 성취가 분명한 무엇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은연 중에 한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수능 열흘 전쯤 고3이 끝나갈 무렵 쓰러졌었다. 우습지만 무리해서 공부해서 그런 것이었고, 당해년도 수능은 어려운 편에 속했었지만 그런 핑계를 차치하더라도 당연히 수능은 평소 실력보다 더 못 봤다. 쓰러진 것과 S대 진학 실패 간에 꼭 상관관계가 있지 않고 나의 실력으로는 원래 못 가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나는 이 때 한 번 어른이 되는 과정을 거치는데, 하나는 재수를 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는 과정이었고, 다른 하나는 대학 진학 후의 새로운 꿈을 살아내는 과정이었다.


내가 재수를 하지 않은 이유는 명확하다. 나는 그 때, 지금 생각해보면 기특하게도 이런 생각을 했었다. "나는 나의 고3에 후회가 없고, 다시 일년을 산다 하여도 이렇게 살았을 것이다. 고로 나는 내내 S대를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나의 꿈은 후회없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구나, 그러니 재수를 하지 않아도 되겠다." 라고. 

아마도 중학교 때부터 나의 좌우명은 "죽을 때 돌이켜보아 후회하는 시간이 있지 않도록 현재를 살겠다" 였고, 그래서 "과거가 나의 현재를 만들고, 그런 나의 현재가 미래를 만든다" 라는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저런 결정을 했겠지만, 어쨌든 내게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이었다. (물론 지금 다시 똑같은 결정의 순간이 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물어본다면 또 고심할 것 같기는 하다, 우리집 3남매 중에 S대를 못간 유일한 사람은 나이니까.)


그래도 말만 멋지지 실제로 너무도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살다가 갑자기 목표도 사라지게 되고, 심지어 내가 원하던 그 목표를 성취한 경우도 아니라면 이후의 시간들이 무의미하게 흐르기 쉽다. 특히나 학부제로 입학해서 주변의 모두가 학점에 목숨 거는 시간에 만 19세의 나는 "범생이적인 반항"을 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졸업할 때까지 4백권의 책 정도는 읽자 라는 생각을 부지불식간에 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을 읽고 모으고, 도서관에서도 꽤 많은 책을 대출해서 읽었다. 학교 안에는 내가 책을 읽기 위해 가는 나만의 숲 속 벤치가 있었고, 도서관에도 책 읽는 나의 좌석이 있었다. 부모님의 '책좀그만읽고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안 들어도 되었고, 시험을 보기 위해 시를 읽지 않아도 되었다. (전공이 인문학이라 시과목을 시험 볼 때는 예외였지만) 몇권을 읽었는지는 모르지만, 졸업할 때 확인해 보니 4년동안 대출해서 읽은 책이 4백권이 넘었고 그무렵 시작된 collecting이 1~2백권은 충분히 넘었으니 나는 다짐대로 나의 시간을 살아낸 셈이다. 중요한 것은 4백권이 아니라, 그 시간이었고, 그 때 읽은 인문학(소설/시/철학/역사 등), 사회학 책들이 지금의 나를 구축했다.


나는 지금 복잡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제목은 "꿈꿔도 됩니다 "인데, 첫 문장은 "당신을 행복하는 하는 3가지는 무엇입니까?"이면서 나의 고등학교/대학교 시절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사람들은 흔히 행복하냐는 질문을 받으면 본인의 단/중/장기 목표를 성취한 순간을 이야기 하고 이 목표를 대부분의 사람은 꿈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렇기에 꿈을 이루는 순간을 행복한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A씨의 행복하게 하는 것들은 모두 과거형이며, 아직은 2가지 뿐이며, 나머지 한 가지 순간은 도무지 떠올릴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내게도 S대를 간다는 것이 고3때의 꿈이었다고 생각하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그것을 성취하지 못했고 그것은 목표 달성을 못한 것인지 꿈이 실패한 것인지 불분명하지만, 결론적으로 나에게 중요한 것은 S대가 아니라 그 과정을 살아낸 시간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사실 이 글은 또 질문으로 마무리 할 것이고, 역시 to be continued가 될 것인데, 그 질문을 하기 전에 충분히 이야기 하자면, 상기 A씨와 B씨 중에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A씨이지만 훌륭한 사람은 B씨라는 판단을 하고자 A씨와 B씨의 대답을 비교해 둔 것이 아니다. 물론 신앙의 차이라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 더 큰 결핍을 지니고 있었다 라는 것도 아니다. 말하고 싶은 A씨와 B씨의 차이점은 A씨보다는 B씨가 본인의 성향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행복하게 하는 세 가지를 안다는 것은 본인을 안다는 것이고, 본인의 중요한 가치관이 무엇인지 혹은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쉽게 서술할 수 있다는 것이다. A씨를 옹호해 주자면, 열심히 살았고, 그래서 힘든 시간을 거쳐 박사학위를 땄고, 물론 승진도 했고 성실하게 살아왔다. 그런데 도통 본인이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지 못했다, 사실은 그것을 생각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누구도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고, 왜 그런 것을 대답해야 하는지도 난감해 했다. 그리고 사실은, 박사학위를 따는 과정이 힘겨웠고, 승진을 위한 시간도 쉽지는 않았기에, 결과가 발표되는 순간이 더 행복했던 것은 맞다. 안타까운 것은 성취적 목표를 꿈으로 삼았기에 행복한 순간이 짧고 또다른 성취적 목표를 달성하는 순간까지는 그냥 그런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나에게 저런 질문을 당했고 그래서 황당해 했다. 사실 그 때 내가 받은 느낌은 '이렇게 쓰잘데기 없는 질문을 내게 왜 하는 것이지'라고 생각하며 황당해 하고 있다는 것이였다. 그 질문이 왜 황당했냐 하면, 본인의 다음 목표에 대한 생각이 아직 없는 시점이었고, 그렇다면 행복한 세 번째 시점을 위한 새로운 목표를 확보해야 하는데, 본인이 원하는 다음 목표를 찾기에는 이미 사회적으로 이룬 것들이 있으니, 이런 상황에 본인이 원하는 다음 목표란 것이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자각 조차 없었던 상태였던 것이다. 결국 저 질문은 나는 무엇을 원하지? 하는 생각에 도달하게 하니, 황당할 수 밖에 없는 질문이다.


A씨와 B씨의 두번째 차이점은 milestone적인 행복을 꿈꾸는가와 routine한 행복을 꿈꾸는가의 차이점이다. milestone적인 행복을 위해서는 늘 새로운 성취적 목표를 확보해야 하고, 많은 경우 이 목표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추구하기에는 힘겨울 수 밖에 없다, 반면 언제나 이룰 수 있는 routine한 행복은 동시다발적으로 추구하기 어렵지 않다, 동시에 행복하더라도 새로운 목표를 찾을 이유도 없다. B씨와 같이 routine한 행복을 꿈꾼다 해서 반드시 성취적 목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단기적으로 중기적으로 하고자 하는 바가 있고 또한 성실하게 인생을 살지만 그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의 기간동안 행복을 유예하지 않는 것이 차이점인 셈이다.


그럼 이쯤에서 질문을 하고 이번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이번에는 쉬운 질문이다.


"인생에서 가장 milestone적인 목표는 무엇이었으며, 달성하는 과정/결과에서 무슨 생각을 하였습니까?"


to be continued...






Posted by Sophie03
[꿈이야기]2013. 1. 1. 18:12



1편에 등장한 '오로라를 보고 싶다'는 꿈은 나의 꿈 중에 하나이다. 

그냥 두면 쉽게 잊을 그런 꿈이라 나는 오로라 사진을 자주 본다. 사진을 보면서 언젠가는 내가 내 눈으로 이런 오로라를 보게 될 것이라고 꿈꾼다. 언젠가는 내가 내 카메라로 이런 오로라 사진을 찍게 될 것이라고 꿈꾼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 중에 내가 꼭 직접 보고 싶은 몇 가지가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나의 꿈 중에 하나가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나의 꿈들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다.


나는 기도할 때면, 꽤 오랫동안 이렇게 기도해 왔다.

"저보다 저를 더 잘 아시는 주님, 저를 위해 예비하신 좋은 것들을 좋은 때에 제게 허락하여 주소서"

뭐랄까, 무언가를 해 주세요~ 라고 기도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오랫동안 있었다.


그러다가 이 구절에서 머리를 징으로 맞은 듯 온 몸이 울렸었다.


하루는 무릎을 꿇고 사원 바닥에 이마를 댄 뒤, 창조주에게 이렇게 중얼거린 적도 있다.
"아, 뭐가 필요한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당신은 아시죠? 그러니까 당신 생각대로 해주세요, 네?"
가끔 미장원에서 미용사에게 하는 말과 비슷하다.
미안하지만 이건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태도다. 이런 기도라면 신께서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이런 메시지를 보낼 것이다.
"네가 진지해질 결심이 섰으면 그때 다시 찾아오너라." (p267)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저자
엘리자베스 길버트 지음
출판사
솟을북 | 2007-11-30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좌절과 절망의 길에서 평온을 위해 떠난 여행기『먹고 기도하고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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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 혹은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 아는 것 혹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동시대인들에게, 좋은 학교/직장, 돈, 집 같은 보편타당한 것으로 여겨지는 욕망 이외에 무엇을 꿈꾸는가를 물으면 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 보편타당하다는 표현을 붙인다고 해서 으레 모두에게 저것들이 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저것들을 부정하는 순간에 가져오게 될 부정적인 감정-예를 들어, 잘난척하기는, 혹은 다갖추었으니이렇게이야기하는 것이지 류-이 소중한 이 시간에 무엇을 꿈꾸는가에 대한 이야기에 덧입혀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일단 보편타당한 욕망들 이야기는 기본으로 깔고 지나간다. 


사실 내가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서 크게 동의하는 부분의 이야기를 좀더 적어보자면... 


그런 순간이 올 때마다 나 자신에게 파격적인 새로운 질문을 하나 던졌다. "넌 뭘 하고 싶니, 리즈?"
대부분의 시간에는 이 질문에 대답할 엄두도 못 내지만, 그 질문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남몰래 짜릿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조심스럽게 대답을 내놓기 시작했다. 우선은 아주 초보적인 바람만 털어놓도록 했다.
요가 수업을 듣고 싶어.
이 파티를 빨리 빠져나가 집에 가서 소설을 읽고 싶어.
나에게 새로운 필통을 사주고 싶어.
그런데 매번 이 이상한 대답이 꼭 끼어들었다.
이탈리아어를 배우고 싶어.
지난 몇 년간 계속 이탈리아어-내게는 장미보다 더 아름다운 언어-를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그걸 정당화할 만한 실질적인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차라리 예전에 배웠던 프랑스어나 러시아어를 열심히 공부하지 그래? 아니면 스페인어를 배우든가. 그편이 미국에 거주하는 수백 명의 우리 라틴계 이웃과 의사소통하는 데 더 도움이 되지 않겠어? 이탈리아어를 배워서 어디다 쓰려고? 내가 이탈리아로 이사갈 것도 아닌데. 차라리 아코디언 연주를 배우는 게 더 실용적이겠다.
하지만 왜 모든 일에 꼭 실용적 가치가 있어야 한단 말인가? 난 수년간 근면한 일개미로 살았다. 일하고, 생산하고, 마감을 한 번도 어기지 않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잇몸, 신용카드 기록, 투표 등등을 관리하면서. 인생에는 오로지 의무밖에 없단 말인가? 슬픔의 암흑기에 처한 내게 이탈리아어를 배우는 것만이 지금 당장 즐거움을 가져다 줄 유일한 활동이라는 이유 외에 달리 무슨 이유가 필요하단 말인가. (pp41-42)

리즈는 이탈리아어를 배우고 싶다는 욕망에 대해서만 "이상한" 대답이라고 했지만, 사실, 저기에 적혀 있는 모든 바람은 좀 초보적이고 이상한 바람들로 여겨지는 것들이다. 내가 저런 꿈을 이야기하면 사실 사람들은 웃는다. "꿈"이라는 것이 저렇게 사소하고 이루기 쉬운 것이라면, "꿈"일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한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 순간 내가 시시한 사람이 된다. 내가 나의 꿈을 "임원이 되는 것, 박사가 되는 것, 좋은 집에 사는 것, 좋아하는 그림을 가지는 것" 등의 "이루어내는 성취적 꿈"으로 이야기 했다면 웃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진지한 표정으로-나의 꿈을 이야기 하는 것이니 진지할 수 밖에 없다- 오로라를 보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사막에 가서 별이 떨어지는 것을 보는 것, 눈내리는 바다를 보는 것, 살아있는 생태계가 지속되는 것, 꿈을 꿔도 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는 것 등을 말하면 웃는다. 사실 더 있지만, 일단은 이쯤에서 꿈을 늘어놓는 것은 접고.

이런 것이 꿈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나는 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꿈은 정형화되지 않는, 철저히 개인적인 것이다. 그리고 비실용적이어도 상관없다. 아무도 꿈검사를 하지 않는다. 다만 나의 꿈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본인이 스스로 어떤 것을 원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일단은 본인을 알아야 꿈을 이야기 할 수 있다. 스스로 멈춰서 있고 싶은 때가 있다는 것을 아는가, 스스로 성취하고 싶은 것이 있는가, 남의 눈치 보지 않고 가지고 싶은 것이 있는가, 스스로가 가장 가지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이것들에 대한 스스로의 해답이 있을 때 비로소 스스로의 꿈이 무엇인지 규명하기 쉬워진다. 보는 김에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에피소드 하나 더.

"아시다시피 전 기도에 대해 잘 몰라요. 하지만 제발 절 좀 도와주세요. 전 절실하게 도움이 필요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해답이 필요해요. 제발 어떻게 해야 할지 말해주세요. 제발 어떻게 해야 할지 말해주세요. 제발 어떻게 해야 할지 말해주세요········." (중략)
그건 단지 내 안에서 들리는 내 목소리였다. 하지만 전에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목소리. 내 목소리였지만, 완벽하게 현명하고, 차분하며, 인정이 넘쳤다. 내가 평생을 사랑과 확신 속에서만 살았다면 내 목소리도 그러했을 것이다. 신에 대한 내 믿음을 영원히 확인시켜줄 해답을 준 그 목소리에 깃들이 따뜻한 사랑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 목소리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침대로 돌아가, 리즈.
나는 숨을 내쉬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라는 사실이 돌연 분명해졌다. 그 외의 다른 어떤 대답도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넌 네 남편과 이혼해야만 해! 라든가, 네 남편과 절대 이혼해선 안 돼! 라고 말하는 목소리였다면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건 진정한 지혜가 아니기 때문이다. 진정한 지혜란 바로 그 순간에 유일하게 가능한 해답만을 주며 그날 밤, 유일하게 가능한 해답은 침대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pp31-32)

종교를 가졌든 가지지 않았든 인간 내면의 목소리가 스스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줄 수 있다. 일단은 질문을 해야 한다, 침대로 돌아가라는 어이없는 답변이 나오더라도, 요구하고 질문해야 한다. 자아에게 혹은 신에게, 혹은 자아 안에 머무는 신에게. 그러면 본연의 자아가 원하는 꿈을 알 수 있게 된다.

이렇게 기도하는 과정을 건너뛰고 가장 쉽게 본인의 꿈을 찾기 위한 첫단계 질문이 무엇인지 사실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기나긴 구절들을 인용하는 이유는, 꿈이란 흔히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이루어내야 한다"는 것이여야 하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꿈은 늘 변화하고 구체화된다. 리즈는 이탈리어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강해서 결국 이탈리아어를 배웠다, 나의 지인은 이 책의 청원서 이야기를 내게 들은 다음에, 청원서를 몇 번을 고쳐쓴 다음에 정말로 청원서에 기술된 것과 같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다. 스스로에게 꿈을 허락해주기를, 그리고 어떤 사소한 꿈이라도 "꿈꿔도 됩니다"

가장 쉽게 본인의 꿈을 찾기 위한 첫단계의 질문을 하면서 이번글은 마무리 하고자 한다. 원래는 이 질문은 듣자마자 3초 내에 대답해야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3분이 흘러도, 30분이 흘러도 쉽게 대답하지 못했음을 미리 알려드리니 좌절하지 마시고, 일단 찾으시길. 그래야, 1편의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의 대답을 하기 쉬워지니.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 3가지(사물/시간/사건 뭐든 상관없음)는 무엇입니까?"



to be continued...





Posted by Sophie03
[꿈이야기]2012. 12. 23. 23:04





과외학생 중 한 명. 

고3 1학기에 맡게 되었는데, 첫날 나는 그 남학생을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 생각했었다. 고3인데 be-is-was가 같은 가족이라는 것도 몰랐다. 

그런데 첫 수업이 끝날 무렵 내게 물었다 "다음시간에 단어시험 어디 봐요?" 솔직히 말해 이 아이는 나보다 더 많은 단어를 알고 있었다. 영어단어를 외우지 않는 내가 생각하기에 저런 단어는 죽을 때까지 한 번 더 볼 수 있을까 싶은 그런 단어까지 알고 있었다. 문제는 단어만 알고 있었다. 독해를 할 때는 모든 단어의 뜻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 이 아이의 방식이었다. 현재완료형을 이해할 수는 없으므로, 조건문을 이해할 수 없으므로, 단어의 힘으로 한 문단을 끝까지 읽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고3학생을 붙잡고 기초영문법에 나옴직한 문법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단어 시험은  보지 않았다. 그저, 그 모든 단어를 알지 못해도, 짐작으로 한 문단을 다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 아이의 기준으로는, 나는 자기가 아는 단어도 모르는, 그냥그런 과외선생님이었으리라. 어쨌든 내게는 곧 다가올 수능 준비보다는, 이런 단어 따위 몰라도 된다, 이 문장이 이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그러므로 이 단어는 이 뜻일 것이야 라고 말하며, 나의 단어 추정 실력을 그 아이에게 검증 받으며 문법과 독해를 가르쳤다. 

대학에 붙었다는 훈훈한 결말은 말 할 수 없다, 그 아이는 재수 했다. 훈훈한 결말은 이것이다. 나는 곧 유학을 떠난다는 그 아이에게 편지를 받았었다. 언제나처럼 상세한 문구를 기억할 수는 없지만, 이런 맥락이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공부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저도 하면 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멋진 사람이 될께요."



과외학생 중 또 한 명.

이 아이는 똘똘했다. 그리고 당돌했다. 그리고 공부하기 싫어했다. 이 아이는 문제는 왜 공부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과외의 시작은 늘,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대학에 왜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였다. 우리는 이야기 하고 또 이야기 했다. 이 아이로 인해 나는 처음으로 mentor가 되는 꿈을 꾸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아이는 오랫동안 나의 mentee였고, 그리고 나는 이 아이의 mentor였다.



꿈꿔도 된다. 

그 꿈이 무엇이든, 그 꿈을 살기 위해, 설득하기 위해, 증명하기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 하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래서 공부의 이유나 목적이 있을 수 없다. 이 사회는 공부를 삶의 이유이자 목적으로 내세우고 있으니까, 나의 과외학생들이 그럴 수 밖에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내 주변에 꿈꾸지 못하는 자들은 과외학생들 만은 아니다. 나의 친구들, 나의 지인들. 이 이야기는 또 언젠가 할 때가 있으니 상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고, 동시대인들은 꿈꾸는 법을 상실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나의 꿈에 새로운 꿈을 추가했다. 꿈꿔도 된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어쩌면 이 꿈은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꿈리스트 중에 가장 큰 꿈인지도 모른다.



각박한 세상에 "꿈"이라니 어불성설인지도 모른다, 배부른 자의 그야말로 꿈같은 이야기라고 할지도 모른다.

맞다, 꿈은 꿈이니까, 꿈은 한낱 꿈에 지나지 않는다, 그냥 두면 그냥 사라질 한낱 꿈이다.

'멋진 사람이 되겠다'는 꿈은, '오로라를 보겠다'는 꿈은, 어찌보면 너무도 하찮고, 어찌보면 엄두도 못 내며, 어찌보면, 아무 것도 아닌 일에 힘 빼지 말고 먹고 사는 일에 집중하자는 마음이 들게 하는 그런, 한낱 꿈에 지나지 않는다, 꿈이란 것은.



그렇기 때문에,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끊임없이 꿈꿔도 된다고 말해주어야 본인의 꿈이 하찮은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의 오랜 꿈인 유럽여행을 부추겼으며, 또 나는 망설이고 있던 누군가에게 "내 생각에 지금의 삶은 네가 꿈꾸는 그런 삶이 아닌 것 같아, 잘 생각해봐"라고 이야기 했다가 결국 그 누군가가 결단하게 만들기도 했다.



누군가는 옆에서 끊임없이 꿈꿔도 된다고 이야기해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의 우리의 사회는 꿈꾸는 것 따위 인생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아, 라며 각박한 시간을 강조하고 있으니까,

누군가는 옆에서 끊임없이 네 꿈을 살아내라고 이야기 해 주어야 한다.



영광스럽게도 내게 mentor를 부탁하는 지인을 만나면, 그런 까닭에 꿈이 무엇인지 질문하게 된다.

질문 후에 인용하는 문구는 (내가 처음에 선물받고는 이런 유치찬란한 책을 읽으라고 하다니! 하고 생각했던) 보물지도의 한 구절이다.



회사 업무라면 상사나 동료가 체크해 주기 때문에 잊어버리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 인생에 있어서의 중요항목까지 일일이 체크해 줄 사람은 없습니다. 인생의 우선순위를 잘 정하고 꼼꼼히 체크하지 않으면 막상 나중에 자기 인생을 뒤돌아보았을 때 '나 자신의 일은 전혀 우선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후회할지도 모릅니다.  (pp110-111)




보물지도

저자
모치즈키 도시타카 지음
출판사
나라원 | 2009-09-15 출간
카테고리
자기계발
책소개
꿈의 시각화! 당신만의 보물지도를 만들어라!보다 쉽고 즐겁게 꿈...
가격비교


 






나는 이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 블로그를 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묻고 싶다.

꿈꿔도 됩니다. 그런데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꿈 이야기는 어쩔 수 없이 to be continued....



Posted by Sophie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