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야기]2013. 1. 23. 00:55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 3가지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아마도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허를 찔린 듯한 이 질문을 받으면 대개 말을 멈추면 생각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럴 때 꼭 30초 이내로 생각나는 대로 3가지를 대라고 재촉한다. 그러면 더 당황해서 나한테 왜 이러는 거지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경우가 많았다. 


A씨의 답변은 박사학위를 땄을 때, 승진이 결정났을 때, 그리고... 세번째는 아직 없다고 했다.

B씨의 답변은 숲, 사람(이웃), 하느님이었다.


나는 사실 B씨의 답변을 듣고 놀랐었다. B씨를 15년 정도 알아왔는데, 질문이 떨어지자마자 스피드퀴즈를 풀듯이 답변을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A씨와 같은 유형의 답변을 하며, 대부분은 30여분 동안 띄엄띄엄 답을 이야기 한다, 적어도 내 주변사람들은 성취적인 꿈을 이야기 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틀린 것이 아니고,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므로 다른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도 나도 그랬었다. 나의 고등학교 때 꿈은 S대 진학이었다. 사실 어린 시절부터 읽는 것을 좋아해서 눈에 보이는 것은 가리지 않고 많은 것을 읽었기 때문에, 현상황의 내가 고등학교 때 꿈이 무엇이었냐고 묻는다면 인문학공부라고 말하겠지만, 그 때는 당연히 S대 진학이 나의 꿈이었다. 꿈이란 누구든지 쉽게 듣고 이해하며 성취가 분명한 무엇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은연 중에 한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수능 열흘 전쯤 고3이 끝나갈 무렵 쓰러졌었다. 우습지만 무리해서 공부해서 그런 것이었고, 당해년도 수능은 어려운 편에 속했었지만 그런 핑계를 차치하더라도 당연히 수능은 평소 실력보다 더 못 봤다. 쓰러진 것과 S대 진학 실패 간에 꼭 상관관계가 있지 않고 나의 실력으로는 원래 못 가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나는 이 때 한 번 어른이 되는 과정을 거치는데, 하나는 재수를 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는 과정이었고, 다른 하나는 대학 진학 후의 새로운 꿈을 살아내는 과정이었다.


내가 재수를 하지 않은 이유는 명확하다. 나는 그 때, 지금 생각해보면 기특하게도 이런 생각을 했었다. "나는 나의 고3에 후회가 없고, 다시 일년을 산다 하여도 이렇게 살았을 것이다. 고로 나는 내내 S대를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나의 꿈은 후회없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구나, 그러니 재수를 하지 않아도 되겠다." 라고. 

아마도 중학교 때부터 나의 좌우명은 "죽을 때 돌이켜보아 후회하는 시간이 있지 않도록 현재를 살겠다" 였고, 그래서 "과거가 나의 현재를 만들고, 그런 나의 현재가 미래를 만든다" 라는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저런 결정을 했겠지만, 어쨌든 내게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이었다. (물론 지금 다시 똑같은 결정의 순간이 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물어본다면 또 고심할 것 같기는 하다, 우리집 3남매 중에 S대를 못간 유일한 사람은 나이니까.)


그래도 말만 멋지지 실제로 너무도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살다가 갑자기 목표도 사라지게 되고, 심지어 내가 원하던 그 목표를 성취한 경우도 아니라면 이후의 시간들이 무의미하게 흐르기 쉽다. 특히나 학부제로 입학해서 주변의 모두가 학점에 목숨 거는 시간에 만 19세의 나는 "범생이적인 반항"을 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졸업할 때까지 4백권의 책 정도는 읽자 라는 생각을 부지불식간에 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을 읽고 모으고, 도서관에서도 꽤 많은 책을 대출해서 읽었다. 학교 안에는 내가 책을 읽기 위해 가는 나만의 숲 속 벤치가 있었고, 도서관에도 책 읽는 나의 좌석이 있었다. 부모님의 '책좀그만읽고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안 들어도 되었고, 시험을 보기 위해 시를 읽지 않아도 되었다. (전공이 인문학이라 시과목을 시험 볼 때는 예외였지만) 몇권을 읽었는지는 모르지만, 졸업할 때 확인해 보니 4년동안 대출해서 읽은 책이 4백권이 넘었고 그무렵 시작된 collecting이 1~2백권은 충분히 넘었으니 나는 다짐대로 나의 시간을 살아낸 셈이다. 중요한 것은 4백권이 아니라, 그 시간이었고, 그 때 읽은 인문학(소설/시/철학/역사 등), 사회학 책들이 지금의 나를 구축했다.


나는 지금 복잡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제목은 "꿈꿔도 됩니다 "인데, 첫 문장은 "당신을 행복하는 하는 3가지는 무엇입니까?"이면서 나의 고등학교/대학교 시절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사람들은 흔히 행복하냐는 질문을 받으면 본인의 단/중/장기 목표를 성취한 순간을 이야기 하고 이 목표를 대부분의 사람은 꿈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렇기에 꿈을 이루는 순간을 행복한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A씨의 행복하게 하는 것들은 모두 과거형이며, 아직은 2가지 뿐이며, 나머지 한 가지 순간은 도무지 떠올릴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내게도 S대를 간다는 것이 고3때의 꿈이었다고 생각하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그것을 성취하지 못했고 그것은 목표 달성을 못한 것인지 꿈이 실패한 것인지 불분명하지만, 결론적으로 나에게 중요한 것은 S대가 아니라 그 과정을 살아낸 시간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사실 이 글은 또 질문으로 마무리 할 것이고, 역시 to be continued가 될 것인데, 그 질문을 하기 전에 충분히 이야기 하자면, 상기 A씨와 B씨 중에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A씨이지만 훌륭한 사람은 B씨라는 판단을 하고자 A씨와 B씨의 대답을 비교해 둔 것이 아니다. 물론 신앙의 차이라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 더 큰 결핍을 지니고 있었다 라는 것도 아니다. 말하고 싶은 A씨와 B씨의 차이점은 A씨보다는 B씨가 본인의 성향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행복하게 하는 세 가지를 안다는 것은 본인을 안다는 것이고, 본인의 중요한 가치관이 무엇인지 혹은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쉽게 서술할 수 있다는 것이다. A씨를 옹호해 주자면, 열심히 살았고, 그래서 힘든 시간을 거쳐 박사학위를 땄고, 물론 승진도 했고 성실하게 살아왔다. 그런데 도통 본인이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지 못했다, 사실은 그것을 생각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누구도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고, 왜 그런 것을 대답해야 하는지도 난감해 했다. 그리고 사실은, 박사학위를 따는 과정이 힘겨웠고, 승진을 위한 시간도 쉽지는 않았기에, 결과가 발표되는 순간이 더 행복했던 것은 맞다. 안타까운 것은 성취적 목표를 꿈으로 삼았기에 행복한 순간이 짧고 또다른 성취적 목표를 달성하는 순간까지는 그냥 그런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나에게 저런 질문을 당했고 그래서 황당해 했다. 사실 그 때 내가 받은 느낌은 '이렇게 쓰잘데기 없는 질문을 내게 왜 하는 것이지'라고 생각하며 황당해 하고 있다는 것이였다. 그 질문이 왜 황당했냐 하면, 본인의 다음 목표에 대한 생각이 아직 없는 시점이었고, 그렇다면 행복한 세 번째 시점을 위한 새로운 목표를 확보해야 하는데, 본인이 원하는 다음 목표를 찾기에는 이미 사회적으로 이룬 것들이 있으니, 이런 상황에 본인이 원하는 다음 목표란 것이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자각 조차 없었던 상태였던 것이다. 결국 저 질문은 나는 무엇을 원하지? 하는 생각에 도달하게 하니, 황당할 수 밖에 없는 질문이다.


A씨와 B씨의 두번째 차이점은 milestone적인 행복을 꿈꾸는가와 routine한 행복을 꿈꾸는가의 차이점이다. milestone적인 행복을 위해서는 늘 새로운 성취적 목표를 확보해야 하고, 많은 경우 이 목표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추구하기에는 힘겨울 수 밖에 없다, 반면 언제나 이룰 수 있는 routine한 행복은 동시다발적으로 추구하기 어렵지 않다, 동시에 행복하더라도 새로운 목표를 찾을 이유도 없다. B씨와 같이 routine한 행복을 꿈꾼다 해서 반드시 성취적 목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단기적으로 중기적으로 하고자 하는 바가 있고 또한 성실하게 인생을 살지만 그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의 기간동안 행복을 유예하지 않는 것이 차이점인 셈이다.


그럼 이쯤에서 질문을 하고 이번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이번에는 쉬운 질문이다.


"인생에서 가장 milestone적인 목표는 무엇이었으며, 달성하는 과정/결과에서 무슨 생각을 하였습니까?"


to be continued...






Posted by Sophie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