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여성 리더십 교육'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3.10.23 [Sophie' Story] 순하디순한
  2. 2013.06.07 [Sophie' Story]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Story]2013. 10. 23. 23:19


오늘 저녁에 그룹 여성 리더십 교육에 참석하였다. 5월에 1박2일 교육을 하고(6월에 이 교육의 과제에 관한 글을 올렸었다☞click) 9~11월 총 3회에 거쳐 3시간 동안 교육이 진행되는데, 사실 나는 "여성"에 촛점이 맞춰지면 약간 불편하다. 많은 분들이 여성의 특성상 전략적 사고가 어렵다고 하거나, 입체적 환경 분석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면 나는 왜 그것이 어렵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타고난 특성의 문제이며 또한 성장 과정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에 나는 골목대장이었고, 삼국지를 재미있게 읽었으며,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스도쿠를 풀거나 조깅을 한다. 이 때문에 내가 양(miss) 대신 군(Mr.)로 불리웠는지도 모르지만, 심리학에서 gender검사를 하면 남성성/여성성/중성성/양성성 중 양성성이 나오는 내게는 "여성"이라는 테두리에서 이야기 하는 것이 어렵다. 특히 나는 미혼이라, 육아의 고민들에 대해서는 외부인이나 다름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동안의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외로움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그동안 겪었던 수많은 시행착오들, 그래서 여자후배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에 오지랖 넓게 충고하게 되는 그 문제들이 나만의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어, 교육에서 돌아오는 길이면 늘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오늘의 단상은 두 개.


어쩌면 이것은 내가 경험하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나라는 사람은 모두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삶 속에서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전전긍긍하며 살았는데, 어느 사건으로 인해, 내가 내 주변의 모두를 인정하지 않듯이, 당연히 나도 모두에게 인정받는 것은 불가능할 뿐 더러, 그럴 이유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저 꾸준함의 미학으로 내 인생을 살고, 일을 하고, 글을 쓸 뿐, 타인에게 나에 대한 판단권을 맡길 이유가 없었다. 사실 나는 타인에 대한 잣대보다 스스로에 대한 잣대가 더 높기 때문에, 삶이 늘 고단할 수 밖에 없는데, 판단권까지 외부에 넘기며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들며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럴 필요가 없다. 모두에게 인정받으며 살기 위해 삶이라는 유한한 시간을 소모할 이유가 없다. 스스로의 삶의 주체는 스스로가 되어야 한다. 절대 넘겨주어서는 안 된다. (노파심처럼 덧붙이자면, 고과와는 다르다. 고과는 회사에서의 업무성과-많은 것들이 포함된-에 의한 것이니, 잘 받는 것이 기본적으로 좋다. 하지만 no라고 말할 수 없다면, 그것은 모두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본성 때문인지도 모르니 한 번 잘 살펴보아야 한다.) 


다른 하나는 이 시.





작은 짐승


신석정


난이와 나는

산에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이 좋았다

밤나무

소나무

참나무

느티나무

다문다문 선 사이사이로 하늘은 바다보다 푸르렀다


난이와 나는

작은 짐승처럼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이 좋았다

짐승같이 말없이 앉아서

바다같이 말없이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


난이와 내가

푸른 바다를 향하고 구름이 자꾸만 놓아가는 

붉은 산호와 흰 대리석 층층계를 거닐며

물오리처럼 떠다니는 청자기빛 섬을 어루만질 때

떨리는 심장같이 자지러지게 흩날리는 느티나무 잎새가

난이의 머리칼에 매달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난이와 나는

역시 느티나무 아래 말없이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순하디순한 작은 짐승이었다





사실 그룹 여성 리더십 교육생들은 흔히 회사에서 관리하는 여성인재들이라고 말하는데, 우리 사회에서 그 말은 "독한"의 의미를 내포한다. 나 또한 그런 표현을 들었었고, 일면 억울하면서도 그것들을 넋두리 늘어놓을 만큼의 여유도 없고, 나의 본성을 알아달라고 누군가를 붙들고 이야기할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 교육생들은 대부분 참 순하디순하다. 업무를 함에 있어서 독할지 몰라도, 그리고 그들의 순하디순함을 표현하는 것이 제한되어 있어 세상이 잘 몰라주더라도, 사실 그들은 조용히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이 기쁜, 순하디순한 작은 짐승들이다. 


어쩌면 그 생각이 오늘밤은 그렇게 외롭지 않다고 생각하며 귀가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삶이라는 것은 늘 의외성을 지닌다.





# 그리고 고백하자면, 이 글은 5월 룸메이트로 처음 만났을 때는 거칠 것만 같다고 생각했던, 그러나 "알고보니" 순하디순한... 눈이 큰 동갑내기 L과장님께서 요즘 글을 자주 올리지 않는다고 해서, 급히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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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ophie03
[Story]2013. 6. 7. 22:51



작년말에 친구가 개인적인 설문을 진행했었다. 본인을 좋아하는지,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본인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지 의 질문으로 그녀와 친한 사람들에게 설문을 진행하였는데 생각못했던 결과에 놀랐다고 한다. 친구가 생각했던 '본인을 좋아하리라고 생각했던 이유'와 친구들이 말한 '좋아하는 이유'가 달랐다고 한다. 본인의 예상답변이 아닌, 친구들끼리의 대답이 비슷했고 인상적이였다고, 내게도 한번쯤 진행해볼 것을 권유받았었다.


나도 올해말쯤 한번 해봐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회사에서 교육을 받게 되었고, 그 집합교육의 과제가 평소 잘 알고 자주 접촉하는 지인에게 본인의 강점이나 잠재력, 또는 그들과의 관계에서 기여한 점을 두 가지만 구체적으로 써달라고 한 후에 정리하여 오는 것이었다. 과제를 핑계 삼아 나도 설문을 진행하였다.


이 과제를 부탁하는 것부터가 하나의 미션이었다. 누구에게 어떻게 부탁할 것인가. 나는 관계에서 어떤 기여를 하고는있는가 하는 고민도 당연히 들었다. 부탁하고 난 이후에 답을 기다리는 시간도 떨림의 시간이었다. 칭찬이 인색한 나라에서 자란 내게, 타인에게 듣는 나의 장점이란 무엇일까. 대부분 업무적인 답변들을 기대했고, 또 그렇게 오기도 왔다. 


일단은 이런 답변이 나와서 놀랐다. 나는 숨긴다고 숨기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다 알고 있었구나 하고 깜짝 놀랐다. 


그런데 몇몇 놀라운 문구들도 있었다. 


· 논리적/분석적 사고 방식과 감성적 공감능력이 Balance있게 뛰어남


· "broad & in-depth한 지적 탐구에 대한 열정 ^^ : 호기심을 갖는 분야가 워낙 다양하고, 그럴 경우, 어느 수준까지 그 분야에 대해 알고 있어야 직성이 풀리는 편임(듯함..ㅋㅋ)"


그래야 하는 성격이긴 하다. 정확히 이야기 하면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싫어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건 내가 좀 아는데"하면서 지어낸듯한 이상한 이야기 하는 문화를 싫어한다. 그리고 계속 공부하는 것이 즐겁다. 그것이 와인이든, 서양문화사든, 스페인어든, 나는 모르는 것이 많고, 새로운 것을 알아갈 때 무척이나 즐겁다.


그런데, 사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따로 있다. 나에게 이 설문을 권유해주었던 친구가 보내온 답변, 나는 생각도 못 했던 답변, 그 답변을 읽다가, 어느 순간 문득, 내 삶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친구(=Sophie03)의 가장 큰 강점은 정확한 판단력과 디테일 그리고 따듯한 마음씨이다. 같이 일을 해본 적은 없지만, 상황 설명을 듣거나 같이 여행을 가보면 상황을 정확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와인 스터디 하면서 느낀 건데 디테일하고 꼼꼼하게 열심히 준비를 해서 감동받았다. 친구는 관심분야가 있으면 깊이 파고드는 성격이어서 디테일에도 강한 것 같다. 보통 이런 사람들은 좀 냉정하거나 이기적인 사람이 많은데 친구는 마음이 따듯한 사람이다. 그래서 자기 일을 똑바로 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도 배려할 줄 안다.

 

친구는 나에게 나침반 같은 사람이다.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그리고 불합리하게 행동하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친구처럼 똑바로 생각하고 마음씨도 따듯한 사람이 있다는 건 마음속으로 큰 위안이 된다. 친구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문제가 있을 때 막 하소연 하는 타입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정말 혼란스러운 상황에 처했을 때 그녀를 찾아간다면, 그녀는 정확한 판단력과 따듯한 마음씨를 가진 나침반처럼 올바른 길을 보여줄 것 같다. 


나침반이라니... 그 단어만으로도 사무실에서 나는 눈물이 핑 돌았었다. 그리고 이 글을 쓰기 위해 내 방에 앉아 있는 동안에도 눈물이 핑 돌았다. 나를 나침반이라고 생각해주는 친구가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내가 이 세상에서 존재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친구가 내게 이 설문을 권유해 준 이유는 아마도, 내가 상상하는 것보다 내가 더 사랑받는 존재이며, 귀히 여김을 받는 존재라는 것을 주변사람들을 통해 깨달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이 친구의 설문의 답을 보내며, 친구를 진심으로 응원했던 것 같다. 어느 사이엔가 친구와 나 사이에 서로 물길이 트였나보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 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이 나의 친구이다.



우화의 강



마종기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서로 물길이 튼다.

한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풀렁이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어야겠지만

한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 수야 없겠지.


긴 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

몇 해쯤 만나지 못해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큰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 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 싶다.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저자
마종기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2004-03-08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1959년 '현대문학'추천으로 등단한 마종기는 등단한지 45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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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도 추천한다. 설문을 진행해 볼 것을. 스스로 얼마나 사랑받는 존재인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기 어려울 때에, 주변인들의 힘을 빌어 스스로를 다시 한 번 사랑할 용기를 가져볼 수 있도록 설문을 진행해 볼 것을 추천한다.


Posted by Sophie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