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brary]2013. 7. 7. 00:36



하루키도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어찌 보면 내가 좋아하는 작가 하루키는 두 명이다. 에세이스트 하루키와 소설가 하루키를 모두 좋아하는데 좋아하는 이유는 다르다. '에세이스트 하루키는 늦은 저녁 혹은 이른 밤에 동네 편의점 앞에서 꾸준함이 미덕인 동네 오빠와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 같다'라는 이야기로 글을 쓸 예정이었는데, 소설가 하루키씨가 본인의 이야기를 먼저 쓰라는 듯 내게 신호를 보내서 이 글을 먼저 쓰기 시작한다. 정확히는 이번 신간 이야기이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13-07-0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지금, 당신은 어느 역에 서 있습니까?모든 것이 완벽했던 스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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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극성스러운 독자로 변신하는 나는 이 책도 1판1쇄로 두어번 읽었다. 사실 처음에 읽기 시작하였을 때, "이 책의 작가는 하루키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이름에 색채가 있다'는 문장에서 보면 어느 일본 작가의 이야기를 읽고 있는 것은 분명하나 이상하게 하루키가 아닌 것만 같았다. 중반쯤 읽었을 때 깨달았는데, 하루키가 맞았다. 다만,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직전 소설이 『1Q84』였고,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 소설이 소설가 하루키에 부여한 이미지가 너무 강렬하였기 때문에, 색채가 없는 쓰쿠루씨의 이야기는 왠지 미미한 사건과 같아 보였던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보니, 정확히 말하면, '쓰쿠루' 덕분에 다시금 하루키를 찾은 기분이다. 이해할 수 없는 미묘한 사소함이 만들어낸 1차원적인 인생의 사건은 인생 전반에 3찬원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고, 결코 돌이킬 수 없으며, 사라지지도 않는 흔적들을 간직한 채로 인물들은 제각기 본인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기억을 어딘가에 잘 감추었다 해도, 깊은 곳에 잘 가라앉혔다 해도, 거기서 비롯한 역사를 지울 수는 없어." 사라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것만은 기억해 두는 게 좋아. 역사를 지울 수도 다시 만들어 낼 수도 없는 거야. 그건 당신이라는 존재를 죽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pp51-52)

"어이, 이런 거 엄청난 패러독스라는 생각 안 들어? 우리는 삶의 과정에서 진실한 자신의 모습을 조금씩 발견하게 돼. 그리고 발견할수록 자기 자신을 상실해 가는 거야." (p244)

그렇지만 이야기가 간단하지만은 않을 터이다. 사람은 매일 움직이고 나날이 위치를 바꾸어 간다. 다음에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p277)

"우리네 인생에는 어떤 언어로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 있는 법이죠." (p304)

그래서 쓰쿠루씨의 인생이 담긴 이 소설은 당연하게도 열린 결말이다. 사실 마지막 열장정도를 남겨두고는 '어, 이렇게 몇장 안 남았는데, 이야기가 여기까지 전개되면 안 되는데'하는 마음으로 읽다가, '음, 역시...'하고 책장을 덮게 되었다. '쓰쿠루'씨의 인생은 어찌 보면 이제 시작이니까, 여기서 어떤 결말도 보여주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게도 소설가 하루키씨의 방식이니까. 

그런데 사실 이번에 오랜만에 진지한 생각을 했다. '내가 어떤 작가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경우는 ① 그 작가의 이야기/구성력/말하고자 하는 바를 좋아하는 것 ② 그 작가의 문장력을 좋아하는 것 ③ 그 작가의 이야기와 문장력을 모두 좋아하는 것으로 크게 분류되는데, 하루키의 경우는 ③번에 속한다. 내가 전작주의자가 되어 모든 작품을 읽고 대부분의 작품을 수집하는 경우 역시 ③번에 속한다. 그런 경우에는 책을 또 읽고 또 읽어서 작품이 가진 또다른 의미를 찾아내는 즐거움이 크다. 

그래서 이 글의 제목이 "좋아하는 소설가 하루키씨의 신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소개하기"이 된 것이다. 사실 표시해둔 구절들은 더 많지만, 읽기도 전에 초칠 수는 없으니, 이 정도만 옮겨둔 것이다. 소설가 하루키씨의 문장들이 주는 위로가, 쓰쿠루씨의 인생을 통해 우리에게 주는 위로만큼이나 대단했다. 


그때 그는 비로소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영혼의 맨 밑바닥에서 다자키 쓰쿠루는 이해했다. 사람의 마음과 사람의 마음은 조화만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처와 상처로 깊이 연결된 것이다. 아픔과 아픔으로 나약함과 나약함으로 이어진다. 비통한 절규를 내포하지 않은 고요는 없으며 땅 위에 피 흘리지 않은 용서는 없고, 가슴 아픈 상실을 통과하지 않은 수용은 없다. 그것이 진정한 조화의 근저에 있는 것이다. (pp363-364)



두어번 읽어보니 한번쯤 읽어보실 것을 권유해 드리고 싶군요! 『1Q84』가 하루키 소설스럽지 않다, 예전같지 않다는 의견을 제게 피력하신 저의 지인분들께 특히 권유해 드리고 싶어요!







1Q84. 1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09-08-2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당신의 하늘에는 몇 개의 달이 떠 있습니까?무라카미 하루키가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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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ophie03
[Story]2013. 4. 27. 00:58



책을 읽고 나니 독후감 대신 나의 책 이야기를 적어두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 빌미를 제공한 책은 바로 책에 관한 책이다.




책인시공(책 읽는 사람의 시간과 공간)

저자
정수복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구)포도원(도) | 2013-03-08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책과 사람 사이의 아름다운 관계!책 읽는 사람의 시간과 공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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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디서 책을 읽을까에 대한 글로, 작가가 최선을 다해 쉽게 글을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어야 한다고 하지 않고, 책이 이렇게 좋다고 하지 않고, 책을 좋아하는 작가가 언제나 어디서나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쓴 책이고, 나는 책을 좋아하니까 재미있게 읽었다.


그런데, 책이 좋은 것은 다 안다. 그런데 책은 산과 같다. 그리고 독서는 등산과 같아서, 누구나 등산이 좋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등산을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책읽기가 좋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책읽기를 하지 않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러므로 누군가에게 이 책은 그저 웅웅 울리는 냉장고 소리처럼 표지만 보는 책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 보면 보이는 산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래도 나는 산도 책도 좋아하고, 등산도 독서도 좋아하니, 내 스타일로 책을 위한 변명을 써두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이 글 역시 책을 좋아한다면 끝까지 읽어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예 안 읽고 지나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저 글일 따름이니까. 이런 블로그의 글보다는 인쇄되어 나오는 책은 훨씬 더 매력적이다. 왜냐하면 산처럼 책은 쉽게 변하지 않고 대체로 그 자리에 있다. 산불이나 공사에 의해 산이 변하기도 하고, 좋은 책은 늘 절판되곤 하니, 반드시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아니기는 하지만, 그래도 대체로 그 자체로 존재한다. 또, 사람에 따라 산과 책을 싫어하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한다. 그리고 사람의 시간에 따라 산과 책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지게 된다. 언젠가의 산은 위로가 되고 언젠가의 산은 무덤덤하다. 어느 날의 산은 바람이 좋았지만, 어느 날의 산은 새소리가 좋다. 어렸을 때 읽었던 『어린 왕자』와 청소년기에 읽었던 『어린 왕자』와 이십대 어른이 되어/삼십대 어른이 되어 읽은 『어린 왕자』는 다르다. 인상깊은 구절도, 읽은 후의 소감도 당연히 다르다. 그래서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같은 산을 오르면서 다른 느낌의 산을 등산한 기분이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도 끊임없이 같은 책을 읽으면서 다른 독후감을 쓰게 된다. 여행지에서 읽었던 『브리다』와 일상에서 읽었던 『브리다』가 서로 다른 감상을 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사실 산을 좋아해야만 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책을 좋아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산을 좋아하는 것도 책을 좋아하는 것도, 사랑에 빠지는 것과 같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것이다. 종종 책을 왜 그렇게 좋아하게 되었냐는 질문을 받는다. (솔직히 질문자들은, 자기 자녀가 당신처럼 책을 많이 읽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과 함께 던지기 때문에 약간 실망스럽다.) 


아무튼 대답해 본다. 우선, 나는 일년에 책을 90~100여권 읽는다. 그리고 독후감을 70여권 쓴다. New year's Resolutions에 늘 독후감 주 1회 이상 쓰기가 들어가기는 하지만, 늘 더 많이 읽고 싶고, 더 많이 독후감을 쓰고 싶기는 하지만, 숫자를 채우기 위한 독서는 사절이다. 나는 그냥 책이 좋다. 어렸을 때 디즈니의 동화책의 점보코끼리가 귀를 팔락이며 날라가는 그림이 있던 페이지에 있는 글을 처음으로 읽었던 기억이 있다. 삼남매가 모두 글을 알아서 깨우쳤다고 하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늘 점보코끼리가 모자쓰고 날아가며 새와 대화하던 그림책의 글씨를 처음으로 읽은 것만 기억한다. 이사를 많이 다녔고, 집은 넉넉하지 않았기에, 집에 책이 많지는 않았다. 그래서 집에 새 책이 생기면 너무나 기뻐서 자꾸 반복해서 읽었던 기억도 있다. 친구네 집의 백과사전이 너무나도 부러워서, 친구집에 가면 백과사전을 한 권 뽑아서 계속 읽기도 했었다. 그런데 나는 사실 유난히 신문을 싫어한다. 금세 폐기되어 버리는 신문의 존재를 생각할 때, 회색 종이의 잉크냄새가 나는 까칠까칠한 신문은 내게 반가운 존재가 아니었다. 그래도 일종의 텍스트 중독처럼 나는 사실 글을 보면 우선 읽고 보는 버릇을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있어서, 신문이 펼쳐져 있으면 어느 순간 눈을 글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책에 대한 의존도와 욕망이 극대화 되었던 때는 역시 존재한다. 의존도가 높아졌을 때는 처음으로 서울로 이사왔던 초등학생 시절인데 그 때 나는 외로웠다. 또래 집단에서 분리되어 있었고, 나의 존재감도 증명해야만 했다. 그래서 해질 때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던 말괄량이가 어느 순간 독서가가 되었다. 그리고 욕망이 극대화 되었던 때는 아무래도 중고등학생 때였다. 청소년기에는 부모들이 의례히 그렇듯 책을 읽는 일이 금기시 되었었다. 대학교를 가기 위한 교과서/참고서 외에 다른 책들은 쉽게 금지되곤 했었다. 금지는 욕망의 극대화를 초래하니까, 당연히 나는 그 때 너무나도 책이 읽고 싶었고, 그 때 읽었던 『데미안』은 두고두고 나에게 감동이었다. 


어린 날의 책은 한 인생의 결정들에 영향을 미친다. 『독일인의 사랑 』 때문에 고등학생 때 나는 독일어를 전공했고, 『좀머씨 이야기』덕분에 독문학을 전공하고, 밀란쿤데라를 좋아하게 되고, 스위스 독일어권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왔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인해 일상이 버거울 때 시간을 살아낼 수 있었고, 단순한 열정』 덕분에 힘겹고 어두운 터널을 견디어 낼 수 있었다. 『불안』을 읽으며 가장 불안한 시간에 유머를 찾을 수 있었고, 친밀한 지인의 죽음 이후 책을 계속 못 읽다가 『웃음』을 읽으며 다시 허무한 웃음이라도 지으며 삶의 궤도로 돌아올 수 있었다. 늘어 놓으면 끝이 없다. 나의 삶의 시간 동안, 결정의 순간마다 책은 늘 애정의 대상이며 우정을 나눈 친구였다.


생각해 보면, 비디오플레이어도 없고, 만화책방에 갈 돈도 내 수중에는 없었고, 오로지 책만 있었기 때문에, 책이 익숙해져서 책을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언제나 내 곁에는 책이 있었다. 산이 그곳에 있는 것처럼 책이 늘 있었다. 같은 책을 다시 읽는 즐거움, 새로운 책을 읽는 즐거움, 책이 알려준 또다른 책을 읽어나가는 즐거움, 서점에 서서 책을 뒤적이다가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즐거움, 도서관 서고에 기대에 읽는 책의 즐거움, 좋아하는 작가의 전 작품을 다 읽는 즐거움. 그 모든 즐거움으로 인해, 비디오플레이어가 없던 시절에도 나는 즐거워했다. 그래서 책을 왜 그렇게 좋아하느냐는 질문에는... 그저 즐겁기 떄문이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결국 사랑에 빠지는 것과 같이, 어쩌다 보니, 좋아하게 되었다 외에는 따로 할 말이 없다. 


결국 그런 것이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도 좋아하는 이유를 분명히 말할 수 없다. 그저 사랑에 빠졌기 때문에...





어린왕자

저자
생텍쥐페리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07-05-08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비밀을 가르쳐줄게. 아주 간단한 거야. 오직 마음으로 보아야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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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다

저자
파울로 코엘료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0-10-2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우리에겐 꼭 만나야 할 단 하나의 '운명'이 있다 ‘마법의 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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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엘리트문고 2)

저자
헤르만 헤세 지음
출판사
신원문화사 | 1983-06-0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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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의 사랑

저자
막스 뮐러 지음
출판사
문예출판사 | 2005-02-0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독일 언어학자의 소설. 어린 주인공에게 별 하늘을 보여주는 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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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머 씨 이야기

저자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출판사
열린책들 | 1992-11-0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원색 삽화와 함께 엮은 독일작가의 중편소설. 배낭을 짊어지고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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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저자
밀란 쿤데라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09-12-24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20세기 최고의 작가 밀란 쿤데라의 대표작을 만나다!민음사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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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열정

저자
아니 에르노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01-06-3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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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저자
알랭 드 보통 지음
출판사
이레 | 2005-10-15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영국의 젊은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의 신작으로 지난 2천년간의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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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1

저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출판사
열린책들 | 2011-11-3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웃음의 성배는 어디에 있는가?베르베르 특유의 상상력이 탄생시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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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되도록이면 실제로 내가 읽었던 버전의 책을 골라 넣으려고 하는데, 데미안 출판 일자가 83년라니 놀랍다. 그리고 어린왕자/독일인의 사랑은 내가 읽은 버전을 찾을 수가 없어서 아쉽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오빠의 책을 빌려 읽은 거라 내가 지금 가지고 있고 최근에 읽는 버전으로 등록하였지만, 처음으로 읽은 버전은 아래의 버전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저자
밀란 쿤데라 지음
출판사
민음사 펴냄 | 1999-01-01 출간
카테고리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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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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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ophie03
[Think+ing]2012. 12. 2. 00:50




고등학교 3학년 생일에 친구에게 선물받은 "좀머씨 이야기"로 시작된 파트리크 쥐스킨트(Patrick Sueskind) 읽기는 나를 전작주의자*로 만들었다. 바꿔말하면 내가 전작주의자가 되게 만든 작가이자, 전작주의자로서의 첫번째 대상이 된 작가가 쥐스킨트이다.


쥐스킨트의 모든 작품을 소장하고 읽고, "콘트라베이스" 공연을 보러 간다던가, "로시니 혹은 누가 누구와 잤는가 하는 잔인한 문제" 영화를 보러 간다던가, 등의 지지를 보내왔다.


그런데, 2000년에 향수가 번역되어 나오고,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영화가 만들어지고 한 이후에, 쥐스킨트가 사라졌다. 아무리 기다려도 다시 나타나지 않고 있다.


내가 쥐스킨트를 좋아하는 것은 그의 전 작품을 통틀어 나타나는 그의 사상이 좋아서이다. "God is in the details"를 떠오르게 하는  섬세함, 사소함, 열망, 집착 그리고 그것들이 응축되어 있다. 그런데도 늘 영혼이 살아 있다. 읽고 있노라면, 나는 이미 등장인물 바로 옆에서 숨소리를 듣고, 한숨을 느끼고, 절망을 흡수하게 된다.


작가가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에 더더군다나 그 등장인물들이 살아 숨쉬곤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완전히 사라지면 안 되고, 후속작들을 내주기만을 기다렸는데, 강산이 바뀌고도 그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때로 쥐스킨트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쥐스킨트를 그리워하고 있다. 예를 들어, "파트리크 쥐스킨트 돌아와요!"에 생각을 할 때면 "좀머씨 이야기"의 "Lass mich in Ruhe"('날 좀 내버려 두시오'로 번역되며, 독일어에서 'Ruhe'는 죽음에 가까운 고요를 의미한다.) 부분에 크게 감정 이입을 하면서 읽는다거나, 세상사 돌아가는 것을 볼 때면 읽게 되는 단편이 "깊이에의 강요"이다. 




깊이에의 강요

저자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출판사
열린책들 | 1996-05-0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깊이가 없다`라는 평론가의 말에 `깊이`가 무엇인지 구현하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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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는 전도유망한 아름다운 화가에게 평론가가 "그 젊은 여류 화가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고, 그녀의 작품들은 첫눈에 많은 호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그것들은 애석하게도 깊이가 없다"라고 이야기 한 이래로, 그 화가가 "깊이" 때문에 작품 활동을 하지 못하고 "깊이"에 집착하다가 결국은 자살하게 되는데 마지막에 그 평론가가 (본인이 그런 평론을 했다는 것을 까마득히 잊은 채) 이렇게 이야기한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젊은 사람이 상황을 이겨낼 힘을 기르지 못한 것을 다시 한번 다같이 지켜보아야 하다니, 이것은 남아 있는 우리 모두에게 또 한번 충격적인 사건이다. 무엇보다도 인간적인 관심과 예술적인 분야에서 사려 깊은 동반이 문제되는 경우에는, 국가 차원의 장려와 개인의 의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러나 결국 비극적 종말의 씨앗은 개인적인 것에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소박하게 보이는 그녀의 초기 작품들에서 이미 충격적인 분열이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사명감을 위해 고집스럽게 조합하는 기교에서, 이리저리 비틀고 집요하게 파고듦과 동시에 지극히 감정적인, 분명 헛될 수밖에 없는 자기 자신에 대한 피조물의 반항을 읽을 수 있지 않은가? 숙명적인, 아니 무자비하다고 말하고 싶은 그 깊이에의 강요를?" (pp16~17)



현대의 우리에게 깊이에의 강요는 이미 폭력이다. '나는 가수다'는 예능 프로그램인데, 가수들에게는 "예능출연자"다운 즐기는 모습 없이 긴장한 피순위자의 모습만 보여진다. 올림픽의 선수들에게 스포츠는 그들의 인생인데 여러 차원의 깊이에의 강요들이 이뤄진다. (예를 들어 축구의 독도 사태나, 손연재의 출국 취소 같은 사건들) 정치에서도 직장에서도, 무의미한 그러나 무자비한 깊이에의 강요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 순간이 감지될 때면 나는 쥐스킨트를 떠올린다. 사회 전반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깊이에의 강요에 대해, 그리고 쥐스킨트의 부재에 대해,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쥐스킨트가 왜 사라졌는지는 알 수 없다. 어떤 기나긴 Ruhe 속에 존재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생각한다. 섬세함으로 열망을 집착으로 보여주는 쥐스킨트라는 작가가 새로운 사소함으로 돌아와 주기를!


파트리크 쥐스킨트 돌아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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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작주의자는 사전에는 나오지 않는 단어로 한 작가의 전 작품을 소장하고 읽어 한 작가의 흐름을 읽어내는 사람을 의미함.  

이는 '전작주의자의 꿈' 을 읽으면서 알게 된 단어로,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책 읽기 성향이 전작주의자의 성향과 유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음.



전작주의자의 꿈

저자
조희봉 지음
출판사
함께읽는책 | 2003-01-22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현직 헌책수집가의 숨은 책 이야기. 한 작가의 모든 작품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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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ophie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