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2014. 10. 18. 22:30

# 회사 사보글 청탁을 받고 작성한 글입니다. 지면으로 인쇄된 제 글을 읽자니 꽤 어색하더군요. 언젠가, 바로 아래의 사진에 관련된 글을 3개는 쓸 수 있다고 했는데, 그 두번째 글입니다. 그동안 블로그에 써온 글들에 들어간 이야기들이 좀 식상하기도 하고, 회사 사보글로 "주제"를 받아 작성한 글이라 좀 교훈적이기까지 하지만, 그래도 기념으로 포스팅해 둡니다.


tumblr_ldrk27Pxh21qc0cxpo1_1280.png


이 문구를 보고 나는 당신을 떠올렸습니다. 이것은 당신의 언어이니까요. 당신이 궁금해하는 나의 비밀을 이제는 말해볼까 합니다.

유럽의 겨울이 끝나갈 무렵 달콤하고 기름진 과자들을 먹을 수 있습니다. Ash Wednesday를 기점으로 시작되는 사순절 동안 금욕의 시간을 맞이하기 전에 모두가 카니발을 즐기는 그 때이지요. 저도 스위스의 한겨울을 온몸으로 견디고 나서, 카니발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날의 경험은 강렬했습니다. 사람들이 사는지도 모르게 고요하던 도시가 한순간 시끌벅적해지고 길에서 만난 동양여자인 저에게도 서슴없이 말을 걸었습니다. 제가 있던 도시는 동양인이 거의 없어서 평소 길을 걸어가면 다들 저를 신기한 듯 쳐다보곤 했었습니다. 독일에 살던 친구가 딱 지금만 먹을 수 있으니 먹어두라고 했던 그 카니발의 과자는 사실 기름에 튀긴 과자였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마법이 풀려버린 것처럼 다시 고요해지고 사람들의 단순한 삶이 시작됩니다. 물론 그 기름진 과자도 자취를 감춥니다.

갑자기 고요해진 도시처럼 13년 2월 10일 설날 오후 3시에 나도 밀가루를 끊기로 결심했습니다. 설날연휴동안 많은 기름진 것들을 먹었으니 카니발이 끝나듯이 나도 불현듯 밀가루를 끊기로 그냥 마음 먹었습니다. 1년반이 지난 지금까지, 해외여행이나 출장기간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밀가루를 먹지 않고 있습니다.

밀가루 단식의 좋은 점도 있지만 당연히 불편한 점들도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불편한 점은 주변 사람들에게 무언의 압박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식사를 같이 할 때 “밀가루를 끊은 저 사람과는 무엇을 먹을 수 있나?”하는 압박은 사실 소소한 정도입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도 리조또를 먹거나 샐러드를 먹으면 되니까요. 베지테리언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섭취할 것을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이 밀가루 단식자에게도 있습니다.

하지만 더 큰 압박은 늘 심리적인 것이지요. “저 사람이 밀가루를 끊었으니 나도 밀가루를 끊어야 하나”하는 웰빙에 대한 압박 말입니다. 운동을 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공부를 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하면 느끼는 그 “잘 사는 삶”에 대한 부담을 본의 아니게 밀가루를 끊은 나를 만나도 받게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나는 당신에게는 밀가루 단식을 권하지 않습니다. 저는 밀가루 단식을 하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지만 우리는 의외로 자주 그리고 많이 밀가루를 섭취하고 있습니다. 빵이나 면, 햄버거나 피자, 과자 등 우리는 자발적으로 밀가루 메뉴를 선택하여 먹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당신이 먹고 있는 어묵에도 트윅스에도 프링글스에도 시리얼에도 밀가루가 들어가 있습니다. 사실 밀로 만드는 맥주도 마시면 안 됩니다. 끊고 보니 우리는 밀가루를 선택하여 살아온 것이 아니고, 지배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밀가루 단식이란 식생활의 변화가 아니라 삶 자체가 바뀌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간단히 칼로리발란스로 끼니를 때울 수도 없고, 동료들과 프라이드치킨을 나누어 먹을 수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당신이 내게 “내일부터 밀가루를 끊어볼까”한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겁니다. “아니요, 하지 마세요. 정 하겠다면 빵이나 면, 피자나 햄버거 중에 하나만 먼저 끊으십시오.” 왜냐하면 당신은 어제도 내게 “내일부터 다 끊어볼까?” 하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단언하건대, 당신이 이 글을 읽고, 혹은 나를 보고 밀가루 단식 실행을 고려한다면 당신은 반드시 실패할 것입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 대부분이 이미 실패했습니다. 외부에서 강제되어진 의지는 도약으로 이어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웰빙에 대한 목적을 정했다 해도, 반드시 밀가루 단식이어야 하지도 않고, 디톡스나 간헐적 단식이어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각자의 길은 모두 다르니까요.

다만, 결단이 필요한 일이지요. 매일 양치를 하듯이, 매일밤 잠을 청하듯이, 밀가루를 끊는 일도 끊임없이 해야 하는 일이기에 결단이 필요합니다. 처음부터 심사숙고할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나의 비밀입니다. 내부에서의 결정을 외부로 표출하는 순간, 즉 결단하는 순간 이미 변화는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이루게 된다면 삶은 이미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스스로 결단하여 혼자서 이루어야 하는 일입니다. 타인인 내가 권하거나 실행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이 결심하고 실행해야 도약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한걸음은 당신을 좋은 길로 안내할 것입니다.

오랜만에 더듬더듬 번역한 헤르만 헤세의 시 한 편을 덧붙이며, 당신의 결단을, 도약을, 변화를 응원합니다.



혼자


헤르만 헤세


세상에는

크고 작은 길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길들의

목적지는 같습니다.


당신은 말을 타거나 차를 타고 갈 수 있고,

둘 혹은 셋이서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마지막 한 걸음을

당신은 혼자서 가야만 합니다.


모든 어려운 것들을

혼자서 하는 것 외에는

잘할 수 있는 어떤 지혜도

능력도 없습니다.



Posted by Sophie03
[Story]2013. 12. 22. 21:30



'2013년이 열흘 남았다. 눈도 오고 이곳저곳 크리스마스 장식도 되었고, 회사 공식/비공식 송년회와 지인들과의 송년식사도 종종 하고 있지만, 개인적인 송년 준비를 올해도 하고 있다. 




(@Park Hyatt Seoul, Galaxy3S) 



친구가 작년말에 본인이 시행한 이후에 뜻깊었다고 추천한, 지인 대상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설문 조사를 12월에 시행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었는데, 5월에 그룹 교육을 받으면서 이미 시행하여 이 프로젝트는 면제되었다. (click ☞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리고, 어젯밤 KBS 연예대상을 시작으로 연말 내내 방송 3사에서 OO대상들을 진행하는 것처럼, 나도 '스스로 대상'을 할 시간이 왔다. '스스로 대상 주기'를 하게 된 연유와 '2012년의 시상 항목에 대해서는 일년여전에 작성하였고, (click ☞ "스스로 대상 주기") 오늘의 주제는 지인들이 궁금해하는 것이다. 


개인 시상에 대해서 의외로 지인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이 바로 포상이다. 개인적으로, 어려서부터, 포상에 익숙하지 않은 나로써는 왜 개인 시상이 포상과 연결되는지 이해할 수는 없으므로, 개인 시상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포상은 없다. 


하지만, 연말이면 몇 가지 선물을 스스로에게 주게 된다. 꾸준하게 한 해를 살아왔다는 차원으로 선물을 준비하고 만끽한다.


우선 연주회를 간다. 나를 위한 연말 연주회의 기본은 말 그대로 연주회이다. 가수들의 콘서트나 뮤지컬 등에도 기회가 있으면 가지만, 기본적으로 연주회는 꼭 간다. 왠지 모르게 연주회에 가서 악기의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한 해의 피로가 노곤히 풀리는 느낌이다. 사실 겨울에 가는 음악회가 대부분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연주회장에 가서 따뜻한 공기와 어두운 공간, 그리고 아름다운 선율에 몸에 맡기면 일순간 노곤해지면서 다소 졸립기도 하고 힘이 빠지기도 하면서 음악에 젖어들어가는 묘미가 있고, 나는 그런 느낌을 즐긴다. 그래서 올해는 금호아트홀 체임버 뮤직 소사이어티의 실내악 연주회에 다녀왔다. 




프로그램은 나는 처음 들어본 작곡가인 Reinecke의 곡들로 꾸며진 Reinecke Special 이었는데, 듣고 있노라니 어깨가 으쓱으쓱 기분이 좋았다. 연주자의 숨소리까지 들리는 2중주부터 8중주까지 즐거운 시간이었다.


둘째로 서울의 평일의 여유를 즐기는 즐거움을 허락한다. 평일 휴가를 내면 '에너지 충전'을 위해 바삐 움직이는 것과 달리, 그냥 그 때 하고 싶은 일을 한다. 그래서 달콤한 낮잠을 자기도 하고 오후 늦게 걸어나가 커피 한잔 마시고는 저녁 약속에 참석한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그냥 그런다. 한 해 바삐 살았으니 12월에는 그런 여유를 즐겨도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실제로 해보면 12월의 널널한 평일이 약이 된다. 12월에 송년회니 뭐니 정신 없이 보내고 나면 12월이 가는지도 1월이 오는지도 모르고 시간은 흐르니까, 그저 그런 여유가 필요하다.


셋째는 사람들이 제일 궁금해 하는 '상품'인데, 우선은 당연히 책이다. 아주 고심해서 두어권 책을 고른다. 이번 주말에도 책장 정리를 했지만, 사실은 책장에 자리가 없어서 책장을 늘리지 않는 한 책을 자주 많이 살 수도 없고, 딱 두어권만 연말 선물로 책을 고른다. 대출해서 읽은 후에 재독서가 가능한 소장용 책을 사는 목적이 강하므로, 신중 또 신중 모드가 되곤 한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옷도 물론 산다. 12월에는 가계부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뭔가 옷을 사게 되기는 한다. 물론 올해도 이미 샀다.


지인들이 개인 대상에 대해서 두번째로 궁금해 하는 것은 무엇을 시상하느냐는 것이다. 링크된 글에서 어떤 항목에 시상을 하는지는 적어두었지만, 말하자면 대부분 나의 꾸준함에 대한 시상이 이루어진다. 사실 꾸준함이 중요하다. 솔직히 나는 연말연시의 요란한 분위기가 싫다. 어렸을 때부터 집안 분위기상 연말에는 반성을 하고 연초에는 계획을 세워야 했는데, 나는 그것이 그렇게 싫었다. 심각한 척, 중요한 척 하지만, 실제로 그것은 그저 연말연시에 보여주기식 행사이지, 시간이 12월31일 23시 59분 59초와 1월1일 0시0분0초를 딱 구분지어 우리에게 명백히 다른 그 무엇인가를 보여주지 않는데, 달력을 새로 건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에 뭔가 중요한 일이 새로 시작되는 냥 그런 분위기를 가져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 왔다. 자기 반성의 시간보다는 그저 꾸준하게 삶을 살아온 것에 대한 격려와 응원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집안에서 안 해 주길래 스스로 격려하고 스스로 응원하며 스스로 위로하는 시간을 시작한 것 뿐이다. 그러려다 보니, 요행으로 이루게 된 것들 보다는 나의 꾸준한 시간에 대한 격려를 하는 것이 당연해 보이는 것이다. 


사실 2013년 개인 시상 항목은 거의 다 뽑아두었다. 수기로 일기장에 적어둘 예정이다. KBS 연예 대상에서 유재석이 먹방상을 받았다고 하는데, 나의 시상 항목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그저 시간을 축내지 않고 시간을 살아냈다고, 세월의 흐름 속에서 나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꾸준하게 살아냈다고, 스스로 다독이는 것 뿐이니까. 





돌 하나, 꽃 한송이


신경림


꽃을 좋아해 비구 두엇과 눈 속에 핀 매화에 취해도 보고

개망초 하얀 간척지 농투성이 농성에 덩달아도 보고

노래가 좋아 기성화장수 봉고에 실려 반도 횡단도 하고

버려진 광산촌에서 중로의 주모와 동무로 뒹굴기도 하고


이래서 이 세상에 돌로 버려지면 어쩌나 두려워하면서

이래서 이 세상에 꽃으로 피었으면 꿈도 꾸면서




그풍경을나는이제사랑하려하네

저자
안도현 지음
출판사
이가서(주) | 2006-06-12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햇살과 바람이 깊게 스민 그때소월시문학상, 이수문학상 등을 수상...
가격비교




Posted by Sophie03
[Story]2013. 12. 4. 00:53



산다는 것과 초월한다는 것




오쇼 라즈니쉬




산다는 것과

초월한다는 건 다르다


산다는 건

무엇을 떨쳐 버린다거나

말을 하지 않는다거나

사람들과 인연을 끊는 걸, 그러나

초월한다는 건 그 모든 것을

마음 안에서 다 이뤄 내는 것이다


산다는 것의 주체는 육체지만

초월한다는 것의 주체는 마음이다






이 시인의 시집을 책장정리를 하면서 방출한 것 같다. 그래서 오래전에 적어둔 몇편의 시들만 볼 수 있는데 갑작스레 오늘밤 이 시 생각이 났다.


나는 요즘 별로 신나게 살고 있지 않다. 뭔가 시큰둥하고, 하다못해 책들을 마무리하는 일조차 왠지 어려워서 새로운 책들을 시작만 하고 있다. 언젠가 휘리릭 다 마무리 하리라는 것을 아는데도 영원히 그 책들이 쌓여만 갈 것 같다.


페이스북도 "무언가에 대해" 의무가 되어 가는 것 같아 계정을 비활성화 하였다. 연말 기간이니 페이스북을 통해 연말 모임들이 생겨날 것이고, 응당 나도 얼굴을 비춰야 하지만, 문득 그냥 페이스북 계정을 비활성화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



(IXUS400,,2003년 12월, 시청 주변)



길을 걷다가 멈춰서지 않고 찍은 사진인 것 같은 그런 시간인 셈이다. (교훈적으로) 모든 것이 때가 있고, 이것 또한 지나갈 것이라고, 나도 알고 있지만, 나도 이런 순간에 처했을 때는 그저 살아가기 위해 살아간다. 무엇을 떨쳐 버린다거나 말을 하지 않는다거나 사람들과 인연을 끊는 것이 삶의 수단 혹은 삶의 중요한 한부분이 될 때도 있는 것이다.


알고 있다, 나는 잘 사는 사람이고, 삶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잘 찾는 사람이고, 또 불현듯 꺄르르르 웃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렇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초월적인 삶을 살기가 참 어려워서, 그저 살아가는 것에 촛점을 맞추고 최선을 다해 시간을 살아내고 있다.


# 그런데도 연말 모임들은 지속되고 있으며, 내향적인 나는 에너지가 부족한 상태이다. 조만간 에너지 충전 작업을 진행해야겠다.

Posted by Sophie03
[Story]2013. 10. 23. 23:19


오늘 저녁에 그룹 여성 리더십 교육에 참석하였다. 5월에 1박2일 교육을 하고(6월에 이 교육의 과제에 관한 글을 올렸었다☞click) 9~11월 총 3회에 거쳐 3시간 동안 교육이 진행되는데, 사실 나는 "여성"에 촛점이 맞춰지면 약간 불편하다. 많은 분들이 여성의 특성상 전략적 사고가 어렵다고 하거나, 입체적 환경 분석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면 나는 왜 그것이 어렵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타고난 특성의 문제이며 또한 성장 과정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에 나는 골목대장이었고, 삼국지를 재미있게 읽었으며,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스도쿠를 풀거나 조깅을 한다. 이 때문에 내가 양(miss) 대신 군(Mr.)로 불리웠는지도 모르지만, 심리학에서 gender검사를 하면 남성성/여성성/중성성/양성성 중 양성성이 나오는 내게는 "여성"이라는 테두리에서 이야기 하는 것이 어렵다. 특히 나는 미혼이라, 육아의 고민들에 대해서는 외부인이나 다름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동안의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외로움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그동안 겪었던 수많은 시행착오들, 그래서 여자후배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에 오지랖 넓게 충고하게 되는 그 문제들이 나만의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어, 교육에서 돌아오는 길이면 늘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오늘의 단상은 두 개.


어쩌면 이것은 내가 경험하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나라는 사람은 모두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삶 속에서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전전긍긍하며 살았는데, 어느 사건으로 인해, 내가 내 주변의 모두를 인정하지 않듯이, 당연히 나도 모두에게 인정받는 것은 불가능할 뿐 더러, 그럴 이유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저 꾸준함의 미학으로 내 인생을 살고, 일을 하고, 글을 쓸 뿐, 타인에게 나에 대한 판단권을 맡길 이유가 없었다. 사실 나는 타인에 대한 잣대보다 스스로에 대한 잣대가 더 높기 때문에, 삶이 늘 고단할 수 밖에 없는데, 판단권까지 외부에 넘기며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들며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럴 필요가 없다. 모두에게 인정받으며 살기 위해 삶이라는 유한한 시간을 소모할 이유가 없다. 스스로의 삶의 주체는 스스로가 되어야 한다. 절대 넘겨주어서는 안 된다. (노파심처럼 덧붙이자면, 고과와는 다르다. 고과는 회사에서의 업무성과-많은 것들이 포함된-에 의한 것이니, 잘 받는 것이 기본적으로 좋다. 하지만 no라고 말할 수 없다면, 그것은 모두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본성 때문인지도 모르니 한 번 잘 살펴보아야 한다.) 


다른 하나는 이 시.





작은 짐승


신석정


난이와 나는

산에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이 좋았다

밤나무

소나무

참나무

느티나무

다문다문 선 사이사이로 하늘은 바다보다 푸르렀다


난이와 나는

작은 짐승처럼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이 좋았다

짐승같이 말없이 앉아서

바다같이 말없이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


난이와 내가

푸른 바다를 향하고 구름이 자꾸만 놓아가는 

붉은 산호와 흰 대리석 층층계를 거닐며

물오리처럼 떠다니는 청자기빛 섬을 어루만질 때

떨리는 심장같이 자지러지게 흩날리는 느티나무 잎새가

난이의 머리칼에 매달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난이와 나는

역시 느티나무 아래 말없이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순하디순한 작은 짐승이었다





사실 그룹 여성 리더십 교육생들은 흔히 회사에서 관리하는 여성인재들이라고 말하는데, 우리 사회에서 그 말은 "독한"의 의미를 내포한다. 나 또한 그런 표현을 들었었고, 일면 억울하면서도 그것들을 넋두리 늘어놓을 만큼의 여유도 없고, 나의 본성을 알아달라고 누군가를 붙들고 이야기할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 교육생들은 대부분 참 순하디순하다. 업무를 함에 있어서 독할지 몰라도, 그리고 그들의 순하디순함을 표현하는 것이 제한되어 있어 세상이 잘 몰라주더라도, 사실 그들은 조용히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이 기쁜, 순하디순한 작은 짐승들이다. 


어쩌면 그 생각이 오늘밤은 그렇게 외롭지 않다고 생각하며 귀가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삶이라는 것은 늘 의외성을 지닌다.





# 그리고 고백하자면, 이 글은 5월 룸메이트로 처음 만났을 때는 거칠 것만 같다고 생각했던, 그러나 "알고보니" 순하디순한... 눈이 큰 동갑내기 L과장님께서 요즘 글을 자주 올리지 않는다고 해서, 급히 쓴 글이다...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Sophie' Story] 비활성화 상태  (0) 2013.12.04
[Sophie' Story] 블로그 단상  (0) 2013.11.01
[Sophie' Story] 싱글의 시간측정법  (2) 2013.09.07
[Sophie' Story] 항상심 살기  (0) 2013.09.03
[Sophie' Story] 꾸준함의 미학③  (0) 2013.06.26
Posted by Sophie03
[Library]2013. 9. 13. 21:00



써둔 글을 뒤로 하고, 70번째 글을 시작한다. 사실 글목록에서 69를 확인하고는 70번째 글을 멋지게 써야지 생각하고는, 환절기를 맞이했다. 내게 환절기란 휘리릭 스쳐지나가지 않고 확실히 본인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존재인데, 일단 체력적으로 쉽게 변화하는 환경에 변화를 못 해서 몸 구석구석이 이상신호를 보낸다. 그리고 옷을 좋아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의 옷은 환절기 옷이다. 골골 하면서도, 환절기에만 입을 수 있는, 아지랭이 같이 사라지는 짧은 순간을 빛나게 해주는 예쁜 옷들이 늘 나를 기쁘게 해 준다. 


어쨌든 거창하게 글을 써야지, 어떤 글을 쓸까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사무실에서 말고는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이유가 정확치 않지만, 허리쪽 근육이 뭉쳐서 앉았다가 일어나면 직립보행이 안 되서, 증언에 따르면, 뒷모습이 S라인이었다고 한다. 한의원 계속 다니고 찜질과 마사지 계속 해서 닷새 만에 직립보행이 가능해졌다. 그 사이에 거창하게 글을 쓰겠다는 다짐은 사라지고, 짧은 가을에 대한 단상들이 내게 다가왔다. (그런 생각들의 일부는 싱글의 시간측정법 첫 문단에 서술되어 있다) 더불어 회사의 상황들이 급히 변하면서 실질적으로 "나"란 사람이 주체가 아닌, 내 인생의 객체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닷새를 보내고 말았다. 


그래서 항상심에 대한 써둔 글이나 거창한 새 글 대신 이런 글로 70번째 글을 올리게 되었다. 삶이라는 시간 속에서 내가 주체가 되느냐 객체가 되느냐의 문제는 결론적으로 외부의 환경에 의한 것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살면서 휩싸이게 되는 많은 일들은 쉽게 스스로를 객체로 만들게 한다. 최근에 밤잠 깨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상황들은 내가 의도한 적 없는 상황들이고, 상황 내에서 "물리적으로" 내가 행사할 수 있는 권리가 크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는 쉽게 객체가 되어 이리쿵 저리쾅 하는 상처들을 얻게 되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내가 주체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나 하는 근본적인 의문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개개의 인간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염세주의자답게 그런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결국 개개인에게는 그냥 놔둘 것이냐, 사소하게라도 주체가 될 것이냐? 하는 문제만 남게 되는 것이다. 


염세주의자가 긍정적인 사람으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적어두었지만, 결국은 저런 생각을 한 후에 사소하게라도 주체가 되어야 겠다고 생각하는 편이기는 한데, 이번에는 별로 쉽지 않다. 이번 사건들은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되며, 때문에 그 스트레스도 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니까 말이다. 


그런 연유로 어제도 뒤적뒤적 시들을 읽다가 오랜만에 이 시가 마음에 들어왔다.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이어령

하나님,
나는 당신의 제단에
꽃 한 송이 촛불 하나도 올린 적이 없으니
날 기억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모든 사람이 잠든 깊은 밤에는
당신의 낮은 숨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너무 적적할 때 아주 가끔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기도 합니다.

사람은 별을 볼 수는 있어도
그것을 만들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별 사탕이나 혹은 풍선을 만들 수는 있지만
그렇게 높이 날아갈 수는 없습니다.
너무 얇아서 작은 바람에도 찢기고 마는 까닭입니다.
바람개비를 만들 수는 있어도
바람이 불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습니다.
보셨지요, 하나님
바람이 불 때를 기다리다가
풍선을 손에 든 채로 잠든 유원지의 아이들 말입니다.
어떻게 저 많은 별들을 만드셨습니까,
하나님
그리고 저 별을 만드실 때
처음 바다에 물고기들을 놓아
헤엄치게 하실 때
고통을 느끼시지는 않으셨는지요.
아 이 작은 한 줄의 시를 쓰기 위해서
코피보다 진한 후회와 발톱보다도 더 무감각한
망각 속에서 괴로워하는데
하나님은 어떻게 저 많은 별들을
축복으로 만드실 수 있었는지요.

하나님, 당신의 제단에 지금 이렇게 경건한
마음으로 떨리는 몸짓으로 엎드려 기도하는 까닭은

별을 볼 수는 있어도
그것을 만들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용서하세요, 하나님
원컨대
아주 작고 작은 모래 알만한 별 하나만이라도
만들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감히 어떻게 하늘의 별을 만들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이 가슴속 암흑의 하늘에
반딧불만한 작은 별 하나라도
만들 수 있는 힘을 주신다면

가장 향기로운 초원에
구름처럼 희고 탐스러운 새끼 양 한 마리를 길러
모든 사람이 잠든 틈에
내 가난한 제단을 꾸미겠나이다.

좀더 가까이 가도 되겠습니까, 하나님
당신의 발끝을 가린 성스러운 옷자락을
때묻은 이 손으로 조금 만져 봐도 되겠습니까.
아 그리고 그 손으로 저 무지한 사람들의
가슴에서도 풍금소리를 울리게 하는
한 줄의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단 한 가지만 청할 수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 되겠는가. 나는 내 삶에서 단 한 가지만 원할 수 있다면 무엇을 희망할 것인가. 주체가 될 것이냐 객체가 될 것이냐의 문제를 떠나서, 나는 무엇을 희망하는가. 


이 답을 찾는다면 나는 휘둘릴 이유가 없고, 밤잠 설치며 스트레스 받을 이유가 없다. 그 모든 것을 원하지 말고 단 한가지만 원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정의할 수 있다면 사실상 나는 자유로울 수 있다. 


고민은 밑도 끝도 없으나 늘 결론은 단순하다. 결국 삶이란 것은 69냐 70이냐 71이냐의 문제보다 훨씬 단순한, 단 한 가지의 희망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이번 환절기를 보내며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다. 재미난 우연이다.

Posted by Sophie03
[Library]2013. 9. 6. 00:34
어젯밤, 문득 가을이 오는 것에 대한 소소한 위로를 받고 싶은 욕심에 펴들었다가, 한겨울의 찬바람을 온 몸으로 느꼈다.



마종기 시인의 시를 읽다가 그런 느낌이 든 것은 처음이었다. 어쩌면 내가 좋아하는 "우화의 강"에 대한 강렬한 인상 때문에 바람이 더 차갑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삶이, 늘 익숙해지지 않는 것은 나혼자만의 상황이 아니구나, 하는 위로와, 최근에 내 마음 속에 찬바람이 불고 있었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나보다, 하는 생각이, 오늘밤 다시 시집을 읽으면서 들었다.

그래서 그 중 한 편을 기록해둔다.




익숙지 않다

마종기


그렇다, 나는 아직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익숙지 않다.

강물은 여전히 우리를 위해
눈빛을 열고 매일 밝힌다지만
시들어가는 날은 고개 숙인 채
길 잃고 헤매기만 하느니.

가난한 마음이란 어떤 삶인지,
따뜻한 삶이란 무슨 뜻인지,
나는 모두 익숙치 않다.

죽어가는 친구의 울음도
전혀 익숙지 않다.
친구의 재 가루를 뿌리는
침몰하는 내 육신의 아픔도,
눈물도, 외진 곳의 이명도
익숙지 않다.

어느 빈 땅에 벗고 나서야
세상의 만사가 환히 보이고
웃고 포기하는 일이 편안해질까.





하늘의 맨살

저자
마종기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2010-05-07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돌아갈 곳 없지만, 귀환을 꿈꾸는 삶의 노래!낮은 목소리로 우리...
가격비교





Posted by Sophie03
[Story]2013. 6. 26. 00:01



얼마전 우연히 케이블에서 섹스앤더시티를 보았다. 예전에 보았던 에피소드인데, 캐리의 서른다섯번째 생일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냥 친구들과 소박하게 저녁 먹고 싶어했지만, 결국은 좋은 곳을 예약해서 식사를 하기로 했고, 하지만 친구들은 다들 오지 않았고(이때는 휴대폰이 대중화되지 않았던 시절이다), 혼자 기다리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마지막에 친구들이 집앞으로 와서 카페에서 소박한 저녁을 먹고 그리고 미스터빅을 만나 종이컵에 샴페인을 마신다는 이야기였다. 


내가 한참 열심히 챙겨보던 십여년 전에는 이 에피소드를 잘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이번에 했다. 사실 나의 서른다섯 생일도 그냥 그렇게 보냈다. 생일이 이틀차이라서 늘 공동생일파티를 하던 친구는 불참한 생일파티가 그나마 가장 성대한 식사였고, 언제나 함께 하는 친한 동생도 출산하여 생일파티를 할 수 없었고, 또 다른 모임에서도 한 명의 출산으로 그녀의 조리원에서 얼굴 보는 것으로 대체하였다. 내가 소소한 생일파티를 원하기도 했지만, 사실 이런 것은 아니었다. 사실 오랫동안 함께 하고 있는 모임에서 결혼식을 하면 주는 축의금이 있는데, 만 서른다섯까지 결혼을 하지 않으면 기준금액의 110%를 축하금으로 주기로 이야기를 했었다. 그런데 재미나게도 그 모임이 자꾸만 밀리더니 내 생일파티도 없이 물론 그 축하금도 없이 지나가고 말았다. 이미 지나 버린 것, 그냥 다음에 받지 하고 두었다. 그러고 보니 이미 지나가버린 나의 서른다섯생일은 엉망진창이었다. 하다못해 캐리의 서른다섯생일처럼 샴페인도 없었다. 하긴 이십대의 축제를 기대할 수야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오랜만에 시집을 꺼내 다시 읽었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


최영미


물론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운동보다도 운동가를

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

그리고 외로울 땐 동지여!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

낮은 목소리로 사랑노래를 즐겼다는 걸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잔치는 끝났다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지갑을 챙기고 마침내 그도 갔지만

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지만

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다

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

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

그 모든 걸 기억해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걸


그가 부르다 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르리란 걸

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누군가 그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으리란 걸

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미리라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서른 잔치는 끝났다

저자
최영미 지음
출판사
창비(창작과비평사) 펴냄 | 1994-03-01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
가격비교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스물무렵이었을 것이다. 그 때의 나는 이 시가 운동가가 아님을 (물론 나의 세대가 운동의 세대가 아니므로 그렇게 이해했을 것이다) 서른 이후의 인생이 차분해짐을, 고요해짐을, 안정화됨을 기대하면서 책장에 시집을 꽂아두었을 것 같다.


그런데 서른 무렵에 나는 서른 이후의 인생이 차분해지거나 고요해지거나 안정화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이십대의 잔치가 끝나고 나서 오는 것은 그저 그런 일상임을 몸으로 알게 되었다. 소박한 저녁식사를 하고, 사람들이 떠나감을 순리로 여기며 나의 자리를 지켜내며 때로는 그 시간들을 버티어 살아내야 하는 것임을, 체화하게 되었다. 어느샌가 나도 그런 어른이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블로그에 이렇게 중얼중얼 종종 글을 쓰는 이유는, 그 어떤 삶도 틀린 것은 없음을 이야기 하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내가 지루하고 비겁한 어른이 되어 버렸을지 모르지만, 그런 나의 삶도 그저 다른 것일 뿐, 틀리지 않았다고, 그 누구의 삶도 스스로 지켜내고 있는 한 틀린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서, 우연히 섹스앤더시티의 에피소드를 보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엄마가 차려주는 이런 생일상을 먹는 행운아라면, 꼭 지루하고 비겁한 어른이 되지 않아도 될지도 모르니까, 오늘밤엔 엄마가 차려준 이미 지나가버린 나의 서른다섯살 생일상 사진이나 보고 잠을 청해야 겠다.




Posted by Sophie03
[Story]2013. 6. 7. 22:51



작년말에 친구가 개인적인 설문을 진행했었다. 본인을 좋아하는지,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본인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지 의 질문으로 그녀와 친한 사람들에게 설문을 진행하였는데 생각못했던 결과에 놀랐다고 한다. 친구가 생각했던 '본인을 좋아하리라고 생각했던 이유'와 친구들이 말한 '좋아하는 이유'가 달랐다고 한다. 본인의 예상답변이 아닌, 친구들끼리의 대답이 비슷했고 인상적이였다고, 내게도 한번쯤 진행해볼 것을 권유받았었다.


나도 올해말쯤 한번 해봐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회사에서 교육을 받게 되었고, 그 집합교육의 과제가 평소 잘 알고 자주 접촉하는 지인에게 본인의 강점이나 잠재력, 또는 그들과의 관계에서 기여한 점을 두 가지만 구체적으로 써달라고 한 후에 정리하여 오는 것이었다. 과제를 핑계 삼아 나도 설문을 진행하였다.


이 과제를 부탁하는 것부터가 하나의 미션이었다. 누구에게 어떻게 부탁할 것인가. 나는 관계에서 어떤 기여를 하고는있는가 하는 고민도 당연히 들었다. 부탁하고 난 이후에 답을 기다리는 시간도 떨림의 시간이었다. 칭찬이 인색한 나라에서 자란 내게, 타인에게 듣는 나의 장점이란 무엇일까. 대부분 업무적인 답변들을 기대했고, 또 그렇게 오기도 왔다. 


일단은 이런 답변이 나와서 놀랐다. 나는 숨긴다고 숨기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다 알고 있었구나 하고 깜짝 놀랐다. 


그런데 몇몇 놀라운 문구들도 있었다. 


· 논리적/분석적 사고 방식과 감성적 공감능력이 Balance있게 뛰어남


· "broad & in-depth한 지적 탐구에 대한 열정 ^^ : 호기심을 갖는 분야가 워낙 다양하고, 그럴 경우, 어느 수준까지 그 분야에 대해 알고 있어야 직성이 풀리는 편임(듯함..ㅋㅋ)"


그래야 하는 성격이긴 하다. 정확히 이야기 하면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싫어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건 내가 좀 아는데"하면서 지어낸듯한 이상한 이야기 하는 문화를 싫어한다. 그리고 계속 공부하는 것이 즐겁다. 그것이 와인이든, 서양문화사든, 스페인어든, 나는 모르는 것이 많고, 새로운 것을 알아갈 때 무척이나 즐겁다.


그런데, 사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따로 있다. 나에게 이 설문을 권유해주었던 친구가 보내온 답변, 나는 생각도 못 했던 답변, 그 답변을 읽다가, 어느 순간 문득, 내 삶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친구(=Sophie03)의 가장 큰 강점은 정확한 판단력과 디테일 그리고 따듯한 마음씨이다. 같이 일을 해본 적은 없지만, 상황 설명을 듣거나 같이 여행을 가보면 상황을 정확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와인 스터디 하면서 느낀 건데 디테일하고 꼼꼼하게 열심히 준비를 해서 감동받았다. 친구는 관심분야가 있으면 깊이 파고드는 성격이어서 디테일에도 강한 것 같다. 보통 이런 사람들은 좀 냉정하거나 이기적인 사람이 많은데 친구는 마음이 따듯한 사람이다. 그래서 자기 일을 똑바로 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도 배려할 줄 안다.

 

친구는 나에게 나침반 같은 사람이다.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그리고 불합리하게 행동하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친구처럼 똑바로 생각하고 마음씨도 따듯한 사람이 있다는 건 마음속으로 큰 위안이 된다. 친구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문제가 있을 때 막 하소연 하는 타입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정말 혼란스러운 상황에 처했을 때 그녀를 찾아간다면, 그녀는 정확한 판단력과 따듯한 마음씨를 가진 나침반처럼 올바른 길을 보여줄 것 같다. 


나침반이라니... 그 단어만으로도 사무실에서 나는 눈물이 핑 돌았었다. 그리고 이 글을 쓰기 위해 내 방에 앉아 있는 동안에도 눈물이 핑 돌았다. 나를 나침반이라고 생각해주는 친구가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내가 이 세상에서 존재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친구가 내게 이 설문을 권유해 준 이유는 아마도, 내가 상상하는 것보다 내가 더 사랑받는 존재이며, 귀히 여김을 받는 존재라는 것을 주변사람들을 통해 깨달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이 친구의 설문의 답을 보내며, 친구를 진심으로 응원했던 것 같다. 어느 사이엔가 친구와 나 사이에 서로 물길이 트였나보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 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이 나의 친구이다.



우화의 강



마종기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서로 물길이 튼다.

한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풀렁이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어야겠지만

한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 수야 없겠지.


긴 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

몇 해쯤 만나지 못해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큰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 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 싶다.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저자
마종기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2004-03-08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1959년 '현대문학'추천으로 등단한 마종기는 등단한지 45년이...
가격비교




그래서 나도 추천한다. 설문을 진행해 볼 것을. 스스로 얼마나 사랑받는 존재인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기 어려울 때에, 주변인들의 힘을 빌어 스스로를 다시 한 번 사랑할 용기를 가져볼 수 있도록 설문을 진행해 볼 것을 추천한다.


Posted by Sophie03
[Library]2013. 5. 18. 22:28




지난 3월 생일날, 나는 책선물과 함께 시선물을 받았다.





책보다도 이 시를 두고두고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시를 선물로 받다니! 그것도 회사 동료에게 손으로 곱게 적힌 시를 받다니! 이 시의 작가는 영국의 극작가이며 시인인 Robert Browning이란다. 때로 그런 시가 있다, 투박할 정도로 단순한 언어를 사용하였는데, 마음을 울리는 그런 시가 때로 내 눈앞에 나타난다. 이상하게 이시가 그런 시라서, 꽤 오래 지켜보다가 작가를 찾아보았고, 작가를 알아낸 후에는 작가를 검색하다가 이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 나는 여전히 유투브 동영상을 바로 플레이하는 법을 모르겠으므로, ☞ click !! ##





이 시를 내게 선물한 '별'은 내게 이 시를 이 책의 속지에 적어, 사실은 책을 선물한 것이고, 그리고 '이 책을 좋아하실 거예요' 라면서, '이 영화 안 보셨어요? 재미있어요!' 라고 이야기 했었다. 그래서 나는 이 시를 읽고, 이 책을 읽고, 이 영화를 순차적으로 보았다. 그런데, 책 이야기는 쏙 빼고 이 시와 영화 이야기를 해보려고 이 글을 시작했다. 




카모메 식당의 여자들

저자
황희연 지음
출판사
예담 | 2011-10-01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인생의 진심을 아는 여자들과의 따뜻한 수다!영화 ‘카모메 식당’...
가격비교



이 책 이야기를 쏙 빼버리는 이유는, 이 책의 작가는 "가진 것을 제자리에 두고, 스스로 빠져나와 꿈꾸던 세상에, 혹은 엉뚱한 세상에 접어든 여자들"의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으로 적어두었다. 책을 읽는 동안, 응 그렇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는, 작가가 영화를 보고 인상깊었던 부분과 내가 영화를 보고 인상깊었던 부분은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사실 나는 작가의 그런 부분에는 별로 크게 동의하지 않지만, 영화는 재미있었고, 그리고 좋았고, 두번이나 볼 정도로 인상깊었다. (물론 이 영화로 OTA 서비스의 도움으로 두번이나 볼 수 있었다. hoppin 만세!)




카모메 식당 (2007)

Kamome Diner 
8.5
감독
오기가미 나오코
출연
코바야시 사토미, 카타기리 하이리, 모타이 마사코, 마르쿠 펠톨라, 자르코 니에미
정보
코미디, 드라마 | 일본 | 102 분 | 2007-08-02
다운로드



영화는 인간의 온기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사실 그곳이 핀란드 헬싱키일 필요도 없고, 카모메 식당일 이유도 없고 출연자들이 모두 여자일 이유 또한 전혀 없다. 다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허전함을 채워주는 것은 따스한 밥이거나, 고소한 시나몬롤의 향기이거나, 누군가가 내려주는 커피이다. 누군가는 눈물을 흘리고, 누군가는 맛있게 먹고, 누군가는 맛있게 마신다. 혹은 누군가는 술에 취해 각자 다른 언어로 이야기 하고, 위로해 주기도 한다. 








사실 식당 여주인이 홀로 식당을 지키다가, 무작정 핀란드로 떠난 미도리씨를 받아들이고, 함께 시나몬을 만들다가 점점 사람이 그리운 외로운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 사람들끼리의 우정으로 인해 삶이 풍성해진다는 솔직히 말하면 뻔한 이야기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극한 사소하고 뻔한 "식당"의 삶의 이야기는 사소하고 뻔한 감동이 있었다. 식구 食口 의 한자어를 보면 그럴 수 밖에 없기는 하다.


그런데 감동적이었던 부분은 이 부분이다. 사실 손님으로 등장하는 사람들의 감정은 지속적으로 보여주므로 이들의 감정에 대해서는 손쉽게 이해가 된다. 그런데 여주인의 감정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영화가 시작할 때 나오는 고양이 이야기 나레이션과 영화 중간 대화에서 오니기리를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그녀는 딱히 외로움의 시간을 즐기고 있는지, 혹은 전혀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지에 대한 단서도 나오지 않는다. 그저 단단한 존재처럼 비춰진다. 내 생각에는 그녀는 본인의 균형적인 삶에 불만이 없었고 크게 외롭다고 느끼지도 않고, 오니기리를 팔아야 겠다는 어떤 소명의식도 있었을테지만, 미도리씨와 그 이후의 관계들로 인해서 마음이 풀어지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그런 변화가 수영장 scene에서 보여진다.





처음에는 수영장에서 홀로 수영을 하는 일상을 보여주지만, 영화가 끝날 무렵 그녀의 혼잣말은 더 이상 혼잣말이 아니게 된다.







나는 사실 찔렸는지도 모른다. 감정을 단단하게 둘러싸고 외부 환경에 흔들리지 않도록 보호막을 치고 사는 여주인의 모습에서 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흠칫 놀라 영화를 두 번이나 보았는지도 모른다. 결국 사람의 온기가 필요하며, 따뜻한 밥냄새가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시의 마지막이 혼자서는 할 수 없고 "관계"에 의해서만 가능한 사랑이 등장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


Save apart time to read. 

It's the spring of wisdom. 


Save apart time to laugh. 

It's the music of your soul. 


Save apart time to love. 

For your life is too short.


- Robert Browning -



읽는 시간을 따로 떼어 두어라,

그것은 지혜의 샘이기 때문이다.


웃는 시간을 따로 떼어 두어라,

그것은 영혼의 음악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시간을 따로 떼어 두어라,

그것은 인생이 너무 짧기 때문이다.


- 로버트 브라우닝 -

 
(번역은 첨부된 EBS 동영상의 번역을 그대로 적음)


Posted by Sophie03
[Library]2013. 5. 7. 00:45



내가 그녀를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순전히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때문이다. 어찌 보면 지루하기 그지 없을지도 모르는 이야기가 그의 영화에서는 아름답고 가슴시린 휴식이 되어서 학부 시절부터 좋아하는 감독이다.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2002)

The Wind Will Carry Us 
0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출연
베흐자드 도라니, 노그레 아사디
정보
드라마 | 프랑스, 이란 | 118 분 | 2002-11-22



이 영화를 본 지도 벌써 십년이 넘었고, 유쾌한 지루함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이후에도 여전히 명확히 기억하고 있는 것은 이 제목이다.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이 제목은 포루그 파로흐자드의 시에서 따왔다고 해서, 여느 때와 같은 궁금증으로, 시를 찾아 읽어보려고 애썼지만, 그 시절엔 블로그가 활성화 되었던 시절도 아니고, 무엇보다 이란어로 번역된 시가 한국에 있지도 않았고,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아쉬워만 하다가, 지인이 영어로 번역된 시를 찾아서 메일로 보내주었었다.




The Wind Will Take Us

In my small night, ah
the wind has a date with the leaves of the trees
in my small night there is agony of destruction
listen
do you hear the darkness blowing?
I look upon this bliss as a stranger
I am addicted to my despair.

listen do you hear the darkness blowing?
something is passing in the night
the moon is restless and red
and over this rooftop
where crumbling is a constant fear
clouds, like a procession of mourners
seem to be waiting for the moment of rain.
a moment
and then nothing
night shudders beyond this window
and the earth winds to a halt
beyond this window
something unknown is watching you and me.

O green from head to foot
place your hands like a burning memory
in my loving hands
give your lips to the caresses
of my loving lips
like the warm perception of being
the wind will take us
the wind will take us.

Forugh Farrokhzad
Translated by Ahmad Karimi Hakkak

The Persian Book Review VOLUME III, NO 12 Page 1337




그리고 나서 이 시를 잊고 살았다. 시란 것은 늘 인생의 무게에 의해 흔적없이 사라졌다가, 견딜 수 없는 인생의 시간이 오는 순간 불쑥 나타나서 사람을 흔들기도 하고 위로하기도 하고 주저앉게도 하는 존재이니, 가끔씩 삶의 무게가 나를 짓누를 때 검색창에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를 검색한 이유는 나도 알 수 없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사진전을 다녀와서도 불쑥, 이런저런 인생사가 있을 때도 불쑥 검색해보곤 했다. 그리고 최근에 검색해 보고는 포루그 파로흐자드의 시집이 드디어 출간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십여년만에 드디어 이란어를 한국어로 번역한 시집이 출간된 것이다! (보통 제3외국어는 바로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고, 영어 등 타 언어로 번역된 것을 재번역하기 때문에 문장이 매끄럽지 못하다.)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저자
포루그 파로흐자드 지음
출판사
문학의숲 | 2012-08-20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고정관념을 거부하는 한 여성의 발전상!뛰어난 문학성, 극적인 생...
가격비교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포루그 파로흐자드


나의 작은 밤 안에, 아,

바람은 나뭇잎들과 밀회를 즐기네

나의 작은 밤 안에

적막한 두려움이 있어


들어보라

어둠이 바람에 날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나는 이방인처럼 이 행복을 바라보며

나 자신의 절망에 중독되어 간다


들어 보라

어둠이 바람에 날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지금 이 순간, 이 밤 안에

무엇인가 지나간다

그것은 고요에 이르지 못하는 붉은 달

끊임없이 추락의 공포에 떨며 지붕에 걸쳐 있다

조문객 행렬처럼 몰려드는 구름은

폭우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한순간

그 다음엔 무

밤은 창 너머에서 소멸하고

대지는 또다시 숨을 멈추었다

이 창 너머 낯선 누군가가

그대와 나를 향하고 있다


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푸르른 이여

불타는 기억처럼 그대의 손을

내 손에 얹어 달라

그대를 사랑하는 이 손에

생의 열기로 가득한 그대 입술을

사랑에 번민하는 내 입술의 애무에 맡겨 달라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누군가가 이 시를 두고 사랑의 시라고 한 것을 보고 놀랐었다. 나의 의견은 다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푸르른 이'가 어떻게 그녀의 연인이 될 수 있는가. 포루그 파로흐자드의 일생을 모르더라도, 이 시는 밤의 시이며, 어둠의 시이며, 공포의 시이며, 죽음의 시이다. 


이란 테헤란 출신의 포루그 파로흐자드는 열여섯살에 사랑에 빠져 15살 연상과 결혼하지만, 부부가 살았던 작은 도시의 보다 보수적인 문화로 인해 이혼을 하게 된다. 이혼하게 되면 법에 따라 여성은 아들을 만날 수 없었고, 그녀의 상실감과 절망감은 그녀를 정신병원에 입원케 한다. 이후에 그녀는 "포로", "벽", "저항", "또하나의 탄생"의 시집을 출판하고 "검은 집"이라는 다큐를 세상에 내고, 서른두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한국에 출간된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은 그녀의 시선집이다. 그녀의 일생을 간략하게 훓어보았으니 첫 시집에 수록된 시를 한 편 더 소개한다.



포로


포루그 파로흐자드


당신은 열망한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결코 당신 안에서 내 날개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당신의 하늘에는 수만 개의 태양이 빛나지만

나는 낡은 새장 속에 갇힌 한 마리 새이기에


춥고 어두운 철장 뒤에서

내 굶주린 시선이 어지러이 당신의 얼굴을 쫓는다

한 손을 내밀어 줄 거라는 생각에

날개를 펼쳐 당신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생각에 잠겨


나는 생각에 잠긴다

감시가 소홀한 틈에

이 침묵의 감옥으로부터 날아올라

간수에게 비웃음을 날리고

당신 곁에서 새 삶을 시작하겠다고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것이 망상이라는 것을

결코 이 새장에서 나갈 힘이 없다는 것을

새장 문이 열린다 해도

내겐 더 이상 날아오를 숨결이 없다는 것을


어김없이 찾아오는 눈부신 아침

철장 뒤의 한 아기가 나를 보며 미소 짓는다

내가 환희의 노래를 흥얼거리면

아기는 입맞춤으로 내 온 존재를 껴안는다


신이여

어느 날 내가 이 침묵의 감옥에서 날아간다면

우는 아기에게 어떤 작별 인사를 할 수 있겠는가

나를 내버려 두오, 나는 포로가 된 한 마리 새일 뿐


심장의 불로 이 폐허를 밝히는

나는 촛불

그 불을 끄리라 마음 먹는 순간

이 둥지는 무덤으로 변하리라





사실은 고민이다. 나는 보통 시집을 읽으면 독후감 등의 글을 바로 쓰지 않고 어느 날 어느 시간에 문득 그 때 그 시를 다시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시를 읽어보는 편이다. 그런데 이 시집을 읽다 보면 마음 속에서 눈물이 흐르는 시들이 많아서 이 글에 시를 두어편 더 소개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욕심은 금물이다. 어느 날 어느 시간에 문득 마음 속에 기록해둔 어떤어떤 시들을 다시 읽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서른두살 짧고도 긴 인생을 사는 동안에 시인이 아파했을 그 세상은 이런 글 하나로 설명할 만한 것이 아니니 말이다.




Posted by Sophie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