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2014. 3. 9. 23:08



self-motivation의 글을 요청한 친구의 페이스북 공유글이다. 아니다, 나도 알고 있다. 꾸준함이 나의 장점인 것은 당연히 나도 알고 있고, 블로그에도 꾸준함의 미학이라는 글을 썼었다.

꾸준함을 말하기에 앞서 고백할 것이 있다. 나의 지인들이 말하는 나의 수식어 중 하나는 독특함, 유니크함이다. 하지만 이 독특한다는 단어는 다소 애매하다. 나를 두고 소위 명문학교들을 나왔고, 미국계 컨설팅 회사와 한국계 대기업을 거쳐, 지금도 한국계 대기업을 다니고 있는 전형적인 모범생의 삶을 살고 있다고들 한다. (삼십대 중반에도 미혼이라 감점을 당하고 있는 요즘이긴 하지만) 멀리서 보면 지극히 고요한 인생을 살고 있는 내게 독특함이라니, 라면서 꽤 오래 부정했지만, 나도 스스로를 관찰해 보면 그 독특함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내가 수긍하고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에 대해서는 꾸준함을 발휘한다. 외부에서 내게 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말하면, 내가 해야 할 이유를 찾을 때까지 그 일을 할 수가 없다.

예를 들어 나는 영어단어집을 못 외워왔다. 영단어와 뜻, 숙어, 예문이 모아져 있는 그 책이 이해가 안 되었다. 말하자면 "나는 이 단어를 궁금해 한 적이 없는데, 왜 이 단어를 외워야 하지?"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영문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대략 어떤 의미일지 추측하고 사전을 찾아보는 행위는, 반대로, 내가 좋아하는 행위이다. 나는 그 단어가 궁금했고, 그 단어를 찾았고, 그렇기에 그 단어를 외우려고 하든 하지 않든, 내가 궁금했던 그 단어를 알게 되는 것 뿐이다.

그런데, 내가 기억하는, 이런 독특함을 발휘한 최초의 에피소드. 아마도 국민학교 1-2학년 때였다. 구구단을 외워야 했고, 당연히 나는 구구단을 외워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나에게는 이일은이 이이는사 이런 암기가 너무나 괴상했다. 그래서 서럽게 울면서 4살연상의 친오빠에게 나, 구구단을 외우기 싫어, 라고 했더니, 오빠가 그럼 외우지마, 라고 해서, 정말로 안 외웠다. 그렇지만 나는 주산특유의 암산으로 빨리 더했고, 논리를 발견해서 속으로 빨리 계산했다. (고등학생이 되어 보니 너무 당연한 것이었지만) 당시에는 유레카처럼 9*7은, (10-1)*7이었기 때문에 70에서 7을 빼는 것을 속으로 계산해서 말했다. 당연히 남들이 손쉽게 머릿속에서 구칠은육십삼을 꺼냈겠지만... 나는 저 과정들을 반복하고 나서야 영어단어들을 알게 되듯 구칠은육십삼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나의 이런 어이없는 독특함들을 알기 때문에, 꾸준함이 나의 미덕이라고 말할 때 다소 부끄럽다. 어쩌면 나의 꾸준함은 나의 장점이지만 나의 단점이기도 하다. 지금도 내가 수긍해야만 하겠다고 마음을 먹어야, 비로소 나의 꾸준함이 발휘되기 때문이다. 그저 남들이 쉽게하는 결정을, 나는 내부적인 승인절차를 거쳐서 "결단"을 내려야만 할 수 있는 사람일 뿐이다.

삶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나의 장점은 곧 나의 단점이다. 타인의 장점은 타인의 단점이지, 나의 장점이 되거나 단점이 되질 못한다. 사람은 그저 다를 뿐, 누구나 자신만의 장점을 가지고 산다. 그런 점 때문에, 누군가의 self-motivation의 방식이 나의 결단과 다른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언제나 처럼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모두가 unique하고 때문에, 본인만의 장점을, 동시에 단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 뿐이다.
(나는 많은 단점을 가지고 있지만, 오늘의 단점은 여기서 그만... 그리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나의 단점들을 장점으로 인정하게 되는 나날들이 염세주의자인 내가 긍정주의자로 변모하는 과정들이다. 쉽지만은 않은, 하지만 사는 동안 해보겠다고 마음 먹은...)
Posted by Sophie03
[밀가루끊기]2013. 9. 16. 20:00


내게 있어 과자의 효용은 높은 편이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술 생각은 안 나도 과자 생각은 난다. 술은 기분이 좋을 때 마셔야 한다는 개인적인 원칙 때문이기도 하고, 또 대부분 집중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순간은 회사에 있는 시간들이 대부분인 까닭이다.

밀가루 끊기를 7개월을 넘기면서, 그냥 과자 카테고리를 먹고 싶은 순간도 있고, 특정 과자를 먹고 싶은 위기도 있다. 특정 과자란 짭조름한 새우깡, 자갈치, 오징어집 등이나 영원한 진리인 바나나킥이나 맛동산 등등 때에 따라 갑자기 "바로 그 과자"가 먹고 싶어진다. 


고민 끝에 찾아낸 솔루션들. 바삭함이 필요하다면 감자칩 종류를 먹으면 된다. 편의점에 가서 감자 95% 정도의 과자들을 찾아내면 된다. 스윙칩이나 수미감자, 눈을 감자, 자가비 등을 먹으면 된다. 나는 수미감자를 제일 좋아하고, 자가비나 눈을 감자는 왠만하면 먹지 않는다, 너무 딱딱해...


그렇지만 사람의 욕구는 그렇게 쉽게 충족되는 것이 아니다. 과자를 생각하면 "바삭함" 외에 "기름에 튀긴" 고소한 맛이 함께 떠오른다. 맛동산이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는 튀긴 후에 시럽을 입혔기 때문에, 바삭함과 고소함과 달콤함을 한번에 충족시킨다는 점이다. 그런데 밀가루를 끊으면 맛동산을 먹을 수가 없다.


그런데 밀가루를 끊은지 반년만에 찾아낸 것! 쌀로 만든 쌀로별이 있었다. 사실 나는 불신의 아이콘이니, 당연히 밀가루를 믹스해서 사용한다고 믿고 있었는데, 어느 날 슈퍼에서 쌀로별 찹쌀유과의 원재료를 보고는 내가 먹어도 되는구나! 하는 사실을 발견했다. 물론 한 봉지를 사다가 다 먹는데 3주 정도 걸리긴 했지만, 반년만에 바삭하고 고소하고 달콤한 과자를 먹는 사실에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다. 밀가루를 끊어도 과자를 먹을 수 있다!!!


여기서 단 한 가지, 다이어트 목적으로 밀가루를 끊는다면, 칼로리를 생각해서 먹으면 안 된다는 점. 나는 건선 등의 피부 알러지 때문에 밀가루를 끊고는 그 상태를 유지 중이지만, 기름에 튀기지 시럽을 발라서 칼로리가 높은 과자(120g에 620kcal)를 먹는 것은 다이어트-밀가루간의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니까. 사실 나는 요즘 내가 밀가루를 끊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 요가를 계속 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 주말마다 산책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그저 괜찮을 것 같아서!가 아닌 명확한 이유가 있게 마련인데, 그저 두루뭉실하게 이야기 하면서, 쉽게 주객을 전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면서. 


밀가루를 끊은지 7달을 넘기고, 요가를 정기적으로 해온지 1년 9개월을 넘기고 나니, 그 두 가지 시너지 효과로 살이 빠졌다. 그 두 가지 외에는 먹는 양도 그대로, 산책/등산을 하는 양도 그대로인데, 살이 빠지고 있으니, 밀가루 단식과 요가의 효과인 셈이다. 엄청난 노력을 하지 않고도 살이 빠지는 부분에 대해서는 꽤 감사한다. 더군다나, 등/허리의 살이 빠지는 부분에 대해서는 기분이 좋다. 예쁜 옷을 입기 좋아하는 여자이다 보니, 당연히 기쁘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밀가루를 끊는 목적이 다이어트가 아니었으므로, 스트레스의 순간에, 다른 방면으로 스트레스를 분출하기 전에 감자칩 한 봉지로 위안이 된다면 당연히 허락해야 한다. 


그런데 가끔 나는, 스트레스의 순간에 편의점에 가서 혼자 방황한다. 나는 무엇을 먹을 수 있는가?의 고민을 하면서. 사실상 나는 밀가루를 끊은 것이기 때문에, 아이스크림 하나를 먹어도 되고, 초콜렛 하나를 먹어도 되고, 감자칩 한봉지를 먹어도 된다. 그런데 마치 내가 단식을 하는 사람 같은 강박관념에 아무 것도 먹을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는 추가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나는 밀가루 단식 중일 따름인데 말이다.


그러니, 업무의 스트레스라면 감자칩 한 봉지를 먹어 버리자, 밀가루 단식을 '모든 고칼로리 음식들의' 단식이라 착각하여 단식 스트레스를 더 받지 말고, 쉽게 생각하고 나에게 아이스크림 하나를 허락해 버리자. 그것이 밀가루 단식을 지속하는 아주 손쉬운 방법이다. 사실 평소 "양"에 대한 욕심이 없으므로, 쌀로별 한 봉지를 먹든, 아이스크림 하나를 먹든, 그 섭취가 폭식의 계기(trigger)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히 알고 있으니, 먹어줘도 상관이 없다는 것은 내게 있어 행운이기는 하다. 


# 지금 먹고 싶은 밀가루 음식은 두둥.... 바로 "콘칩"이다.



 

Posted by Sophie03
[Story]2013. 6. 26. 23:20




"꾸준함은 나의 미덕이며 성실함과는 다르다"는 나의 의견에 친구가 질문을 던졌다. 

"꾸준함과 성실함의 차이는 무엇인가? "

우선 꾸준함의 세상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다만 내가 즐겁고 그냥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일 뿐 이것을 한다고 해서 내가 옳거나 혹은 틀린 것이 아니다. 그냥 나는 스페인어 공부를 하고 밀가루 단식을 하며 요가를 할 뿐이다. 반면에 초등학교 방학숙제 중 일기쓰기는 나도 싫어했는데요, 이 숙제는 성실함을 기본으로 한다. 해야만 착한 어린이가 되고 안 하면 나쁜 어린이가 되는 양자택일적인 사상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이다. 

또한 꾸준함에는 타인과의 비교나 1등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지난 번 글에서도 썼지만 나는 요가를 상당히 늦게 배워가고 있는데 사실 별로 스트레스가 없다. 나보다 훨씬 늦게 시작한 사람이 handstand를 멋지게 하면 "우와, 멋지다" 하며 보지만 그게 전부이다.  그 사람에게는 그 사람만의 때가 있고 내게는 나만의 때가 있다. 나는 Handstand를 못 하는 대신 천천히 차근차근 뭔가 늘 느끼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된다. 누군가와의 속도가 다른 것은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은 아니므로 신경쓰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대부분 별로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다. 밀가루 단식에 대한 주변의 반응은 여러번 썼고. 요가를 예를 들면, 보통 회사 근처나 집 근처에서 요가를 하느냐고 물어본다. 사실 나는 예전에 한 번 요가를 시작했다가 바로 그만 둔 적이 있다. 오랫동안 요가를 해 온 친오빠와 이야기를 해보니 요가와 내가 맞지 않음이 아니라 그 스튜디오와 내가 맞지 않았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친오빠는 시간이 맞으면 본인의 요가스튜디오도 내게 잘 맞을 것이라고 추천했고(오빠도 거의 십오년간 한 구루에게 요가수련을 하고 있고 오빠의 결혼식에 구루도 참석했는데 나는 사실 그날 구루의 얼굴을 보고 요가를 해야 겠다고 결심했을 만큼 평화로워 보였다.), 나의 좋은 친구도 본인이 다니는 요가스튜디오를 계속 추천했었다. 친오빠가 해외에 나가 있었던 기간 동안 친구의 요가스튜디오를 가게 되었고, 오빠의 이야기대로 요가와 나의 문제가 아니라 스튜디오와 나의 문제였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문제는 그리 가깝지 않다는 것인데, 사실 거리는 큰 문제가 아니다. 주에 두 번 요가스튜디오를 가는 길,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크게 어렵거나 귀찮지도 않다. 
생각해보면 나의 꾸준함은 그냥 계속하는 것이며, 그 계속하는 일이 큰일이 아니야(It's not a BIG DEAL류의...) 라는 생각 때문에 계속하는 것일 뿐이다. 계속 하고 있음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그저 해 나가고 있을 뿐이다. 

물론 성실함도 좋은 것이다. 성실함이 틀리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성실함을 원동력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성실함이 필요하고, 다만 나에 있어서만은 성실함이 아닌 꾸준함이 어울린다. 큰 문제삼지도 큰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고 왠만하면 평가하지 않고, 그저 꾸준히 해 내는 것 뿐이다. 내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그러해 왔듯이!

Posted by Sophie03
[Story]2013. 5. 29. 23:25


지난번 글 "꾸준함의 미학"에 이어 두번째 글. 지난주 월요일에 나는 요가를 가지 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요가를 갔다는 이야기를 썼었다. 오늘도 비도 오고, 월~화 이틀 교육의 여파로 피곤하여 또 요가를 가지 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내일 회사 사정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또 내일 가게 되더라도 주 2회 가는 것이니, 일단 가기 싫어하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서둘러서 요가를 갔다. 

"서둘러서" 요가를 간 이유는 뻔하다. 지리하게 자리에 앉아 요가를 갈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시간이 어중간해지면 요가를 가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거나, 어영부영 뭐 먹으러 가자고 하면서 요가를 가지 않게 되기 때문에, 그래도 가야지 하는 생각이 들자마자 사무실에서 뛰쳐나왔다. 요가를 가는 동안 나는 역시 참 꾸준하다는 생각을 백번 정도 한 것 같다.

그래서 요가를 일찍 도착하고 보니, 비도 오고 가지 말까 하는 고민은 모두의 고민이었는지, 나를 포함하여 세명이 오붓하게 yoga practice를 하게 되었다. 시작전에 대화를 나누다가 선생님이 나를 두고 이런 단어를 사용하였다. "돈오점수" 


이야기인 즉슨, 나는 굉장히 느리게 요가를 익히고 있는 사람인데, 사람마다 속도가 다르므로 나쁠 것은 없다. 이렇게 느리게 요가를 익히는 사람이 서둘러 요가를 익히게 되면 쉽게 부상을 입게 된다. 그러니 스스로의 속도대로 천천히 그러나 점진적으로 몸이 요가를 하다 보면 순간순간 깨닫는 순간이 온다는 이야기였다.


오랫동안 긴장하는 버릇을 유지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나는 몸에 긴장을 푸는 법을 잘 몰랐다. 그러니 내가 어깨에 힘을 빼고, 등으로 호흡을 보내고, 허벅지의 안쪽 바깥쪽 근육을 균등하게 쓰는 것을 말로 들어서 어떻게 알겠는가. 그저 1년반정도 꾸준히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등을 부풀여서 숨쉬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허벅지의 근육을 균등하게 쓰기 위해 나의 걸음걸이를 관찰하게 되었다. 여전히 core power를 사용하는 법을 잘 몰라서, handstand도 못 하지만, 순간순간 아, 이건가 하는 순간들이 있어서 신기하다. 


중요한 것은, 나보다 요가를 늦게 시작한 사람이 먼저 handstand를 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몸이 얼마나 할 수 있고, 나의 마음이 얼마나 긴장을 풀 수 있으며, 바로 지금의 나의 상태를 아는 것이다. 어느 날은 balance가 잘 맞아서 기쁘고, 그리고 그 다음날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후에 깨어져버린 balance를 느끼게 되면 몸에 더 친절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좋다. 


어느 것도 한 번에 완성할 수 없지만, 완성되는 순간은 일시적이다. 어느날 완성된 동작을 할 수 있다고 해서 다음날 그 동작을 또 할 수 없기도 하고, 내가 언제나 어떤 동작을 못 한다고 해서 영원히 못 하는 것도 아니다. 나의 몸의 상황에 따라, 외부 환경에 따라, 내가 받은 스트레스에 따라, 혹은 단 한번의 호흡에 따라, 그저 변화할 뿐, 그저 조금씩 그런 상황을 더 잘 알아가는 것이 요가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 나의 몸이 그런 것을 보면 마음의 balance를 찾는 일은 얼마나 더 어려운 것인지 깨달아 알게 되는 것이 요가를 꾸준히 하게 하는 이유인 것도 같다. 


그러니, 나는 늘 돈오점수 같은 삶의 자세를 유지할 것 같다. 점진적으로 노력하다가 시나브로 깨달음이 체화되다가, 어느날 문득 깨달음이 번개처럼 내게 오는 방식은 내게는 최적의 삶의 방식이니까. 





Posted by Sophie03
[Story]2013. 5. 21. 20:53



페이스북에 밀가루를 끊었다고 올리자 왜 그러는지 오랫동안 질문을 받다가, 최근에 재미삼아 스페인어를 배우고 있다고 올린 이후로는 왜 스페인어를 배우냐는 질문을 받고 있다. 언젠가의 글(☞click)에 쓴 것처럼 그냥 재미있어서 하는 것 뿐이다. 특별히 스페인어를 배워서 회사에서 인정받겠다는 실용적인 마음이 있지도 않고, 사실 스페인에 가거나 라틴아메리카에 가더라도 영어부터 말할 것이다. 그냥 나는 언젠가 다짐했다, 죽기 전까지 스페인어/이태리어/프랑스어를 말하고 시를 이해할 수 있는 정도로 세가지 언어를 배우리라고. 그냥 내가 즐거우려고. 


그런데 사실 내가 알고 있는 나는 그것이 무엇이든 시작만 하면 꾸준히 한다. 나의 가장 범생이적인 특성은 꾸준함이다. 나의 꾸준함은 성실함과는 다르다. 요가를 정기적으로 '12년1월부터 시작하였는데, 지금까지 회사일이 바빠서 한달, 감기가 심해서 한달 빼먹고는 꾸준히 다니고 있다. 어제 일과 후에는 요가를 가기 싫은 마음이 있었지만 요가를 다녀왔다. '일주일에 두 번 요가'가 스스로의 기본 계획이고, 월요일에 가지 않는다 해도 금주 언젠가 두 번은 가야 하기 때문이다. 밀가루를 끊은지는 100일쯤 되었다. 지난번 글(☞click&click)에도 썼듯이 앞뒤 재지 않고 시작했는데, 하다보니 그냥 계속 하고 있다. 스페인어 공부도 마찬가지다. 죽기 전까지 시를 읽어야 하니까, 하는 커다란 사명감 보다는, 회사에서 스페인어 강좌가 개설되길래, 원래는 이태리어부터 배우고 싶었지만, 스페인어 공부 부터 시작했다. 3월에 시작해서 지금까지 전출을 했고, 첫번째 종강을 했다. 그리고 다음주에 두번째 학기가 시작한다. 그런데 사실 성실하게 예습/복습을 철저히 하지도 않았고, 그저 일과시간 이후에 교실로 쓰이는 회의실에 가서 수업을 들었고, 이제 단순한 현재형 문장을 말할 수 있다. 


나의 꾸준함에는 사명감이 없다. 그저, 어릴 때부터 써온 독후감을 어른이 되어서도 쓰고 있고, '일주일에 한권 책읽기'도 매년 하고 있다. 그냥, 그저, 하고 있는 것 뿐이다. 중간에 중단한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중국어 였다. 학부 때 한 번, 회사원일 때 한 번, 두 번을 포기했는데, 그 때 깨달았다, 나는 알파벳으로 된 언어를 배우는 것을 즐거워한다는 것을. 이후로 그냥 중국어는 시작하지 않기로 했다.


솔직하게 이야기 하면, 나는 스페인어를 배우면서 재미있다. 성실하게 외워야 하기 때문에 외우는 것은 아니고,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 위해 쉬고 있던 뇌가 움직이는 것이 느껴지는 것이 즐겁다. 그냥 즐겁다고 생각하면 꾸준하게 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솔직하게 이야기 하면, 나는 독후감을 써두는 것이 재미있다. 내가 읽은 책들이 비물리적으로 쌓여 하나의 서재를 이룬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그리고 언젠가 어느 구절이 떠올랐을 때 그 책을 읽고 나는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보는 일이 즐겁다. 나의 꾸준함으로 인해 나는 늘 쉽게 즐거워 진다. 이것이 나의 꾸준함의 미학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종료일을 정하지 않고 시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저 꾸준한 것으로도 나는 살아있는 이유가 있으니까. 그리고 세상 일은 원래 이진법으로 깔끔하게 설명할 수도 없으니까.

 

Posted by Sophie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