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2013. 12. 22. 21:30



'2013년이 열흘 남았다. 눈도 오고 이곳저곳 크리스마스 장식도 되었고, 회사 공식/비공식 송년회와 지인들과의 송년식사도 종종 하고 있지만, 개인적인 송년 준비를 올해도 하고 있다. 




(@Park Hyatt Seoul, Galaxy3S) 



친구가 작년말에 본인이 시행한 이후에 뜻깊었다고 추천한, 지인 대상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설문 조사를 12월에 시행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었는데, 5월에 그룹 교육을 받으면서 이미 시행하여 이 프로젝트는 면제되었다. (click ☞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리고, 어젯밤 KBS 연예대상을 시작으로 연말 내내 방송 3사에서 OO대상들을 진행하는 것처럼, 나도 '스스로 대상'을 할 시간이 왔다. '스스로 대상 주기'를 하게 된 연유와 '2012년의 시상 항목에 대해서는 일년여전에 작성하였고, (click ☞ "스스로 대상 주기") 오늘의 주제는 지인들이 궁금해하는 것이다. 


개인 시상에 대해서 의외로 지인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이 바로 포상이다. 개인적으로, 어려서부터, 포상에 익숙하지 않은 나로써는 왜 개인 시상이 포상과 연결되는지 이해할 수는 없으므로, 개인 시상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포상은 없다. 


하지만, 연말이면 몇 가지 선물을 스스로에게 주게 된다. 꾸준하게 한 해를 살아왔다는 차원으로 선물을 준비하고 만끽한다.


우선 연주회를 간다. 나를 위한 연말 연주회의 기본은 말 그대로 연주회이다. 가수들의 콘서트나 뮤지컬 등에도 기회가 있으면 가지만, 기본적으로 연주회는 꼭 간다. 왠지 모르게 연주회에 가서 악기의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한 해의 피로가 노곤히 풀리는 느낌이다. 사실 겨울에 가는 음악회가 대부분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연주회장에 가서 따뜻한 공기와 어두운 공간, 그리고 아름다운 선율에 몸에 맡기면 일순간 노곤해지면서 다소 졸립기도 하고 힘이 빠지기도 하면서 음악에 젖어들어가는 묘미가 있고, 나는 그런 느낌을 즐긴다. 그래서 올해는 금호아트홀 체임버 뮤직 소사이어티의 실내악 연주회에 다녀왔다. 




프로그램은 나는 처음 들어본 작곡가인 Reinecke의 곡들로 꾸며진 Reinecke Special 이었는데, 듣고 있노라니 어깨가 으쓱으쓱 기분이 좋았다. 연주자의 숨소리까지 들리는 2중주부터 8중주까지 즐거운 시간이었다.


둘째로 서울의 평일의 여유를 즐기는 즐거움을 허락한다. 평일 휴가를 내면 '에너지 충전'을 위해 바삐 움직이는 것과 달리, 그냥 그 때 하고 싶은 일을 한다. 그래서 달콤한 낮잠을 자기도 하고 오후 늦게 걸어나가 커피 한잔 마시고는 저녁 약속에 참석한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그냥 그런다. 한 해 바삐 살았으니 12월에는 그런 여유를 즐겨도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실제로 해보면 12월의 널널한 평일이 약이 된다. 12월에 송년회니 뭐니 정신 없이 보내고 나면 12월이 가는지도 1월이 오는지도 모르고 시간은 흐르니까, 그저 그런 여유가 필요하다.


셋째는 사람들이 제일 궁금해 하는 '상품'인데, 우선은 당연히 책이다. 아주 고심해서 두어권 책을 고른다. 이번 주말에도 책장 정리를 했지만, 사실은 책장에 자리가 없어서 책장을 늘리지 않는 한 책을 자주 많이 살 수도 없고, 딱 두어권만 연말 선물로 책을 고른다. 대출해서 읽은 후에 재독서가 가능한 소장용 책을 사는 목적이 강하므로, 신중 또 신중 모드가 되곤 한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옷도 물론 산다. 12월에는 가계부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뭔가 옷을 사게 되기는 한다. 물론 올해도 이미 샀다.


지인들이 개인 대상에 대해서 두번째로 궁금해 하는 것은 무엇을 시상하느냐는 것이다. 링크된 글에서 어떤 항목에 시상을 하는지는 적어두었지만, 말하자면 대부분 나의 꾸준함에 대한 시상이 이루어진다. 사실 꾸준함이 중요하다. 솔직히 나는 연말연시의 요란한 분위기가 싫다. 어렸을 때부터 집안 분위기상 연말에는 반성을 하고 연초에는 계획을 세워야 했는데, 나는 그것이 그렇게 싫었다. 심각한 척, 중요한 척 하지만, 실제로 그것은 그저 연말연시에 보여주기식 행사이지, 시간이 12월31일 23시 59분 59초와 1월1일 0시0분0초를 딱 구분지어 우리에게 명백히 다른 그 무엇인가를 보여주지 않는데, 달력을 새로 건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에 뭔가 중요한 일이 새로 시작되는 냥 그런 분위기를 가져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 왔다. 자기 반성의 시간보다는 그저 꾸준하게 삶을 살아온 것에 대한 격려와 응원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집안에서 안 해 주길래 스스로 격려하고 스스로 응원하며 스스로 위로하는 시간을 시작한 것 뿐이다. 그러려다 보니, 요행으로 이루게 된 것들 보다는 나의 꾸준한 시간에 대한 격려를 하는 것이 당연해 보이는 것이다. 


사실 2013년 개인 시상 항목은 거의 다 뽑아두었다. 수기로 일기장에 적어둘 예정이다. KBS 연예 대상에서 유재석이 먹방상을 받았다고 하는데, 나의 시상 항목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그저 시간을 축내지 않고 시간을 살아냈다고, 세월의 흐름 속에서 나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꾸준하게 살아냈다고, 스스로 다독이는 것 뿐이니까. 





돌 하나, 꽃 한송이


신경림


꽃을 좋아해 비구 두엇과 눈 속에 핀 매화에 취해도 보고

개망초 하얀 간척지 농투성이 농성에 덩달아도 보고

노래가 좋아 기성화장수 봉고에 실려 반도 횡단도 하고

버려진 광산촌에서 중로의 주모와 동무로 뒹굴기도 하고


이래서 이 세상에 돌로 버려지면 어쩌나 두려워하면서

이래서 이 세상에 꽃으로 피었으면 꿈도 꾸면서




그풍경을나는이제사랑하려하네

저자
안도현 지음
출판사
이가서(주) | 2006-06-12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햇살과 바람이 깊게 스민 그때소월시문학상, 이수문학상 등을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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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ophie03
[Story]2013. 3. 15. 00:18




오늘은 일과중에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다가, 회사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생각이 났다. 일년전 오늘부터 있었던 일. 야근 후 택시에서 느꼈던 감정들, 그 이후로 지속된 일들. 2012년 스스로 대상주기에서도 당당히 수상의 영예를 안았던 그 시간들. 공든 탑은 어이없을 만큼 쉽게 무너지지만, 그래서 그동안의 시간들은 무위의 시간으로 돌아가 버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언제나 그렇게 존재한다. 


우습게도 집에 돌아와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국민연금 가입내역안내서. 길고긴 가입개월수. 이제는 '짧고도 긴'이라는 표현을 쓸 수 없을 만큼 길어진 나의 가입개월수. 시간은 언제나 그렇게 존재한다.


그제서야 책상 위에 손편지가 눈에 보인다. 그 반가운 손글씨를 보자마자, 눈시울을 뜨거워진다. 봉투를 열고 '우리'의 생일을 축하하는 글을 읽는 동안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시는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였다.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함석헌



만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 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이 사진을 찍어서 이 글에 넣기까지 1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사진을 찍고 cloud에 저장하고 다운받아 등록하면 끝. 모바일로 바로 게시해도 되지만,  최소한의 아날로그적인 감성으로 블로그 글은 왠지 꼭 키보드로 쓰고 싶어서 이런 과정을 거치는데 1분도 걸리지 않는다. 그런 디지털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표를 붙인 손편지로 생일 축하 카드를 받아 들 때의 기분은 참 뭉클하다.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이 보낸 편지이니 그 내용이야 오죽하겠는가.


시간은 언제나 그렇게 존재한다.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나 홀로 허허벌판에서 매서운 바람에 홀로 노출되어 있을 때도, 그 모든 것이 내 인생임을 구구절절 알고 있을 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이 바로 그 날인데 라며 전화걸어 목소리 듣고 싶은 사람을 만들어준, 바로 그 시간은 언제나 그렇게 존재한다. 


내년의 오늘의 시간에는, 이러저러한 밤에 손글씨 생일 카드를 받아든 시간이 내게 존재할 것이다. 스위스에서 받아들었던 그 편지, 스위스에서 보내주었던 그 편지의 시간에 더해졌으므로, 시간은 언제나 그렇게 존재할 것이다.




힘든 일을 넘어서서 성숙한 것도 좋지만 덜 힘들기를 기도해준 PP님에게 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꾸벅!





Posted by Sophie03
[Story]2013. 1. 19. 00:36


연말이면 방송3사가 연기대상, 가요대상, 연예대상을 진행한다. 어릴 때는 연예대상은 없었고, 대신 가요대상에서 진짜 대상이 있었다. 그 때는 연기대상도 정말 딱 한 명만 받았기 때문에, 정말 긴장하면서 봤었다. 그런데 어느해부턴가 가요대상은 없어지고, 연기대상도 연예대상도 퍼주기식 수상을 하면서 방송을 보는 묘미가 사라졌다.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런 퍼주기식 시상이라면 나도 스스로에게 할 수 있다고.


또다른 이야기. 4년마다 올림픽을 할 때면, 비주류 종목의 선수들이 메달을 딴 후에 늘 이야기한다. 비인기종목에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우리 선수들이 피땀흘리고 있노라고. 그럴 때면 나는 생각한다, 우리 평범한 사람들은 늘 시상식도 없는 인생이라는 삶을 살고 있노라고, 우리 평범한 사람들은 금메달을 딴다는 희망조차 없노라고. 


그래서 어느해 부턴가 연말에 스스로 대상을 주기 시작했다. 물론 트로피도 화려한 시상소감도 없지만, 스스로의 일년을 꾸물꾸물 잘 살아온 것에 대한 스스로의 격려 차원에서 혼자 대상을 준다. 항목은 매년 바뀌는데, 보통은 연초의 New Year's Resolutions를 달성한 부분에 대해서 일종의 노력상을 주고, 한해 일어난 사건사고들에 대한 특별상이 수여된다. 노력상 같은 경우에는 스스로의 KPI 달성의 의미가 같이 있어서 연말을 마감하는 효과가 톡톡히 있다.


2012년도에는 365일 가계부 쓰기 상, 10.5개월 요가 상이 주어졌고, 전년과 동일하게 한주1권 읽기 상도 있었다. 초/중/고 12년 개근상에 빛나는 범생이적인 성실함으로 받아낸 상들이다. 사실 365일 가계부 쓰기는 정말 귀찮아서 중간중간 고비도 있었지만, 연말 수상할 때 이거라도 받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고비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특별상은 인생 top3에 속하는 이별상, 인생 top3에 속하는 모멸감상, 인생 top3에 속하는 자괴감과 자존감상이 주어졌다. 상세한 설명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라 생략하지만, 어떤 사건사고가 벌어졌을 때 이 사건은 인생 top3에 속하는 사건이니 일단 잘 수습하고 연말 시상식에 상을 받아보자는 마음을 먹게 한다. 역시 범생이적인 마인드로 상 하나 받아보겠다고 꾸물꾸물 살아내게 된다.


2012년도는 내게 무척 힘겨운 한 해였고 그래도 무사히 시상을 했다. 2013년도도 쉽지 않아 보이지만,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지만 나는 나의 피땀을 흘리면서, 어떤 대상을 받을지 고민하면서 차근차근 하루하루를 살아, 연말에는 나만의 시상식을 할 것이다. 


# 상을 주고 나서 생각해보니, 2012년은 366일인데... 365일 상으로 시상하고 말았다...

Posted by Sophie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