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2013. 12. 5. 00:46




우리동네 예체능

정보
KBS2 | 화 23시 10분 | 2013-04-09 ~
출연
강호동, 최강창민
소개
지쳐있는 대한민국 국민을 위한 건강충전 프로젝트!! 남녀노소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생활밀착형 버라이어티.




최근 한달간 내가 가장 열심히 챙겨보는('방송 후 3일이내에 보는'을 의미함) TV프로그램은 '우리동네 예체능'이다. 배드민턴이나 탁구 일 때는 그냥 그렇더니, 농구로 종목이 바뀌자 마자 열혈팬이 되어 밀린 방송까지 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방송을 보는 동안의 내 표정은 흐뭇함 그 자체인데, 최근에 드라마도 안 보고 있는 내가 왜 이런 걸까 생각해보니 의외로 답이 쉬웠다.


여름에도 글을 쓰려고 키워드로 뽑아놨다가 게으름에 밀려 키워드만 적혀 있는 바로 그... "함께"라는 단어가 그 답이었다. 명사로 이야기하자면 "공동체" 때문이었다. 


여름에는 그랬다. 더워도 혹은 더우니까 등산해서 산공기를 마시며 벤치에 앉아 굳이 등산해서 만든 땀을 식히는 나는 운동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해불가의 대상이기는 하지만(여름에도 산에 가면 시원한 바람이 부는데 나는 그 바람을 사랑한다), 그런 나도 더울 때는 움직이기만 해도 땀이 물 흐르듯 나는 체질이라 실내스튜디오에서 하는 요가를 힘들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름에 요가 intensive course를 들었다. 8월의 일요일 오전 9~12시 3시간동안, 총 4회에 걸친 요가 집중 과정에 등록한 것은 이번 기회를  step-up의 기회로 삼으라는 선생님들의 충고 때문이었다. 그런데 내가 그 시간동안 얻은 것은, 그 과정을 하는 동안 (남들이 3~6개월이면 한다는) forearm balance를 20개월만에 드디어 하게 된 점도 있지만, 더 크게 얻은 것은 함께 하는 사람들의 기운이었다. 일요일 오전에 기어코 그 스튜디오로 찾아와 아무런 말도 없이 같은 동작을 하며 같은 땀을 흘리는 사람들의 열기가 무척 뜨거웠지만 별로 덥지 않았다. 아주 오랜만에 공동체가 주는 위로의 시간을 느꼈었다.


그래서 거슬러 올라가, 등산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의 공동체와 그 위로의 시간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Taize에 대해서도 생각했었다. Taize 공동체를 검색해 보면 아래와 같은 결과가 나온다.



가톨릭과 개신교를 아우르는 국제 공동체. 1940년 로제 수사가 동부 프랑스의 작은 마을 떼제에 정착하면서 시작했다. 떼제의 형제들은 평생 영적 물적 재산을 공유하며 독신 생활과 단순 소박한 삶에 투신한다. 하루 세 차례 드리는 공동 기도가 떼제 생활의 중심이며, 매주 이곳에서 열리는 청년 모임에는 수천 명이 참가해 기도와 성찰, 나눔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떼제 공동체 [Taizé Community, la communauté de Taizé] (미디어 종사자를 위한 천주교 용어 자료집, 2011.11.10,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내가 Taize를 처음 접한 것은 가톨릭청년성서모임 연수 때였는데, 이후에도 어떤 순간마다 혼자 속으로 흥얼거리곤 했었다. 하지만 Taize의 정수는 공동기도를 할 때 나타나는데 특별히 내가 좋아하는 부분은 허밍 부분이다. 서로 다른 목소리를 가진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하모니를 내는 원천은 사실 공동체의 힘이다. 합창단처럼 미리 만나 연습하지도 않고 다만 일반인들이 같은 노래를 부르는 데도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든다는 점은 현대 사회에서 쉽게 접하지 못하는 공동체의 시간이며, 그렇기에 프랑스의 테제 공동체로 전세계인들이 모여드는 것일 것이다. 


사실 나는 프랑스의 테제 공동체에 간 적은 없지만, 스위스 생갈렌에 있던 시절에 테제 기도에 참석한 적은 있다. 나는 사실 일부 테제 기도는 영어로도 알고 있지만 많은 테제 기도는 한국어로 알고 있으므로 그곳에서도 영어 혹은 한국어로 테제 기도에 참여했었다. 언어는 장벽이 되지 않았다. 나는 생명부지의 사람들과 하나였고, 서로의 기운을 함께 나눠가졌다. 





(IXUS400, 2004년 1월, 스위스 생갈렌)



'우리동네 예체능' 농구편에서 내가 보는 것은 그런 공동체인 것이다. 탁구나 배드민턴은 같은 팀이지만 함께 뛰지는 않았는데, 농구는 당연히 한 팀을 이루고 함께 땀흘리고 함께 성장해 가는 그 순간을 지켜보는 것이니, 당연히 빠져들 수 밖에 없다. 언어로, 슬로건으로 함께 해야 한다고 당위성을 설명하는 것에는 거부 반응을 일으키지만, 운동화가 바닥에 닿아 삑삑 소리를 내는 농구장에는 자꾸만 빠져들게 된다. 그러니 비록 내가 몸으로 함께 하지는 않지만, 오랜만에 공동체의 체온이 필요하신 분들은 한번은 '우리동네 예체능'을 보실 것을 추천해 드리고 싶다. 바깥은 차지만 마음 만은 실내 코트를 뛰고 있는 그들과 함께 기뻐하며 뜨거워져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Posted by Sophie03
[Pause]2013. 11. 21. 23:30


나는 좋아하는 것, 행복하게 하는 것이 워낙 많기도 하지만, 그 중에는 '겨울산책의 즐거움'이라는 것도 있다. 나의 모순이기는 한데, 우선 나는 추운 날씨를 잘 못 견딘다. 기본적으로 체온이 높은 편이 아니고, 외부의 찬 공기(에어콘/찬바람)에 의해 쉽게 한기를 느끼는데다 바로 회복을 못 한다. 아주 가끔이지만 어떤 밤에는 자다가 급히 추위가 느껴지면 임기응변으로 목과 발에 드라이기로 뜨거운 바람을 불어넣어야 덜덜덜 떠는 것을 그칠 수 있다. 어린시절 6년동안 강원도에서 살았는데도 도무지 변화가 없는 체질이다. 그런데 또 이상하게도 겨울의 차가운 공기를 좋아한다. 말그대로 콧끝시린 그 시간의 공기를 사랑한다. 특히 겨울산책에서 느끼는 그 상쾌함은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다. 


그래서 나는 이런 식이다. 아침 출근길에는 너무 추워서 몸을 한껏 웅크리고 걸어가는데, 저녁 퇴근길에는 약간 룰루랄라하면서 밤에 잠시 산책을 나가볼까 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말로 산책을 나가면 그네도 탄다. 찬바람을 가르며 그네를 타는 기분은, 한겨울 여의도고수부지에서 아이스크림 먹기를 즐기던 나의 중학생 시절의 행복감과 맞먹는다. 


그래서 주말에 눈을 뜨면 어서 산을 가야지 하고 마음을 먹는다. 하기야 4계절 내내 늘 다른 핑계로 산을 가지만, 다른 계절과 달리 겨울에 산을 가기 위해서는 거쳐야할 단계가 조금 길다. 일단 눈을 뜨고 산을 가야지 마음 먹지만, 이불에서 나오는 순간 추워서 가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하다가, 결국에는 상쾌한 겨울산책의 즐거움을 만끽하기 위해 온갖 중무장을 하고 산으로 간다.


겨울산책에는 늘 그리움이 묻어 있다. 알프스 겨울 공기에 대한 그리움, 눈길을 걸어 산을 오르며 외로움을 달래던 시간에 대한 그리움. 지금 생각해 보면, 그곳이 스위스가 아니라 서울이었어도 겨울이 주는 외로움을 느꼈겠지만, 그 때는 그저 외로운 이십대였다. 그래서 St. Gallen에 머무는 주말이면 집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도시의 뒷산으로 올라갔다. 


아래와 같은 등산로의 초입을 지나 오르기 시작하면 숲이 나오는데, 아쉽지만 숲 사진을 찾을 수가 없다. 나는 이 등산로 입구를 참 좋아했었는데, 사람들이 줄지어 올라갈 때 이상한 온기를 느끼고 했다. 물론 나이를 가늠할 수 없고 St.Gallen에는 희귀한 동양인 여자애가 지역민처럼 입고 산을 오르는 풍경이 신기하여서인지 눈인사를 잘 해줘서 일 수도 있다. (반대로 거리에서는 관찰의 대상이었다)





스위스에서 7번째로 큰 도시인 St. Gallen은 양쪽에 산을 두고 긴 도시 형태를 이루고 있다. 한쪽 산 중턱에 내가 살던 집이, 반대쪽 산 중턱에 내가 다니던 학교가 위치해 있었다. 그래서 산에 오르면 우리집 지붕도 보이고 멀리에 학교도 보였었다. 






아래 사진의 평평한 곳은 수영장이다. 아쉽게도 나는 겨울에만 머물렀기 때문에 눈덮인 수영장만 보고 돌아왔다. (사실 산책로 옆을 지나던 승마하던 사람들 사진을 넣고 싶었지만 찾아지지가 않아 수영장 사진으로 대체)



(네장의 사진 모두 2004년 1월, St.Gallen, IXUS400)


내가 만난 스위스 사람들은 "감기 걸리면 늘 숲에 가야 한다, 맑은 공기를 마시면 감기가 낫는다, 자연의 치유력을 믿으라"고 이야기하며 집에 있는 나를 등떠밀어 나가게 하거나 굳이 밖으로 불러내서 숲으로 데리고 갔었는데, 나중에는 자발적으로 내가 알아서 산에 오르고 있었다. 실제로 숲에 다녀오거나 산에 다녀오면 늘 감기가 호전되어 있었고, 나도 그 때부터 자연이 가지고 있는 놀라운 치유력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었다. 서울에서도 감기기운이 있을 때 종종 산책길에 오른다. 많이 껴입고 핫팩을 붙이기도 하고, 장갑도 두겹씩 끼는 등의 대비를 충분히 하고 산에 다녀오면, 감기기운이 물러간다. 상쾌한 기분은 덤이다. 


최근 2~3년간 알프스의 겨울이 무척이나 그립다. 차갑고 신선한 공기, 펑펑 내리는 눈, 그 핑계로 산책후에 마시는 스위스 우유에 탄 핫초코. 그 상쾌함. 이상하게 겨울에 왔던 폭풍도 그리운 것을 보니, 겨울 스위스에 다녀오긴 해야 겠다. 




Posted by Sophie03
[밀가루끊기]2013. 6. 22. 23:15


밀가루 끊기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흔히 예상하듯이 끔찍하거나 세상에 먹을 것이 없어 허기져 죽을 판도 아닌데, 주변사람들이 자꾸만 먹고 살 것이 없지 않냐는 질문을 계속 해 주고 계신 관계로, "혹여나 밀가루를 끊어볼까 결심해볼까 생각은 들지만 쉽게 마음 먹을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나의 대체제에 대해 써볼까 한다. 


나도 밀가루를 좋아하는데, 대부분의 종류를 다 좋아한다. 


그 중에 가장 좋아하는 것은 역시 면 종류이다. 국수집을 차려도 될만큼 인상적인 잔치국수와 비빔국수를 끓이시는 엄마의 자녀라면 겨울에는 잔치국수를 먹고 싶다고 하고 여름에는 비빔국수를 먹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둘 다 해 주신다... 진짜 맛있기 때문에 일인분은 안 되는 양이긴 해도 두 그릇 다 먹을 수 밖에 없다. 파스타도 진짜 좋아한다. 다양한 종류의 면들을 다 좋아하는데 엔젤헤어도 좋아한다. 칼국수, 우동, 모밀, 냉면, 쫄면 모두 사랑한다. 하지만 요즘 내가 먹는 것은 쌀국수 뿐이다. 국물이 먹고 싶으면 쌀국수, 별미가 먹고 싶다면, 팟타이나 팟씨유 등의 대안이 있다. 물론 자장면을 대체하거나 라면을 대체하는 자극적인 맛은 기대할 수 없지만, 국수의 기본인 "후루룩" 면발을 빨아올리는 느낌만으로도 좀 행복해진다. 그리고 최근에 우래옥에서 순면냉면을 먹고 행복해서 눈물을 흘릴 뻔 했다. 아주 맛있었다! 자주 가지는 못 해도 밀가루를 안 먹어도 냉면을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있어서 다행이다. 사실 나는 연속 3끼를 전부 냉면으로 먹을 수 있는데 여름이 오니 냉면을 못 먹어서 어쩌지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고 있었는데 다행히 우래옥 냉면을 먹게 된 것이다. 


그 다음은 빵이다. 여러종류의 빵을 다 좋아한다. 누군가처럼 매일매일 빵을 먹지는 않아도 회사 다니고 외부 약속 있다보면 일이주에 한번은 꼬박꼬박 빵을 먹어왔다. 그런데 빵을 못 먹는다. 좀전에 책을 읽다가 도넛 이야기가 나와서 또 입맛을 다셨다. 밤앙금, 팥앙금이 들어간 빵도 먹고 싶고 프레츨도 먹고 싶고 보카디요도 먹고 싶고 프렌치 토스트도 먹고 싶고, 쓰다 보면 밤 샐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위스 독어권 지역의 특산물(사진)도 먹고 싶다. 계피향이 나는 이 빵은 차가운 날씨가 되면 따뜻한 차와 함께 한 모금 베어 물고 싶은 그런 빵이다. 한국으로 돌아올 때 생갈렌 시장의 전통적인 빵집에서 따로 주문해서 가지고 왔었는데... 갑자기 생각난다.


(친구가 왔을 때 취리히로 놀러갈 때의 간식으로 사서 먹은 것, 벌써 9년전...)


문제는 빵은 대체제가 없다. 사실 "계란과 고구마로만 만드는 빵"이 존재하기는 한다. 폭신폭신한 식감이 어느 정도 밀가루와 닮아 있다. 하지만 만들기 위해서는 계란 흰자로 머랭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노력에 비하면 만들 수 있는 양도 한정적이고, 그리고 밀가루 빵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달콤한 향이 없기 때문에 왠만해서는 추천하지 않는다. 폭신폭신한 식감을 포기한다면, 그래도 달콤한 디저트가 먹고 싶다면 나는 머랭과 마카롱을 추천한다. 다만 다이어트를 위해 밀가루 단식을 한다면 칼로리를 보고 가슴 쓸어내릴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감기에 걸리면 먹는 음식이 다르던데, 나는 감기 초기에는 늘 어묵탕을 끓여먹는다. 무와 양파와 파, 다시마와 멸치를 넣고 국물을 우린 후 한번 데쳐서 기름기를 뺀 어묵을 넣고 끓여서 국물까지 마시고 나면 초기 감기는 쉽게 잡을 수 있다. 그런데 어묵에 밀가루가 들어간다. 이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왜? 정말? 하는 눈빛을 보내는데, 그런 모양을 가지려면 당연히 밀가루가 들어가야 한다. 아무튼 어묵을 못 먹는 것은 언제나 큰 일이다. 아직도 대체제를 못 찾았다. 


그리고 만두와 딤섬. 혀가 데일 듯 뜨거운 딤섬에 간장에 절인 생각을 얹어서 먹는 즐거움의 대체제 역시 아직 못 찾았다. 만두소만 좀 먹으면 그건 만두가 아니고 동그랑땡 재료를 먹은 것 같아서... 왠지 불편하다. 감자만두가 판매 중이라서 열심히 찾아봤지만 밀가루와 전분을 섞어서 만두피를 만든 것이란다. 그래서 포기하고 만들어 볼까 고민하며 찾아보니 유아식 레시피로 찹쌀가루를 묻혀서 굽거나 찌면 된다는데, 아직까지는 도전해 보지 않았다. 곧 만들게 될지도 모른다. 


사무실에 있으면 과자가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스트레스의 환경에 아삭아삭 매콤달콤한 자극적인 과자를 본능적으로 찾게 된다. 그래서 오랫동안 그냥 찾다가 본능에 굴복하고 최근에 감자스낵을 몇번 사먹었다. 구성표를 잘 보면 밀가가 안 들어간 과자는 감자가 90퍼센트 이상 들어가 있다. 이 역시 다이어트 목적의 밀가루 단식이라면 추천하지는 않겠지만, 새우깡 때문에 밀가루 단식을 포기할 지경이라면 추천한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얼마전에 사무실에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새우깡을 먹어서 정말 죽을 뻔 했다. 결국에는 한 개 입에 넣었다가 뱉었다. 여전히 겨우 이 새우깡으로 밀가루 단식을 중단할 수는 없다는 마음과 함께, 입에 들어갔을 때 기대만큼 아주 맛있지는 않고 그냥 새우깡 맛이라는 것에 안도하고는 뱉어낼 수 있었다. 나의 미덕은 역시 꾸준함이다.


그런데 자극적인 것은 좀 다른 문제이다. 과자의 자극적인 향이 그리울 때면 나는 비첸향을 먹는다. 2월10일 이후로 한 3번 정도 사서 먹었다. 비첸향을 먹고 나면 늘 몸이 붓는 것이 나트륨의 섭취를 과다하게 하는 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비첸향 정도는 허가해 줘야 적절한 스트레스 관리가 된다. 비첸향은 과자 뿐 아니라 너구리와 신라면, 비빔면의 대체제 역할까지도 하게 되니 어쩔 수 없이 종종 먹어줘야 한다.


그런데 사실 밀가루를 못 먹으면 가장 불편한 것은 간편식을 해야 할 때이다. 샌드위치를 먹거나 빵을 먹거나 시리얼을 먹거나 혹은 에너지바나 초콜렛바 등등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 많은데, 밀가루 단식 중이라면 이 모든 것을 다 못 먹고 오직 고구마나 계란, 바나나 등으로 대체해야 한다. 사실 늦은 오후 급한 허기에 편의점에 가서 매장을 둘러만 보고 돌아올 때의 기분은 좀 우울하다. 살 수 있는 것이라고는 바나나 뿐이다. 이 모든 맛있는 것들을 포기하고 돌아올 때면, 늘 편의점에 건의하고 싶어진다. 떡을 판매하라고! 간편식을 해야 하는 것 때문에 밀가루 단식을 포기할 판이니 떡을 판매하라고. 


그렇지만 결국 나는 견과류를 집어들고 돌아오게 된다. 나는 밀가루 단식 중인 사람이니까. 나의 미덕은 꾸준함이니까.


※ 쓰고 보니 밀가루 단식을 고민하는 사람에게 절망만 안겨 준 것 같다. 그래도 해 보면 할 만한데!


Posted by Sophie03
[Pause]2013. 6. 11. 00:01



얼마전 결혼한 고등학교친구가 부인과 함께 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 3개국 여행을 떠나겠다고 여행일정을 게시판에 올렸는데, 찬찬히 도시들을 살펴보고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스케쥴의 일부 수정을 이야기 하고는, 마지막으로 Bern에 들려가는 루트보다는 Zürich를 들려가는 루트가 더 좋다는 충고를 하다가, "그리고 나는 베른보다 취리히를 더 좋아해"하고 말하고는, 어느 순간 나의 마음은 이미 취리히에 다녀온 듯 하다.


내게 종종 서부유럽의 일정을 말하며 추천도시를 말해 달라고 하는데, 내가 답을 내놓는 기준은 단순하다. "내가 다시 가고 싶은 곳인가?"의 질문을 통과하여야 "여기도 좋고 저기도 좋아"하는 중립적인 대답이 아니라, "나는 그 도시가 좋아"라는 단호한 선택적 대답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내 경우에는 베른이 아니고 취리히이다. 베른이 매력이 없는 것이 아니지만, 둘 중 하나라면 당연히 취리히이다. 


블로그 초기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취리히는 걷는 낭만이 있는 도시이다. Zürich Hauptbahnhof에서 내려 길을 건너서 들어서면 전차가 다니는 Main Street로 접어들 수 있다. (사진 속의 거리 click물론 그 길을 건너면 대형마트가 있어서 나는 늘 그곳에 들려서 내가 머물던 St. Gallen에서는 구하기 힘든 잡화들을 구경하거나 구매하여서 늘 시간이 지체되기는 했다. 


취리히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했던 길을 강가의 거리이다. 이 거리를 걷는 평안함은 유럽의 어느 도시에서도 맛볼 수 없는 평안함이다. 취리히는 분명 대도시이고, 비싼 도시이고, 분주한 도시인데도, 어느 도시의 어느 강가에서도 만날 수 없는 평화로운 고요함이 존재하는 산책로를 가지고 있다. 




(두번째 사진의 길을 걷다 보면 작은 스위스기념품수공예점이 있었는데, 

창가에서 그 작품들을 늘 구경하곤 했었다. 2004.3월, IXUS400)

 



사실 이 사진만 봐서는 나무가 앙상해 보이지만, 실제로 겨울에, 그것도 눈이 오는 취리히의 강가는 이렇다. 


(2004.1월, IXUS400)




(강가 사진은 아니지만, 눈오는 취리히 골목골목. 2004.1월, IXUS400)



사진들을 보고 글을 쓰다 보니 또다시 나는 이미 취리히에 와 있는 듯 하다. 그 돌길을 걷는 낭만, 취리히중앙역의 공기, Merkur의 초콜렛향기, 그리고 샤갈의 스테인드글라스. 취리히에서 살며 St. Gallen으로 강의 오던 교수가 늘 "취리히는 너무 비싸. 작은 방 뿐인 집을 빌려서 사는데 집값이 얼마야. 취리히는 너무 비싸. (여기까지는 인상쓰며 이야기 하고는, 다시 어깨를 으쓱하며) 하지만 취리히는 너무 좋아. 취리히를 떠날 수는 없어"라고 말하곤 했는데, 매번 취리히를 방문할 때마다, 나도 취리히에 한번 더 반했다. 교수의 말처럼 돈이 많아지면 꼭 살아보고 싶은 도시가 되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도시이다. 그러니, 베른과 취리히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당연히 취리히를 추천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오늘 나는 샤갈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일부러 보지 않았다. 또 언젠가 취리히에 가고 싶을 때 그 사진을 보며 마음을 달래애 하니까. 

하지만 사진 두장은 덤으로! 오늘은 내 성격과 달리, 강하게 한 쪽을 선택한 날이니까!




(눈오는 취리히의 야경. 2004.1월 IXUS400)


(바로 그 스위스기념품수공예점! 2004.1월 IXUS400)





Posted by Sophie03
[밀가루끊기]2013. 3. 30. 01:50



개인적인 행동에 대해서는 대책없이 지르는 편인데다가, 다소 엉뚱한 편인 나는 설날당일 저녁에 이런 생각을 했다.


드디어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중에, 스위스의 각 도시들은 카니발을 했었다. 교과서에서 배웠던 카니발은 "재의 수요일"을 기점으로 시작되는 "사순절"동안의 금욕적인 삶 이전에, 즐겁게 먹고 마시는 축제이고, 그래서 카니발 시즌에는 매우 기름진 카니발용 과자/빵을 판매한다, 고 했었다. 운좋게도, 내가 스위스에 머무는 동안에 카니발 기간이 있었고, 우리들은 각 도시들의 카니발 날짜를 알게 되어, 우리도시 카니발뿐 아니라 옆동네 카니발에 기차타고 놀러도 갔었다. 그 조용하던 스위스 거리에 모든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 나와 살아있는 사람들의 도시를 밤새 만들었었다. 길거리에서 만난 한껏 분장한 스위스의 청년들이  겨울의 정령이 물러가고 봄의 정령이 오는 것을 반가워하기 위해 카니발을 하는 것이라고 하더라 만은 목적이 무엇이 중요한가, 모두가 살아 숨쉬는 도시가 되는 것이 중요하지! 관광지가 아닌 도시에 동양여자가 돌아다니면 '쟤는 뭔가' 하고 말도 걸고 카니발 설명도 해주고 함께 사진도 찍고, punctual한 스위스 사람들이 일탈하는 그런 날이였다.












(깨끗하게 조용한 St.Gallen이 단 하루 시끄러워지는 날! 

밤새도록 행진무리가 돌아다녀서 잠들지 않는 토요일이었다. 

그래도 역시 축제의 중심은 아이들! 

2004년 2월 @ St.Gallen by IXUS400)



그런 토요일밤을 지내고 일요일에 거리에 나가면, 마치 꿈을 꾼 듯 깔끔해지고, 다시 punctual한 스위스 사람들이 조용히 걸어다니고 있었다. 기름진 디저트류를 먹던 카니발 기간이 지나면 다시 담백한 일상의 맛으로 돌아온다던 "글로 배웠던" 그들의 문화를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설날아침과 점심식사를 거하게 하고 저녁을 굶다가, 나도 카니발 같은 폭풍흡입을 하였으니, 밀가루를 끊어야 겠다는 생각을 불현듯 하게 되었다. 곧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였고, 5주후에는 내 생일이 있었고, 7주를 꽉 채워보내면 8주째 일요일에는 부활절이니, 밀가루를 끊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이 든 순간부터 시행했다. 어차피 내가 안 먹으면 되니, 전략도 계획도 설득도 필요없이 시작하면 되었다. 카니발 다음날 아침의 거리처럼, 순식간에 그냥 그렇게 결정하였다. 


밀가루를 안 먹는다고 하면, 가장 많이 듣는 소리가, '왜 끊었는가'와 '무슨 효과가 있냐'는 질문들이었다. 사실 이 질문을 너무 자주 받아서, 인터넷에서 밀가루 단식의 효능에 대해서 검색해서 알게 되긴 했지만, 그래도 솔직하게 단식의 이유를 위와 같이 설명하면 대개 '뭐 그런 이상한 이유가 있냐'는 반응을 보인다. 왜냐하면 저런 식으로 끊으면 기대효과가 무엇이었는지가 불분명해지기 때문이다. 나의 개인적인 행동에 기대효과와 교훈을 반드시 가져야 하나? 하는 생각을 꽤 많이 한 요즘이었다. 


그래도 친절하게 기술하면, 2년여전부터 피부가 가끔 뒤집어진다. 문제는 원인을 모른다는 것인데, 스트레스받거나, 과로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환절기이거나, 장마철이거나 등등의 여러상황들에 여지없이 피부가 뒤집어진다. 약사친구는 내게 "환경을 바꾸지 않는 이상 완치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는 진단을 내려서 나를 좌절케했고, 피부과 약도 먹으면 좀 가라앉지만, 위의 상황들이 나타나면 여지없이 뒤집어진다. 그러다가 알러지성 비염이 심해서 밀가루를 끊었더니 요즘은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내게도 효과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을 한 것 뿐이다. 


그런데 사실 알러지성 비염 환자의 증언과 같은 효과는 나타나지 않는다. 여전히 피부는 조금씩은 가렵다. 하지만 상태가 많이 완화되었고, 그래서 나름 환절기를 무사하게 넘겼다. 생각지 못했던 효과는 손이 붓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주먹을 쥘 때 부은 느낌이 없다. 그리고 환절기마다 기승을 부리던 여드름도 거의 없이 지나가고 있다. 몸도 가벼워지고, 자연스레 건강한 한식식사를 열심히 하게 되고 과일도 챙겨먹게 된다. 그래서 행복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효과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먹으라고들 많이 이야기 한다. 그런데 사실 밀가루를 끊으니 심리적으로 자유로운 부분이 있다. 밀가루를 끊으면, 국수/라면/짜장면/과자/피자/햄버거/빵/파스타/전 등 흔히 생각하는 밀가루 음식을 못 먹을 뿐더러, 사실, 아이스크림"콘"/어묵/에너지바/튀김/딤섬/골뱅이"소면"/시리얼 등 의외의 것들도 못 먹게 된다. 수많은 밀가루에 그냥 얽메여 살았었다. 스스로 그것을 자각할 이유도 시간도 없이 그냥 먹고 싶을 때 먹는것이라고 생각햇지만, 실제로 밀가루에 삶이 지배당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처음 3주동안은 매일매일 먹고 싶은 밀가루 음식이 있었고, 때마침 윤후의 짜빠구리 먹방으로 평소 잘 안 먹는 라면도 너무나도 먹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먹고 싶더라도, 그냥 그건 내가 못 먹는 거다,라고 간단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밀가루에게서 심리적으로 독립을 확보한 느낌이다.


그래서 그냥 계속 밀가루를 안 먹는 음식으로 지정하고 살아볼까 한다. 한달에 두번정도 먹고 싶은 밀가루 음식을 섭취하더라도 말이다. 카니발 후의 그저 담백한 일상을 일년 내내 살아내듯이 나도 엉뚱하게 밀가루를 안 먹으면서 담백한 일상을 보내는 것, 깊은 생각없이 Lent Resolutions으로 시작된 밀가루 단식이 2013년 New Year's Resolutions으로 들어가는 순간이다. 









Posted by Sophie03
[Pause]2012. 11. 30. 22:00

길을 걷다 문득, 일을 하다 문득, 밥을 먹다 문득,

내가 두 발 딛고 있는 이 곳이 어디인가, 생각하다가,

문득 낯설고도 익숙한 곳에 있는 나를 바라보게 된다. 


"모든 여행은 아름답다. 

아름다워야 한다.

현실의 반댓말은 비현실이 아니라 여행이다"


이 구절을 읽고 120%라도 동의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현실에서 괴리되는 순간, 나는 초현실적인 상상의 세계에 빨려들어가지 않고 여행의 순간으로 건너가 있으니까.





심적으로 힘겨운 늦은 초겨울밤, 

서울역의 차가운 공기는, 어느새 나를 2004년 2월의 취리히에 존재하게 했다.

그날 자정에 취리히에서 피렌체로 가기 위해 야간열차를 탈 예정이었다.

빠듯하게 시간을 맞춰 생갈렌 나의 집에서 나갈 생각이었는데,

저녁을 먹다가 문득, 

보름달이 뜬 취리히의 밤거리를 걸어볼까? 하는 생각에 후다닥 뛰쳐나갔었다. 

아름다웠던 거리, 청량하게 콧끝시린 공기가 기억난다. 물론, 취리히 역의 차가운 온도와 이후의 피렌체도.




                                          (IXUS400, Feb 2004, Zurich) 상단 가운데의 하얀 구체가 보름달!

                   


그래서 나만의 언어로 여행을 정의하자면, 


"모든 여행은 pause이다. 

exit이 없는 현실에서 잠시잠깐 pause 버튼을 누르고 다른 시공간에 스스로를 데려다 놓는 것.


중요한 것은, 15초짜리 짧은 pause가 종종 일어난다는 것.

나의 두 발은 분명 현실에 존재하지만, 나의 눈은 이미 낯설고도 익숙한 곳의 나를 바라보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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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4 여행작가의 책무
 
모든 여행은 아름답다.
아름다워야 한다.
현실의 반댓말은 비현실이 아니라 여행이다.
여행작가는 그렇게 믿어야 하며,
여행작가의 가장 소중한 책무는
여행에 대한 로망을
최선을 다해 보여주는 것이다.
전쟁터 같은 현실에서 독자를
피신시키는 것이다.
세상은 더 이상 외롭지 않고
우리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지평선 너머에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방법을 찾는 것은
커다란 배낭을 지고 두 발로 뚜벅뚜벅 걸어
지편선을 넘어가는 것 밖에 없다는 것을,
사진과 글로 보여주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잘 지내나요 내인생

저자
최갑수 지음
출판사
나무수 | 2010-11-22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을 확실하게 아는 나이 서른과...
가격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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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ophie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