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2013. 12. 5. 00:46




우리동네 예체능

정보
KBS2 | 화 23시 10분 | 2013-04-09 ~
출연
강호동, 최강창민
소개
지쳐있는 대한민국 국민을 위한 건강충전 프로젝트!! 남녀노소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생활밀착형 버라이어티.




최근 한달간 내가 가장 열심히 챙겨보는('방송 후 3일이내에 보는'을 의미함) TV프로그램은 '우리동네 예체능'이다. 배드민턴이나 탁구 일 때는 그냥 그렇더니, 농구로 종목이 바뀌자 마자 열혈팬이 되어 밀린 방송까지 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방송을 보는 동안의 내 표정은 흐뭇함 그 자체인데, 최근에 드라마도 안 보고 있는 내가 왜 이런 걸까 생각해보니 의외로 답이 쉬웠다.


여름에도 글을 쓰려고 키워드로 뽑아놨다가 게으름에 밀려 키워드만 적혀 있는 바로 그... "함께"라는 단어가 그 답이었다. 명사로 이야기하자면 "공동체" 때문이었다. 


여름에는 그랬다. 더워도 혹은 더우니까 등산해서 산공기를 마시며 벤치에 앉아 굳이 등산해서 만든 땀을 식히는 나는 운동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해불가의 대상이기는 하지만(여름에도 산에 가면 시원한 바람이 부는데 나는 그 바람을 사랑한다), 그런 나도 더울 때는 움직이기만 해도 땀이 물 흐르듯 나는 체질이라 실내스튜디오에서 하는 요가를 힘들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름에 요가 intensive course를 들었다. 8월의 일요일 오전 9~12시 3시간동안, 총 4회에 걸친 요가 집중 과정에 등록한 것은 이번 기회를  step-up의 기회로 삼으라는 선생님들의 충고 때문이었다. 그런데 내가 그 시간동안 얻은 것은, 그 과정을 하는 동안 (남들이 3~6개월이면 한다는) forearm balance를 20개월만에 드디어 하게 된 점도 있지만, 더 크게 얻은 것은 함께 하는 사람들의 기운이었다. 일요일 오전에 기어코 그 스튜디오로 찾아와 아무런 말도 없이 같은 동작을 하며 같은 땀을 흘리는 사람들의 열기가 무척 뜨거웠지만 별로 덥지 않았다. 아주 오랜만에 공동체가 주는 위로의 시간을 느꼈었다.


그래서 거슬러 올라가, 등산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의 공동체와 그 위로의 시간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Taize에 대해서도 생각했었다. Taize 공동체를 검색해 보면 아래와 같은 결과가 나온다.



가톨릭과 개신교를 아우르는 국제 공동체. 1940년 로제 수사가 동부 프랑스의 작은 마을 떼제에 정착하면서 시작했다. 떼제의 형제들은 평생 영적 물적 재산을 공유하며 독신 생활과 단순 소박한 삶에 투신한다. 하루 세 차례 드리는 공동 기도가 떼제 생활의 중심이며, 매주 이곳에서 열리는 청년 모임에는 수천 명이 참가해 기도와 성찰, 나눔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떼제 공동체 [Taizé Community, la communauté de Taizé] (미디어 종사자를 위한 천주교 용어 자료집, 2011.11.10,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내가 Taize를 처음 접한 것은 가톨릭청년성서모임 연수 때였는데, 이후에도 어떤 순간마다 혼자 속으로 흥얼거리곤 했었다. 하지만 Taize의 정수는 공동기도를 할 때 나타나는데 특별히 내가 좋아하는 부분은 허밍 부분이다. 서로 다른 목소리를 가진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하모니를 내는 원천은 사실 공동체의 힘이다. 합창단처럼 미리 만나 연습하지도 않고 다만 일반인들이 같은 노래를 부르는 데도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든다는 점은 현대 사회에서 쉽게 접하지 못하는 공동체의 시간이며, 그렇기에 프랑스의 테제 공동체로 전세계인들이 모여드는 것일 것이다. 


사실 나는 프랑스의 테제 공동체에 간 적은 없지만, 스위스 생갈렌에 있던 시절에 테제 기도에 참석한 적은 있다. 나는 사실 일부 테제 기도는 영어로도 알고 있지만 많은 테제 기도는 한국어로 알고 있으므로 그곳에서도 영어 혹은 한국어로 테제 기도에 참여했었다. 언어는 장벽이 되지 않았다. 나는 생명부지의 사람들과 하나였고, 서로의 기운을 함께 나눠가졌다. 





(IXUS400, 2004년 1월, 스위스 생갈렌)



'우리동네 예체능' 농구편에서 내가 보는 것은 그런 공동체인 것이다. 탁구나 배드민턴은 같은 팀이지만 함께 뛰지는 않았는데, 농구는 당연히 한 팀을 이루고 함께 땀흘리고 함께 성장해 가는 그 순간을 지켜보는 것이니, 당연히 빠져들 수 밖에 없다. 언어로, 슬로건으로 함께 해야 한다고 당위성을 설명하는 것에는 거부 반응을 일으키지만, 운동화가 바닥에 닿아 삑삑 소리를 내는 농구장에는 자꾸만 빠져들게 된다. 그러니 비록 내가 몸으로 함께 하지는 않지만, 오랜만에 공동체의 체온이 필요하신 분들은 한번은 '우리동네 예체능'을 보실 것을 추천해 드리고 싶다. 바깥은 차지만 마음 만은 실내 코트를 뛰고 있는 그들과 함께 기뻐하며 뜨거워져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Posted by Sophie03
[Pause]2013. 6. 11. 00:01



얼마전 결혼한 고등학교친구가 부인과 함께 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 3개국 여행을 떠나겠다고 여행일정을 게시판에 올렸는데, 찬찬히 도시들을 살펴보고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스케쥴의 일부 수정을 이야기 하고는, 마지막으로 Bern에 들려가는 루트보다는 Zürich를 들려가는 루트가 더 좋다는 충고를 하다가, "그리고 나는 베른보다 취리히를 더 좋아해"하고 말하고는, 어느 순간 나의 마음은 이미 취리히에 다녀온 듯 하다.


내게 종종 서부유럽의 일정을 말하며 추천도시를 말해 달라고 하는데, 내가 답을 내놓는 기준은 단순하다. "내가 다시 가고 싶은 곳인가?"의 질문을 통과하여야 "여기도 좋고 저기도 좋아"하는 중립적인 대답이 아니라, "나는 그 도시가 좋아"라는 단호한 선택적 대답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내 경우에는 베른이 아니고 취리히이다. 베른이 매력이 없는 것이 아니지만, 둘 중 하나라면 당연히 취리히이다. 


블로그 초기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취리히는 걷는 낭만이 있는 도시이다. Zürich Hauptbahnhof에서 내려 길을 건너서 들어서면 전차가 다니는 Main Street로 접어들 수 있다. (사진 속의 거리 click물론 그 길을 건너면 대형마트가 있어서 나는 늘 그곳에 들려서 내가 머물던 St. Gallen에서는 구하기 힘든 잡화들을 구경하거나 구매하여서 늘 시간이 지체되기는 했다. 


취리히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했던 길을 강가의 거리이다. 이 거리를 걷는 평안함은 유럽의 어느 도시에서도 맛볼 수 없는 평안함이다. 취리히는 분명 대도시이고, 비싼 도시이고, 분주한 도시인데도, 어느 도시의 어느 강가에서도 만날 수 없는 평화로운 고요함이 존재하는 산책로를 가지고 있다. 




(두번째 사진의 길을 걷다 보면 작은 스위스기념품수공예점이 있었는데, 

창가에서 그 작품들을 늘 구경하곤 했었다. 2004.3월, IXUS400)

 



사실 이 사진만 봐서는 나무가 앙상해 보이지만, 실제로 겨울에, 그것도 눈이 오는 취리히의 강가는 이렇다. 


(2004.1월, IXUS400)




(강가 사진은 아니지만, 눈오는 취리히 골목골목. 2004.1월, IXUS400)



사진들을 보고 글을 쓰다 보니 또다시 나는 이미 취리히에 와 있는 듯 하다. 그 돌길을 걷는 낭만, 취리히중앙역의 공기, Merkur의 초콜렛향기, 그리고 샤갈의 스테인드글라스. 취리히에서 살며 St. Gallen으로 강의 오던 교수가 늘 "취리히는 너무 비싸. 작은 방 뿐인 집을 빌려서 사는데 집값이 얼마야. 취리히는 너무 비싸. (여기까지는 인상쓰며 이야기 하고는, 다시 어깨를 으쓱하며) 하지만 취리히는 너무 좋아. 취리히를 떠날 수는 없어"라고 말하곤 했는데, 매번 취리히를 방문할 때마다, 나도 취리히에 한번 더 반했다. 교수의 말처럼 돈이 많아지면 꼭 살아보고 싶은 도시가 되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도시이다. 그러니, 베른과 취리히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당연히 취리히를 추천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오늘 나는 샤갈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일부러 보지 않았다. 또 언젠가 취리히에 가고 싶을 때 그 사진을 보며 마음을 달래애 하니까. 

하지만 사진 두장은 덤으로! 오늘은 내 성격과 달리, 강하게 한 쪽을 선택한 날이니까!




(눈오는 취리히의 야경. 2004.1월 IXUS400)


(바로 그 스위스기념품수공예점! 2004.1월 IXUS400)





Posted by Sophie03
[밀가루끊기]2013. 3. 30. 01:50



개인적인 행동에 대해서는 대책없이 지르는 편인데다가, 다소 엉뚱한 편인 나는 설날당일 저녁에 이런 생각을 했다.


드디어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중에, 스위스의 각 도시들은 카니발을 했었다. 교과서에서 배웠던 카니발은 "재의 수요일"을 기점으로 시작되는 "사순절"동안의 금욕적인 삶 이전에, 즐겁게 먹고 마시는 축제이고, 그래서 카니발 시즌에는 매우 기름진 카니발용 과자/빵을 판매한다, 고 했었다. 운좋게도, 내가 스위스에 머무는 동안에 카니발 기간이 있었고, 우리들은 각 도시들의 카니발 날짜를 알게 되어, 우리도시 카니발뿐 아니라 옆동네 카니발에 기차타고 놀러도 갔었다. 그 조용하던 스위스 거리에 모든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 나와 살아있는 사람들의 도시를 밤새 만들었었다. 길거리에서 만난 한껏 분장한 스위스의 청년들이  겨울의 정령이 물러가고 봄의 정령이 오는 것을 반가워하기 위해 카니발을 하는 것이라고 하더라 만은 목적이 무엇이 중요한가, 모두가 살아 숨쉬는 도시가 되는 것이 중요하지! 관광지가 아닌 도시에 동양여자가 돌아다니면 '쟤는 뭔가' 하고 말도 걸고 카니발 설명도 해주고 함께 사진도 찍고, punctual한 스위스 사람들이 일탈하는 그런 날이였다.












(깨끗하게 조용한 St.Gallen이 단 하루 시끄러워지는 날! 

밤새도록 행진무리가 돌아다녀서 잠들지 않는 토요일이었다. 

그래도 역시 축제의 중심은 아이들! 

2004년 2월 @ St.Gallen by IXUS400)



그런 토요일밤을 지내고 일요일에 거리에 나가면, 마치 꿈을 꾼 듯 깔끔해지고, 다시 punctual한 스위스 사람들이 조용히 걸어다니고 있었다. 기름진 디저트류를 먹던 카니발 기간이 지나면 다시 담백한 일상의 맛으로 돌아온다던 "글로 배웠던" 그들의 문화를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설날아침과 점심식사를 거하게 하고 저녁을 굶다가, 나도 카니발 같은 폭풍흡입을 하였으니, 밀가루를 끊어야 겠다는 생각을 불현듯 하게 되었다. 곧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였고, 5주후에는 내 생일이 있었고, 7주를 꽉 채워보내면 8주째 일요일에는 부활절이니, 밀가루를 끊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이 든 순간부터 시행했다. 어차피 내가 안 먹으면 되니, 전략도 계획도 설득도 필요없이 시작하면 되었다. 카니발 다음날 아침의 거리처럼, 순식간에 그냥 그렇게 결정하였다. 


밀가루를 안 먹는다고 하면, 가장 많이 듣는 소리가, '왜 끊었는가'와 '무슨 효과가 있냐'는 질문들이었다. 사실 이 질문을 너무 자주 받아서, 인터넷에서 밀가루 단식의 효능에 대해서 검색해서 알게 되긴 했지만, 그래도 솔직하게 단식의 이유를 위와 같이 설명하면 대개 '뭐 그런 이상한 이유가 있냐'는 반응을 보인다. 왜냐하면 저런 식으로 끊으면 기대효과가 무엇이었는지가 불분명해지기 때문이다. 나의 개인적인 행동에 기대효과와 교훈을 반드시 가져야 하나? 하는 생각을 꽤 많이 한 요즘이었다. 


그래도 친절하게 기술하면, 2년여전부터 피부가 가끔 뒤집어진다. 문제는 원인을 모른다는 것인데, 스트레스받거나, 과로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환절기이거나, 장마철이거나 등등의 여러상황들에 여지없이 피부가 뒤집어진다. 약사친구는 내게 "환경을 바꾸지 않는 이상 완치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는 진단을 내려서 나를 좌절케했고, 피부과 약도 먹으면 좀 가라앉지만, 위의 상황들이 나타나면 여지없이 뒤집어진다. 그러다가 알러지성 비염이 심해서 밀가루를 끊었더니 요즘은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내게도 효과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을 한 것 뿐이다. 


그런데 사실 알러지성 비염 환자의 증언과 같은 효과는 나타나지 않는다. 여전히 피부는 조금씩은 가렵다. 하지만 상태가 많이 완화되었고, 그래서 나름 환절기를 무사하게 넘겼다. 생각지 못했던 효과는 손이 붓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주먹을 쥘 때 부은 느낌이 없다. 그리고 환절기마다 기승을 부리던 여드름도 거의 없이 지나가고 있다. 몸도 가벼워지고, 자연스레 건강한 한식식사를 열심히 하게 되고 과일도 챙겨먹게 된다. 그래서 행복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효과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먹으라고들 많이 이야기 한다. 그런데 사실 밀가루를 끊으니 심리적으로 자유로운 부분이 있다. 밀가루를 끊으면, 국수/라면/짜장면/과자/피자/햄버거/빵/파스타/전 등 흔히 생각하는 밀가루 음식을 못 먹을 뿐더러, 사실, 아이스크림"콘"/어묵/에너지바/튀김/딤섬/골뱅이"소면"/시리얼 등 의외의 것들도 못 먹게 된다. 수많은 밀가루에 그냥 얽메여 살았었다. 스스로 그것을 자각할 이유도 시간도 없이 그냥 먹고 싶을 때 먹는것이라고 생각햇지만, 실제로 밀가루에 삶이 지배당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처음 3주동안은 매일매일 먹고 싶은 밀가루 음식이 있었고, 때마침 윤후의 짜빠구리 먹방으로 평소 잘 안 먹는 라면도 너무나도 먹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먹고 싶더라도, 그냥 그건 내가 못 먹는 거다,라고 간단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밀가루에게서 심리적으로 독립을 확보한 느낌이다.


그래서 그냥 계속 밀가루를 안 먹는 음식으로 지정하고 살아볼까 한다. 한달에 두번정도 먹고 싶은 밀가루 음식을 섭취하더라도 말이다. 카니발 후의 그저 담백한 일상을 일년 내내 살아내듯이 나도 엉뚱하게 밀가루를 안 먹으면서 담백한 일상을 보내는 것, 깊은 생각없이 Lent Resolutions으로 시작된 밀가루 단식이 2013년 New Year's Resolutions으로 들어가는 순간이다. 









Posted by Sophie03
[Story]2013. 1. 3. 00:05


최근에 받은 3가지 질문에 관한 대답.


첫번째 질문 : Bibliothek은 무슨 뜻인가?


Bibliothek은 독일어로 도서관이라는 뜻이다. 원래 도서관/서점을 좋아하지만, 유난히 Bibliothek이란 단어를 좋아하게 된 때는 스위스 생갈렌에 있던 시절이다. 


생갈렌에는 큰 성당과 수도원이 있다. 사실 St. Gallen은 이 도시를 세운 수도사의 이름이다. 생갈렌 대성당은 유네스코 지정유산으로, 바로크 양식의 성당이 참 아름다웠다. 내가 살던 집과 걸어서 10분 거리로, 내가 주말마다 미사보던 성당이다.



성당 옆에 연결된 수도원.


수도원으로 가면 이런 덧신을 신고 들어가야 하는 곳이 나온다.


바로, 수도원의 도서관. 역시 유네스코 지정유산이다.

(모든 사진은 IXUS400으로 촬영, 2004년 3월)


내부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 되어 별도의 사진은 없지만, 이 도서관은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나옴직한 아름다운 필사본들이 많았고, 도서관 건물 자체도 참 아름다웠다.


아름답고 가치있는 고서들이 꽂혀 있는 Bibliothek을 본 이래로 내게 Bibliothek이란 단어는 아주 아름다운 독일어 단어가 되었다.




두번째 질문 : 무엇을 이야기하는 블로그인가?


삶에 대해, 책을 통해 이야기하는, 인문대출신 문학소녀적 감성의, 내 맘대로 이야기. 그래서 Sophie의 도서관이 블로그 이름.

우선 Sophie라는 필명의 나는 오랫동안 책을 좋아했고, 활자를 읽는 일을 사랑한다. 문학 전공인 것이 어찌보면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나, 대학원에서 마케팅을 전공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인문대 특유의 비약적이고 동시에 느린 박자의 문장을 쓰는 것이 어려워진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그래서 내 맘대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하고 싶어졌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니, 책을 통해 이야기 하고, 인본주의를 사랑하니, 당연히 삶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 



세번째 질문 : 페이스북의 시대에 왜 블로그인가?


15년 정도 독후감을 노트에 적었다가, 빳빳한 메모장에 적어 끼어두다가, 비밀게시판에 적어두다가, 몇년전부터 미니홈피 게시판에 적어두었었다. 반면에, 모바일업계에서 일하는 나는 그 사이에 LinkedIn, Tumblr, Instagram, Pinterest, Path를 분석했다. 트위터, 페이스북은 물론 기본이다. 

그래서 오히려 이들에 비해 아날로그적인 게시판을 가지고 싶었다. 나만 혼자 카페의 방명록에 글을 적어두고 올 수도, 타이프라이터를 사용할수도 없으니, 지금 시대에 아날로그적인 것은 블로그였다. 




이 모든 이야기를 넘어서, 사실, 내가 쓴 글, 언제나 후에 다시 읽으면 과거의 내가 쓴 글이 되어, 낯선 문장, 어린 사상이 내게 재미나 감성, 혹은 새로운 힘을 주곤 하니, 쉽게 읽기 위해서 그냥 내맘대로 블로그 오픈하고 혼자 좋아하고 있는 중. 





Posted by Sophie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