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야기]2014. 10. 20. 23:02

Just Do it!

내가 무척 싫어하는 말이다, 누구나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세상에서 당신이 이룬 것이 없다는 것은 당신이 아무 것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세상의 이분법을 담고 있다고 생각되어서 싫어하는 말이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알고 보면 나는 "jump in"하는 사람이라는 것이고, 결국 두 표현은 일맥상통한다. 사실은 봄에, milestone을 찾는 것이 어떻게 쉬운 일이냐는 질문을 직장후배에게 듣고는 그 글을 쓰다가,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서 흐지부지 되었었다.


아니, milestone을 찾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나는 사실 요즘 긴 글을 써보는 중인데, 그 내용 중에 이 이야기가 들어간다. 우리 세대에게 milestone이란 무엇인가, 당신은 당신의 milestone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물어보면 하나같이, 박사학위를 받았거나, 고시 같은 시험에 합격하거나, 직장입사가 결정되는 순간을 이야기 한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삼사십대에게는 10여년전에 일어난 milestone 외에 최근의 milestone이란 없었다.


그래서 지난번 글에서 "인생에서 가장 milestone적인 목표는 무엇이었으며, 달성하는 과정/결과에서 무슨 생각을 하였습니까?"하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질문에는 오류가 있었다. 어쩌면 그 후배는 그 오류를 지적했는지도 모른다. milestone의 사전적 의미는 1. 이정표 2. [역사.인생 등에서] 획기적 사건, 중대 시점 3. [연극] 100회째 상연이라고 한다. milestone은 달성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도달하고 보면 보이게 되는, 지나고 보면 알게 되는 중대시점이다. 누군가가 미리 목표를 정해 놓고, 이것만 달성하면 내 인생은 완성된다고 말하는 것은 삶의 목표이지, milestone일 수는 없다. 그래, 그냥 말장난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시합격을 하고 난다고 해서 당신의 인생이 바뀌지는 않는다. 나는 고시합격을 한 사람이 아니니까, 모른다고 할지 모르지만, 주변에 고시합격한 사람들이 좀 많고, 그들을 보면 그들의 인생이 바뀌지 않는다. 물론, 그들의 불확실성을 지닌 고생의 순간은 끝이 나고, 공부를 종료하며, 삶의 새로운 국면이 열리게 된다. 그러나 고시합격이 반드시 milestone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그럴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삶의 새로운 목표가 없으면 불안하고, 삶이 잘못 굴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에게는 milestone이라는 것이 끝까지 없을 수 있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삶이 변화하는 순간, 그들의 스스로의 삶에 변화의 빛을 주는 순간이 그들에게는 milestone이 의미가 없어지며 새로운 milestone을 찾아야 하기 때문에, milestone에 대한 생각조차 못한 채 흘려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고시합격 안 한 나에게로 돌아와서, 나는 고시를 보지도 않았고 박사학위도 없으므로 그런 것들을 꼽을 수도 없지만, 회사입사확정과 이직 또한 milestone이라고 꼽지 않는다. 사실 스스로 milestone이라고 꼽는 것들이, 남들의 그것과 다르기 때문에, 그냥 “인생에서의 획기적 사건” 정도로 두고 지금 기준으로 세 가지만 적어볼까 한다. 역시 어이 없는 사건들일 것이라는 귀뜸을 미리 해 둔다.


일단 대학교에 입학하며 한 졸업할 때까지 연간 100권 즉 400권 정도는 대출해서 읽고 졸업하자는 결심이다. 왜 그런 결심을 했느냐고 물어 보는 분도 계시는데, 사실 나는 나의 대학교가 탐탁치 않았다. 하지만 고3 열심히 살았고 후회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수능 열흘 전에 쓰러졌기 때문에 재수를 할 체력도 없었다. 어쨌든, 나는 그 대학교에 들어갔고 그래서 혼자만의 entertainment가 필요했다, 그 대학교를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4년만에 서둘러 졸업했고, 졸업할 때 확인하니 400권이 넘는 책을 대출한 것이 맞았다. 그 때의 그 시간이, 그 인문학과 사회학책들이 현재의 나를 만들었다. 물론, 책과 관련되서는, 독일인의 사랑을 읽고 독일어를 공부하게 되었다던가 하는 찰나의 순간들이 있지만, 어쨌든 나도 목표를 정하고 달성한 것들이 있으니, 대학교 시절에 도서관 대출한 책을 400권이상 책을 읽은 순간을 milestone으로 적어둔다.


두번째는 스위스에 살았던 3개월의 시절이다. 목표라고 해야 할지 모르지만, 대학원에 입학하며 마음 먹은 것 중에 하나가 교환학생을 간다는 것이었다. 처음에 생각했던 곳은 독일이었지만 결국은 스위스로 가게 되었고, 그 결정이 결론적으로는 내게 좋은 전환점이 되게 된다. 자연이 가지고 있는 위로와 치유, 스위스 사람들이 삶을 살고 즐기는 자세를 체감하게 된 시간이었다. 그리고 또한, 여행을 대하는 나의 자세가 완전히 바뀌게 된 시점이었다. 그 때의 나는 다시는 그 도시에 오지 않을 것 같은 여행자였다. 여행할 도시는 언제나 많고, 시간과 재화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최대한 빡빡한 일정으로 보고 다녔던 배낭여행 때와는 정반대의 여행자가 되었다. 배낭여행 이후로 5년만에 루체른에 가서, 천천히 걸어다니며 그 도시를 즐겼었다. 길을 가다가 너무 맛난 샌드위치를 먹는 사람에게 어디서 산 건지 물어봐서 그 집에 가서 먹었던 샌드위치의 맛은 아직도 기억한다. 5년 전의 루체른과 당시의 루체른은 완전히 다른 도시였다. 남겨진 사진으로만 기억되는 배낭여행 시절의 루체른과는 달리, 스위스 교환학생 시절에 방문한 루체른은 따뜻한 샌드위치의 향기와 커피향을 가지고 있는, 햇살이 찰랑거리던 물위에서 반짝거리던 광경이 참 아름다운 곳으로 지금의 나는 여전히 기억한다. 이후에 두번째로 방문한 파리에서도, 피렌체에서도 그랬다. 도시들의 인상은 유유자적할 때야 비로소 그 민낯을 드러냈었다. 이후로 나의 여행은 바뀌었다. 서두르지 않는다, 나는 다시 그 도시에 갈 것이기 때문에, 늘 모자란 듯 돌아다니고, 벤치에 앉아, 카페에 앉아, 어디 성당이나 박물관에 앉아 도시를 즐긴다. 재미난 것은, 이후로도 나에게 자꾸 여행의 기회가 생겨, 현재까지 파리를 세 번, 바르셀로나를 세 번, 로마를 세 번, 피렌체를 세 번 다녀오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더욱 서두르지 않게 되었다. 내게 예비되어 있는 시간들은 나의 계획보다 더 환하고 즐거운 것이라는 것을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설사 그렇지 않은 순간에라도 그렇게 믿는 순간 삶이 변화된다.


마지막으로는 눈이 안 보였던 순간이다. 나의 두번째 직장은 힘들었다. 너무 잦은 야근과 주말 근무로 체력이 늘 방전된 상태였다. 그러다가 어느날 한시간 정도 눈이 보이지 않았다. 눈 앞에 간유리가 있는 듯 저 너머의 색상만 구분이 되었고, 그 영역은 점점 확대되었었다. 그러다가 그 상황은 종결되었지만, 내 마음 속에서는 종결되지 않았다. “나의 눈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인가. 나를 잃고 혹은 시력을 잃고, 내게 남겨지는 것은 무엇인가.” 그래서 그 때서야 비로소, 스위스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삶의 자세를 되새겨볼 수 있었다. 내게 남겨지는 것은 온전히 나여야 한다. work and life balance가 중요하다지만 공허한 언어뿐이었다가, 어느 순간 절실한 바람이 되었다. 그래서 다시 방법을 찾게 되었었다.


과거의 이야기를 접고, 현재로 돌아와서 보면, milestone이라는 것이 그 시간을 지나고 나서야 그것이 milestone임을 알게 된다는 것이 개인적인 의견이다. 처음부터 이것은 나의 milestone이 될 것이야!라고 생각하고 시작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것이 나의 삶의 획기적 순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한 적은 없다. 그냥 불현듯 마음을 먹고, 그냥 실행하다보면, 그것이 어느 날 milestone이 되어 있기도 하고, 삶의 디딤돌이 되기도 변화의 마중물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그냥 뛰어든다. 해볼까 생각이 들면 밀가루를 끊기도, 요가를 배우기도 한다. 완성의 순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시작의 순간과 그 과정이 더 중요하다. 지나고 보면 해냈다는 결과보다는 그 과정에서의 생각이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순간이 더 많으니까 말이다.


오랜 숙제 같았던 milestone을 찾는 것이 어떻게 쉽냐는 후배의 질문에 대한 글이 마무리 되어 간다. 어려운 일이다. 어려운 일인 이유는, milestone이 뭔가 거창해야 한다는 우리 모두의 관념 때문이다.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어마어마한 사건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소한 질문이, 의미없이 시작된 질문이, 소소한 결심이기도 한데, 그런 것들은 왠지 milestone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기에는 격이 떨어져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면 어떤가. 나의 꿈이 나의 것이듯 milestone은 나의 것인데! 그러니 그냥 그 순간에 마음이 동하면 jump in! 그러다 보면 어떤 사건이 나의 milestone이 되어 있음을 뒤돌아보면 알게 될지도!

Posted by Sophie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