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2013. 6. 3. 00:29



얼마전에 새로운 정기후원을 시작하였다. "기쁨나눔재단"으로 아시아/아프리카의 어린이들을 지원하는 단체이다. 예전글인 "기부하는 사람이 되십시오"에서 진덕규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여성을 위해, 장애인을 위해, 정치를 위해 기부하는 것도 실천하려고 하지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어린이/청소년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내가 꾸준히 나누고 싶은 대상은 "가난하여 꿈꾸는 것조차 박탈당한 어린이", "가난하여 꿈꾸는 것조차 생각할 수 없었던 여성"이다. 나는 운좋게 굶주리지 않아도 되는 어린 시절을 보냈고, 덕분에 공부도 하고 일도 하고 많은 것을 누리면서 살아왔다. 나의 혜택받은 삶은 "나"로 인한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그들의 전쟁은, 그들의 가난은, 그들의 고통은 "그들"로 인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기부는 은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받은 것을 당연히 나누어야 하는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사실 기부를 결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마음 속으로 기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동안에도 나의 월급과 지출의 규모가 떠오르며, 더 많이 벌게 되면 그 때 기부해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지금의 관심이다. 삶이 무너지는 순간을 연기해 달라고, 그 때가 되면 도와주겠노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몇년전에 시작한 정기후원단체의 이야기는 두고두고 머릿속을 떠나질 않는다. 한 신부님이 늦은 밤 사제관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게 된다. 긴가민가하여 나가보니 피흘리는 결혼이주여성이 있다. 한국인남편에게 칼에 찔려 피흘리며 사제관 문을 두드린 것이었다. 그래서 학대받는 여성과 그들의 자녀를 돌보기 위해 하나의 단체가 설립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단체의 후원을 모집하던 신부님께서 하신 마지막 말씀 또한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부담갖지 마시고 5천원씩만 매월 해 주십사 하는 것이였다. 우리 단체를 후원하기 위해 기존에 후원중인 단체에 후원을 중단하면, 그 단체에 부담이 되니, 욕심 내지 마시고 5천원씩만 계속 해 주시면 좋겠다는 이야기였다. 

그러고보면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부터 시작하는 작은 관심이다. 5천원이야, 내게 정말로 커피 한 잔의 금액이지만, 그러므로 그 단체에도 너무나 미미한 금액이지만, 5천원의 후원금이 증가한다는 의미와 한명의 후원자가 늘어난다는 의미는 미미하지 않을 것이다. 다문화모자 가정을 돌보기 위해 시작한 이 단체는 산재처리를 받지 못하는 이주노동자들 지원까지 확대되었다. 그런데 이 단체의 4월 후원금은 27.8백만원이었다. 5천원씩 후원한다고 가정하면 5천6백명 가량의 후원자가 이 단체를 후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주여성/이주노동자/다문화자녀를 지원하는 사람이 5천명이 넘는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위로이며 희망이 아닐까. 대면하여 그들의 손을 잡아주지는 않지만, 그들의 존재를 기억하는 이가 적어도 5천명은 된다는 것은 미미하지만 따뜻한 관심이 아닐까.  

나는 사실 저 "5천원" 이야기를 들은 이후부터 마음이 편해졌다. 기존에 후원하던 O만원의 후원들은 그대로 뒀지만, 새로이 시작하는 후원은 거의 늘 5천원씩이다. 다음에도 후원하고 싶어지면 바로 5천원으로 후원을 시작할 수 있으니까, 욕심이 나더라도 그저 5천원씩이다. 사실 기쁜나눔재단의 기부를 시작할 때 전기를 사용할 수 없으므로 난민캠프의 아이들이 해가 저문 이후의 암흑으로 인해 밤에 공부를 할 수 없어서 태양광 랜턴을 제공하고 싶다던 봉사자의 이야기에 랜턴도 공급하고 싶었고, 도서관을 건립하고 싶다던 봉사자의 이야기에 도서관도 지어주고 싶었지만,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고 해야만 하는 일은 매월 그들에게 후원하는 일, 봉사자들의 꿈에도, 난민캠프의 아이들의 꿈에도, 작은 후원을 계속하는 일이었다. 

Posted by Sophie03
[Think+ing]2012. 12. 22. 22:14



지인 중에 NGO에서 일하고, 나와 기부에 대한 의견이 많이 통하는 분이 계시다.

이 글은 그 분과 기부에 대한 의견을 나눴던 내용을 기반으로 하며, 그 분이 올리신 글에 대한 트랙백으로 작성을 시작한다.




몇년동안 마케팅에서 스토리텔링은 아주 중요해 왔다. 브랜드에도 상품에도 서비스에도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ATL*가 주요하던 시대에서 각종 미디어의 발달, 특히 personal media의 발전 이후부터 더 많이 주목받고 있는 BTL*의 시대로 오면서,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한 감성 마케팅이 중요해졌다. 



어디서나 스토리텔링을 이야기 하는데, 스토리텔링을 잘 활용하고 있는 분야 중 하나가 기부단체이다.

전통적으로 KBS 사랑의 리퀘스트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연민을 느껴야만 하는 스토리를 내보내며 ARS로 기부를 받아왔다. MBC 휴먼다큐 사랑 이나 KBS 현장르포 동행 같은 프로그램을 끝나면 시청자 게시판에 출연자의 계좌번호가 올라온다. 방송은 content creation을 해야 하고, 여전히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다는 메세지를 mass media를 통해 전달하니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기부단체들의 동정심을 자극하는 스토리텔링을 거부한다.



사실, 올해 회사에서 직원이 후원하면 회사에서 그만큼의 후원을 추가로 해 주는 후원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취지는 공감하나, 나는 그 후원프로그램을 하여야 하나?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했었다. 

그 방식이, 후원을 결정하면, 지구지도가 뜬다. 특정 지역을 누르면, 어린아이의 사진이 뜬다. 사진을 누르면 아이의 프로필이 나온다. 그 프로필을 보고 한 아이를 결정하면 후원이 체결된다. 

이 방식이 맘에 들지 않아, 후원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래도 한 명이라도 더 후원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으로 나도 후원을 결정했다. 그러면서 분명히 표시했었다. 나는 사진도 필요하지 않고, 편지도 필요하지 않다고. 

그러나 내가 곧 분노하였다. 나에게 사진도 왔고 편지도 왔으니까. 

나는 이런 후원방식이 늘, 5~60년대의 '미군트럭-한국어린아이들-깁미어초콜렛'의 문화를 반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왜 기부자가 피후원인을 선택할 수 있는가? 그런 선택권을 왜 제공하는가? 어째서 그 사진들은 모두 동정심을 유발하도록 찍는가? 왜 본인의 청춘을 현장에 바치고 있는 기부단체의 봉사자들이 그런 사진을 찍어야 하는가? 왜 그 아이들은 후원자에게 감사의 편지를 써야 하고, 봉사자들은 그 편지를 번역해야 하는가? 그 편지를 쓰는 시간에 아이들은 어떤 감정을 가지겠는가? 그 편지를 번역할 시간에 봉사자들은 한 집 더 방문하여 한 사람의 손을 더 잡아 줄 수 있지 않겠는가? 



기부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기부를 할 때 "(스스로 적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많은 혜택을 받았기에 가능했던 본인의 삶의 것들을 내어놓는 것은 당연하다"라는 마음이었으면 한다. "저 사람이 불쌍하다"는 동정심으로 기부하는 것은 반대한다. 또한 봉사자들의 귀중한 시간이 그렇게 버려지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시간을 내어 봉사하지 않는 것은 나의 이기심이 나의 시간이 소중하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기심을 뛰어넘어 하고 있는 봉사자들에게 그런 사진을 찍게 하고 그런 편지를 번역해서 우편을 발송하게 하는 "마케팅"을 하게 하는 것은 잔인하다. 



마케팅은 어디에나 필요하다. 그리고 동정심의 자극의 방법과 피후원인의 선택의 방법을 사용한 기부단체들의 스토리텔링은 성공사례일 터이다. 그러나 한 걸음 떨어져 생각해 보면, 기부 그 자체가 마케팅의 대상이여야 하지, 피후원인들이 마케팅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인격체이다. 피후원인이라고 해서 대상화를 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사람은 늘 적응한다. 그래서 마케팅도 함께 변화한다. 우리가 어느 순간 더 자극적인 세상에 노출되어 있는 이유이다. 

사람들은 곧 이런 동정심을 유발하는 기부단체의 결연프로그램이 식상해질 것이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선택권을 가진 후원자들은 우월감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면 기부단체들은 더 자극적인 것을 찾을 것이다. 그 전에 변화해야 한다. 



결국은 모두가 사람이니까. 





* ATL(Above the line) : 매체를 통한 광고를 의미함. BTL과 쉽게 구분하기 위해 매체를 mass media로 이해하면 편리하고, 매체 분류에 따라 TV, 라디오, 신문, 잡지를 4대 매체라 부르며, 옥외광고 / 포스터 등도 ATL 매체로 포함시키는 경우가 있음

BTL(Below the line) : 전통적인 DBM(Direct call, mail, e-mail 등을 생각하면 편리), 판촉행사(쿠폰/1+1/시식행사 등), PR기사, 스폰서십 등이 가장 전형적이며, 최근에는 브랜드App., Digital Signage도 포함된다고 볼 수 있음

상기 분류는 특정 자료를 참고하지 않고, 본인의 기억과 경험에 의존한 정리이므로, 그 정확성을 보증할 수 없습니다!!!!!!

Posted by Sophie03
[Quotation]2012. 11. 26. 23:54


나는 나의 학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렇기 때문에 다행스럽게도 기대하지 못한 순간에 상상을 뛰어넘는 좋은 은사님들을 만나, 인문학에, 사회과학에 관심을 가지고 지금껏 살아오고 있다. 삶에의 몇몇 키워드를 주셨고, 또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하게 하는 잊지 못할 은사님들 중 한 분이 정치외교학과 진덕규 선생님이시다. 


선생님께서는 참으로 잊지 못할 말씀들을 해주셨는데 노파심이 아니라, 진정 학생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해주신 말씀들이 참 많다. 그래서, 아 그 때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라고 떠오르는 것들이 종종 있고 지금은 이미 그 가르침이 이미 삶의 가르침이 되었다.


그 중에 하나가 "기부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이다.

기부에 관한 이야기는 요즘 많이 이야기가 되지만, 선생님이 이어 말씀하신 내용은 이렇다.


"기부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여러분은 많은 것을 받았고, 또 많은 것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회에 나가 돈을 벌게 되거든 반드시 기부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기부를 할 때는 꼭 세 가지를 위해서 하십시오. 여성을 위해서, 장애인을 위해서, 그리고 정치를 위해서 하십시오. (여성을 위해서/장애를 위해서 기부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신 후에) 왜 정치를 위해 기부를 해야 하냐하면, 여러분들이 정치에 기부를 하면 나쁜 돈을 받지 않아 정치가 더 나아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부를 하기 위해,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아지면 정치가 더 나아질 수 있습니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시는데다, 이미 이 이야기를 들은지 적어도 13년은 지났으므로 표현이 정확치 않아 좀 아쉽지만, 어쨌든 선생님의 이 말씀은 마음에 남아 종종 생각하게 한다. 


물론 숙제도 하고 있다. 어릴 적부터 장애인 단체에 기부하는 것이 가풍이라, 그것은 하고 있었는데, 그것 외에, 한국으로 시집와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이주여성들을 위해 기부를 하고 있다. 문제는 "정치"이다. 


어느 정치 단체에 기부를 해야 하는가는 내게 늘 너무 어려운 숙제였다. 매년 소득공제를 마감하게 되어 기부금 영수증을 받아들 때면 올해도 정치에 아무런 기부를 하지 못 하고 살고 있음에, 선생님께 죄스러운 마음을 갖게 된다. 기부하는 것이 얼마나 큰 관심을 쏟게 하는지 선생님의 혜안에 놀라면서 또 뚫어지게 정치판을 바라보게 된다.


사실 나는 기부하고 싶은 정치인을 만나지 못해서, 가난하여 꿈꾸지 못하는 빈민국 청소년을 위해 기부하고 있고, 가난하여 꿈꾸지 못하는 한국의 학생들에게 기부하고 있다. 언젠가 이들 중에 정치인이 나와 꿈꾸는 사회를 만들어주기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지만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좋은 정치인이라는 마음이 들게 되면 그가 계속 좋은 정치인일 수 있도록 기부를 할 생각이다. 존경하고 잊지 못할 은사님께서 하신 말씀이니 그래야 한다.


요즘 같은 선거철이 오면 더더군다나 선생님을 떠올릴 수 밖에 없다...





# 종종 선생님의 이름을 검색하여 선생님의 강연록을 읽곤 하는데, 여러 말씀들, 선생님의 마지막 강연록은 언제 읽어도 힘이 되고, 후배들이 더는 그 분의 좋은 가르침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슬퍼지기도 한다. 선생님의 강의를 들을 수 있었음에 두고두고 감사한다. 



Posted by Sophie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