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brary]2013. 3. 28. 00:15


책을 꽤 좋아하는 편이고 늘 독후감도 써두는 편인데, 내 인생에서 책을 가장 못 읽은 기간이 두번째 직장 다닐 때였다. 내가 스스로의 영혼과 육체를 모두 돌보지 못하고 지낸 시간이니,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시간이 가능하면 최선을 다해 책을 읽었는데, 그 시절에는 읽은 리스트만 남아 있고 독후감은 없다. 그래도 반복적으로 읽은 책이 있는데 그 중 한 권이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이다. 내가 그 책을 어떻게 읽게 되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그냥 78페이지짜리 짧은 소설을 내가 자주 읽었다는 기록만 남아 있고, 어떤 감상도 안 남아 있다.


그래서 내가 그 책을 반복적으로 읽은 이유가 궁금해서 2012년에 다시 반복적으로 읽었다. 다시 읽었을 때 "현재"를 사는 그녀가 너무 부러웠나 싶었다. 가정이 있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남자를 만나는 일 외에는 다른 현재도 미래도 없었던 한 여자의 이야기가 단순한 단어로 구성된 꾸밈없는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한 문장에서 오래 머뭇거릴 필요도 없이, 그냥 읽어지는 소설이지만, 책을 덮었다고 해서 그 이야기가 끝이 나버리는 그런 작품이 아니다.



약속 시간을 알려올 그 사람의 전화말고 다른 미래란 내게 없었다. 내가 없을 때 그의 전화가 올까 봐 그가 알고 있는 일정에 한해서, 일에 관계된 어쩔 수 없는 용건을 제외하고는 가능한 한 외출을 하지 않았다. 또 행여 전화벨 소리를 못 들을까 진공청소기나 헤어드라이어를 사용하는 일조차 피했다. 때때로 전화벨 소리는, 수화기를 천천히 집어들고 "여보세요?"라고 말할 때까지의 짧은 순간 동안 내가 가졌던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그 사람이 건 전화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나면, 실망이 너무나 큰 나머지 전화선 너머에 있는 상대방을 증오하게 될 정도였다. 그러나 A의 목소리를 확인할 때는 거의 질투심마저 일었던, 고통스럽고 긴 기다림이 너무도 순식간에 사라져버려, 마치 제정신을 잃었다가 느닷없이 정상으로 돌아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또한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의 태연함과 그것이 내 삶에서 차지하고 있는 터무니없는 비중에 크게 놀랐다. (p12)



이런 인생을 살 수 있는 그녀의 행운을 나는 시샘하였는지도 모른다. 태연하게 인생의 모든 정신을 집중해서 사용하는 그녀의 인생을 부러워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녀는 이렇게 말할 만큼 멋지다.



한시도 그 사람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와의 차이 때문에 너무나 불안해졌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아니다. 그 사람도 분명히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 생각만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깜짝 놀랄 것이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내 태도가 옳은 건지 그 사람이 옳은 건지 굳이 가려낼 필요는 없다. 그저 그 사람보다 내가 더 운이 좋다고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p36)



감추지 않고, 타인도 본인도 속이지 않고, 철저히 "현재"를 사는 저 "단순한 열정"을 보고 나는 처음으로 프랑스 문학의 매력을 느꼈었다. 학부시절에 독문학/영문학을 전공하고, 국문학 수업을 계속 들었기 때문에 내게 불문학은 고려의 대상이 된 적이 없었다. 모르는 언어와 낯선 문화로 인해 프랑스 문학에 대한 나의 심리적 거리는 굉장했었다. 그런데 『단순한 열정』으로 인해 심리적 장벽이 허물어졌고, 이후 두 권의 짧은 작품으로 인해 나는 프랑스 문학/정신에 팬이 되고 말았다.



그 두 권의 작품은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와 앙드레 고르의 『D에게 보낸 편지』이다. 사실 두 작품은 소설이 아니다. 『분노하라』는 2012년 봄에 읽었다. 이 때는 MBC 파업으로 인해 '무한도전'이 결방하던 시기였었다. '무한도전'의 결방을 "기다릴 수 있다"는 반응을 보며 언젠가의 파리 여행 때 파리 지하철 파업에 의연하게 길고 긴 줄을 기다려서 택시타던 파리 시민들이 생각났었다. 분노해야 하는 일에 분노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문화, 분노해야 하는 일에 분노하는 것에 대해서 불평하지 않은 것이 자연스러운 문화, 나는 그 파리 지하철 파업의 여파로 가을밤 비를 맞고는 감기에 걸렸었지만, 그들의 문화를 부러워했었다. 



맞다. 분노의 이유가 오늘날에는 예전보다 덜 확실해 보일 수도 있다. 아니면 세상이 너무 복잡해진 것일 수도 있다. 누가 명령하며, 누가 결정하는가? 우리를 지배하는 모든 흐름들을 샅샅이 구분한다는 것이 늘 쉬운 일만은 아니다. 우리의 상대는 이제 하나의 작은 특권 계층만이 아니다. 어느 작은 특권 계층의 행동쯤이야 우리가 명확히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상대는 광활한 세계이며, 그 세계가 상호의존적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절감하고 있다. 우리는 그 어느 시대보다도 더욱더 강력한 상호연결성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세상에도 참아낼 수 없는 일들은 있다. 그것이 무슨 일인지 알려면, 제대로 들여다 보고 제대로 찾아야 한다. 나는 젊은이들에게 말한다. "제발 좀 찾아보시오. 그러면 찾아질 것이오."라고. 최악의 태도는 무관심이다.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어? 내 앞가림이나 잘 할 수 밖에..." 이런 식으로 말하는 태도다. 이렇게 행동하면 당신들은 인간을 이루는 기본 요소 하나를 잃어버리게 된다. 분노할 수 있는 힘, 그리고 그 결과인 '참여'의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는 것이다. (pp21-22)



레지스탕스이자 인권을 위한 외교관이었던 에셀이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했던 20페이지에 불과한 연설문과 저자와의 대화로 이루어진 짧은 작품이다. 이 짧은 글로, 에셀은 정당하게 분노하고 나와 주변과 지구에 무관심하지 않은 삶을 살도록 전세계 시민들을 대상으로 촉구한다. "감동"이라는 표현이 참으로 적절하지 않지만, 노장의 "분노"의 권고는 다르게 표현하자면, 위로였다. 레지스탕스, 그들이 분노하였기에, 그들이 자유를 꿈꾸었기에, 그들이 관심을 가졌기에 범세계적으로 "인권"이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복잡해진 세상 속에 지금의 우리에게 그 사명이 넘어왔다.



레지스탕스의 기본 동기는 분노였다. 레지스탕스 운동의 백전노장이며 ‘자유 프랑스’의 투쟁 동력이었던 우리는 젊은 세대들에게 호소한다. 레지스탕스의 유산과 그 이상(理想)들을 부디 되살려달라고, 전파하라고. 그대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제 총대를 넘겨받으라. 분노하라!”고. 정치계·경제계·지성계의 책임자들과 사회 구성원 전체는 맡은 바 사명을 나 몰라라 해서도 안 되며, 우리 사회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국제 금융시장의 독재에 휘둘려서도 안 된다. (p15)



스테판 에셀의 근본도 사랑이었고, 앙드레 고르의 근본도 사랑이었다. 『D에게 보낸 편지』는 앙드레 고르가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아내에 대한 고마움, 연인에 대한 사랑, 한 개인에 대한 존경이, 전혀 끈적이지 않고, 담백하다. 전혀 배부르지 않고, 너무 달지도 않으며, 다른 무엇인가를 더 먹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에클레어를 향기가 참으로 좋은 커피와 먹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여든 세살의 철학자가 여든 두살의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묻어나는 애정과 존경, 그리고 실존주의적이며 생태주의적인 부부의 인생에서 느껴지는 향기 덕분일 것이다. 



생태주의란 삶의 양식이 되고 매일의 실천이면서 끊임없이 또 다른 문명을 요구하는 것이더군요. 어느새 나는, 평생 무엇을 이루었으며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보는 나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내 인생을 직접 산 게 아니고 멀리서 관찰해온 것 같았습니다. 자신의 한쪽 면만 발달시켰고 인간으로서 무척 빈곤한 존재인 것 같았지요. 당신은 늘 나보다 풍부한 사람입니다. 언제나 삶을 정면돌파했지요. 반면에 나는 우리 진짜 인생이 시작되려면 멀었다는 듯 언제나 다음 일로 넘어가기 바쁜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기 위해 포기해야만 하는 비본질적인 것은 과연 무엇인지 자문해보았습니다. (중략) 아무리 생각해도 내게 본질적인 단 하나의 일은, 당신과 함께 있는 것이라고 썼지요. 당신이 본질이니 그 본질이 없으면 나머지는, 당신이 있기에 중요해 보였던 것들마저도, 모두 의미와 중요성을 잃어버립니다. (pp86-87)



사실 고르는 아내가 회복이 불가능하게 되자, 모든 활동을 접고, 20여년 아내를 간병하다가, 아내와 동반자살했다. 이 서한은 자살 일년전 아내에게 바치는 연서였다. 범인류에 대한 사랑이 아내를 향해 결집되어진 그 20년간의 마무리인 셈이다.



나는 더 이상-조르주 바타유의 표현을 빌리자면- '실존을 나중으로 미루'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처럼 나는 내 앞에 있는 당신에게 온 주의를 기울입니다. 그리고 그걸 당신이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 당신은 내게 당신의 삶 전부와 당신의 전부를 주었습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 동안 나도 당신에게 내 전부를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은 이제 막 여든 두 살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살아온 지 쉰여덟 해가 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pp89)



사실 『단순한 열정』, 『분노하라』, 『D에게 보낸 편지』는 내가 책추천을 요청받을 때 쉽게 꼽는 불어권 짧은 세권의 추천도서인데, 세 권에는 공통점들이 있다. 


그 첫번째는 100페이지가 안 되게 짧지만, 휘리릭 책장을 넘길 수 없는 무게감이 있으며, 세 작품 모두 인간중심적인, 실존주의적인 사상이 기저에 깔려 있고, 문장이 살아 있으며, 불어의 특징이겠지만, 옆에서 낭독해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들의 인간(자신이든 타인이든)에 대한 애정에 언제나 감동하게 되어 읽기를 마치자 마자 첫페이지를 다시 펴 들게 한다는 점이다. 읽기 시작하면 연속해서 두 번은 읽게 되는 마성의 작품들이다. 


두번째는, 작가들이 비슷한 연대에 살았다는 점이다. 스테판 에셀은 독일에서 1917년에, 앙드레 고르는 오스트리아에서 1923년에, 아니 에르노는 1936년에 프랑스에서 출생하였고, 스테판 에셀과 앙드레 고르는 유태인으로 젊은 시절부터 프랑스에서 살아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이 작가들의 공통점은 무엇보다도 현재를 살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다. 전쟁과 혁명으로 힘겨웠을텐데, 어쩌면 그렇기에 더구나 현재를 살아냈다는 것이, 어쩌면 내게는 가장 강력한 메세지이다.


읽고 있노라면, 프랑스가 이야기 하는 똘레랑스, 저항, 분노, 개별의 존재의 소중함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프랑스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현재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되는 그런 존재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2013년 2월 27일 스테판 에셀의 타계는 상실의 소식이었다. 







단순한 열정

저자
아니 에르노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01-06-2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아카데미 프랑세즈 대상을 수상한 저자의 장편소설. 연하의 유부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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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라

저자
스테판 에셀 지음
출판사
돌베개 | 2011-06-07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전 세계를 감전시킨 93세 레지스탕스 노투사의 외침 출간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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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에게 보낸 편지

저자
앙드레 고르 지음
출판사
학고재 | 2007-11-27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D에게 보낸 편지』는 앙드레 고르가 아내 도린에게 바친 아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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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ophie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