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2014. 12. 31. 07:00

뒤늦게 미생을 보고 있습니다. 웹툰을 열심히 본 이후에, 드라마 미생 1국의 요르단 추격신은 마음에 들지 않았고 첫 인턴 출근의 고단함으로 인해 더 보지 못 하다가, 연말을 틈타 천천히 드라마 미생을 보고 있습니다. 웹툰을 맛깔지게 잘 살리면서도, 동시에 캐릭터들에 또다른 생명력이 들어가 있어서 감탄하면서 보고 있습니다.

그러다 5국을 좀전에 다 보았습니다. 마음이 저리더군요. 남자들의 세상에 여자가 알아서 생존해야 하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어렵다"라는 단어로도 설명할 수 없는 고단한 어려움이 있습니다. 남자들의 세상에서 남자들도 어려운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에게는 "여자가"라는 수식어는 붙지 않으니까요. 남자 과장이 아닌 과장으로 회사를 다니면 되지만, 여자들은 언제나 여자 과장이라는 더 긴 수식어를 갖고 살아야 합니다.

저도 *대리 말고도, *군 이라는 수식어를 별도로 가지고 살았었습니다. 남자들의 세상에서, 전략파트 15명 남짓한 세상에서 유일한 여자로 살아남아야 했던 것이 독하게 일하는 *군으로 만들었을 겁니다. 가장 늦게 퇴근하는 일도 많았고, 가장 먼저 출근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살면서 가장 빨리 출근해본 시간은 아마 새벽 네시반쯤 이었을 겁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습니다. 비흡연자로써 흡연자들의 네트워크에 살아남기 위해 매일 같이 흡연타임에 나갔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야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왜 살아남아야만 했느냐고.

대답은 알고 있습니다. 외로웠습니다. 온통 남자뿐인 세상에서 살아남아, 여자들도 있는 세상에, 후배들이 들어오기를 바랐습니다. 그 후배가 여자이거나 남자이거나 상관없습니다. 그들의 세상이 되면, 그 때는 과장과 여자 과장의 세상이 아닌, 그냥 과장들의 세상이기를 바랐습니다.

그렇게 직장생활을 한지 벌써 꽉 채워 12년입니다. 월급을 12년동안 받는 동안, 소수의 여자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맞습니다. 여자 사원이 여자 대리가 되고, 여자 매니저가 되었습니다. 아직도 여자 딱지는 못 떼내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직장생활을 하는 내내 계속 여자 라는 수식어를 달고는 살게 되겠지요. 

드라마 미생 5국의 선차장도 아마 그럴 것입니다. 선 여자대리였을 거고, 선 여자과장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안영이씨만은 안 과장이 되고, 안 차장이 될 때, 그냥 안 차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안 여자 차장이 아니라, 안 차장으로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인생를 살면서 어마어마한 소명의식을 갖고 사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저 살아남을 테니, 그것만으로도, 안영이씨가 안 차장으로 살아남아주기를 소망합니다.   

Posted by Sophie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