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2015. 6. 23. 21:01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우연한 한 마디 때문인 경우가 종종 있다. 몇년동안 나는 안정된 삶이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은 요동치지만 나만은 흔들리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그 다짐을 위해 열심히 살았다. 주중 2회 요가를 하고 주말 2회 등산을 하고 일주일에 책을 한권씩 읽고 한달 생활비와 적금비도 물론 정해져있었다. 일년에 한두번씩 해외여행을 가고, 몇몇 지인들과의 한정된 만남을 즐겼다. 누구보다 알찬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왠일인지 삶이 즐겁지가 않았다.
그러다가 요가를 가던 길에 요가선생님을 만났다. 그녀가 몇년을 운영해오던 요가스튜디오를 넘기고 서울을 떠난 직후였다.

그녀 : 요가 가는 길?
나 : 네. 요가 가는 길이예요.
그녀 : 잘 지내고 있지?
나 : 네. 잘은 지내는데 재밌는 일이 없어요.
그녀 : 삶이 재밌어야지.

맞다. 나는 잊고 있었다. 삶 자체가 즐거워야 한다는 것을. 재미난 일을 찾는 일은 지속 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나는 지인들의 그런 탐구를 지적하면서도 나 또한 그 무미건조한 삶을 그저 work and life balance라 생각하며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나와 이런 이야기를 나눈 요가선생님은 그무렵 문득 남편과 함께 공기 좋은 시골로 내려가 강아지를 키우기 시작했었다. 정성을 쏟아 운영하던 요가스튜디오를 정리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었겠는가. 그러고 보면 중간중간 힌트가 있었다. 삶을 정비하는 것을 고민 중이라는 이야기가 그냥 이야기가 아닌, 실행 전 구상단계였음을 나는 그녀가 요가스튜디오를 떠난 이후에야 깨달았다. 그리고 지금 또다른 힐링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자연과 맞닿는 곳에서 그녀만의 방식으로. 

그녀의 실행력과 그녀와의 대화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었었다. 남들 보기엔 나쁘지 않은 삶의 균형이 사실은 그저 무미건조하게 삶을 운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그래서 사실 나는 더는 따지지도 않고, 친오빠의 추천을 받아, 오빠의 오랜 요가 선생님의 요가 전문가 과정을 수강하게 되었다. 그래, 그래서, 이 블로그에 글을 쓸 수가 없었다. 나는 흡수할 때는 분출하지 못 한다. 흡수가 끝나 소화가 다 된 다음에야, 비로소 정리된 상태로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다. 아는 것이 아니라 이해해야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서 나는 여름과 가을 내내 생각하고 생각했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나는 어떤 상처를 가졌는지,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나는 어떤 에너지를 가졌는지, 요가 철학과 명상을 진행하면서 알게 되었다. 어쩌면 오랫동안 할 수 없었던 물구나무 서기를 벽 없이 할 수 있게 된 것은 나의 두려움을 알아차렸기 때문이기도 했다. 

 삶 자체가 즐거워야 한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솔직해야 함을, 스스로의 약점을 인정해야 함을,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모순적 상황을 직시하여 결국은 스스로 벗어나야 함을, 그래서 work and life balance가 무미건조한 일상이 아닌, 스스로 원하는 일과 삶이여야 하는 것임을, 나는 긴 터널을 빠져 나오고야 알게 되었다. 

여행이라는 짧은 일탈이 아닌, 삶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 순간이 오자, 내 삶의 변화가 시작하였다. 일년쯤 전에 학동사거리 어딘가에서 나눈 "재밌는 일이 아니라, 삶이 즐거워야지", 이 문장 하나가 가지고 온 내 삶의 변화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Posted by Sophie03
[Story]2014. 7. 31. 23:55
벌써 7월 31일. 오랜만에 블로그에 글을 쓴다. 세월호 이후 여전히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나는 여전히 나만의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지만, 시간은 스스로를 재촉하여 여름의 한중간 7월말에 도달했다. 마음이 여전히 영화관에 가는 것도, 즐겁게 웃는 것도 꺼려서 지인들에게 연락하는 것조차 깜빡깜빡 하지만, 세상 또한 자기만의 시간을 가고 있다.
그래, 나는 나의 시간을 살고 있는가. 시간에 끌려 가고 있는가, 내가 시간을 끌고 가고 있는가, 라는 해묵은 표현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나는 나만의 시간을 살아내고 있는가, 하는 의문을 버릴 수는 없다.


# 인터넷 어디선가 보고 저장해둬서 출처가 명확치 않습니다. 문제가 되면 삭제하겠습니다 #

이 사진, "YESTERDAY YOU SAID TOMORROW" 인터넷 어디선가 봤는데, 우측 하단에 JUST DO IT과 나이키 로고가 보인다. 블로그에도 적어두었지만, 저 "JUST DO IT"으로 인해 우리는 남들은 다 제대로 사는데 나만 제대로 못 사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을 가지게 되어 어느 순간부터 피하는 슬로건이지만, 어쨌든 상단 중앙의 "어제 너는 내일이라고 말했지"라는 저 문구만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나는 사실 내일로 미루는 일이 없이, 하루하루 밀가루도 끊고, 요가도 대체로 정해진 대로 가고, 운동도 영양소도 균형감 있게 살려고 한다. 정말로 just do it이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도 그렇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는 사실 좀 의문이다.
회사에서 하는 멘토링, 나보다 열살 연하의 신입사원이 물었다. "십년 후에 어떤 모습일지" 당연히 모른다. 십년전의 나는 지금의 나를 상상하지 못했다. 십년전의 나는 대학원의 마지막 방학을 보내고 있었는데, 전년도 가을학기가 끝나자마자 교환학생을 가서 겨울을 보내고, 봄학기가 시작한 후에야 한국으로 돌아와서 진도 따라가기 바빴던 숨가쁜 일년을 보낸 후라, 그야말로 체력저하로 잉여의 쉼의 시간을 가졌었다. 그 때의 나는 나의 두번째 직장을 찾아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과 논문을 작성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십년후에 내가 세번째 직장을 다니고, 판교로 출퇴근하며 살고 있을지에 대해 그 어떤 추측도 해본적이 없다.
그래도 지금의 나는 그 시간의 나와, 논문을 작성하던 나와, 두번째 직장을 다니던 나의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이루어진 복합체이다. 그러니 십년후의 나도 지금의 나와 또 일년후의 나와 그 시간들을 살아낸 내가 만들어낸 복합체일 따름이다. 무엇이 되겠다는 꿈조차 꾸지 않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나에게 십년후의 모습을 추정하라고 한다면, 여전히 밀가루를 끊고, 요가를 하고, 여행을 가 있는 나를 상상한다. 그래 맞다. 나는 무엇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다. 아니, 나는 무엇을 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다이어트를 하겠다고도 하지 않고, 운동을 시작할 예정이라고도 하지 않고, 그냥 하는 사람이다.
그러고 보면 장기적인 관점에서도 그렇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지만 또 그런 사람도 될 수도 없다. 그저 현재의 시간을 충실히 사는 사람이니까.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를 만들었고, 현재의 내가 미래의 나를 만든다는 사실을 믿고, 그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지는 않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무엇이 되는 순간을 milestone으로 정하지 않고, 밀가루 끊기를 시작한 날을, 요가를 시작한 날을, 독후감을 쓰는 그 과정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그러고 보면, 오늘 우연히 만난 반가운 지인과의 짧은 대화.
나 : 삶에 엔터테인먼트가 필요해요.
지인 : 삶이 엔터테인먼트가 되어야지.
그래, 나의 표현보다는 지인의 표현이 더 수긍이 된다. 삶이, 현재가, 지금이 내 시간이 되고, 엔터테인먼트가 되어야 한다. 과거에 즐거웠다거나, 미래가 즐거울 것이라던가 말고, 바로 지금을 그렇게 살아내야 한다. 사실 그것은 내가 성수대교 사건 이후로 다짐했던 것이다. 여전히 트라우마에 갇혀 있는 나이지만, 십년후의 내가 세상에 존재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그러나, 현재를 살아야 한다... 20년동안 내가 그러기 위해 노력해온 것처럼.


Posted by Sophie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