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brary]2013. 1. 11. 23:25



모든 독일 어린이들이 암송해야 하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독일 시 한 편이 여기 있다;


산봉우리마다엔
침묵이,
나무 꼭대기마다에서도
너는 느끼지 못한다.
여린 숨결 하나;
어린 새들은 숲속에서 침묵하고 있다.
참으렴, 곧
너도 휴식을 취할 테니.

이 시의 시상은 너무나 단순하다 : 숲이 잠들고, 너도 곧 휴식을 취하게 될 것이라는 것. 시의 천분은 어떤 놀라운 관념으로 우리를 현혹시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존재의 한 순간을 잊을 수 없는 것이 되게 하고 견딜 수 없는 향수에 젖게 하는 데 있다.
번안시로는 모든 의미가 상실되어 버린다. 오직 독어 원어로 읽을 때만이 이 시의 아름다움을 알게 될 것이다 : 

Ueber allen Gipfeln
Ist Ruh,
In allen Wipfeln
Spuerest du
Kaum einen Hauch ;
Die Voegelein Schweigen in Walde.
Warte nur, balde
Ruhest du auch.

이 시의 시구들은 음절 수가 모두 서로 다르고, 장단격, 단장격, 장단단격이 불규칙적이며, 여섯번째 시구는 다른 구절들에 비해 이상하리만치 길다 : 그리고 시가 두 개의 4행절로 이루어져 있지만, 문법에 잘 맞는 그 첫번째 4행절은 대칭적이게도 다섯번째 시구에서 종결되면서, 이 유일하고 독특한 시 아닌 다른 어디에서도 존재하지 않는, 완벽하게 평범한 만큼이나 기막힌 하나의 멜로디를 창출하고 있다.  


(pp39~40)



불멸

저자
밀란쿤데라 지음
출판사
청년사 | 2000-04-0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바램 별로 없고 낙서,훼손 없이 깨끗 / 445쪽 /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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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는 워낙 방대해서 그 작품을 감히 다 읽을 생각도 못 하지만,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괴테의 시. 그리고 그 괴테의 시가 실린 밀란 쿤데라의 좋아하는 작품이다. 역시 괴테는 괴테이고, 밀란 쿤데라는 밀란 쿤데라다. 천재는 천재를 알아보는 것일까. 괴테의 시해설릉 자신의 소설 속에 녹여넣을 생각을 하다니!

이 시가 가진 평화로운 고요가 독일어로 읽으면 더 잘 느껴지는데, 혹시 독일어를 읽을 줄 안다면 원문을 소리내어 읽어볼 것을 추천하고 싶다. 낭독을 하는 순간 느껴지는 고요함이 있으니까. 이 작품은 괴테가 죽기 얼마전에 쓴 시라고 한다.


바로 그 고요함의 근원은 내가 좋아하는 단어 Ruhe일 것이다. Ruhe는 고요, 침묵이라는 뜻인데, 괴테가 이 시에서 사용하여, "죽음과 같은 고요"라는 서정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작품 중 하나인 『좀머씨 이야기』의 좀머씨가 읖조리는 그 말, "날 좀 그만 내버려두란 말이오."의 독일어 표현에도 Ruhe가 들어간다. 종종 나도 소곤거리는 바로 그 표현,  "Lass mich in Ruhe." 깔대기 법칙처럼 내가 좋아하는 밀란 쿤데라도 파트리크 쥐스킨트도 다 괴테를 가리키고 있다. 괴테는 괴테니까 당연한 것일지도.




좀머 씨 이야기

저자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출판사
열린책들 | 1998-01-0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1992년출간 / 122쪽 l B6소설 독일소설 책소개 원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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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불금이지만, 감기 걸린 내게는 평화로운 고요가 필요하므로 나만의 Ruhe 이야기를 적어둔다. 참, 위의 시에는 제목은 없다, 이럴 경우 첫 행을 따서 Ueber allen Gipfeln(산봉우리마다)라고 해야 하지만, 나는 그냥 쉽게 Ruhe 시라고 생각하곤 한다.


Posted by Sophie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