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brary]2013. 1. 8. 00:12


최근에 읽은 책의 제목이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이다. 제목에 이끌려 읽기 시작했는데, 그 구절은 헤르만 헤세의 시의 구절이었다. 



헤르만 헤세의 시 중에 「혼자」라는 것이 있다. (『내 젊은 날의 슬픈 비망록』, 홍석연 옮김, 문지사, 2002) 거기 이렇게 적혀 있다.

세상에는 
크고 작은 길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도착지는 모두가 같다. 

말을 타고 갈 수도 있고, 차로 갈 수도 있고 
둘이서 아니면 셋이서 갈 수도 있다. 
그러나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저자
정진홍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2-11-15 출간
카테고리
자기계발
책소개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 [정진홍의 사람공부] 저자 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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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해서 읽어도 되는 소설이나 에세이와 달리 시는 한 작품을 한 호흡에 읽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신조이기 때문에 궁금한 마음에 원문을 찾아 보았다. (책속에 등장한 시집은 절판이었다...)




Allein

Hermann Hesse


Es fuehren ueber die Erde
Strassen und Wege viel,
Aber alle haben
Dasselbe Ziel.

Du kannst reiten und fahren
Zu zwein und zu drein,
Den letzten Schritt
Musst du gehen allein.

Drum ist kein Wissen
Noch Koennen so gut,
Als dass man alles Schwere
Alleine tut.





혼자

헤르만 헤세


세상에는
크고 작은 길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도착지는 모두가 같다.

말을 타고 갈 수도 있고, 차로 갈 수도 있고
둘이서 아니면 셋이서 갈 수도 있다.
그러나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모든 어려운 것을
혼자서 해야 하는 것 밖에는
잘할 수 있는 어떤 지혜도
능력도 없다.




요즘은 독어를 많이 잊어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마지막 연은 내가 띄엄띄엄 번역하였다. 독일어 원문을 읽고 나자 참 헤르만 헤세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의 일치처럼 연말에 나는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오랜만에 다시 읽으면서 참 헤르만 헤세는 헤르만 헤세 답다는 생각을 했었다.)


나는 수학을 좋아한다. 어렸을 적부터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한다, 그래서 이제는 풀기가 어려워진 수학 문제에 도전하기도 하고, 눈물이 날 때까지 스도쿠를 풀며 즐거워하기도 한다. 수학 덕분에 행복한 때는 이 문제에는 해설과 정답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끝까지 해답지를 열어보지 않고, 고독할 정도로 집중하여 문제를 풀고 정답을 맞춰보고, 해설을 읽는 시간이다. 나는 보통 수학 문제를 풀 때 1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버릇이 있는데, 해설에 따라 무엇을 중심으로 생각하느냐가 달라지는 것도 재미있었다. (1은 그냥 1이 아니라, 1000-999일수도, 10000/10000일수도 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는 유레카의 심정을 이해했었다)


어떤 문제는 삼일을 고민하여 풀었었다. 수학문제를 풀지 않은 순간에도 나는 그 문제를 생각했었다. 어떤 오기로 해설을 참고하기가 싫었다. 여러번 꼬아져 있는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뻔하게도 그 문제는 단순한 핵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알아내서 그 문제를 풀었다. 당연히 그 희열은 나의 것이었다. 


이렇듯 수학의 묘미는 대부분 정답이 있고, 언젠가는 풀릴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도 된다는 데에 있다. 반면에 인생의 묘미는 대체로 정답이 없다는 데에 있다. 즉 어떤 상황에서 흘낏 볼 수 있는 해설집이란 것이 없다. 또 하나 수학 문제는 곁에 수학 천재가 있다면, 나와 다른 방식으로라도 반드시 풀어서 해답을 알려주지만, 인생 문제는 인생 천재도 없을 뿐더러, 풀어서 해답을 알려줄 수도 없다. 그것은 내 문제이니까. 그런 상황이 꽤 싫으면서도 또 인생을 즐기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냥 해답집이 없는 수학문제집을 받아들고, 내가 해설집을 만들고 정답을 푸는 과정이라 여기면 흥미진진해진다. 때로 내가 판단오류로 풀이 과정이 엉망진창이 되고, 거기다가 옆사람이 선 하나 그으며 참견해 문제가 미궁으로 빠지기도 하고, 때로, 길고긴 출제지가 찢어져서 불완전한 문제를 받아들고는 창의력을 발휘해 그 문제를 풀어야 하는 그런 문제집.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할 수는 있지만, 그 의견이 정답이 될 수는 없는 철저히 개인화된 문제집.


둘이서 아니면 셋이서 갈 수도 있다. 그러나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모든 어려운 것을 혼자서 해야 하는 것 밖에는 잘할 수 있는 어떤 지혜도 능력도 없다. 인생이라는 수학 문제집은 늘 마지막을 혼자 풀어서 답을 내야 한다. 그 답은 본인만 구할 수 있으므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저자
헤르만 헤세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02-07-3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지성과 감성, 종교와 예술로 대립되는 세계에 속한 두 인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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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ophie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