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brary]2013. 2. 2. 00:17


'마지막'이란 단어는 늘 눈물겹다. 마지막을 이야기하며 기쁘게 웃을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 지나온 시간을 후회하든 혹은 잘 지내왔든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 늘 아쉽게 마련이니까. 매년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무렵 갑자기 나의 그림자가 길어진 듯 느껴지면 나는 "gib ihnen noch zwei südlichere Tage"를 한 번 이상은 되뇌이게 된다. 릴케의 '가을날'이라는 시다. '남국의 날들을 이틀만 더 허락하소서'. 더운 여름 내내 가을을 기다리다가도 여름이 끝나는 기미가 느껴지면 늘 남국의 햇볕을 이틀만 더 허락해 주었으면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 이틀이 주어지면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해 보면, 나는 그냥 그 이틀의 날들을 즐길 것이다. 그러고 보면 늘 돌아오지 않을 시간들을 보내면서 즐기는 수 밖에는 우리에게 다른 대안은 없는 듯 하다. 

2013년 1월 31일자로 내가 4년 7개월을 몸담은 회사의 법인이 없어지고, 2013년 2월 1일자로 새로운 통합법인이 출범하였다. 사무실도 업무도 현행 유지의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크게 동요하지 않다가, 1월 31일이 오고 마지막날이구나 생각하니 이 곳에서 보낸 많은 날들이 스쳐지나갔다. 나의 세번째 회사가 사라지는 순간, 마음이 좋을 수도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이 시를 다시 떠올렸다. 



가을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신이여,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아주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에 놓고, 

벌판 위에 바람을 놓아주소서. 


마지막 과일이 꽉 찰 수 있도록 명하시고, 

남국의 날들을 이틀만 더 허락하소서. 

완성으로 이끌어 주시어 

짙은 포도에 마지막 단맛을 스미게 하소서. 


지금 집이 없는 자는, 계속 짓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혼자인 자는 오랫동안 그럴 것입니다. 

깨어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리고 낙엽이 뒹굴 때 여기저기 불안하게 

가로수길을 헤메일 것입니다." 


(translated by Sophie03, 자의적 해석이므로 정확성은 절대 보장할 수 없음)



마지막 연에 대해서는 읽을 때마다 감상이 달라지는데 이번에는 좀 스산한 느낌이기는 하다.


1월 31일에 이 시를 떠올리며, 위대했던 여름을. 아직은 꽉 차지 않은 과실을, 그래서 아쉬운 남국의 이틀을 생각했다. 4년 7개월이라는 뜨거운 여름을 보낼 수 있었음에 감사한 시간이었다. 덕분에 많이 고민했고, 많은 성장을 하였으며 나의 장·단점을 알아낸 시간이었다. 이력서를 새로 쓰지 않고 나의 네번째 회사에서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끝과 시작은 언제나 함께 한다.




Herbsttag

Rainer Maria Rilke

Herr: es ist Zeit. Der Sommer war sehr groß.
Leg deinen Schatten auf die Sonnenuhren,
und auf den Fluren laß die Winde los.

Befiehl den letzten Früchten voll zu sein;
gib ihnen noch zwei südlichere Tage,
dränge sie zur Vollendung hin und jage
die letzte Süße in den schweren Wein.

Wer jetzt kein Haus hat, baut sich keines mehr.
Wer jetzt allein ist, wird es lange bleiben,
wird wachen, lesen, lange Briefe schreiben
und wird in den Alleen hin und her
unruhig wandern, wenn die Blätter treiben.



Posted by Sophie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