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때로 참으로 재미난 것이다. 한밤중에 나는 쓰고자 했던 글이 있어서 노트북을 켜고 늦은 밤 의자에 앉았는데, 미리 써둔 글을 찾고자 블로그글 리스트를 보다 보니, 다 써 놓고 공개하지 않은 글을 발견해서 그 글(☜click : "항상심 살기")을 읽게 되다가 공개로 전환하였다. 그러면서 오랜만에 항상심에 대해서 생각했고, 우스운 우연의 일치처럼 최근에 내가 쓰려고 했던 주제와 항상심의 관계에 대해서는 약간 코웃음 쳤다.
그래, 말하자면, 나는 거의 일년전에 누군가의 말에 상처를 받아서 가끔씩 그 상처를 곱씹어 보던 중이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다른 사건으로 인해서 다시 또 그 상처가 살아났다. 역시 이번에도 말이었다. 언어라는 것은 참 미묘하다. 본인이 의도하지 않아도 상대에게는 상처가 되는 말들이 있다. 본인이 의도하지 않았기에 본인은 기억조차 못하지만, 상대에게는 흉터가 되어 버리는 그런 말들이 있다. 나는 가끔 말로 내게 상처를 주지 말라고 이야기 하곤 한다. 나는 언어에 민감한 사람이라서 그 표현들을 잊지 못하노라고 이야기 하지만, 그건 내 사정이라서 남들에게는 별로 중요한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나는 어떤 말들에 상처받는 것일까, 어떤 종류의 말들이 내게 각인이 되는 것일까.
우선, 나는 "내가하면로맨스,남이하면불륜"류의 언어에 상처를 받곤 한다. 정확히 말하면, 본인의 잣대와 타인의 잣대가 다른 경우에 상처를 받는다. 본인의 가족은 중요하고 타인의 가족은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 본인의 약속은 중요하고 타인의 약속은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 본인의 감정은 사랑이지만 타인의 감정은 욕정인 사람들, 본인들이 6개월만에 결혼한 것은 사랑이지만, 타인의 6개월만의 결혼은 나이든사람들이라는 사람들... 더 늘어놔봐야 무슨 소용인가. 사람들은 쉽게 본인에게 더 편한 잣대를, 타인에게는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것이고, 나는 그것을 어렸을 때부터 싫어해온 것 뿐이다. 그래서 일부러 내게는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고자 노력해 왔다. 그런데 그게 무슨 소용인가, 사람들은 쉽사리 "내가하면로맨스, 남이하면불륜"인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그런 사람들을 멀리하는 것 뿐이다.
둘째로, 가르치려는 언어들에 상처를 받곤 한다. 왜 내가 가르침을 구하지 않았는데 나를 가르치려고 하는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나보다 앞서 경험을 한 이유로, 나를 가르칠 권리를 나는 양도하지 않았는데, 어째서 나를 가르치려 드는지! 나는 어떤 관계가 그런 권리를 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가르침을 받는 사람은 내가 선생으로 인정한 분들 뿐이다. 내 딸 같아서 가르치려드는 택시기사부터 시작해서 일일히 열거할 수도 없다. 이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는 것이다. 어찌하겠는가, "내가 해 보니 그게 맞다"고 가르치려고 드는 그들은 그 권리를 취득했다고 생각하는데!
셋째로, 본인의 세상이 전부인 사람들의 언어들에 상처를 받는다. 미혼의 나에게 어떤 친구가 "너는 세상을 몰라"라고 이야기 했었다. 회사에 다녀본 적이 없는, 전업주부의, 두 아이의 엄마인 그 친구의 세상을 나는 모르지만, 역으로, 대학교 4학년때부터 회사를 다니고, 또 회사를 다니고, 또 회사를 다닌 미혼의 삶을 그 친구는 알까? 그 친구는 그 미혼의 친구가 매년 연초마다 상사가 관심의 표명으로 "올해는 국수 먹여줄 건가. 자네 올해 넘어가면 위험한데"라는 말을 만원 엘리베이터에서 들어야 하는 세상에 산다는 것을 알까? 그 친구는 그 미혼의 친구가 띠동갑 상사가 자신의 (후지지만, 친구 중 유일한 미혼이라며) 친구와 소개팅을 하라는 이야기를 하는 성희롱이 만연한 세상에 산다는 것을 알까? 두 딸의 엄마인 그 친구는 그 딸들이 겪을 세상이 이렇다는 것을 알까? 이제, 결혼도 했고, 아이 엄마가 된 내가 곧 워킹맘으로 살게될 나의 삶을 그 친구는 알까? 사람들은 누구나 다른 삶을 살고 다른 세상을 경험한다. 소수를 제외한, 그 누구도 틀린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내게는 위에서 언급한 것들이나, 관심을 가장한 관음증이나, 열거하자니 기운 빠지는 상황들이 언어폭력으로 다가오곤 한다. 언어는 입체적으로 우리를 둘러 싸고 있으니, 어쩌면 언어에 의한 폭력이 가장 빈번하며 무자비 할 수 있다. 내가 일년간 언어의 상처를 곱씹으며 각인시켜온 것처럼 오랫동안 사람을 괴롭힐 수 있다.
교훈적으로 글을 마무리하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방식이 아니지만, "항상심 살기"는 사실 이럴 때 필요한 이야기이다. 타인에 의해, 상황에 의해 본인의 삶을 흔들지 말것을, 그저 담담하게 현재를 살아낼 것을, 어쩌면 그것 밖에 우리에게, 적어도 내게, 타인을 변화시킬 수 없다고 생각하는 내게는 다른 답이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족일지도 모르지만, 중학생 때 나는 말장난이라고 생각했지만, 나의 친구는 그 말에 상처를 받았다고 이야기해서 사실 깜짝 놀랐었다. 그래서 그런 말장난을 하는 것에 대해서 어느 순간 꺼리게 되었다. 그 친구에게 상처에 대한 미안함과 알려줌에 대한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는데, 이미 23년쯤 지난 지금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말이라는 것이, 나는 괜찮은 표현도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니까. 내게 상처준 그들도,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모르듯이, 아마 모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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