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nk+ing]2012. 12. 29. 01:32



힘겨웠던 금요일을 마치고 넋놓고 앉아 '나는 자신이 없다'라고 되뇌인다. '나는 자신이 없다, 자신이 없다' 라는 생각이 나를 감싸고 있는 동안 두 가지 생각이 더 들었다. 하나는 내가 자신이 없다고 말하면 주변 사람들이 잘 안 믿는다. 그냥 말 뿐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사실 자신이 없다. 용기도 없다. 그냥 범생이의 마음으로 하는 것 뿐이다. 세상의 많은 멋진 사람들이 그렇듯, 확신을 가지고 하는 경우도 드물다. 나는 그냥 하는 것 뿐이다. 그래서 자신이 없을지도 모른다. 

두번째 생각은 이렇게 자신도 없는 내가 어제 오늘 후배 사원들을 데리고 무슨 충고를 한 것일까 이다. 나는 스스로 자신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후배 사원들에게 충고를 하는 오지랖을 발휘했구나 하고 반성했다.


그러다가 생각했다. 나는 원래 불완전한 존재이므로, 자신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불완전한 존재인 주제에 누군가에게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충고를 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그 충고를 받아, 불완전한 존재인 주제에 이제껏 살아왔기 때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옮길 수 없고말고. 그걸 옮기기는 불가능해. 우리의 일생에서 그 어떤 특정한 시기의 삶에 대한 지각을 옮길 수는 없다구. 그 삶의 진실, 그 의미 그리고 그 오묘하고 꿰뚫는 본질을 구성하는 것 말이네. 그걸 전달하기는 불가능해. 우리는 꿈을 꾸듯이 살고 있으며, 그것도 혼자서......」

그는 다시 말을 중간하고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이윽고 말을 이었다.

「물론 이 이야기에 있어서 자네들은 그 당시 내가 볼 수 있었던 것보다는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겠지. 자네들이 잘 알고 있는 나라고 하는 사람을 눈앞에 두고 볼 수라도 있으니까......」 (p62)




암흑의 핵심

저자
조셉 콘래드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00-09-3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문명사회가 보장하는 안이한 삶을 박차고 나와 궁극적 자기인식을 ...
가격비교




영문학 공부할 때 읽었던 작품 중에 여전히 기억에 많이 남는 작품 중에 이 작품이 있다. 번역본으로 읽어도 어려운 이 작품을 'Heart of Darkness'라는 영문 작품을 읽을 때의 막막함을 여전히 기억하는 것이다. 특히 이 작품은 비평 수업에서 읽었기 때문에 이 작품과 그 비평과 또 다른 비평을 읽어야 했었는데, 어둡고 어렵고 철학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비평수업에 선택되었겠지만)


그리고 이 작품이 여전히 인상적인 이유는, 제목 때문이다. 상징적인 제목. 나의 존재의 불완전성, 나의 불안감, 자신감 없음이 나를 엄습해 올 때, 어느 순간, heart of darkness를 중얼거린다. 

※ 소설이 이야기 하는 heart of darkness는 다른 차원이다. 축약적인 단어들을 썼다가 지웠다. 이 소설에 대해 이렇게 짧은 몇 개의 단어로 정리하는 건,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내가 제일 싫어했던 방식 중에 하나이다. 


내가 암흑의 핵심에 있는 순간에, 나보다는 타인이 나를 더 잘 본다. 그리고 누군가는 나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그 도움의 손길이란 참 다양한 방법이라, 내 경우에는, 공기 좋은 산중턱에 가서 비빔밥 먹기, 주말마다 갤러리에 그림 보러 다니기, 맛난 와인 마시기 등이 인상적이었다. 그 분들은 왜 내게 손을 내밀었을까?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때 나의 지인들이 내게 왜 손을 내밀었는지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누군가 암흑의 핵심에 존재하는 것이 눈에 보이니까, 나도 손을 내밀게 된다. 중요한 것은 암흑이 아니라 암흑의 핵심이다. 어둠은 빛을 이겨본 적이 없으니까, 일순간 암흑 속에서 미세한 빛이 비쳐나오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에 그 빛을 보는 순간이 오면 누구라도 상대방에게 손을 내밀게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혹은 그런 오지랖이 발동되어, 불완전한 그 사람이 불완전한 내게 손을 내밀었고, 또 불완전한 내가 또다른 불완전한 존재에게 선뜻 손을 내미는지도 모른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good web이다. 아주 가끔 한 사람은 세상을 구원한다. 마틴루터킹이나 간디, 혹은 페니실린을 발견한 알렉산더 플레밍 같은 사람은 세상을 구원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특히 나는 그런 방식으로 세상을 구원할 수는 없다. 그래도 한 사람을 위로할 수도 있고, 도와줄 수도 있고, 따뜻한 온기를 전해 줄 수도 있다. 나를 구원해 준 사람들이 어느순간 내가 암흑 속에서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던 삶이라는 미세한 한 줄기 빛을 발견하고 내게 손을 내밀어 준 것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 따스한 온기를 전할 수도 있다. 내가 완벽하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받은 몫을 당연히 돌려주기 위함이고, 또 그것을 받은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는 순간 good web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Good web은 나의 꿈 중 하나이다. 따뜻한 선순환이 형성되는 순간이 바로 내 옆에서 일어나는 good web은 언제나 나의 꿈이다.







2012년을 마감하고 2013년을 맞이하며, 내게 언제나 따스한 손길을 내밀어 주는 많은 분들께 감사드리며, 오지랖으로 내미는 손을 밀쳐내지 않고 잘 잡아주는 많은 분들께도 감사드린다. 

Posted by Sophie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