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nk+ing]2013. 2. 17. 00:02



2월 29일은 4년에 한 번씩만 돌아오게 된다. 사실 별로 특별한 날도 아니고, 사람들이 특별히 신경쓰는 날이 아니기도 하다. 나에게는, 동생의 친구이자 친구의 동생의 생일은 2월 29일이라 생일파티는 2월 28일에 한다는 그런 재미난 이야기만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가 2004년 2월 29일에 나는 프랑스 파리에서 스위스 생갈렌으로 돌아오기 위해 TGV를 타고 제네바로 들어와서, 레만 호수에 내려오는 석양을 바라보다가 이런 생각을 했다. 


2월 29일은 자연이 선물한 잉여의 날이니, 이렇게 기차에서 석양을 바라보는 행위가 참 잘 어울린다. 


그 이후로 나는 2월 29일이 무위(無爲)의 날로 지정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아래와 같이 정리해왔다.


4년에 한 번, 2월 29일이 돌아온다. 주어를 바꾸면 전세계 모든 사람들이 4년에 딱 한 번 하루를 더 갖게 된다. 2000년은 윤년이 아니었으므로, 20세기에 태어나 21세기를 살고 있는 내가 백년을 산다고 해도 내가 갖게 되는 2월 29일은 24번에 지나지 않는다.  36500일의 일상을 살던 중에 24일의 일종의 "덤"의 날을 더 갖게 되고, 그러니 내가 정확히 백년을 살면 36524일을 갖게 되는 것이다. 2월 29일은 인간이 제정하였지만, 자연적인 현상에 의해 갖게 된 날이니, 내게 24일을 더 부여한 것은 인간이 아닌 자연이다. 그런데 모두가 그 날이 아무런 날도 아닌 척 366일의 일상을 갖게 되는 것이 나는 불만이다.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한 "4년 중 하루"는 온전히 "무위"의 날이이여야 한다는 생각한다, 물론 나답게 엉뚱하게.

무위의 날이란 이런 것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평등에게 모두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식당도 마트도 열지 않고, 회사의 일도 없으며, 방송도 없고, 라디오도 없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 가장 걸리는 것은, 그렇다면 전기/수도 등의 문제와 어린아이를 둔 부모들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주장을 펼치면서 주변인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아래와 같은 대화들로 연결되는데 나는 이 대화들이 재미나고 또 서글프다.


- (가장 직장인적인 반응) 그럼 2월 29일과 3월 1일을 쉬니까 놀러가야겠다, 꼭 빨간 날로 만들어 달라. 

- 이렇게 선포해도 결국 월마감을 해야 한다며 담당자들을 회사로 불러들일 것이다.

- 잉여인간이 되는 것을 반기는 사람이 누가 있다고 그러느냐.

- 누군가는 반드시 식당문을 열것이다. 혼자만 열면 돈을 벌 거고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모든 식당이 문을 열어서 휴일 중 하루가 될 것이다.


시간의 잉여는 어느사이엔가 부정적인 의미가 되어 있었다. 시간의 결핍은 현대인에게는 어느덧 당연한 것이 되어 있었다. 2월 29일 무위의 날 지정의 문제에서 빠져나와 생각해 보면 재미난 것은 "잉여"의 사회적 의미이다. 시간의 잉여는 환영받지 못하지만, 재화의 잉여는 환영받는다. 무위의 시간을 가져 4년에 하루라도 잉여의 인간이 되어보자는 주장은 안 먹히지만, 재화의 잉여를 위해 그 하루를 포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었다. 쓰고도 남는 재화라니, 환영받을 만하다. 그러나, 당연히, 반전은 있다. 그 누구도 쉽게 잉여의 상태에 다다를 수 없다는 것이다. 극소수를 제외한 그 누구도 본인이 가진 재화를 두고 '충분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충분하다'고 말하는 순간 이후에 더해지는 모든 것은 잉여의 재화인데, 실제로 잉여의 재화를 가진 사람을 만나는 일은 희귀한 일이다. 쉽게 예를 들어, 여자들의 옷이나 핸드백도 언제나 잉여의 수준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에 언제나 입을 옷도 없고 들고 나갈 백도 결핍의 상태인 것이다. 


즉, '잉여'와 '결핍' 두 단어는 현대사회에서 모순적 의미를 가진 단어들이다. 

현대인은 시간의 결핍속에 살아간다. 언제나 시간이 없다는 말을 달고 살고 있고, 바쁠 수록 능력이 있는 것이고, 잉여의 시간이 많은 것은 스스로의 무능력을 상기시키는 듯한 반응을 보인다. 그래서 내게 시간이 있다면 이런저런 여유 생활을 누려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긴 하지만, 4년에 하루정도는 잉여의 시간을 가져보자는 농반진반의 이야기에는 부정적인 내색을 비추며, 재화의 잉여를 위해 회사도 식당도 절대 쉴리가 없다고 말한다. 시간의 잉여가 아닌 재화의 잉여을 꿈꾸는 것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재화의 잉여 상태에 도달하지 못하고, 늘 재화의 결핍 상태에 살아간다. 


결론적으로 현대인들은 늘 시간의 결핍 상태를 담보로 재화의 잉여 상태를 꿈꾸지만 늘 재화의 결핍 상태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한번쯤 여유로운 잉여의 시간을 개인적으로 가지는 것에 대해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굉장히 소소한 바람이 있다. (2월 29일 무위의 날 지정은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였으므로, 공적으로 여유로운 잉여의 시간을 가질 수는 없다)  





Posted by Sophie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