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brary]2013. 2. 3. 22:09



2013년 2월 3일 눈이 내린다. 

2012년 2월 3일에도 눈이 내렸다. 그날밤에 이영춘신부님의 시신이 가톨릭대병원에서 명동성당으로 옮겨지던 앰블란스 뒤를 따라가며 때마침 시작되던 눈을 보았다. 포근했던 금요일 밤에 눈이 내리고, 그리고 다음날인 토요일/일요일에는 따뜻한 해가 떴었다. 아, 이제 봄이 오려나보다, 기대해도 좋을 그런 날씨였었다. 그런 포근한 날씨에서 내린 눈이 사실은 반가웠었다. 이영춘신부님을 반갑게 맞이하는 하늘의 선물인가 싶기도 했고, 따스한 태양 역시 그러했다.


2011년 12월 27일에 병원으로 신부님을  찾아뵙고 나눴던 대화를 기억한다, 본인의 대림절은 언제나 진통제와의 싸움이었노라, 신부님 특유의 유머가 묻어나는 그런 대화를 나웠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도 생각난다. 그 대화가 끝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1월 동안 계속 주무시는 신부님의 병실앞 복도를 서성이다가, 나는 문득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노란 편지지에 그동안 말한 적 없는 고마웠던 순간의 이야기를 적고, 제가 기대하는 기적과 신부님께서 생각하시는 기적과 하느님의 기적은 아마도 다를 수도 있겠다고, 이제 제가 기대하는 기적을 바라지는 않노라고, 하느님께서 이제 기적을 일으키실 것이라고. 저는 늘 이 시를 읽으며, 힘겨운 순간마다 위로를 받노라고, 신부님께도 봄이 곧 올 것이라고 그렇게 적어 간병인께 가져다 드렸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 나는 신부님의 부고를 들었었다.






벌써 일년. 한 사람의 결핍에 대해, 한 사제의 열정에 대해, 인간의 죽음에 생각해왔다. 그리고 오늘 이신부님께서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던 '첫사랑 282' 패밀리와 함께 명동성당에서 연미사를 보며 나는 또다시 봄을 떠올린다. 2013년의 봄을. 내 인생의 봄을. 





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 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비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보는
너, 먼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깨끗한 나라(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063)

저자
이성부 지음
출판사
미래사 | 1991-11-01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중견시인의 시선집. '공동산' '신생' '평야' '누가 살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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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참고서에 나와있던 시. 이십여년동안 힘겨울 때마다 내게 힘이 되어 준 시. 내가 생각하는 기적은 언제나 다시 봄이 돌아온다는 것. 두려움의 순간에도 절망의 순간에도 봄이 돌아올 것이라고 기대하게 하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봄의 기적. 그리고 지금은 내게 절실히 봄의 기적이 필요하다.

Posted by Sophie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