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brary]2013. 3. 13. 23:16



어떤 친구 이야기. 

몇해전 어느날 결혼한 아이엄마인 친구는 내게 말했었다. 너는 세상을 모른다고. 그 친구의 의미는 미혼인 나는 세상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사실 친구는 직장생활을 해 본적 없는 프리랜서일을 하다가, 결혼을 했고, 아이를 가졌고, 일을 그만 두었었다. 나를 만날 때면 본인 위주의 약속 시간과 장소를 내세우며,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그리고 그녀만의 sweet home으로 돌아가곤 했었다. 그러던 그녀가 내게 말했다, 그녀의 불평불만을 듣던 내게, 너는 세상을 모른다고. 본인의 행복한 인생사는 내게 꽁꽁 숨기면서, 내게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던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본인에게는 분명 즐거운 인생사가 있었다. 그러나 나의 즐거운 인생사의 이면에 내게도 그런 불평불만의 상황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본인에게 유부녀로서의 어려움이 있다면, 내게도 미혼녀로서의 어려움이 있고, 또 사회생활을 하면서의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거나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최근에 이 에피소드를 다시 떠올렸었다. 멀리 보면 모두의 인생은 풍경화이다. 그러므로 멀리 보면 내 인생도 풍경화이리라. 내가 하는 고민은 내게만 심각할 뿐, 누군가에겐 배부른 투정일 것이다. 하지만, 나도 세상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삶이라는 여정에서 방황하며 살고 있다. 버거워하며, 삐걱거리고, 제자리걸음이나 퇴보하거나 혹은 주저앉아 있다. 나의 노후를 걱정하거나 나의 외로움을 앞서 걱정하기도 한다. 물론, 내게 즐거움을 찾아주기 위해 선뜻 길을 나서기도 하고, 여행사진들을 보며 추억에 잠기거나, 한가로이 책을 읽기도 하고, 봄햇살을 만끽하기도 한다. 그냥 스스로에게 주저앉아 있어도 괜찮다고 말하면서, 그저 내 인생을 살아내고 있을 뿐이다. 그 모든 것이 그저 나의 인생이며 나의 모습이다. 


누구의 인생이든 대개 양면성을 지닌다. 멀리 보면 아름답지만 가까이 보면 궁상스러운 일상들을 보내고 있다. 다만, 개인이 어느 측면을 더 많이 표현하느냐가 타인에게 인생을 측정당하는 척도가 되는 것이다. 인생은 선택할 수 없어도, 그 방향만은 선택할 수 있다. 내가 선택한 방향은 즐거움의 공개 쪽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경우에 나는 긍정적이고 행복하기 위해 부지런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지인들은 잘 안 믿지만, 나는 염세주의자이고, 내향적인 성격을 지녔으며, 부지런히 어디론가 떠나 한없이 게을러지며,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고는 밤에 쉽게 잠들지 못하고 작은 소리에 쉽게 깨어나는 예민한 사람이다. 그 모든 것이 그냥 나의 모습이다. 굳이 쉽게 잠들지 못함을, 집에서 밥냄새가 나지 않을지도 모르는 나의 외로울지도 모르는 미래에 대한 걱정을 이야기하지 않는 이유는 그 자체로 이해받을 수 없는 것이 인간세상이며, 또 타인의 인생은 늘 풍경화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불평불만을, 나의 어려움을, 나의 걱정을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광장에서 명명백백 밝히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삶이라는 나의 여정이 늘 그래왔듯이, 나는 그냥 멋진 걸로, 그냥 행복한 삶을 운좋게 누리고 있는 것으로. 그저 살아가기로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시를 좋아한다. 제 꽃 지는 자리,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그 꽃, 아무 고통도 없이 꽃을 피우고 싶은 그 마음이 더 고통인 것을 아는 인생. 꽃과 고통은 결국 짝꿍이다.








도장골 이야기

-부레옥잠




김신용



아내가 장바닥에서 구해 온 부레옥잠 한 그루

마당의 키 낮은 항아리에 담겨 있다가, 어제는 보랏빛 연한 꽃을 피우더니

오늘은 꽃대궁 깊게 숙이고 꽃잎 벌리고 있다

그것을 보며 이웃집 아낙, 꽃이 왜 저래? 하는 낯빛으로 담장에 기대섰을 때

저 부레옥잠은 꽃이 질 때 저렇게 고개 숙여요-, 하고 아내가 대답하자

밭을 매러 가던 그 아낙, 제 꽃 지는 자리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모양이구먼-, 한다


제 꽃 지는 자리,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그 꽃

제 꽃 진 자리,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그 꽃


몸에 부레 같은 구근을 달고 있어, 물 위를 떠다니며 뿌리를 내리는

물위를 떠다니며 뿌리를 내려, 아무 고통도 없이 꽃을 피우는 것 같은


그 부레옥잠처럼

일생을 밭의 물 위를 떠 흐르며 살아온, 그 아낙


오늘은 그녀가 시인이다.


몸에 슬픔으로 뭉친 구근을 매달고 있어, 남은 생

아무 고통도 없이 꽃을 피우고 싶은 그 마음이 더 고통인 것을 아는


저 소리 없는 낙화로, 살아온 날 수의 입힐 줄 아는‥







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

저자
안도현 지음
출판사
이가서 | 2006-06-12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소월시문학상, 이수문학상 등을 수상한 안도현 시인의 시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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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ophie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