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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1.20 [Sophie' Think+ing] "Pink"의 폭력성
[Think+ing]2017. 1. 20. 00:43

핑크핑크핑크. 얼마나 사랑스러운 컬러였는지, 내가 얼마나 좋아했는지, 나는 볼의 홍조도 핑크이고, 핑크 컬러 옷도 열심히 입어서 핑크핑크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핑크 컬러로 내가 규정되는 것을 거부한다. 

지하철에 임산부석을 핑크로 만들 때도 싫었고, 가임기여성 지도를 핑크로 만들어서도 싫었다. 



사실 나는 이 모든 상황(출산혜택 안내에 가임기 여성 지도를 만들고, 욕을 먹고 해당 웹페이지를 삭제하는 과정)이 종료된 다음에야 이 뉴스를 접했다. 뉴스로 보니 웹사이트는 핑크가 주요 컬러였다. 


핑크로 대변되는 가임기 여성/임산부들에게 무슨 메세지를 주고 싶은 것인가? 

우선, 임산부들을 보호하기 위해 핑크 임산부석을 만들었다고 했었다. 의도는 알겠는데, 사실 지하철 모든 칸의 맨 가장자리는 노약자석이다. 노인석이 아니라, 노"약"자석이고, 그 "약자"에는 임산부도 아기도 포함된다. 그런데 임산부도 아기도 앉으면 안 된다.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임산부들은 그 자리 앞에 가지도 못한다. 이 때 임산부에게 저기 "핑크"에 가서 앉으라고 한들, 임산부가 당당하게 그 자리에 가서 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핑크"는 어떤 의미도 지니지 못하기 때문이다. 배가 안 나온 초기 임산부도 앉으라고 만들었다는 메세지도 의미 없다. 임산부에 대한 배려가 한국에는 없다. 사실 "배려"라는 단어가 익숙할 수 없는, 경쟁적이고 소모적인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노인들은 약자들과 노약자석을 두고 싸운다. 약자인 임산부와 아기들은 노인들에게 가장 만만한 약자이기 때문에 노약자석에 앉을 수 없다. 그곳에서 밀려난 임산부들에게 "핑크"자리를 만들어 준다 한들, 노인이 아닌, 유료승객들에게 배려를 강요할 수는 없다. 그들도 다들 피곤하다. 박카스 광고 때문에 노약자석을 비워둬야 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 노약자에게 양보한다는 의미는 언제나 비워둬야 하는 것은 아닌데도, 박카스  광고 때문에 노약자석에 앉는 사람들은 나쁜 사람이 되는 이분법적 사고에 우리 모두 시달리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노약자석을 없앤 후에 누군가의 친절과 배려를 기대하는 편이 임산부에게 더 효과적인 정책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실 핑크색 임산부배려석은 그냥 귀여웠다. 출산지도는, 가임기여성인구수는, 경멸적이다. 헛웃음만 나온다. 그냥 여자로 산다는 것이 거지 같다는 점은 인정한다. 사는 동안 계속 그래왔다. 그래서 저런 단순 통계에 머릿수를 채우고 말았다. 

그런데 저 통계는 누구든 통계청 사이트에 들어가면 확인할 수 있다. 업무의 특성상 가끔 통계청 데이터를 접하는데, 사실 굉장히 상세하게 통계가 나와 있어서, 나는 어느 집단에 속하는지 확인해 보게 되기는 한다. "20세~44세 여성인구"에 나는 해당하기는 한다. (사실 그 구분이 통계청에는 더 자세하다) 그런데 통계청 데이터에는 이런 문구는 안 적혀 있다. "임신이 가능한 20~44세 여성인구수" 통계청에는 그저 연령과 성별이 있을 뿐이다. 

나는 사업전략을 하는 사람이니까, 이런 데이터를 보면, 전국에 20~44세 여성인구수가 지역별로 이렇게 있으니, 이 사업을 설계할 때는 이런 식으로 접근해야 겠다, 라고 생각한다. 그냥 "이 사업에 Target이 되는 20~44세 여성인구수"로 지도를 만들지는 않는다. 그건 그냥 의미 없는 숫자이기 때문이다. 그저 의미없이, 데이터 지도를 만드느라고 예산을 낭비했다. 



데이터를 뽑아볼 수는 있다. 이를 기반으로 정책을 세울수도 있다. 하지만, 그냥 단순한 데이터에 핑크 컬러를 입혀서 지역을 구분하는 일은, 여성이 수단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20~44세 여성이 아기를 낳기 위해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보려면, 이런 데이터들이 필요하다. 

- 각 가정에서 아기를 어떻게(누가) 돌보고 있는가. 부모가 모두 일을 하는 경우, 한 사람만 벌이가 있는 경우, 한 부모가 키우는데 일을 하는 경우, 한 부모가 키우는데 일을 못/안 하는 경우

- 각 가정에서 아기를 조부모가 보는 데이터, 조부모가 아기를 보는 총 시간/일, 조부모의 연령

- 각 가정에서 부모가 아기를 돌보고 가사를 하는 비중

- 각 가정에서 어린이집에 보내는 비중

- 각 지역의 어린이집의 입소가능인원 대비 입소율, 입소가능인원 대비 아기비율, 대기율, 총 대기기간

- 각 지역의 어린이집의 분포, 운영시간, 실제 아기들이 머무는 시간

- 각 가정에서 고용하고 있는 등하원 도우미 현황, 고용시간, 비용

- 각 가정에서 고용하고 있는 베이비 시터 현황, 고용시간, 비용

- 각 가정의 부/모의 출퇴근 시간, 주말 출근 시간, 아기를 재우고 하는 진행하는 업무 시간, 이와 상관관계가 있는 부/모의 임금 및 직급, 승진연한


이 데이터들을 정리는 해 봤는지, 이 데이터들을 기반으로 정책을 세우고 있는지 궁금하다. 공무원 워킹맘의 죽음을 다만 그 공무원 사회의 문제로 치부하지 말아야 한다. 치열하게 일하는 직원이 있을 뿐이다. 그녀가 아니라, 그 였어도, 공무원 워킹맘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사용하고, 세아이의 엄마는 사랑하는 자녀를 보지 못했다라는 문장을 사용하였을 것인가. 아닌 것이다. 그가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 사회의 역군이었는지에 대해서, 그가 얼마나 승승장구 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 할 것이다. 그와 그녀는 그저 동료였을 텐데, 그와 그녀를 수식하는 문장은 절대 같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워킹맘을 위한 정책이랍시고 핑크핑크 컬러를 입혀서 내놓지 말아야 한다. 

왜 워킹맘은 있고 워킹대디라는 표현은 없는가. 왜 워킹대디라는 표현에는 싱글파더라는 의미가 들어가 있는가. 왜 남자들은 집으로 퇴근을 하고 여자들은 집으로 출근을 한다는 문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가. 왜 사회가 그렇게 돌아가는 것을, 자극적인 핑크 컬러로 표현하고 지켜만 보는가. 왜 우리의 부모님들은 자녀를 다 키우고, well-dying을 준비해야 하는 시점에 자녀의 자녀를 다시 키워야 하는가. 왜 워킹맘의 엄마는 여전히 모성애를 강압적으로 요구받는가. 왜 우리는 이런 사회에 살아야 하는가. 왜 여자라는 이유로 언제나 삶과/시간과/사회와 투쟁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왜 여자라는 이유로 모두에게 미안한 채로 살아가야 하는가.


아이는 부모가 키우는 것이고, 사회가 키우는 것이다. 전적으로 엄마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고, 그 책임을 덜어주는 것처럼 생색내지 말아야 한다. 워킹맘을 10-16시까지 일하게 하면, 처음부터 여자는 일을 할 수 조차 없다. 20세-44세 여성이라는 이유로 가임기 여성으로 치부하여 핑크 컬러를 칠해서 어디에 많은지 알려주는 사회에 살고 있는데, 그 여성들은 입사조차 할 수가 없다. 나조차로 그런 기회를 주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토록 대책없고, 폭력적인 핑크 컬러를 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이토록 잔인한 세상에 살고 있다. 



# 이글에 사용된 이미지의 출처를 밝혀둡니다. http://www.huffingtonpost.kr/2016/12/28/story_n_13876690.html


Posted by Sophie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