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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7.18 [Sophie' Book] 보다_김영하
  2. 2012.12.06 [Sophie' Think+ing] 다중의 정체성 3
[Book Index]2017. 7. 18. 18:30

보다-읽다-말하다 시리즈 물 중 1권. 부제는 김영하의 인사이트 아웃사이트.

특강의 기회는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편인데, 그 중 기억나는 강사 중 한 명이었던 김영하작가가 알쓸신잡에 나오면서, 또다시 시작된 궁금증에 읽게된 잡문집. (기억나는 강사 중 한 명은 정재승이다. 나영석PD의 용병술은 정말 대단하다!) 책이나 영화 등등의 매개를 기반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표현이 적절하고, 알쓸신잡에 나오는 그 톤앤매너가 유지 된다. 그 이야기들에 동의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이 책을 읽으면서 드는 느낌 이지만, 그 중 최근,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바로 그 tr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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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 30-31 

멀리 갈 것도 없다. 우리나라의 부자들도 이제는 집을 버리기 시작했다. 이 전세 귀족들은 고가의 주택에 거주하지만 소유하지는 않으며, 무소유의 이상에 걸맞게 대부분 차도 갖고 있지 않다. 리스회사에서 빌리면 된다. 재벌인가는 회사를 직접적으로 소유하는 대신 최소한의 자본으로 교묘하게 기재하면서 회사에서 제공하는 여러 재화와 용역을 무상으로 누리고 있다. 

부자들은 이제 빈자들의 마지막 위안까지 탐내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겐 선택의 여지 없이 닥치고 받아들여야 하는 상태가 누군가에게는 선택 가능한 쿨한 옵션일 뿐인 세계. 세상의 불평등은 이렇게 진화하고 있다. 

- 진짜 부자는 소유하지 않는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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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 51-52

대중은 돈과 집, 직업을 잃었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렸다. '부자 아빠'들은 사망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부자 아빠'를 선택한 대중의 무의식은 아직 그들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따라서 정청의 죽음은 다소 연극적이고 신화적으로 채색될 수 밖에 없다. 그는 마치 왕위를 물려주는 늙은 왕처럼 이자성에게, 어서 나가 적들을 물리치고 왕관을 차지하라는 식의 유언을 남긴다. 

'가난한 아빠'를 버리고 '부자 아빠'에게로 귀순했던 대중은 과연 그 선택을 후회하고 있을까? <신세계>는 대중의 무의식이 그 뼈다픈 후회를 어떻게 외면하는지에 대한 힌트를 보여준다. 그것은 '가난한 아빠'가 (무능할 뿐 아니라) 더 악할지도 모른다고 암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난한 아빠'와 '부자 아빠'가 모두 사라진 오늘의 세계에 남은 것은 오직 생존의 윤리 뿐이라고 믿는 것이다. 

(중략)

반면 정청은 이자성에게 생존의 방식과 신념을 가르쳐주고 스스로 퇴장한다는 점에서 진짜 아버지의 면모를 보인다. 지금의 대중은 윤리적 생존 대신 생존의 윤리를 가르쳐줄 아버지를 선택한다. 

- 부자 아빠의 죽음.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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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8

지구에 막 도착한 그녀에게는 에피쿠로스의 이런 말이 이제 예사롭지 않을 것이다.

"삶이 이어지지 않을 죽음 후에는 전혀 무서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이해한 사람에게는 삶 또한 무서워할 것이 하나도 없다." (알랭 드 보통, 『철학의 위안』, 청미래, 2012)

- 어차피 죽을 인생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이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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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보다

http://www.yes24.com/24/goods/14397714?scode=032&OzSrank=2 

Posted by Sophie03
[Think+ing]2012. 12. 6. 00:34








TEDxSeoul의 김영하님의 '예술가가 되자, 지금 당장' 강연을 처음 접한 건 성수선의 책 『혼자인 내가 혼자인 너에게』에서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멀티미디어 링크가 맘에 들게 걸리지 않으므로, URL 링크만 걸어둔다)



 

 소설가 김영하는 테드엑스서울(TedxSeoul)에서 '예술가가 되자, 지금 당장'이라는 제목으로 이런 멋진 강연을 했다.


마법의 질문이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우리가, 나 연극을 좀 해볼까 봐, 뭐 구청에서 하는 연극학교가 있는데 가볼까 봐, 라든가 이탈리아 가곡을 배울까 봐 그러면, 어 그래? 연극? 그거 해서 뭐 하려고 그래? 마법의 질문이에요. 해서 뭐 하려고 그래? 이렇게 물어봅니다. 그런데, 예술이라는 것은 뭘 해서 뭘 하려는 게 아니죠.
예술은 최종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그것은 우리 영혼을 구원하고 우리가 즐겁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거예요. 술과 약물의 도움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자기표현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죠.
그래서 이런 질문에 대해서, 이런 실용주의자들의 질문에 대해서 우리는 담대하게 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 그냥 즐거워서 하는 거야, 재밌어서 하는 거야, 미안해 나만 재밌어서, 내가 좀 먼저 할께, 라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되는 겁니다.

(『혼자인 내가 혼자인 너에게』 pp123-124)



이 부분에 동의해서 이 동영상을 보기 시작했는데, 몇몇가지 생각들을 했고, 그 중 세가지를 기록해 두려고 한다.



첫번째는 모두를 웃게 만든 이 구절.

웃으면서도 가슴 찡하고, 동의하고 싶지 않아도 동의하게 되는 이 문장을 기록하고 싶었다.

"일은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는다.
하면 피곤해지는 게 그 증거다."   
   -미셀 투르니에-






두번째는 성수선씨가 옮겨적은 저 구절, 그냥 재미있어서 하는 거야, 하는 부분에 대한 동의.


내가 최근 1~2년간 그냥 재미있어서 한 일.


- 와인스터디 : 이유도 간단하다, 친구가 와인이 궁금하다고, 친구들끼리 와인아카데미를 같이 다니자고 했는데, 친구가 같이 가자고 한 클래스는 너무 초급이라, 내게는 지루할 것이 뻔하고, 무엇보다 와인 리스트가 맘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이 정도는 우리 셋이 강의료만큼의 돈을 모으며, '더 좋은 와인을 마시면서' 내가 공부 시켜 줄 수 있다고 이야기한 후에, 4번의 강좌, 8병의 와인을 준비해서 마셨다. 실라부스를 만들고, 매주 여러권의 와인 책들을 섭렵하고, 강의안을 가지고 가고, 와인을 설명하고. 적절한 가격의 귀부와인을 찾기 위해 와인고수님들을 괴롭혀서 직구하고, 샴페인은 오랜숙고 끝에 벨오뽀끄를 마시고, 마실 와인에 대해서 추가로 알려 주고. 그냥 재미난 시간이었다.  


- 일드프랑스 지역의 고딕건축의 역사와 특징 강의 하기 : 그냥 대충 떼워도 되는 '그냥 아는 거 이야기하기' 시간에 갑자기, 문득, 나의 일드프랑스 지역의 고딕건축 탐방기를, 강의 형식으로 풀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세번의 주말 내내 책을 보고 사진을 정리하고 강의안을 만들어서 강의를 했다. 역시 그냥 재미있었다.


나에게 무엇이 되돌아와서 하는 일이 아니다, 그냥 재미있어서, 그 시간이 뿌듯해서, 잠이 줄어서 몸이 피곤해도 마음이 즐거움의 상태를 오래 지속하니까, 그래서 하는 일이다. 그럴 때는 마치 내가 중,고등학교 시절에 잠자는 시간 쪼개서 독일인의 사랑을 읽고, 파트리크 쥐스킨트를 읽었던 때로 되돌아간 듯, 마음이 붕붕 떠다닌다. 그냥 재미있어서 나는 행복하다.




세번째는 '다중의 정체성' 표현.


초기에 페이스북을 시작하고 마음에 안 들었던 부분이 '모두가 친구인 컨셉'이었다. 찾아보니, 주커버그는 인간은 하나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기본 사상이라고, 그것이 페이스북에 반영된 것으로 보여졌다. 하지만 인간은 다중의 정체성을 가진다. 가족에게, 친구에게, 직장동료에게, 어떤 그룹에서나 같은 모습일 수는 없다. 그 그룹 내에서의 역할이 있을 것이고 그 역할을 하면서 살아가려면 당연히 다중의 정체성이 필요하다. 이런 다중의 정체성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하게 생성된다.


그런데, 스스로에게도 다중의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 가족을 포함한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다중의 정체성으로 다가가듯이, 스스로에게도 다중의 정체성의 한 부분만이라도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바꿔 말하면, 존재하기 위해 애쓰는 순간 말고, 존재 그 자체로서의 스스로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변에서는 늘 이야기 한다. "시간이 없어. 여력이 없어. 나는 돈을 벌어야 하고. 심지어 나는 빚도 있어."

그런데 사실 좀 지겹다. 이런 문장은 존재하기 위해 애쓰는 순간을 위한 변명이지, 존재 그 자체에 대한 변명으로는 부적절하니까.

삶은 언제 종결될지 모른다, 천재지변이든 인재이든, 혹은 그 무엇이든, 삶은 언제든 종결될 수 있다. 성수대교가 무너지기 10분전에 성수대교를 건넌 이후로 깨닫게 된 사실이고, 우울했던 어떤 순간을 벗어나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그러므로, 존재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 다중의 정체성의 단 한 부분이라도 존재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김영하님의 표현 대로, 자기만의 예술을 하는 순간이 필요하며, 우리 모두가 어떤 다중의 정체성 중에 하나만이라도 예술가가 되는 것이 필요하다. 예술은 그 자체로 목적이므로!
















사소하고 잡다한 이야기 하나 더.


대학에 와서야 십여년만에 다시 만난 친한 동생에게 들었던 충격적인 말. 

본인이 시각디자인학과를 전공하듯, 당연히 내가 미대에 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고 한다.

모두가 내 그림은 그냥 그렇다고 해서 미술을 하겠다고 말할 수 없었다고 했더니,

나의 색감은 훌륭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미술을 전공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추상화적인, 원색의 색감을 사용했었던 초등학생 시절의 나는, 피카소의 그림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내 그림은 그냥 그렇다는 주변의 평가를 그냥 들어내야 했다. 

그래서 내 안의 작은 예술가는 기지개 한 번 못 켜보고 붓을 놓고 말았다는, 사소하고 잡다하고 슬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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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인 내가 혼자인 너에게

저자
성수선 지음
출판사
알투스 | 2012-11-01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당신을 향한 내밀한 고백이자 나를 향한 솔직한 독백!밑줄 긋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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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ophie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