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2013. 4. 27. 00:58



책을 읽고 나니 독후감 대신 나의 책 이야기를 적어두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 빌미를 제공한 책은 바로 책에 관한 책이다.




책인시공(책 읽는 사람의 시간과 공간)

저자
정수복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구)포도원(도) | 2013-03-08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책과 사람 사이의 아름다운 관계!책 읽는 사람의 시간과 공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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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디서 책을 읽을까에 대한 글로, 작가가 최선을 다해 쉽게 글을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어야 한다고 하지 않고, 책이 이렇게 좋다고 하지 않고, 책을 좋아하는 작가가 언제나 어디서나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쓴 책이고, 나는 책을 좋아하니까 재미있게 읽었다.


그런데, 책이 좋은 것은 다 안다. 그런데 책은 산과 같다. 그리고 독서는 등산과 같아서, 누구나 등산이 좋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등산을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책읽기가 좋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책읽기를 하지 않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러므로 누군가에게 이 책은 그저 웅웅 울리는 냉장고 소리처럼 표지만 보는 책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 보면 보이는 산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래도 나는 산도 책도 좋아하고, 등산도 독서도 좋아하니, 내 스타일로 책을 위한 변명을 써두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이 글 역시 책을 좋아한다면 끝까지 읽어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예 안 읽고 지나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저 글일 따름이니까. 이런 블로그의 글보다는 인쇄되어 나오는 책은 훨씬 더 매력적이다. 왜냐하면 산처럼 책은 쉽게 변하지 않고 대체로 그 자리에 있다. 산불이나 공사에 의해 산이 변하기도 하고, 좋은 책은 늘 절판되곤 하니, 반드시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아니기는 하지만, 그래도 대체로 그 자체로 존재한다. 또, 사람에 따라 산과 책을 싫어하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한다. 그리고 사람의 시간에 따라 산과 책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지게 된다. 언젠가의 산은 위로가 되고 언젠가의 산은 무덤덤하다. 어느 날의 산은 바람이 좋았지만, 어느 날의 산은 새소리가 좋다. 어렸을 때 읽었던 『어린 왕자』와 청소년기에 읽었던 『어린 왕자』와 이십대 어른이 되어/삼십대 어른이 되어 읽은 『어린 왕자』는 다르다. 인상깊은 구절도, 읽은 후의 소감도 당연히 다르다. 그래서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같은 산을 오르면서 다른 느낌의 산을 등산한 기분이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도 끊임없이 같은 책을 읽으면서 다른 독후감을 쓰게 된다. 여행지에서 읽었던 『브리다』와 일상에서 읽었던 『브리다』가 서로 다른 감상을 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사실 산을 좋아해야만 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책을 좋아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산을 좋아하는 것도 책을 좋아하는 것도, 사랑에 빠지는 것과 같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것이다. 종종 책을 왜 그렇게 좋아하게 되었냐는 질문을 받는다. (솔직히 질문자들은, 자기 자녀가 당신처럼 책을 많이 읽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과 함께 던지기 때문에 약간 실망스럽다.) 


아무튼 대답해 본다. 우선, 나는 일년에 책을 90~100여권 읽는다. 그리고 독후감을 70여권 쓴다. New year's Resolutions에 늘 독후감 주 1회 이상 쓰기가 들어가기는 하지만, 늘 더 많이 읽고 싶고, 더 많이 독후감을 쓰고 싶기는 하지만, 숫자를 채우기 위한 독서는 사절이다. 나는 그냥 책이 좋다. 어렸을 때 디즈니의 동화책의 점보코끼리가 귀를 팔락이며 날라가는 그림이 있던 페이지에 있는 글을 처음으로 읽었던 기억이 있다. 삼남매가 모두 글을 알아서 깨우쳤다고 하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늘 점보코끼리가 모자쓰고 날아가며 새와 대화하던 그림책의 글씨를 처음으로 읽은 것만 기억한다. 이사를 많이 다녔고, 집은 넉넉하지 않았기에, 집에 책이 많지는 않았다. 그래서 집에 새 책이 생기면 너무나 기뻐서 자꾸 반복해서 읽었던 기억도 있다. 친구네 집의 백과사전이 너무나도 부러워서, 친구집에 가면 백과사전을 한 권 뽑아서 계속 읽기도 했었다. 그런데 나는 사실 유난히 신문을 싫어한다. 금세 폐기되어 버리는 신문의 존재를 생각할 때, 회색 종이의 잉크냄새가 나는 까칠까칠한 신문은 내게 반가운 존재가 아니었다. 그래도 일종의 텍스트 중독처럼 나는 사실 글을 보면 우선 읽고 보는 버릇을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있어서, 신문이 펼쳐져 있으면 어느 순간 눈을 글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책에 대한 의존도와 욕망이 극대화 되었던 때는 역시 존재한다. 의존도가 높아졌을 때는 처음으로 서울로 이사왔던 초등학생 시절인데 그 때 나는 외로웠다. 또래 집단에서 분리되어 있었고, 나의 존재감도 증명해야만 했다. 그래서 해질 때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던 말괄량이가 어느 순간 독서가가 되었다. 그리고 욕망이 극대화 되었던 때는 아무래도 중고등학생 때였다. 청소년기에는 부모들이 의례히 그렇듯 책을 읽는 일이 금기시 되었었다. 대학교를 가기 위한 교과서/참고서 외에 다른 책들은 쉽게 금지되곤 했었다. 금지는 욕망의 극대화를 초래하니까, 당연히 나는 그 때 너무나도 책이 읽고 싶었고, 그 때 읽었던 『데미안』은 두고두고 나에게 감동이었다. 


어린 날의 책은 한 인생의 결정들에 영향을 미친다. 『독일인의 사랑 』 때문에 고등학생 때 나는 독일어를 전공했고, 『좀머씨 이야기』덕분에 독문학을 전공하고, 밀란쿤데라를 좋아하게 되고, 스위스 독일어권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왔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인해 일상이 버거울 때 시간을 살아낼 수 있었고, 단순한 열정』 덕분에 힘겹고 어두운 터널을 견디어 낼 수 있었다. 『불안』을 읽으며 가장 불안한 시간에 유머를 찾을 수 있었고, 친밀한 지인의 죽음 이후 책을 계속 못 읽다가 『웃음』을 읽으며 다시 허무한 웃음이라도 지으며 삶의 궤도로 돌아올 수 있었다. 늘어 놓으면 끝이 없다. 나의 삶의 시간 동안, 결정의 순간마다 책은 늘 애정의 대상이며 우정을 나눈 친구였다.


생각해 보면, 비디오플레이어도 없고, 만화책방에 갈 돈도 내 수중에는 없었고, 오로지 책만 있었기 때문에, 책이 익숙해져서 책을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언제나 내 곁에는 책이 있었다. 산이 그곳에 있는 것처럼 책이 늘 있었다. 같은 책을 다시 읽는 즐거움, 새로운 책을 읽는 즐거움, 책이 알려준 또다른 책을 읽어나가는 즐거움, 서점에 서서 책을 뒤적이다가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즐거움, 도서관 서고에 기대에 읽는 책의 즐거움, 좋아하는 작가의 전 작품을 다 읽는 즐거움. 그 모든 즐거움으로 인해, 비디오플레이어가 없던 시절에도 나는 즐거워했다. 그래서 책을 왜 그렇게 좋아하느냐는 질문에는... 그저 즐겁기 떄문이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결국 사랑에 빠지는 것과 같이, 어쩌다 보니, 좋아하게 되었다 외에는 따로 할 말이 없다. 


결국 그런 것이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도 좋아하는 이유를 분명히 말할 수 없다. 그저 사랑에 빠졌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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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되도록이면 실제로 내가 읽었던 버전의 책을 골라 넣으려고 하는데, 데미안 출판 일자가 83년라니 놀랍다. 그리고 어린왕자/독일인의 사랑은 내가 읽은 버전을 찾을 수가 없어서 아쉽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오빠의 책을 빌려 읽은 거라 내가 지금 가지고 있고 최근에 읽는 버전으로 등록하였지만, 처음으로 읽은 버전은 아래의 버전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저자
밀란 쿤데라 지음
출판사
민음사 펴냄 | 1999-01-01 출간
카테고리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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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ophie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