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문득, 일을 하다 문득, 밥을 먹다 문득,
내가 두 발 딛고 있는 이 곳이 어디인가, 생각하다가,
문득 낯설고도 익숙한 곳에 있는 나를 바라보게 된다.
"모든 여행은 아름답다.
아름다워야 한다.
현실의 반댓말은 비현실이 아니라 여행이다"
이 구절을 읽고 120%라도 동의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현실에서 괴리되는 순간, 나는 초현실적인 상상의 세계에 빨려들어가지 않고 여행의 순간으로 건너가 있으니까.
심적으로 힘겨운 늦은 초겨울밤,
서울역의 차가운 공기는, 어느새 나를 2004년 2월의 취리히에 존재하게 했다.
그날 자정에 취리히에서 피렌체로 가기 위해 야간열차를 탈 예정이었다.
빠듯하게 시간을 맞춰 생갈렌 나의 집에서 나갈 생각이었는데,
저녁을 먹다가 문득,
보름달이 뜬 취리히의 밤거리를 걸어볼까? 하는 생각에 후다닥 뛰쳐나갔었다.
아름다웠던 거리, 청량하게 콧끝시린 공기가 기억난다. 물론, 취리히 역의 차가운 온도와 이후의 피렌체도.
(IXUS400, Feb 2004, Zurich) 상단 가운데의 하얀 구체가 보름달!
그래서 나만의 언어로 여행을 정의하자면,
"모든 여행은 pause이다.
exit이 없는 현실에서 잠시잠깐 pause 버튼을 누르고 다른 시공간에 스스로를 데려다 놓는 것.
중요한 것은, 15초짜리 짧은 pause가 종종 일어난다는 것.
나의 두 발은 분명 현실에 존재하지만, 나의 눈은 이미 낯설고도 익숙한 곳의 나를 바라보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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