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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2013. 3. 15. 00:18




오늘은 일과중에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다가, 회사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생각이 났다. 일년전 오늘부터 있었던 일. 야근 후 택시에서 느꼈던 감정들, 그 이후로 지속된 일들. 2012년 스스로 대상주기에서도 당당히 수상의 영예를 안았던 그 시간들. 공든 탑은 어이없을 만큼 쉽게 무너지지만, 그래서 그동안의 시간들은 무위의 시간으로 돌아가 버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언제나 그렇게 존재한다. 


우습게도 집에 돌아와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국민연금 가입내역안내서. 길고긴 가입개월수. 이제는 '짧고도 긴'이라는 표현을 쓸 수 없을 만큼 길어진 나의 가입개월수. 시간은 언제나 그렇게 존재한다.


그제서야 책상 위에 손편지가 눈에 보인다. 그 반가운 손글씨를 보자마자, 눈시울을 뜨거워진다. 봉투를 열고 '우리'의 생일을 축하하는 글을 읽는 동안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시는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였다.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함석헌



만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 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이 사진을 찍어서 이 글에 넣기까지 1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사진을 찍고 cloud에 저장하고 다운받아 등록하면 끝. 모바일로 바로 게시해도 되지만,  최소한의 아날로그적인 감성으로 블로그 글은 왠지 꼭 키보드로 쓰고 싶어서 이런 과정을 거치는데 1분도 걸리지 않는다. 그런 디지털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표를 붙인 손편지로 생일 축하 카드를 받아 들 때의 기분은 참 뭉클하다.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이 보낸 편지이니 그 내용이야 오죽하겠는가.


시간은 언제나 그렇게 존재한다.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나 홀로 허허벌판에서 매서운 바람에 홀로 노출되어 있을 때도, 그 모든 것이 내 인생임을 구구절절 알고 있을 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이 바로 그 날인데 라며 전화걸어 목소리 듣고 싶은 사람을 만들어준, 바로 그 시간은 언제나 그렇게 존재한다. 


내년의 오늘의 시간에는, 이러저러한 밤에 손글씨 생일 카드를 받아든 시간이 내게 존재할 것이다. 스위스에서 받아들었던 그 편지, 스위스에서 보내주었던 그 편지의 시간에 더해졌으므로, 시간은 언제나 그렇게 존재할 것이다.




힘든 일을 넘어서서 성숙한 것도 좋지만 덜 힘들기를 기도해준 PP님에게 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꾸벅!





Posted by Sophie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