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2013. 10. 23. 23:19


오늘 저녁에 그룹 여성 리더십 교육에 참석하였다. 5월에 1박2일 교육을 하고(6월에 이 교육의 과제에 관한 글을 올렸었다☞click) 9~11월 총 3회에 거쳐 3시간 동안 교육이 진행되는데, 사실 나는 "여성"에 촛점이 맞춰지면 약간 불편하다. 많은 분들이 여성의 특성상 전략적 사고가 어렵다고 하거나, 입체적 환경 분석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면 나는 왜 그것이 어렵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타고난 특성의 문제이며 또한 성장 과정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에 나는 골목대장이었고, 삼국지를 재미있게 읽었으며,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스도쿠를 풀거나 조깅을 한다. 이 때문에 내가 양(miss) 대신 군(Mr.)로 불리웠는지도 모르지만, 심리학에서 gender검사를 하면 남성성/여성성/중성성/양성성 중 양성성이 나오는 내게는 "여성"이라는 테두리에서 이야기 하는 것이 어렵다. 특히 나는 미혼이라, 육아의 고민들에 대해서는 외부인이나 다름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동안의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외로움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그동안 겪었던 수많은 시행착오들, 그래서 여자후배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에 오지랖 넓게 충고하게 되는 그 문제들이 나만의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어, 교육에서 돌아오는 길이면 늘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오늘의 단상은 두 개.


어쩌면 이것은 내가 경험하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나라는 사람은 모두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삶 속에서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전전긍긍하며 살았는데, 어느 사건으로 인해, 내가 내 주변의 모두를 인정하지 않듯이, 당연히 나도 모두에게 인정받는 것은 불가능할 뿐 더러, 그럴 이유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저 꾸준함의 미학으로 내 인생을 살고, 일을 하고, 글을 쓸 뿐, 타인에게 나에 대한 판단권을 맡길 이유가 없었다. 사실 나는 타인에 대한 잣대보다 스스로에 대한 잣대가 더 높기 때문에, 삶이 늘 고단할 수 밖에 없는데, 판단권까지 외부에 넘기며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들며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럴 필요가 없다. 모두에게 인정받으며 살기 위해 삶이라는 유한한 시간을 소모할 이유가 없다. 스스로의 삶의 주체는 스스로가 되어야 한다. 절대 넘겨주어서는 안 된다. (노파심처럼 덧붙이자면, 고과와는 다르다. 고과는 회사에서의 업무성과-많은 것들이 포함된-에 의한 것이니, 잘 받는 것이 기본적으로 좋다. 하지만 no라고 말할 수 없다면, 그것은 모두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본성 때문인지도 모르니 한 번 잘 살펴보아야 한다.) 


다른 하나는 이 시.





작은 짐승


신석정


난이와 나는

산에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이 좋았다

밤나무

소나무

참나무

느티나무

다문다문 선 사이사이로 하늘은 바다보다 푸르렀다


난이와 나는

작은 짐승처럼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이 좋았다

짐승같이 말없이 앉아서

바다같이 말없이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


난이와 내가

푸른 바다를 향하고 구름이 자꾸만 놓아가는 

붉은 산호와 흰 대리석 층층계를 거닐며

물오리처럼 떠다니는 청자기빛 섬을 어루만질 때

떨리는 심장같이 자지러지게 흩날리는 느티나무 잎새가

난이의 머리칼에 매달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난이와 나는

역시 느티나무 아래 말없이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순하디순한 작은 짐승이었다





사실 그룹 여성 리더십 교육생들은 흔히 회사에서 관리하는 여성인재들이라고 말하는데, 우리 사회에서 그 말은 "독한"의 의미를 내포한다. 나 또한 그런 표현을 들었었고, 일면 억울하면서도 그것들을 넋두리 늘어놓을 만큼의 여유도 없고, 나의 본성을 알아달라고 누군가를 붙들고 이야기할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 교육생들은 대부분 참 순하디순하다. 업무를 함에 있어서 독할지 몰라도, 그리고 그들의 순하디순함을 표현하는 것이 제한되어 있어 세상이 잘 몰라주더라도, 사실 그들은 조용히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이 기쁜, 순하디순한 작은 짐승들이다. 


어쩌면 그 생각이 오늘밤은 그렇게 외롭지 않다고 생각하며 귀가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삶이라는 것은 늘 의외성을 지닌다.





# 그리고 고백하자면, 이 글은 5월 룸메이트로 처음 만났을 때는 거칠 것만 같다고 생각했던, 그러나 "알고보니" 순하디순한... 눈이 큰 동갑내기 L과장님께서 요즘 글을 자주 올리지 않는다고 해서, 급히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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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ophie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