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2023. 3. 15. 03:46


뒤늦게 해방일지를 보다가
아차 그랬구나 하고 과거가 떠오른다.
새벽이라 실없이 글을 남겨둔다.

현아의 전남친이 창희 이야기를 너무 들어서 셋이 연애히는 것 같았다고.
오래전 대학생때 우리동네 여의도에서 내 생일이라 그를 만나는데 열시 넘어서 갑자기 당시 그의 여친이 나타났다.
내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 꼭 보고 싶었다고.
집이 도곡동인가 개포동이었는데 그 밤에 여의도로 왔다.
뭐지. 그랬는데 현아 전남친 이야기에 문득 아직도 이름을 기억하는 그녀 생각이 났다.

그래 그 전 여친은 한밤중에 불시에 전화와서
그가 본인과 헤어지려고 하는데 안 그럴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았다.
그에게 이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래서 뭐라고 해줬어? 라고 나에게 반문했었는데 뒷 이야기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 때의 나도 그 때의 그도 그리고 그의 여친들도 다 귀여웠다. 지나고 보니 참 아름다웠던 이십대였네.


Posted by Sophie03
[Story]2023. 2. 20. 15:25

살기 위해 글을 쓴다면, 2022년 내 친구의 영면을, 기록해둬야 한다. 우리의 우정을 위해, 남겨진 나를 위해. 

친구가 아프다고, 연락온지 일년쯤 되는 날, 그의 와이프에게 새벽에 연락이 왔다. 

마지막 인사를 남기시라고...

---

영준아. 

너의 친구여서 늘 감사했어. 

늘 내게 “그런 일 쯤 아무 것도 아니다”며 
내게 일어난 일들도 
네게 일어난 일들도 
툭툭 털라고 말해주는 존재여서 고마워. 

너와의 길었던 우정이 너무 짧게 느껴져. 

네가 ㅈㅇ씨를 만나고 가정을 이루고 세 자녀들의 아버지가 되는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 은근슬쩍 나의 롤모델이 되어 주었어. 
하느님께서 보시면서 참 좋아하셨을 거야. 

오늘 세례를 받는다고 ㅈㅇ씨가 말해 주었어. 하느님께서 그동안 너를 많이 사랑하시고 아껴주시고 보살피셨을 거야. 그리고 이제 그 사랑을 편안히 받으렴. 

내가 큰 도움이 못 되서 미안해. 너를 보러가지 못 해서 미안해. 내가 네 좋은 친구가 되어 주지 못 해서 미안해. 

그래도 ㅈㅇ씨에게 미약한 도움이라도 필요하면, 작은 기도라도 필요하면, 내게 연락하라고 말해줘. 내가 늘 네 사랑스러운 가족을 위해 기도할께. 

하느님께서 하느님만의 놀라운 기적을 마련하실 거야. 이제 아프지 말고. 

이렇게 빨리 널 데려가신 건 내가 원망할께. 인간의 기적을 계속 기도했는데 하느님께서 더 큰 계획이 있으셨나봐. 하느님께서 너를 빨리 곁에 두고 싶으신가봐. 너를 빨리 아버지와 만나게 해주려나 봐.

너의 친구여서 행복했어. 감사했어.
늘 웃으면서 이야기하던 너를, 함께 남산을 웃으며 오르던 그 시간을, 내가 삼성전자 다니며 힘들어 할 때 같이 먹던 그 점심을, 헛소리를 툭툭 할 수 있었던 그 티타임을, 늘 감사해. 쓰다보니 역시 너와의 에피소드들이 많아. 많은 시간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해. 

내 친구 조영준을 사랑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심부인님이 오해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인간적인 사랑! )

오늘 세례 잘 받아. 우리는 언제든 다시 만나자.  (2022/8/14)

-----

그리고 이틀뒤

영준아 

너를 만날 수 없어서 무작정 성당으로 왔어. 
어디든 성당은 늘 내 은신처이지. 

무섭거나 두렵거나 외로울 때, 
나는 내 손바닥에 작은 성호를 그으며 
“주님 저와 함께 하여 주시고 보호하여 주시고 지켜주소서”라고 기도해 왔어. 그 작은 성호가 내게는 늘  보호막이었어. 

오늘 성당에 앉아서는 내내 되뇌인다. 
“하느님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조영준 토마스를 고통 받지 않게 하소서. 
아기 예수님 조영준 토마스와 함께 하여 주시고 보호하여 주시고 지켜주소서. 
성령님 조영준 토마스에게 임하시어 성령으로 보호하소서. 
성모님 조영준 토마스가 덜 아프도록 기도해 주세요”

영준아.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이것 뿐이라서 미안해. 너는 내내 내게 넘치도록 좋은 친구였는데 나는 성당에 앉아서 기도 밖에 해주지 못 해서 미안해. 

너의 고통이 부디 줄어들기를 
너의 아픔이 부디 잦아들기를. 
ㅈㅇ씨의 마음이 조금만 아프기를. 
기도할 수 밖에 없어서 미안해. 

ㅈㅇ씨가 내게 너무나 담대하게 카톡을 보내서 그래서 마음이 더 아프더라. 
너의 좋디 좋은 심부인의 마음이 조금만 아프기를 또 인간적으로 기도해 본다. 

영준아 조금만 아파라. (2022/8/16)

그 오후에 내 친구는 하늘나라로 돌아갔다...

친구가 겪었던 어이없던 어려움의 순간이 거의 끝나가던 무렵 친구에게 받은 카드
친구의 장례미사를 하던 새벽의 하늘. 맑아서 좋았다. 그날오후엔 비가 쏟아졌다. 친구의 죽음을 하늘도 슬퍼하는 것처럼...
잘가, 내 친구.

 

9월1일 오늘 날이 너무 좋아서 점심에 갑자기 뒷산에 다녀왔다. 그간에는 비도 오고 아이방학과 친구를 보내며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오늘 하늘은 가을 하늘이었다. 
물론 생각을 했다. 봄이며 가을에는 최근 몇년간 영준이와 남산 타워든 공원이든 과학관이든 걸어다니며 날씨를 만끽했다. 내가 산을 데리고 가든 언덕을 데리고 오르든 보폭을 맞춰 걷으며 수다 떠는 유일한 친구였다. 그래서 이런 하늘이 시작되면 “너 이번주에 언제 출근하냐” 말을 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과였다. 그래, 이제 그럴 수가 없구나. 
그런데 나는 봄이고 가을이고 또 남산을 다니고 뒷산을 다닐 거다. 그게 나다운 거다. 그게 영준이가 아는 안소연다운 거다. 
오늘 산을 걷다가 문득 이런 생각도 했다. 영준이의 발병을 알고 “영준이가 먼저 상황을 알려줬을 친구” 몇을 생각해 내서 연락을 했었다. 다 고등학교 친구들이지만 늘 영준이가 매개였던 친구들인데, 최근 일년간은 영준이가 없는 대화창이 존재했었다. 그리고 사망소식을 서로 전하고 장례를 마치며 영준이가 우리에게 서로를 남겨줬네. 그동안 같이 걱정해주고 아파줘서 고마웠다는 인사를 서로에게 했었다. 그런데 오늘 내가 심부인과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다행이다 생각하다가 갑자기 이것은 영준이의 빅피쳐였구나 생각했다. 내게 많은 남자친구들이 있지만 이런 상황에 연락할 수 있는 와이프는 사실 거의 없다. 그게 뭔가 내가 경계의 대상이 되기 때문인데, 심부인과 내게는 그런 것이 없었다. 오랫동안 서로의 안부를 궁금해했는데 그것도 영준이 덕분이었구나. 그래서 나는 지금 영준이의 남은 가족의 걱정을 마음으로만 하는 게 아니고, 실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거구나. 그러고보니 그런 게 영준이 다운 거였다. 영준이에겐 많은 친구들이 있는데도 내가 한명의 친구였고 또 한명의 가족이었구나 싶은 거. 새삼 느끼는 산책길이었다. 

그래서. 8월 내내 마음속의 goodbye를 내내 이곳에 쏟아내며 (일기장에 써야하는 이야기들을요…) 많은 위로를 받았는데, 오늘 9월 1일 산책을 하며 한번 안소연 다움을 생각했고, 또 늘 함께 하는 나의 고딩친구들과 오늘 저녁을 먹으며 이런 저런 잡다한 이야기를 하다가, 일상을 살아가자 다짐하였습니다. 또 언젠가 주저앉아서 그리워 하겠지만요. 
그간 저를 위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 중얼중얼 거립니다. 이럴 때면 내가 늘 떠올리는 구절입니다. 

Life has got to go on. 
No matter what happens, you've got to keep on going.
 (The streetcar named desire)

친구가 있는 곳...

우리동네 뒷산 등산길에, 21년 여름 친구의 발병 소식을 처음 듣고 많이 울었던 장소가 있다. 원래는 한강뷰를 보며 쉬는 장소였는데 그날은 그곳에서 많이 울었다. 이후로 그 곳에서 나는 쉬지는 못하고, 그 장소를 지날 때마다 화살기도를 한다. 친구의 쾌유를 빌었었고, 친구의 고통없는 시간을 위해 빌었었고, 이제는, 친구의 영면은 사실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그의 와이프와 자녀를 위해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것 뿐이라서. 나의 개인적인 상실은 그저 인생의 친구를 잃은 것이지만, 자녀들에겐 좋은 아빠를, 그의 와이프에겐 좋은 동반자를 상실한 것이니, 그들을 위해서 기도를 하게 된다. 

이영춘신부님을 2012.2.3일에 하늘나라로 보내드렸는데, 내 친구를 2022.8.16일에 하늘나라로 보냈네...

내가 많이 의지했었던 두 분이 나의 힘든 시기에 늘 밥 한끼 함께 해 주려고 해줬던 두 분이 서로 일면식은 없지만 하늘나라에서 자연을 벗삼아 즐거이 쉬고 계시길. 분명히 술 한 잔, 커피 한 잔, 즐겁게 나누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두 분 보고 싶네요.

Posted by Sophie03
[Story]2022. 1. 13. 18:52


우스운 이야기지만, 재정절약과 절식은 동시에 하는 게 효율적이다. 생각해보니 내 인생에서 가장 재정절약을 했던 때는 my own house 사려고 마음 먹은 그 때였다. 서른 중반, 결혼에 큰 뜻이 없던 나는 정신을 차리고 집을 사기로 했다. 그냥 이렇게 즐겁게 살다가는 명품옷 입고 폐지 줍는 할머니가 될 것만 같았다. CK 와 Theory 신상을 싹 쓸어오던 시절이다. 재정절약을 위해 옷 쇼핑을 끊고 나서 보니 나는 커피와 와인, 그리고 책 외에 지출이 거의 없었다. 
그 직전 해 쯤에 목의 건선이 나아지질 않다가 (항 히스타민을 바르면 나아지는 건 진정한 의미의 치유가 아니다) 요가 클래스 같이 듣던 아저씨가 자기는 아토피가 심했을 때 밀가루를 끊고 나아졌다길래, 그 날로 밀가루를 끊었었다. 나의 블로그에도 적었지만 밀가루를 끊는 일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떡볶이를 사랑하고 면류를 사랑하고 케익을 사랑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세상에 밀가루가 안 들어간 음식을 찾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밀가루를 끊는다는 것은 편의점에서 먹을 것이 거의 없다는 의미이고, 빵이나 라면으로 대충 식사를 떼울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군가와 식사 약속을 잡을 때 상대방을 당황시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아무튼 그래서 그 때 고구마와 계란을 주로 먹다가, 요가 선생님의 권유로 매일 올리브오일을 한숟가락씩 먹었다. 밀가루를 안 먹어 빵을 안 먹으면, 버터를 먹을 일이 없고, 그러니 몸에 기름칠 자체가 안 되어 삐걱거리게 된다. 또 밀가루를 안 먹으면 과자를 안 먹기 때문에 당을 섭취할 일이 급격히 줄어든다. 어느새 입맛 금욕의 시절이 오고, 커피와 와인 뿐 남는 것이 없다. 
그러다 보니 재정절약을 시작하고도 줄일 수 있는 것은 스타벅스 커피 뿐이었다. 커피만 들어있는 믹스로 바꿔서 마시게 되었다. 그리고 요가는 줄일 수 없으니 주 2회 요가는 지속했었다. 그러고 나니 나는 seed money를 모아서 my own house를 장만하였을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체중감량 또한 하게 되었다.

나의 월급을 놓고 봤을 때 나만을 위해 지출하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면, 요즘의 나는 크로와상과 바게트(이건 다 파리에 못 가서 인 듯 하다) 그리고 나의 아름다운 옷들을 체중 때문에 입지 못하여 대체제로 사는 후줄그레한 빅사이즈 옷인데 옷을 사도 행복하지 않다. 살 수 있는 옷들은 한정되어 있고, 내 옷장에 있는 옷들보다 당연히 안 예쁘다. 옷이 안 예쁘면 체중감량을 해야지. 두번의 임신으로 각 9킬로씩 얻었고, 코로나로 또 2-3킬로는 얻었다. 휴, 앞자리가 두번이나 바뀌었으니 당연히 무릎도 발목도 아프고, 몸이 자주 붓는다. 

아이둘 육아와 월급쟁이 일상 사이에서 나를 위한 짜투리 시간 밖에 주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냥 시작해 버렸다. 체중감량과 그로 인한 재정절약을. 

그 첫번째는 몸무게 매일 기록하기이고 그 두번째는 가계부 쓰기 이다. 가계부를 쓰면 무심코 휘리릭 결제하던 삶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내가 먹는 것을 적극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이 글은 다짐을 적어두기 위한 글이다. 나의 꾸준함을 불러내기 위해 작성하는 글이다. 경험상 꾸준함을 이기는 것은 없었다. 


 

위의 표 체중기입, 아래의 표 운동현황. 일단은 이 표를 연말까지 가지고 가는 게 목표. 

 

 

 

 

 

 

 

 

 

Posted by Sophie03
[Story]2018. 10. 25. 21:07



가을의 정중앙을 지나고 있다


따뜻한 티가 좋고
우유가 가미된 커피가 좋고 (플랫화이트, 카푸치노, 라떼)
차가운 바람과 따뜻한 햇살의 조합이 좋고
아직은 초록의 잎사귀와 노랗고 빨갛게 변화 중인 단풍들의 조화가 이쁘다.

​​​​​

아름다운 시간이 찰나의 순간처럼 지나가고 있다.


찬바람이 시작되는 이즈음에는 말을 하지 않아도 대화가 통하는 나의 사람들이 그립다.
샴페인 한잔을 마시고 거리를 걷거나
따뜻한 커피 한잔을 손에 쥐고 바람을 느끼거나
그저 거기에 존재해서 다행인 사람들,
그리고 그곳에 존재해 주었으면 하는 사람들.



간판없는 해리바의 인설오빠가 더 오래 생을 살아주었으면, 굴을 먹으러 가겠다고 전화하고 샴페인을 들고 갔겠지. 나의 단골 와인바. 오늘 퇴근길에 할로윈 장식을 보자 또 생각이 난다.



그래, 그러고 보면 자주 만날 수 없는 엘에이의 챌도 그곳에 존재해주는 것만으로도 좋다. 우리의 차가운 겨울 뉴욕을, 우리의 뜨거운 여름 엘에이를, 그리고 우리의 서늘한 가을 삼청동을 그리워 한다. 가을엔 늘 보고 싶은 챌.

그리고 나의 사람들!

Posted by Sophie03
[Story]2018. 9. 30. 22:53

아이와 사랑해 이야기를 하다가
엄마천사 라고 말하다가
삐삐였으면 1004네
38317도 있지 하고 갑자기 떠오름

눈오는 날의 종로도
노래방에서의 노래도
성년의 날의 꽃도
메세지는 38317로
모두다 아날로그처럼
유선전화와 삐삐로

초여름 노란 조명 아래 부슬부슬 내리던 비를 맞으며
통화를 하다가
기어코 잡았던 그 택시의 문을 열었다 닫으며
안녕했던 그 장면마저도
결국은 추억

이런 기억을 갖게 해줘서 고마운 사람
아름다운 사람으로 남아주기를,
행복하기를 기도하게 되는 사람

아날로그의 추억

Posted by Sophie03
[Story]2018. 9. 20. 13:13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

비엔나혼자여행 마지막밤

Sunset을 보기 위해 das loft에 와 있다.
한시간째 바깥을 보면서 하는 생각.


돈을 계속 열심히 벌어야겠다는 우스운 생각

그리고
5박 이라니,
여행으로는 너무 짧다는 생각으로 떠나왔는데

지금 이시간 불현듯
이번 여행은 이걸로 충분했다
라고 생각이 들었다

앉아서 보다가 아직 시청사에 안 간 것을 깨달았다
저녁을 어서 먹고 야경을 보고 갈까 하다가 (시청 광장의 야경을 사랑한다)
그냥 천천히 앉아서 쉬다가 천천히 걸어 숙소로 돌아갈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새로운 와인 한잔 더

오늘은 그냥 이걸로 충분하다
이번 여행은 그냥 이걸로 충분하다

나의 삼십대를 이제야 잘 보내줄 수 있겠다
수고했어 삼십대의 Sophie
이제 good bye!

이제 나의 사십대에게 say hello 할 때구나
이제 네달후면 한국에 사는 나는 마흔두살이 되는데, 그래도 이제야 웃으면서 나의 사십대를 맞이하기로!

싫어서라기 보다는 그럴 겨를이 없었다
그냥 Sophie의 시간
회사원도 아니고 누군가의 가족이나 엄마도 아니고
그냥 한 존재로서의 나의 시간

왜 굳이 비엔나인가.
일주일도 안 되는 시간이면 사실 그냥 가까운 곳 어딘가에 가야 하는 거 아닌가 스스로도 의문을 품었었다.

아마 이런 거 였다.
의식하지 않아도 아는 언어가 있는 곳 (해석하려고 노력하거나 사전을 찾지 않아도 그냥 아는 언어)
내가 이방인일 수 있는 곳
걸어서 지낼 수 있는 곳
성당에 들어가거나 미술관에 들어가거나 공원에 들어가거나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해도 되는 곳

아침에 슈테판 성당에서 미사를 보고 멍 때리다가 (기도를 하거나 생각을 하는 게 아니고 그냥 그렇게 있는 거) 내가 그리웠던 건 이런 공간 이런 시간 그리고 이런 나 였구나 했다.

19년만에 그래서 비엔나에 오게 된 이유.
14년만에 독일어권에 오게 된 이유.
5년만에 유럽에 오게 된 이유.

그리웠었다. 이런 atmosphere!
또 한동안 그리워하겠지만, 이번 여행은 이걸로 충분하다.

이렇게 나의 근속 10주년 35일 휴가 중 3/5이 마무리 되고 있다!

Posted by Sophie03
[Story]2018. 9. 11. 10:29

My KPI mid-term Review

올해가 3.7개월 정도 남았다.
중간 점검이라기엔 1/3 리뷰가 적정해 보이긴 하네!

http://sophie03.tistory.com/m/entry/Sophie’Story-MY-KPI

http://sophie03.tistory.com/m/entry/Sophie-Story-다시-반짝반짝-빛나는-존재-되기

연초에 작성한 글.
그러고 보니 나는 보통 나의 3월 생일을 기점으로 New Year’s Resolutions 을 작성하는데 올해는 빨랐다.

올해 3월 만 40세가 되어서 일수도,
올해 9월 딸이 만 3세가 되어서 일수도,
올해 7월 현 직장의 근속 10주년이 되어서 일수도,
그 모든 게 복합적이기도 하다.

그런데 갑작스런 실천은 거의 7-8월부터 였다.
회사 이슈가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내가 여전히 쳇바퀴 속에서 살고 있었고,
5월 보고부터 시작된 스트레스로 몸무게가 허용한도를 넘어섰고,
여전히 나는 시간 빈곤자 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갑자기 8월 첫주에 노탄수화물 10일 이후 저탄수화물을 시작했다. 그냥 갑자기 그래야 겠다고 결심하고 바로 실천에 옮겼다.
(그러다 갑자기 6월말부타 가계부도 수기로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래 그게 나의 장점이지. 오래 재지 않고 일단 시작하는 것. 일단 진행하면서 최적안을 찾는 것. 그게 내 장점인 것조차 잊고 있었다. 내가 나로 살기 어려웠구나!

이제서야 올해를 살아갈 방법을 찾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 이제서야 40대를 살아갈 방법을 탐구하기 시작한 느낌이다.

나는 사실 크게 의존적이지 않은 성격이라, 나 외의 사람들에게 기대도 없고 나 외의 사람들에게 바꿀 의지도 크지 않아서 여러가지 마음들을 덮고 그냥 나만 잘 추스리기로 마음 먹은 바도 크다. 더 크게 더 멀리 더 길게 바라보는 날이 언젠가 그에게도 올 수 있겠지만 그건 내 숙제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본인만의 숙제가 있고 탤런트가 있고 축복이 있고 어려움이 있다. 본인만의 숙제를 잘 풀어내는 것이 한 인간이 평생 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나는

재정적인 계산을 한다. 계획을 세우며 동시에 실행을 한다. 3월에 아마존 주식을 사고 싶다고 하는 동료의 말을 귓등으로 들은 나를 탓할 이유는 없고 연내에 꼭 사야지!

예쁜 몸매를 가질 궁리를 한다. 그래야 예쁘지 않은 새 옷을 사지 않고 (사이즈 때문에) 내 예쁜 옷들을 입을 수 있고 물론 건강해진다.

노탄수화물은 아니지만 노밀가루를 실천하기로 해본다.

어찌 되었든 이 모든 것은 나의 자존감을 되찾기 위한 나의 노력이다. 누군가 대신 해 줄 수는 없는 것. 그게 제일 중요한 것이다.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Sophie’ story] 38317   (0) 2018.09.30
[Sophie’ Story] say good-bye, say hello!  (0) 2018.09.20
[Sophie' Story] 다시 반짝반짝 빛나는 존재 되기  (0) 2018.01.13
[Sophie’Story] MY KPI  (0) 2018.01.05
[Sophie' Story] 마음의 병  (0) 2017.12.28
Posted by Sophie03
[Story]2018. 1. 13. 04:55

잠을 깨곤 다시 잠들지 못 하고 있다. 회사 업무도 해야 하지만, 나의 시간으로 쓰기로 했다. 이 이야기를 글로 적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이 아니면 글을 쓰기 어려우니까. 지난 번에 작성하다가 날라가 내용만 적어둔 글도 결국 새벽에 쓴 글이고, 그 이야기와도 연결되는 글이다. 

딸 11개월에 복직하고, 18개월이 흘렀다. 아슬아슬하게 일어서던 딸은 걷고 뛰고, 단어에서 문장을 말하고, 잘 웃고 자의식도 생겨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섭섭한 것도 생겼다. 반짝반짝 빛나는 하나의 주체가 되고 있다. 참으로 아름답다.

반면 나는 수분도 기름도 빠져버린 사람처럼 생기 없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주 4회 운동하던 나는 하루 만보 걷기에도 시간이 부족하고, 밀가루 단식을 하던 나는 어떻게라도 끼니를 떼워야 했고, 일년에 책 70권을 보던 나는 일년에 책 10권을 겨우 읽은 듯 하고, 한 때 반짝반짝 빛나는 존재였던 나는 더 이상 빛나지 않았다.

언젠가 회사 지인이 "너와 써니처럼 블링블링 빛나는 존재들은 결혼하지 않고 계속 반짝반짝 빛나줬으면 좋겠어"라고 이야기 했었는데, 결혼이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의 육아와 가정의 병행이 문제였던 것이다. 엄마도 아닌, 회사원도 아닌, 가정의 구성원도 아닌, 그냥 존재 자체로의 나로 존재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던 셈이다. 

늘 바쁘고 늘 힘들고 늘 버거운 그런 시간 속에 놓여져, 시간을 살아내지 못 하고 끌려만 가고 있으니, 하나의 주체로서 존재하기 어렵고 당연히 생기 없는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어쩌면 나를 각성시킨 것은,  2017년말에, 10분 정도 시간이 나는데 잠깐 볼까?하고 연락온 오래된 지인의 한 마디 때문이다. 둘다 회사원으로 이런저런 일들을 터놓고 지내는, 고등학교 동창인데, 오랜만에 보자마자 한 말. "귀걸이도 좀 하고" 

맞다, 귀걸이도 안 했다. 화장도 안 했고, 출산과 함께 불어난 몸무게는 아직 그대로라, 내 인생 최대 몸무게인(임신 시절 제외) 고등학교 3학년 떄 몸무게와 같다. 오랫동안 등산과 요가로 군살없던 몸매로 입을 수 있던 옷들은 디자인도 사이즈도 안 맞아 못 잊고 펑퍼짐한 옷을 입고 나는 살고 있었다. 

10대의 나를, 20대의 나를, 30대의 나를 기억하는 나의 친구는 여전히 그 때의 반짝반짝 빛나던 과거의 나를 내게서 보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 친구가 그 10분의 시간동안의 만남동안 나에게 2018년 KPI 따위 던져줄 의도는 없었을 것이다. 그냥 우리의 대화는 늘 휴대폰에서 시작해 휴대폰으로 끝난다. 오래된 친구만의, 오랜만에 만나도 안부 따위 묻고 그런 일 없이, 그냥 툭툭툭 대화하다가 미련없이 일어나는 그런 사이니까. 

그런데 나는 뒷통수를 맞은 것처럼 그랬다. 아, 맞다.


유사한 때의 어느 날, 나를 블링블링하다고 말했던  그 회사 지인이, 2017년초 면팀이 되고, 조직 이슈가 있었고, 기타 등등의 일들을 겪으며 2017년을 보냈는데, "돌아보니 내게 어떻더라", "지금 나의 고민은 뭐야"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지금의 관심사는 바로 당신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주제넘게 했었다. 첫번째 직업인 회사원 삶을 은퇴한 이후의 두번째 직업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지금 우리는 해야 한다고 그런 대화를, 써니와 함께 셋이 종종 했다. 그로부터 시일이 흐르고, 그 회사 지인은 "나는 OOO을 하기도 했고, 이미 시작했노라"고 이야기 했다. 

그 점심식사를 마친 이후 나는, 최근의 나는, 그런 이야기를 할 자격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과거의 내가 어땠노라 충고하였고, 그 회사 지인은 4살 어린 나의 그 충고를 받아들여 무언가 행동에 옮겼지만,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중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왕년의 내가 이랬노라" 이야기 하는 꼰대였다. 


어느 순간 모든 것이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의 딸은 반짝반짝 빛나는 주체가 되고 있고, 엄마의 관심과 사랑을 200% 갈구하던 아기 시절을 넘어, 때로 홀로 책을 보기도 하고, 놀기도 한다. 조만간 홀로 자신만의 세계로 들어가는 시간이 길어질 것이고, 자연스레 내 품을 떠나는 시기가 올 것이다. 순수하게 나라는 존재를 사랑하던 시기가 아쉽게도 그리고 당연하게도 끝나간다. 

그런데 나는 기초대사량이 떨어진 채로, 생기 없는 모습으로, 에너지원이 내부에 있는 사람인데, 그 내부를 마주할 여유나 마음이 없이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고 있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럴 수 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그런 나를 탓하거나 채찍질할 생각은 없다. 침잠하는 시간, 내가 나를 놓치는 시간이 언제나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여러 시그널이 나를 두들겨 깨우는 것이다. 나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남들이 내게 기대하는 "너다운 너"가 아닌, 내가 내게서 알아내는 "나다운 나"로 살아가야 한다고, 내 주변 많은 것들이 나를 일깨우고 있다. 


그러고 보니, 10년이다. 깊은 우울에서 빠져나와, 다시 생기발랄한 나로 돌아온 그 때가 2008년이었다. 그 해에 나는 다시, 운동을 하고, 이직을 했고, 선운사에서 템플스테이를 했고, 경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았고, 만 서른 살이 되었다. 삶이 즐거워졌고, 좋아하던 와인을 공부하게 되었고, 다시 책을 일년에 70권씩 읽었다. 

이번에 나는 어떤 2018년을 보내게 될까? 올해는 만 마흔이 되고, 입사 10주년이 된다는 점만 정해져 있다. (회사의 일들도 정해져 있다) 그 외의 대부분의 것들은, 결국 나로부터 시작된다. 다시 운동을 하고 다시 책을 읽고 다시 생기있는 존재가 되는 일이, 10년전과는 다른 상황에서 manage해야 하지만, 그래도 시작은 나다. 세부적인 KPI야 나의 다이어리에 적어두기로 하고, 너다운 너가 아니라, 나다운 나로 사는 것, 그래서 다시 반짝반짝 빛나는 존재가 되는 것이, 2018년 나의 목표이다. 


* 그래서 1월 첫 출근일부터 매일 화장도 하고 귀걸이도 하고 옷도 fit되게 입고 출근했다. 인스타에도 이런 메세지를 남겼더니, 뭐지, 이런 좋아요는 잘 없는 일!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Sophie’ Story] say good-bye, say hello!  (0) 2018.09.20
[Sophie’ story] My KPI mid-term Review   (0) 2018.09.11
[Sophie’Story] MY KPI  (0) 2018.01.05
[Sophie' Story] 마음의 병  (0) 2017.12.28
[Sophie' Story] 언어폭력과 항상심  (0) 2016.03.11
Posted by Sophie03
[Story]2018. 1. 5. 06:18

링크를붙여넣다가. 한시간반동안 작성한 글이 날라갔다.



이 사진으로 시작된 글. 그냥 요약만 하자면

- 현재의 나에 대한 상황 : 엄마인 나, 가족구성원인 나, 회사원인 나만 존재하고, 내가 존재하지 못하는 것. 내가 나를 혹사시킨 것.
- 인지된 기점 : 누군가에게 개인 KPI에 대한 mentoring 해주다가 내가 나의 KPI 를 선정하지 않은지 오래인데 주제 넘다.
- 반성과 What to do 중 나는 what to do 작성이 더 좋음 : 과거 지향적인가 미래 지향적인가의 문제 (사실은 회사 경영계획 작성하다 보면 연말에 작성하는 lesson learned와 중점 추진 과제, 연초에 작성하는 lesson learned와 중점 추진 과제. 결국 유사 의미의 네가지 표현을 만드는 게 싫어서 그럴지도)
- 그래서 KPI 는
•마음 : 내가 나를 돌보지않는 사이 자존감의 자리에 자리잡은 우울감 -> 다시 내가나를사랑할 필요
•몸 : 건강검진 결과 기반 근력 부족 해결 필요
•경제 : 사망 전까지의 경제적 자립 다시 준비 필요 -> expense 내역 명확화가 기본
•읽고쓰기 : 중요한 거. 내가 좋아하는 건데 계속 못 한 거. 다시 시간을 만들어서!
- 만 35세을 맞이하는 시점에 대대적 KPI setup을 했고 1-2년만에 대부분의 결과물 확인. 만 40세를 시작하는 시점인 올해도 또 해야지.
- KPI야 언제나 현실적인 가감이 있기 마련이지만 setup을 해야 그것도 가능. Setup과 Outcome 명확화가 원래 시작.
http://sophie03.tistory.com/m/entry/Sophie-Thinking-꿈꿔도-됩니다1
(이 링크 붙이다가 ㅠㅠ)

Posted by Sophie03
[Story]2017. 12. 28. 12:00

요즘 유독 이영춘신부님과 뽈리나언니 생각이 많이 난다.
샤이니 종현의 소식을 듣고는 이영춘신부님 생각이 더 간절해졌다. 타인의 삶을 살리는 일은 의외로 어렵고 의외로 간단하다. 내가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나는 그 터널을 다 빠져 나온 다음에야 알았다. 내가 그렇다는 것을 눈치챈 사람은 신부님이었다. 신부님이 자꾸만 전화해서 삼성동에 밥먹으러 와라고 하곤 했다. 나는 그 때 삼성에 다니며 너무 바빴는데, 자꾸만 오라고 자꾸만 오라고 했다. 저는 밥을 먹고 다녀요. 라고 대답할 만큼, 식사하는 내내 눈을 한번도 안 마주치던, 뽀족했던 나를 자꾸만 부르셨다. 뽈리나언니에게도 소피가 상태가 안 좋다고 걱정하시고 은진언니는 나를 자꾸만 그림을 보러 가자고, 이게 원래 네가 좋아하던 거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그림을 보러 다니고 밥을 먹으러 다녔다. 이 두 분이 나를 왜 자꾸만 괴롭히는가에 대해서 나는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아, 두분이 나를 살렸구나 했다. 그 때 산 그림을 보노라면 나는 그게 나의 목숨값임을 이제 안다. 그 때는 그냥 그 그림을 사야만 했다. 그 우울의 터널을 빠져나오기 위해 필요한 건 그냥 아무 말도 없는 식사였는지도 모른다. 아무 말도 없는 그림 보기였는지도 모른다. 아무 연락도 안 하다가 불쑥 신부님 잘 지내요 하고 물어보면 병원 응급실이던... 신부님은 어떻게 너는 늘 이럴 때 연락하냐 고 하시던, 그 신부님은 마지막까지 나를 환자 취급 하지 말고, 그냥 삶을 사는 사람으로 대해 달라시곤 하셨다. 그러고 보니 내가 아플 때 신부님도 나를 그냥 비비(안나)로 대하셨다. 그냥 이 시간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 정신 상태가 약해서라고, 배가 불러서라고 하지 않고, 아무 일도 없이, 아무 말도 없이, 따뜻한 밥 한 끼를 나누는 존재로, 그냥 함께 하는 존재로 그렇게, 다만 그런게 필요한 것 뿐. 내가 요즘 힘들어서, 고요한 30분의 시간을 갖다가 울컥 한 바로 그 순간부터, 문득, 인스브룩에 부재품 참석하러 신학생들 다 라이드해서 가는 중에 자리 하나 비니까, 너도 짐싸서 큰 길가로 나오라고 당일 오전에 전화해서 생갈렌에서 픽업해 주시던, 그 공기마저도 생각나는 그런 연말을 보내고 있다. 참으로 그리운, 그런 연말이다.


Posted by Sophie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