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2013. 9. 7. 00:19


벌써 가을바람이 부는 9월이다. 나는 곧 삼십대 중반이라고 더는 주장할 수 없는 영역으로 진입할 예정이다. 한살한살 나이 먹는 것을 세는 것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 학생일 때는 학년이 올라감으로 세월의 흐름을 측정했지만, 지금의 나는 세월의 흐름을 측정할 길이 없다. 부연하자면, 현재의 지인들은 아이들의 나이로 세월의 흐름을 측정하지만, 미혼의 나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도 내게도 시간이 흐른다. 불현듯 정신을 차려보면, 늦봄에 서 있거나, 한여름의 태양을 마주하고 있게 되다가, 기어이 가을이 오고야 만다. 찬 바람이 불게 되면, 나의 한 해는 무엇으로 세어낼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게 된다. 가을바람은 늘 우리를 사색에 젖게 만든다.


나도 세월의 흐름을 측정하기 위해 혼자만의 프로젝트를 늘 시행한다. 그저 잠을 자고 일어나 회사를 다녀오고 일년에 한번 휴가를 다녀왔다는 1년의 흐름으로는, 가을날에 늘 마음이 공허해지는 것 같아, 그저 잠을 자고 일어나 회사를 다녀오는 것 외에 스스로 꾸준하게 무언가를 한다. 그리고 그 무언가가 남기는 흔적들로 인해 나의 시간을 측정한다.


우선 나는 요가를 정기적으로 시작한지 이제 1년 9개월째에 접어들었다. 처음에는 선생님들의 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지만, 이제는 최소한 내가 무엇을 잘 못 하는지에 대해 알게 되었다. 윗등을 들어야 하는 순간에, "윗등"이 어디인지 몸으로 알게 되었고, 여름에 편두통이 올 때는 요가를 한 후에 찬물로 목을 차갑게 해 주면 진정된다는 것도 요가를 하며 알게 되었다. 편도선이 쉽게 붓는 나에게는 생각해보지 못한 사상의 전환이었다. 나열하자면 끝도 없지만, 어쨌든 나의 요가 나이는 이제 1년 9개월.


그리고 작년 11월부터 올리브 오일을 아침마다 2숟가락씩 먹고 있다. 담백한 식사를 좋아하기 때문에 몸에 좋은 오일을 섭취할 기회가 적으니, 음식과 함께 올리브 오일을 먹으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나는 회사에 출근해서 아침에 올리브 오일을 그냥 10개월째 먹고 있다. 재미난 것은 컨디션에 따라 올리브 오일의 향과 맛이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쓰거나 그냥 오일맛이거나가 구별이 된다. 내 회사 짝꿍은 그걸 어떻게 먹어요?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지만, 먹다 보면 그냥 먹을 수 있다. 올리브오일의 효능을 찾아보면, 보통 공복에 두스픈씩 먹으라고 되어 있는데(다이어트효과가 있다고 한다), 나는 아침을 먹고 회사에 출근해서 먹는다. 효능은 여러 지용성 비타민들이 많이 들어 있어서 좋고 노화방지 등이 좋다고 하는데, 내가 느끼는 가장 큰 효과는 배변활동의 개선이다. 원래도 문제를 지닌 것은 아니지만, 놀라운 효과를 보고 있다.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지만, 역시 쉬운 것은 아니니까, 일단 나라도 꾸준히 한다.


무엇보다도 최근에 화제가 된 것은 밀가루 끊기이다. 4일 후면 밀가루를 끊은지 7개월이 된다. 밀가루 끊기는 자주 글을 쓰기도 했으니까 더 언급할 것은 없지만, 재미난 것은 밀가루 끊기 때문에 내 블로그 방문객 수가 늘었다는 것이다. 인본주의자를 지향하는 나는 "삶 속의 인문학"이란 목적을 가지고 이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밀가루 끊기 이야기도 다분히 "+가 아닌 -를 실천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만, 실제로 블로그 유입 키워드에 "밀가루 끊기 효과"가 절대적으로 많다. 많은 분들이 밀가루 끊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보다 라는 생각을 하며, 보다 친절하게 효과와 방법을 설명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내가 시간에 나를 맡기지 않고, 스스로 시간을 살아내기 위해 하고 있는 최고의 프로젝트는 책 읽기이다. 대학생이 되었을 때도, 직장인이 되었을 때도, 늘 새로이 정한 것이 책읽기 이다. 읽은 책의 권수, 읽은 책의 종류, 다시 읽은 책 리스트를 보며, 나의 시간들을 기억하고 추억한다. 소장하고 있는 책 컬렉션이 아닌, 어떤 상황에 처해 있을 때 내가 읽었던 책의 가치는 생각보다 크다. 나는 여러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버릇이 있어서 작년 1~2월 펼쳐놓은 책만 6~7권 정도였는데, 2월초 지인의 죽음이라는 심리적 충격으로 인해서 그 모든 책을 접었다. 그리고 한달여 거의 책을 읽을 수가 없다가, 손에 잡힌 책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웃음』이었다. 실소를 금치 못한 것이 아니라, 신랄함과 자조가 주를 이루는 계산된 웃음 코드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다시 책 읽기 시동을 걸 수도 있었고, 정상적인 삶으로도 돌아올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구절?



"그런데 내가 아까 물어본 것에 아직 대답하지 않았어요. 당신이 보기에 인간은 왜 웃는 것 같아요?"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한다.

"이따금 우리의 생각이 명철해질 때면 세상만사가 사람들이 말하는 것만큼 심각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돼요. 그러면 갑자기 우리는 세상사로부터 거리를 두게 되죠. 우리의 정신이 집착에서 벗어나 초연해지면 우리 자신까지 조롱할 수 있어요."

"그럴싸한데요. 그건 동물들이 웃지 않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이기도 해요. 동물들도 고통을 겪지만 그런 방어 무기가 없죠."




웃음. 1

저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출판사
열린책들 | 2011-11-3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웃음의 성배는 어디에 있는가?베르베르 특유의 상상력이 탄생시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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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나는 계속 책을 읽고 있고 기본적으로 그 목표는 주1권의 책의 독후감 쓰기이다. 2013년 9월 6일 현재 나는 38권에 대한 독후감을 썼다. 사실 그 중 18권은 7,8월에 각각 9권씩 읽기는 했다. 어느 때는 책을 전혀 읽을 수가 없고 글을 많이 쓰거나, 많이 걷거나 하는 등의 부침이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그것 또한 나의 시간이니까. 


그리고 8월부터 새로이 시작한 프로젝트는 "딱한문장" 프로젝트이다. 나는 보통 책을 읽고 나면, 인상적인 문구들을 적어두거나 표시해 주고, 살면서 그 구절이 다시 읽고 싶어지면 다시 보는 습관이 있는데, 정말 "딱한문장"만 고른다면!에 대한 궁금증으로 시작한 프로젝트이다. 8월엔 9권의 책을 읽었고, 그래서 아직 #009인데, 하다보면 언제나 내가 그 때 왜 이 문장을 골랐을까 하는 역사가 쌓이게 될 것 같다. 지금의 내가 과거의 독후감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하듯이 말이다.







나의 시간도 그렇게 흘러간다. 캡쳐화면 중 #008 『여름거짓말』의 "딱한문장"에서처럼 행복의 양념을 위한 양념만을 모으지 않기 위해 나만의 시간을 측정하는 법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꾸준히 삶을 살아간다. 적다보니, 그저 살아가는 것 외에 또다른 시간측정법이란 그 누구에게도 없는 것 같기는 하다.




여름 거짓말

저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출판사
시공사 | 2013-07-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올 여름 놓쳐서는 안 될 걸작 중의 걸작” _SWR(Sudw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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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ophie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