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2013. 6. 26. 00:01



얼마전 우연히 케이블에서 섹스앤더시티를 보았다. 예전에 보았던 에피소드인데, 캐리의 서른다섯번째 생일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냥 친구들과 소박하게 저녁 먹고 싶어했지만, 결국은 좋은 곳을 예약해서 식사를 하기로 했고, 하지만 친구들은 다들 오지 않았고(이때는 휴대폰이 대중화되지 않았던 시절이다), 혼자 기다리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마지막에 친구들이 집앞으로 와서 카페에서 소박한 저녁을 먹고 그리고 미스터빅을 만나 종이컵에 샴페인을 마신다는 이야기였다. 


내가 한참 열심히 챙겨보던 십여년 전에는 이 에피소드를 잘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이번에 했다. 사실 나의 서른다섯 생일도 그냥 그렇게 보냈다. 생일이 이틀차이라서 늘 공동생일파티를 하던 친구는 불참한 생일파티가 그나마 가장 성대한 식사였고, 언제나 함께 하는 친한 동생도 출산하여 생일파티를 할 수 없었고, 또 다른 모임에서도 한 명의 출산으로 그녀의 조리원에서 얼굴 보는 것으로 대체하였다. 내가 소소한 생일파티를 원하기도 했지만, 사실 이런 것은 아니었다. 사실 오랫동안 함께 하고 있는 모임에서 결혼식을 하면 주는 축의금이 있는데, 만 서른다섯까지 결혼을 하지 않으면 기준금액의 110%를 축하금으로 주기로 이야기를 했었다. 그런데 재미나게도 그 모임이 자꾸만 밀리더니 내 생일파티도 없이 물론 그 축하금도 없이 지나가고 말았다. 이미 지나 버린 것, 그냥 다음에 받지 하고 두었다. 그러고 보니 이미 지나가버린 나의 서른다섯생일은 엉망진창이었다. 하다못해 캐리의 서른다섯생일처럼 샴페인도 없었다. 하긴 이십대의 축제를 기대할 수야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오랜만에 시집을 꺼내 다시 읽었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


최영미


물론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운동보다도 운동가를

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

그리고 외로울 땐 동지여!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

낮은 목소리로 사랑노래를 즐겼다는 걸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잔치는 끝났다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지갑을 챙기고 마침내 그도 갔지만

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지만

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다

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

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

그 모든 걸 기억해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걸


그가 부르다 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르리란 걸

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누군가 그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으리란 걸

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미리라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서른 잔치는 끝났다

저자
최영미 지음
출판사
창비(창작과비평사) 펴냄 | 1994-03-01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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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스물무렵이었을 것이다. 그 때의 나는 이 시가 운동가가 아님을 (물론 나의 세대가 운동의 세대가 아니므로 그렇게 이해했을 것이다) 서른 이후의 인생이 차분해짐을, 고요해짐을, 안정화됨을 기대하면서 책장에 시집을 꽂아두었을 것 같다.


그런데 서른 무렵에 나는 서른 이후의 인생이 차분해지거나 고요해지거나 안정화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이십대의 잔치가 끝나고 나서 오는 것은 그저 그런 일상임을 몸으로 알게 되었다. 소박한 저녁식사를 하고, 사람들이 떠나감을 순리로 여기며 나의 자리를 지켜내며 때로는 그 시간들을 버티어 살아내야 하는 것임을, 체화하게 되었다. 어느샌가 나도 그런 어른이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블로그에 이렇게 중얼중얼 종종 글을 쓰는 이유는, 그 어떤 삶도 틀린 것은 없음을 이야기 하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내가 지루하고 비겁한 어른이 되어 버렸을지 모르지만, 그런 나의 삶도 그저 다른 것일 뿐, 틀리지 않았다고, 그 누구의 삶도 스스로 지켜내고 있는 한 틀린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서, 우연히 섹스앤더시티의 에피소드를 보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엄마가 차려주는 이런 생일상을 먹는 행운아라면, 꼭 지루하고 비겁한 어른이 되지 않아도 될지도 모르니까, 오늘밤엔 엄마가 차려준 이미 지나가버린 나의 서른다섯살 생일상 사진이나 보고 잠을 청해야 겠다.




Posted by Sophie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