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brary]2014. 9. 24. 22:41

요즘 Facebook을 중심으로 "책리스트"가 유행 중이다. 아래와 같은 규칙이 있다고들 한다.


"규칙: 이 글을 보시고 나서 몇 분 동안이나 너무 오래, 그리고 복잡하게 고민하지는 마세요. 꼭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위대한 문학 저작만을 고를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어떻게든 당신에게 영향을 주었던 책들을 고르면 됩니다. 그리고 나서 '저를 포함한' 10명의 친구들을 태그해주시면 됩니다. 제가 여러분의 리스트도 볼 수 있게 말이죠."


나는 이 블로그의 애독자인 친구가 태깅을 하는 바람에 얼마전에 리스트를 아래와 같이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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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좀머씨 이야기
- SY에게 고등학생 때 선물로 받았던 책. 대학에서의 독문학 전공을 당연하게 만들어 준 책
- 특히 "Lass mich in Ruhe"(날 좀 내버려두란 말이요) 구절을 가끔 혼자 중얼 거린다.

2. 내 욕망의 리스트
- 몇년전 친구의 추천으로 읽고, 또 읽고, 결국은 소장하고 있는 책
- 어마어마한 로또에 당첨된다면...? 이라는 가정의 상황에 대해 여러번 생각하게 만드는 책

3. 보물지도 
- 투병중이시던 L신부님이 어느날 택배로 선물해준 책. 처음에는 이렇게 유치한 책을 왜? 하고 생각했었는데, 생각해 보니 나도 그렇게 살고 있는 부분이 있었다.
- 특히, 회사의 KPI는 스스로 기억하려 않아도 모두가 상기시켜 주지만, 개인의 KPI는 스스로 셋업하고 기억하지 않으면 없는 것이라는 구절은 최근 몇년 동안 가장 자주 생각하는 문구

# 일부러 나의 책장을 등지고 앉아 이 글을 작성 중이다. 책장을 보는 순간, 책을 못 고르고, 열 권을 골라내는 데 전력을 다할 듯 하다.

4. 연금술사
- 첫 직장을 그만 두고 대학원을 가게 되던 시절의 책이자, 스위스 교환학생 갈 때 성서와 함께 챙겨간 유일한 책.
- 행복의 비밀은 단 한 가지, 스픈 속의 기름과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보는 것을 동시에 지키는 것이라는 에피소드를 사랑하며, 바람과 대화하는 사막에서의 에피소드를 종종 떠올림. 

5. 장미의 이름
- 나의 지적 호기심을 언제나 자극하는 에코의 내가 처음으로 읽은 작품. 실제로 책을 읽으며 비밀의 방 그림을 정확히 그렸던 기억도 있음. 어쨌든 에코의 책을 한 권만 꼽아야 한다니, 이 책을 꼽을 수 밖에.

6. 나르시스와 골드문트
- 헤르만 헤세 또한 한 작품을 꼽아야 하니, 이 책. 한동안 일년에 한번씩 꼬박꼬박 이 책을 읽었다. 가장 절친한 친구를 혹은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지켜봐야 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내가 더 사랑하는 지도 모른다. 굳이 정하라면 나는 평범한 사람 쪽이니까.

# 정말 열권만 고를 수 있을까 내가? 

7. 불안
-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겪어야 하는 심리를 언제나 가장 잘 정리해주는 보통의 작품들 중에서도 불안은 내가 두번째 직장에서의 상황을 극복하는데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사실 에세이스트 로서의 보통과 소설가 로서의 보통을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그래도 한 권만 골라야 하니... 불안.

8. 달리기를 할 때 내가 말하고 싶은 것들
- 에세이스트로서의 하루키와 소설가로서의 하루키도 분리해서 생각해야 하는데, 어쨌든, 머릿속에 떠오르는 책이 이 책. 이 책을 읽을 무렵 내가 조깅과 마라톤을 열심히 해서 더 그럴지도 모르고, 또한, 일등이나 순위를 위해 열심히 하는 법이 없는 나는, 그저 하고 싶은 것을 꾸준히 할 뿐 인 사람이라 더욱 공감하게 된다. 

9. 분노하라
- 정확한 상대와 정확한 상황에 대한 분노. 우리에게는 그것이 필요. 회색영역에 속해있는 나로써는 사실상 행동하는 것이 가장 어렵기는 하지만 그래도 분노하라는 책으로 인해 조금 변화함. 

# 나는 사실 계속 책들이 생각나지만 룰은 룰이니까 10권까지만 적어야지.

10. 탈출기
- 구약성서의 두번째. 성서도 사실 한 권만 고르기는 힘들지만, 어쨌든 최근에 내가 가장 자주 생각하는 성서. Exodus from where가 아니라, Exodus for what이어야 한다는 삶의 철학을 나는 탈출기 덕분에 알게 되었다.

... 다 못 적은 책들이 너무 많아서 조만간 블로그 글을 이 주제로 써야 겠다고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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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작성하면서 다음 책으로 마음 먹었던 책들을 잊고는 새로운 책을 적고, 이 작가의 작품 중에 무엇을 선정해야 하지 고민하다가 또 새로운 책을 적고, 그리고 나서 생각해 보니, 이 리스트를 작성할 때마다, 리스트가 바뀌리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래서 일단 2014년 9월 22일에는 리스트를 이렇게 작성했다는 기록만 남겨두기로 했다. 


그래도, 아쉬우니까, 마음 먹었다가 다른 책들에 밀린 책들 제목만 적어두기로 한다. 불멸/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냉정과 열정 사이, 겨울일기 외 폴 오스터의 많은 작품들,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순간의 꽃, 모래의 여자, 단순한 열정... 제목만 쓰는데 또 머릿속에 책들이 떠올라... 

Posted by Sophie03
[Library]2014. 3. 18. 00:30





겨울이 내게 주는 어감... 차가운 마루바닥에 맨발로 서있는, 아직 오후의 시간에도 이미 어둠이 깔리는...


당신은 그런 일이 당신에게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일어날 리 없다고,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일어나도 당신에게만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일들이 하나씩 하나씩, 다른 이들에게 일어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당신에게도 일어나기 시작한다.

(중략)

이제 너무 늦기 전에 말해 보라. 그러면 더 이상 할 말이 남지 않을 때까지 계속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아니면 당신의 이야기는 잠시 밀어 두고 당신이 살아 있음을 기억할 수 있는 첫날부터 오늘까지 이 몸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기분이었는지 살펴보자. 감각적 자료들의 카탈로그랄까. <호흡의 현상학>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되겠다.

p7


나는 이 첫장을 넘어가기가 어려웠다. 36년의 시간을 살아오며, 내 삶이 내게 특별한 만큼, 딱 그만큼 세상에는 전혀 특별하지 않음을... 내게는 일어나지 않을 줄 알았던 일들이 일어나고, 당연히 나의 것 인줄로 알았던 것들이 내것이 아니었음을, 그런 인생의 힘을, 혹은 시간의 힘을 느끼고 또 깨달았었다.
폴 오스터는 현존하는 미국작가 중 내가 아주 좋아하는 작가이다. 십오년여 세월동안, 나는 내내 폴 오스터가 정말 그냥 미국인이라고만 믿고 있었었다. 미국적인, 너무도 미국적인. 그런데 그 "미국적인"이라는 것이 사실은 미국인에게 그런 순수함은 없었는데도, 나는 그냥 "미국인"(=황야의 카우보이 같은 아버지를 둔)이라고만 믿었었다. 유럽에서 온 유대인 아버지와 북유럽에서 태어난 어머니. 사실 폴 오스터의 나이에는 그것이 미국적인 것인데도, 나는 내내 카우보이를 떠올렸었다. 그리고, 이제야 알고 보니 그의 삶들이 그의 소설 속에 투영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과 상관없이 폴 오스터는 폴 오스터였다. 겨울일기 조차도 자서전이 아니라 소설 같았다. 여느 소설처럼 그의 삶이 투영되어 있는 한 편의 소설을 보는 듯한 그런 느낌이 자꾸 들어서 자서전을 빙자한 소설이 아닌가 하고 갸우뚱하곤 했다. 여러 매체들에 자서전이라고 소개되었지만, 결국 언젠가 사실 그건 소설이었다고 말하지 않을까 하고 의심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날 밤 식당에서 저녁을 먹은 후 종업원이 당신에게 와서 당신이 주문한 요리의 재료가 다 떨어졌다고 말하자 당신은 다시 거의 자제력을 잃을 뻔했다(방향을 잃은 고뇌가 가장 명확한 형태로 드러난 것이다. 당신의 눈가에 차오른 터무니없는 눈물을, 억누를 수 없는 감정의 상징으로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p156


이 문장이 어찌 자서전의 문장인가. 전형적인 폴 오스터의 작품의 문장인 것을. 그렇기에 읽으면서 소설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당신'으로 지칭되는 '폴 오스터'라는 인물에 감정이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평생을 살아오면서 죽 그랬다. 갈림길에 설 때마다 몸의 어딘가가 고장이 난다. 당신의 몸은 마음이 알지 못하는 것을 항상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전염성 단핵증이 되었건 위염이 되었건 심장 발작이 되었건 어떤 식으로 고장이 나건, 당신의 몸은 항상 당신의 두려움과 내적 투쟁의 날카로운 예봉을 견뎌 내고 당신의 마음이 견디지 못하거나 견디지 않으려 하는 타격을 받아 낸다.

pp77-78


그래서 당신의 인생에서 여러 장소들 사이를 오가느라고, 여기에서 저기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느라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는지 알려 줄 정확한 숫자는 고사하고 대략의 추정치도 낼 수 없다. 비행기, 버스, 기차, 차에서 보낸 어마어마한 시간들, 시차에 적응하느라 허비한 시간들, 공항에서 비행기 탑승 안내 방송을 기다리며 보낸 지루한 시간들, 수하물 컨베이어 벨트 옆에서 서서 가방이 굴러오기만을 기다리던 끔찍하게 지겨웠던 시간들, 하지만 비행기를 타는 것 자체만큼 당신에게 불안한 느낌을 주는 것도 없다. 비행기 안으로 들어설 때마다 어디도 아닌 곳에 있다는 기이한 느낌, 시속 8백 킬로미터로 나아가고 있는 비현실적인 느낌과 함께, 땅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당신 자신의 존재가 당신으로부터 천천히 빠져나가듯이 현실에 대한 감각을 잃어 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런 것은 당신이 집을 떠나려면 치러야 할 대가다. 여행을 계속하는 한 여기 집과 저기 어딘가 사이 어딘지 모를 곳은 계속해서 당신이 사는 곳들 중 하나가 될 것이다.

pp125-126


공포는 정신적 탈주로 표현된다. 당신이 사로잡혔을 때, 진실이 너무 견디기 버거울 때, 이 피할 수 없는 진실의 부정의함을 더는 직면할 수 없을 때, 그래서 유일하게 보일 수 있는 반응은 도망치는 것, 뒤틀리고 혼미한 상태의 숨을 헐떡이는 육체로 자심을 바꿈으로써 정신을 차단해 버리는 것뿐일 때 당신의 내면에서 자라나는 예상치 못한 힘이기 때문이다. 어떤 진실이 이보다 더 무시무시할 수 있으랴? 몇 시간, 며칠 내 죽음을 맞는다는 선고, 당신의 삶이 도저히 알 수 없는 이유로 중도에 뚝 끊어져 버린다는 말, 당신의 삶이 갑자기 몇 분, 몇 초의 심장 박동으로 축소되어 버렸다는 말.

pp174-175


소설이건, 소설이 아니건, 당신이 폴 오스터이건, 소설속 인물 당신이건 상관없이, 문장하나하나가 허투루 읽어넘길 수 없었다. 한문장한문장, 한단어한단어, 글의 시작에 적혀 있는 것처럼, 똑같은 방식으로 내게도 일어나는 일들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똑같은 방식이라고 말할 필요도 없다, 삶이라는 것이 다 달라 보여도 멀리서 보면 다 같이 보일 수 밖에 없으니까. 삶이 가지고 있는 아픔을, 고통을, 외로움을, 공포를, 두려움을 누군들 피해갈 수 있을까. 현재의 당신이 너무나 고통스러워도, 남들의 고통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고, 외로움을 피해낼 수는 없다고, 두려움을 어떻게든 몸이 받아내게 된다고. 결국 모두의 삶은 그런 것이라고, 겨울일기 속 당신에게 예순 네살의 폴 오스터는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그 시절이 다시 돌아오는 것을 보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해도 당신이 지나간 세월에서 그리워하는 것이 있다. 옛날 전화기의 벨 소리, 타자기의 딸깍거리는 소리, 별에 든 우유, 지명 타자가 없는 야구, 비닐 레코드판, (하략)

p197


이 문장들의 뒤에는 어디서든 흡연할 수 있었던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 나온다. 피식. 누구에게나 그리운 것은 다른 법이다. 나도... 가끔 옛날 전화기의 다이얼을 돌리던, 너무도 cliche적인 문구, '전화기의 다이얼을 돌리다'의 바로 그 행위가 그립다. 어렸을 때 전화걸 곳도 없는데, 그 다이얼을 끝까지 돌리는 것이 재밌어서 돌려보곤 했었다.
그래 그렇다, 내가 나이를 먹고 있다. 나와 몇년을 늘 생일날에 만나던 친구가 출산을 하고 2년간 생일에 못 만나고 있다, 앞으로도 생일당일날에는 당연히 못 만날 것이다. 생일당일날의 우리만의 ritual이 이제는 불가능한데도, 삶의 과정에서 이제는 끝난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이야기를 하는 친구의 메세지를 보고 눈물을 흘린다거나... 나의 칼같은 기억력이 예전의 기억력이 아닐 때 놀란다거나, 하면서 내가 나이듦어감을 느낀다. 젊음의 생기, 청춘의 아름다움은 이제 내 것이 아니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매력적이고 싶다, 사랑스러운 존재이고 싶다. 더는 반짝반짝 하지 않지만, 은은하고 고요하게 그렇게 살고 싶다. 아직은 늦여름의 내가, 가을로 접어들기 시작하는 내게 주는 미션이다. 그래서, 삶의 마지막이 내게 올 때, 그리고 그것을 내가 인지할 수 있다면, 그 때의 나도, 할 수만 있다면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기를... 하는 새로운 숙제를 얻은 듯 하다...


<주베르 : 삶의 종말은 고통스럽도다.> 틀림없이 지금보다 꽤나 더 나이를 많이 먹었을 그는 1815년에 예순한 살의 나이로 그 말을 쓴지 1년이 채 못 되어, 그는 삶의 마지막에 관하여 다르면서 훨씬 더 도전적인 어구를 적었다. <누구나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죽어야 한다(할 수만 있다면)>. 당신은 이 문장에, 특히 괄호 속의 말에 감동한다. 그 말을 보기 드문 세심한 정신, 사랑스러워진다는 것이 특히 나이든 사람은, 노쇠해져서 다른 이들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사람에게는 얼마나 어려운가에 대한 힘겹게 얻은 깨달음을 보여준다. <할 수만 있다면.> 어쩌면 그 마지막이 고통스럽건 고통스럽지 않건 마지막에 가서 사랑스러워진다는 것보다 더 위대한 인간의 성취는 없을지도 모른다.

pp231-232




겨울일기

저자
폴 오스터 지음
출판사
열린책들 | 2014-01-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호흡의 현상학을 통해 들여다본 폴 오스터 [당신]의 육체가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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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ophie03
[Library]2014. 3. 12. 00:25

바뀔 수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평정심
그리고 그 차이를 아는 현명함

- 영화 ‘까밀 리와인드’




‘까밀 리와인드’에서 주인공인 까밀이 어른의 모습으로 인생의 가장 중요했던 전환기였던 16세 고등학생으로 돌아가 그녀가 정말로 피하고 싶었던 사건을 되돌리기 위한 노력을 지속한다. 삶이 가장 반짝이던 시점의 (어른모습의) 까밀은 청춘의 수혜를 겪음과 동시에 되돌리고 싶었던 과거의 고통을 다시 겪게 된다. 물론 결국에는 (예상하는 바와 같이) 바꿀 수 없었던 그 시간들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제일 마지막에 나오는 어른인 까밀의 모습이다.

최근 일이년새 타임슬립을 주제로 다룬 이야기가 자주 나오고 있다. 그 방식도 다양해서 까밀의 경우는 신년의 카운트다운과 함께 시점도 모습도 본인이 원한 것도 아닌데, 어느 중요한 전환기로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돌아가게 되었고, 드라마 '나인'의 박선우(이진욱 역)는 향을 피우면 딱 이십년전으로 돌아가는데다가 이십년전의 시공간 속에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이 동시에 존재하게 되어(어린 선우의 입장에서는 현재의 자신에게 미래의 자신이 나타나는 것이기도 하다) 어린 자신과 통화도 하고,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는 가문의 남자들만의 능력으로 원하는 시점으로 그 시점의 모습 그대로 돌아가게 된다. 그런가 하면 기욤 뮈소의 신작 '내일'에서는 1년전 노트북 주인과 현재의 노트북 주인이 바로 그 노트북으로 이메일을 주고 받는다. 왜 요즘 이런 타임슬립 이야기가 자주 나올까.



우선 이야기 속의 인물들은 모두 바꾸고 싶은 과거가 있다. 돌이키고 싶은 시간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돌이킬 수만 있다면, 삶이 더 행복해지리라 믿는다. 그 믿음을 해피엔딩으로 보여준 것이 바로 '어바웃 타임'이다. 억지스러울 정도로 모두가 행복해진다. 그러면서도 마지막에 교훈을 준다. 그런 능력이 없는 것처럼, 현재를 충실하고 행복하게 살라고.



'어바웃 타임'을 제외하고는 막고 싶은 죽음이 있다. 그 죽음만 없다면 본인들은 행복하리라고 굳게 믿는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저지하려 하지만 막을 수는 없다. 당연지사이다. 자연사가 아닐지라도, 죽음이라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는 없다. 이렇게 적어 놓으니 또다시 염세적인 운명론자가 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 죽음은 인간이 관장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



죽은 자들은 살아있는 자들 가운데에서 가장 편집증적으로 이들을 갈구하는 자들에게 속한다. - 제임스 엘로이

『내일』, P209


죽은 자들은 이미 이승의 존재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은 자들이 이승에서 여전히 존재하는 것은 기억하는 자들의 존재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간을 돌이킬 수 있다고 믿는 인간들의 믿음 때문에 그들은 여전히 이야기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까밀의 어머니는 포근한 어머니의 모습 그대로 살아계시지만, 곧 뇌졸중으로 인한 급작스런 죽음을 예정되어 있다. 물론 그 죽음을 막아보려 까밀은 내내 애쓰지만, 건강 검진에서 예후도 발견되지 않았던 뇌졸중은 결국 까밀의 어머니의 목숨을 앗아간다. 시간을 거슬러 온 까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시간 조차도 인간이 거스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시간은 인간의 절대적인 주인이다. 시간은 인간의 창조자인 동시에 인간의 무덤이다. 시간은 인간이 요구하는 게 아니라 자기 마음에 드는 걸 인간에게 던져줄 뿐이다. - 윌리엄 세익스피어

『내일』, P99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만으로도 어떻게든 거스르고 싶은 것일 거라 생각한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안 되는 것에 대한 무한한 도전의식을 고취해 왔다. 자연도 거스를 수 있다고 믿는 자들에게 시간도 당연히 거스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들이 마지막에 입모아 이야기 하는 것, 현재에서 주위를 둘러보고, 자신을 돌아보라는 것, 현실을 충실히 살아내라는 것, 그런 교훈들을 주고 끝을 맺는다, 어차피 과거는 되돌릴 수 없으므로.

그런데, 서른 중반의 여전히 젊은 나는, 하지만 어릴 적부터 애늙은이로 불려온 나는, 언젠가의 글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나는 돌이키고 싶은 과거가 없다. 어느 시절로 돌아가 무언가를 바꾸고 싶은 과거가 없다. 과거의 실수가, 이별이, 독서가, 경험이 모여 지금의 나를 형성하였기 때문에, 과거의 어느 순간을 돌이킨다면 지금의 내가 아닐 것이다. 다만 내게 '어바웃 타임'의 남자들처럼 그런 시간을 지정할 수 있다면, 마냥 즐겁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 내 기억 속의 길에서 코스모스가 바람에 산들거리는 모습도 보고, 눈이 펑펑 내린 마당에 누워서 허우적 거리기도 하면서, 그저 웃고 싶다.

어느 날인가, 이런 과거로 돌아가 아무것도 바꾸지 않고 그저 행복했던 시절로 돌아가 웃다가 오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내가 역시 또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궁금해 했었다. 나는 왜 타임슬립을 꿈꾸지 않으며 돌이키고 싶은 과거가 없는가?

타임슬립 이야기가 많은 것은 현재가 힘들기 때문에, 우리의 현실이 버겁기 때문에, 과거에 어떤 일이 수정된다면 현재가 힘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믿음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나의 현실도 남들처럼 역시 버겁다. 하지만, 나는 어렸을 때부터 믿어왔다, 나의 과거가 곧 현재가 되고, 나의 현재가 곧 나의 미래가 된다. 그러므로, 과거를 돌이켜 현재를 좋게 만드려고 하지 말고, 곧 과거가 될 나의 현재를 행복하게 살아 미래를 반짝이게 만들면 된다고.

사실, 바로 지금, 내가 이 문장을 쓰고, 또 당신이 이 문장을 읽고 있는 바로 지금은 곧 과거가 되고, 1분후로 가정했던 나의 미래가 어느새 나의 현재가 되어 있다. 인간의 삶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지만, 또 동시에 연속선상에 존재한다. 과거의 나로 인해 내가 불행했다면, 현재의 나로 인해 미래의 내가 행복하도록 해야 한다. 어차피 시간이란, 돌이킬 수 없고, 우리는 시간의 주인이 아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세상에 타임슬립 류의 이야기가 나온다 해도, 결국 현재의 나는 현재의 나일 뿐이다.

글의 서두의 영화 ‘까밀 리와인드’에 나온 문구는 결국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문구이다. 두고두고 머릿속에 남아있더니, 알고 보니, Reinhold Niebuhr의 serenity prayer라고 한다. (원문출처 : 위키디피아)

God, give me grace to accept with serenity
the things that cannot be changed,
Courage to change the things
which should be changed,
and the Wisdom to distinguish
the one from the other.
Living one day at a time,
Enjoying one moment at a time,
Accepting hardship as a pathway to peace,
Taking, as Jesus did,
This sinful world as it is,
Not as I would have it,
Trusting that You will make all things right,
If I surrender to Your will,
So that I may be reasonably happy in this life,
And supremely happy with You forever in the next.
Amen.



기도문에서도 처럼 내세의 삶을 믿거나 혹은 믿지 않더라도, 바뀌어야 하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Courage to change the things which should be changed)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위해 가지고 있을 것! 결국 타임슬립 이야기들이 늘 현재에서 끝나는 이유는 바로 그런 것. 그리고 아마도 버거운 세상이 지속되는 한, 타임슬립 이야기는 한동안 계속 될 것이다.




까밀 리와인드 (2013)

Camille Rewinds 
8.7
감독
노에미 르보스키
출연
노에미 르보스키, 사미르 궤스미, 욜랭드 모로, 미셸 빌라모즈, 드니 포달리데스
정보
코미디 | 프랑스 | 115 분 | 2013-07-18
다운로드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

정보
tvN | 월, 화 23시 00분 | 2013-03-11 ~ 2013-05-14
출연
이진욱, 조윤희, 박형식, 전노민, 서우진
소개
박선우가 20년 전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신비의 향 9개를 얻게 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다룬 타임슬립 드라마.




어바웃 타임 (2013)

About Time 
8.6
감독
리차드 커티스
출연
레이첼 맥아담스, 빌 나이, 돔놀 글리슨, 톰 홀랜더, 마고 로비
정보
로맨스/멜로, 코미디 | 영국 | 123 분 | 2013-12-05





내일

저자
기욤 뮈소 지음
출판사
밝은세상 | 2013-12-1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사랑과 감동의 마에스트로 기욤 뮈소의 명품 스릴러 책장을 덮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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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ophie03
[Library]2014. 1. 8. 19:30


연말 대상 주기의 일환으로 '2013년 올해의 영화를 선정하였는데, 그 영광을 얻은 영화들.



대상의 이름은 "[내멋대로 2013년의 영화]와 내멋대로 한줄요약"이다. 


- 홀리 모터스 : 삶과 예술의 경계, 일의 자아와 그외의 자아의 분리가 가능한가? 아름답던 봄날의 잔인했던 영화
- 블루 재스민 : 버킨백과 진저백, 그 무엇도 자신을 보호해주거나 대변해줄 수 없다
- 미스터 노바디 :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자'의 '어떤 선택도 하지 않겠다'는 선택의 순간들
-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 여섯 살 아이의 세상은 어른들의 예상보다 더 견고할 수 밖에 없다, 그에겐 그것이 전부이기 때문. (모든 부모된 자들이 부러운 순간)

'2013년도 부지런히 여러 영화들을 찾아봤고, 사실 '2011년의 '그을린 사랑'만큼 큰 충격을 받지는 않았지만, 오랫동안 문득문득 떠올라, 나를 사로잡은 영화들로 선정하였다. 왠지 딱 한 편만 선정하기 어려워 무려 네 편이나 선정하고 말았다. 


'2014년은 어떤 영화들이 오래도록 나를 사로잡을지 기대된다!


Posted by Sophie03
[Library]2013. 11. 24. 01:02


블루재스민 이야기를 쓸까 말까 꽤 고민했다. 보통은 쓰려고 고민하다가 이래저래 살다보면 안쓰게 되는데, 이번에는 써도 될까?하는 의문이 들어서 고민했다. 늘 쓰려고 생각하면 떠오르는 첫문장이 "샌프란시스코가 아름답지 않았다"였고, 이후 이어질 이야기는 그야말로 "블루"하기 때문이다. 물론 머릿속에서 계속 의문을 던져주는 영화의 묵직감 역시 나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시작한다, 마침 지금의 나는 블루하다.



영화를 보고 샌프란시스코가 아름답지 않았다. 최근 유럽도시 3부작으로 설레게 만들던 우디 앨런이, 미국으로 돌아와, 샌프란시스코를 보여주는데 아름답지 않았다. 비단 진저가 차이나타운 부근에 살기 때문이 아니라, 재스민의 피앙세의 고급저택도 마음을 설레게 하지 않았다. 뉴욕도 마찬가지이다. 이상하게도 가상의 공간 같았지, 그곳이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 같지가 않았다.


재밌다. 다분히 동화적 스토리를 풀어낸 유럽도시 3부작은 현실속 바로 그 도시였는데, 너무도 현실적인 스토리를 보여준 블루재스민은 그저 뉴욕처럼, 샌프란시스코처럼 만들어놓은 세트장 같았다. 우디 앨런이 갑자기 우리를 붙들고 현실 세계로 돌아와 버렸다.




블루 재스민 (2013)

Blue Jasmine 
8.8
감독
우디 앨런
출연
케이트 블란쳇, 알렉 볼드윈, 샐리 호킨스, 바비 카나베일, 피터 사스가드
정보
드라마 | 미국 | 98 분 | 2013-09-25



서칭해 보면 이런 스토리로 영화를 소개해준다.


NEW YORK 명품을 휘감고 파티를 즐기던 뉴욕 상위 1%의 ‘재스민’! 사업가 ‘할’과의 결혼으로 부와 사랑을 모두 가지게 된 ‘재스민’. 뉴욕 햄튼에 위치한 고급 저택에서 파티를 열고, 맨해튼 5번가에서 명품 쇼핑을 즐기던 상위 1% 그녀의 인생이 산산조각 난다. 바로, ‘할’의 외도를 알게 된 것. SAN FRANCISCO 모든 것을 잃은 그녀, 화려하지만 우울하다! 씨네21


그런데 사실 샌프란시스코에서의 그녀는 화려하지 않다. 아니다, 그녀가 뉴욕에서는 상위 1%인지 조차 우리는 알 수 없다. 우디 앨런이 영화를 보는 동안, 진실이 무엇인지, 진심이 무엇인지,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재스민은 입양된 아이였고 자넷을 개명한 이름이다. 그녀는 졸업하기 전에 할을 만나 결혼했고 학위로 직업도 가지지 않고 유한 부인으로서의 삶을 살면 되었다. 뉴욕에서의 삶에서는 그렇게 많은 백을 들더니, 샌프란시스코로 와서는 오직 버킨백만을 들고 다닌다. 그녀가 지속하는 크고작은 거짓말들(자세히 밝히면 스포일러가 되니까)에는 늘 버킨백이 함께 한다. 그녀에게는 그 버킨백이 본인을 유일하게 지켜주는 방패였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녀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얹혀사는 동생의 이름이 진저라는 것도 재미나다. 버킨백을 포함한 에르메스 백들을 이미지로 프린팅한 백의 브랜드명이다. 진저는 늘, 내 형편에 나쁘지 않다, 내 상황에서는 이런 선택밖에 할 수 없다, 류의 말을 하면서 남자들을 만난다. 사실 진저는 늘 재스민에게 바른 소리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진저도 재스민과 유사한 삶을 살고 싶어한다. 그렇지만 스스로도 속이면서 상황에 만족한다, 그녀는 버킨백을 들 수 없으므로 진저백이라도 가져야 하니까.


사실 진저백이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굉장히 유머러스한 제품이다 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진저백 자체도 또 다른 차원의 구매욕과 명품욕구를 자극한다. 그렇기에 버킨백st.였던 진저백에도 진저백st.가 존재하는 것이다. st.는 결국 없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듯, 진실이 사실상 아무 소용이 없듯, 그래서 거짓이 난무하듯, st. 역시 계속될 것이다.


그렇다, 샌프란시스코의 재스민의 피앙세도 그랬다. 재스민의 진심 따위 볼 이유가 없었다. 재스민은 하나의 명품이었고, 그것을 확보하면 되는 문제였다. 알고 보니 재스민이 명품이 아니다 st.라서 화가 난 것이지, 재스민의 거짓말 자체에 화가 난 것이 아니었으리라. 


겉과 속, 진심과 거짓, 명품과 st. 그것의 구별이 가능한가. 


영화 속 마지막날, 재스민이 겨드랑이가 젖을 정도로 비틀비틀 걸어서 가던 때의 마음을 헤어릴 수 없으므로, 이후의 그녀의 변명을 이해할 수 없으므로, 살면서 계속 풀어야 하는 문제인지도 모른다. 역시 참 우리를 블루하게 만드는 재스민이었다. 


(첨언1. 나는 영화를 보면서, 지루하지도 않은데 자꾸만 시계를 봤다, 이 무거움에서 언제 벗어날 수 있나 하고. 한 호흡에 다 보기에는 영화가 무거워서, 중간에 끊어서 보고 싶을 정도의 그런 무게감이었다)


(첨언2. 케이트 블란쳇은 정말 최고였다. 그녀가 없었다면 만들어지지 않았을 그런 존재감이었다.)



Posted by Sophie03
[Library]2013. 11. 18. 23:36


내가 이 음악회를 간 것은 우연이었다.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이 포스터를 보고 (언제나처럼) 불현듯 예매했다.




나는 현악기를 좋아하지만, 바이올린 자체는 하이톤의 이미지가 강해서 독주를 듣고 싶은 마음은 사실 별로 없었다. 다만 그 유명한 파가니니를 연주하는데, "권혁주 Vs 파가니니"라는 슬로건에 취해 한번 가볼까 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나는 클래식에 대해 문외한이기 때문에 연주회는 대부분 우연히 "가볼까"하는 마음이 들 때 찾아가는 편이다. 

11월11일에는 운좋게 베를린 필하모닉 공연을 가게 되었고, 그 시간 역시 너무도 좋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토요일 오후에 예술의 전당으로 나들이를 가게 되었다. 


그런데 콘서트홀에 들어서니 덩그러니 의자 하나와 마이크 하나만 있었다. 그제서야 내가 무반주 독주회에 온 것이고, 90분동안 바이올린 소리만 듣게 될 것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공연 전에 내가 알고 있었던 것은 이 두가지 이다.



고난이도로 유명한 그의 <24개 카프리치오>의 악보를 본 당대의 바이올리니스트들조차 “이건 연주가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니콜로 파가니니 / 네이버캐스트 ☞ 전문)



휘파람소리 같은 하모닉스의 연속, 손에 쥐가 날 정도로 계속되는 트릴과 중음주법(두 세 음을 화음으로 한번에 연주하는 연주법), 활 털에 불이 날 정도로 튀겨대는 괴상한 운궁법 등 파가니니가 남긴 바이올린 악보를 보면 연주 불능에 가까운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중략) 

‘악마의 미소’라는 별명이 붙은 제13번은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중 24번과 더불어 가장 유명한 곡으로, ‘13’이란 숫자가 주는 악마적인 느낌 외에 3도 화음을 유지하며 쭉 내려오는 음형이 마치 악마의 기괴한 웃음소리를 연상시켜 흥미롭다. 마치 트럼펫의 팡파르와도 같은 14번의 매력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바이올린의 두 줄은 물론 세 줄도 한꺼번에 그어 연주해야하는 이 곡에서 트럼펫 주자들의 명쾌한 화음을 닮은 깨끗한 음색을 만들어내기란 쉽지 않다. 

(파가니니, 24개의 카프리스 / 네이버캐스트 ☞ 전문)



정말로 들어보니 그러했다.  파가니니 카프리스는 분명 바이올린 독주곡이고, 그래서 눈에도 딱 한 명의 연주자만 보이지만, 오케스트라의 소리 혹은 바이올린 서너대가 함께 연주하는 소리로 들린다. 그렇게 작곡한 파가니니도 대단하고 그런 연주를 정말로 하는 권혁주 연주자도 정말 대단했다.  




(이미지는 페이스북에서 다운 받았는데 아마도 리허설 당시에 찍은 사진인 듯 하다. 

출처 : Facebook Braum Page)




1부에는 1~13번의 곡을 연주했는데, 사실 연주자의 손가락과 활의 움직임만 눈에 보일 정도로 연주자의 움직임이 적었다. 이 바이올린리스트의 특징이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하고 인터미션 후 시작된 2부에서 연주자는 연주를 하며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생각했다. 아마도 1부의 그 적막감은 24곡을 혼자 연주해야 하는 책임감에서 기인했나 보다 라고.


나를 이 연주회로 이끈 것은 "20대 마지막"이 가지는 그 열정이었다. 20대를 마무리할 때의 그 느낌, 더는 청춘이 아니고, 더는 젊은이가 아니고, 더는 즐겁지 않을 것 같았던 그 느낌을 나는 기억한다. 삼십대 중반이 되고 나서도, 여전히 청춘일 수 있고, 여전히 젊은이 일 수 있고, 여전히 즐거울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 때는 나는 기어코 어른이 되고 말 것이라는 부담감, 그렇기에 가지게 되는 "20대 마지막이란 단어가 가진 열정"이 나를 공연장으로 이끌었는데, 정작 내가 공연에서 느낀 것은 책임감과 성실함이었다. 


권혁주 연주자는 바이올린의 신동이었다고 한다. 글 초반에 옮겨놓은 것처럼, 트릴이나 중음주법은 문외한이 들어도 정말 대단했다. 그는 처음부터 천재성을 지니고 이 세상에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내게는 자꾸만 뒤돌아보던 연주자가 마음 쓰였다. 이미지로 보이는 스크린에 새로운 곡이 시작될 때마다 곡명이 나오는데, 몇몇의 곡의 연주를 시작하기 전에, 연주자는 뒤로 돌아 그 스크린을 쳐다보곤 했다. 그 어느 다른 연주자와도 나누지 못하는 무대위에서의 고독함의 표출이었는지도 모른다. 바이올린의 신동이었어도, 그렇게 한 곡 한 곡을 손가락에 쥐가 날 정도로 계속 연주 하는 일, 카프리스 24곡, 한곡 한곡 꾹꾹 눌러 전곡을 연주하는 것은 천재성 덕분이 아니라, 고독의 순간을 성실성의 힘으로 눌러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연주를 듣는 동안 생각했다. 


그래서 손목이 아프도록 박수를 쳤다. 나와는 다른 "천재들의 세상"에 속한 연주자에 대한 환호의 의미보다는, 고독의 순간을 이겨낸 고마움의 의미, 너무도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준 감사의 의미가 컸다. 그래서 준비된 앙코르곡은 없지만 연주했던 곡중에 고르면 앙코르를 들려드리겠다는 멘트와 함께 낙점된 4번을 듣다가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1부 때 들었던 4번 연주에 비해 더 여유롭고, 아름답고, 풍부했다. 그 바이올린 연주가 주는 위안에 감동받았다. 나는 파가니니 연주를 들으러 갔다가 인생의 위로를 받고 돌아온 느낌이다.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권혁주 연주자가 십년후에 30대 마지막 파가니니 카프리스 전곡 연주를 해 주면 좋겠다. 그 때는 아마도 더 아름다운 전곡 연주가 될 것 이다. 삶이라는 시간 속에서 보다더 아름답게 변모할 연주자를 기대해 본다. 그리고 조용히 응원한다.



(이미지 출처 : Facebook Braum Page)





Posted by Sophie03
[Library]2013. 10. 30. 00:00


영화를 보고나서 가을밤길을 걸어오는데 불현듯 울컥하였다. 8살의 선택에 따른 인생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다가 불현듯...





영화 말미에 이르러서야, 왜 노인이 '미스터 노바디'인지 깨닫게 된다. 그리고 안나가 왜 니모를 첫사랑이며 마지막사랑으로 이야기 하는지 이해하게 된다.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고, 시간이 흘러가되 흘러가지 않는다. 올해는 '까밀 리와인드'나 '나인' 같은 타임슬립 류를 자꾸 보게 되더니, 10월말에 이르러서는 여러 차원에 동시에 존재하게 되는, 혹은 그럴 수 밖에 없는 '미스터 노바디'를 만나게 된다. (까밀 리와인드와 나인을 두고 글을 쓰려고 키워드만 준비해두었는데, 결국 미스터 노바디로 글을 쓰고 있다) 아쉽게도, 상영관이 적으므로, 흥행작이 되지 못할 것이므로, 그렇기 때문에 존재하되, 존재하지 못하는 "미스터 노바디"같은 영화가 될 것이므로, 그런 연유로 나는 글을 쓰고 있다. 


영화의 공식사이트(http://www.magpictures.com/mrnobody/#)에 가면 "미스터 노바디"에 관해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A young boy stands on a station platform. The train is about to leave. Should he go with his mother or stay with his father? An infinity of possibilities rise from this decision. As long as he doesn't choose, anything is possible. Every life deserves to be lived.


선택은 늘 어려운 것이다. 적절한 시기에 옳은 선택을 해야 한다는 중압감은 어른만의 것이 아니다. 어릴 때의 세상은 더 작고도 동시에 더 크기 때문에, 또한 옳다는 것에 대한 정의가 없기 때문에 더 어렵다. 사실 어른이 된다고 해서 옳다는 것을 명확히 아는 경우도 드물기는 하다. 


망각의 상징인 인중을 갖지 못한 니모는 과거를 기억하고 동시에 미래를 기억하기 때문에 어떤 선택도 하지 않은 것 혹은 하지 못한 것으로 나오지만, 사실 그것 역시 어떤 선택도 하지 않겠다는 선택을 한 것이다. 영화에서는 '츠쿠츠방'이란 체스용어로, 어떤 순간에도 말을 잃게 되는 순간에는 말을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사실 그제서야, 15살의 니모가 체스판을 앞에 두고 아버지와 대화를 할 때 왜 말을 넘어뜨렸는지 이해했다.)


삶을 지속해 오면서 어떤 선택도 하지 않겠다는 선택을 하고 살아가는 시기가 있다. 영화 속에서 화성에 가는 우주선을 타고 동면을 하듯이, 숨쉬기는 하되, 살아 있지는 않은 존재이기 때문에 아무런 선택도 하지 않기도 하고, 혹은 선택을 할 시기가 되지 않아 숨죽이고 선택하지 않기도 한다. 어쨌거나 선택이라는 것은 삶이라는 시간을 살아가는 동안에 작든 크든 언제나 시행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이 무슨 대수란 말인가? 118세의 니모가 이야기하듯, 각각의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옳은 것이다. 모든 길은 올바른 길이다. 모든 것은 다른 것일수도 있고, 그 의미보다 많은 걸 가질 수 있다. 


아마도 그래서 나는 울컥했을 것이다. 얼마전 누군가 "내게 좌절한 순간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는 좌절했습니다. 좌절하지 않을 만큼 안전한 선택만을 하고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요"라는 이야기에, 오랜만에 나는 내가 언제 좌절하였는가를 생각했었다. 오년쯤 전에 생각했었던 좌절의 순간과 지금 생각하는 좌절의 순간이 다르다. 그 사이에 좌절한 새로운 순간이 생겼다기 보다는 내 삶에 대해 조금은 너그러워졌기 때문인 것 같다. 스스로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should not을 반복하여 스스로 기죽이며 살던 모범생의 외투를 벗어 들고, 우연의 힘을 그리고 시간의 힘을 믿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이제서야, 뒤늦게, 강렬했던 선택의 기로에 선 과거의 나에게, 어떤 선택을 해도 다 괜찮다고, 혹은 어떤 선택을 하지 않아도 다 괜찮다고, 현재의 내가 이야기해 줄 수 있게 된 것 같다. 미래의 나도 현재의 나에게 그렇게 이야기해 주어야 할텐데... 8살의 니모의 세상에 안나와 엘리스와 진 이들 셋만이 존재했듯, 그렇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첫사랑이며 마지막사랑이었던 안나와 니모처럼, 현재의 나의 세상에 대해 미래의 나도 이해해 주겠지 뭐, 그러라고 이 글을 써두는 거니까.


 

Posted by Sophie03
[Library]2013. 9. 13. 21:00



써둔 글을 뒤로 하고, 70번째 글을 시작한다. 사실 글목록에서 69를 확인하고는 70번째 글을 멋지게 써야지 생각하고는, 환절기를 맞이했다. 내게 환절기란 휘리릭 스쳐지나가지 않고 확실히 본인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존재인데, 일단 체력적으로 쉽게 변화하는 환경에 변화를 못 해서 몸 구석구석이 이상신호를 보낸다. 그리고 옷을 좋아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의 옷은 환절기 옷이다. 골골 하면서도, 환절기에만 입을 수 있는, 아지랭이 같이 사라지는 짧은 순간을 빛나게 해주는 예쁜 옷들이 늘 나를 기쁘게 해 준다. 


어쨌든 거창하게 글을 써야지, 어떤 글을 쓸까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사무실에서 말고는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이유가 정확치 않지만, 허리쪽 근육이 뭉쳐서 앉았다가 일어나면 직립보행이 안 되서, 증언에 따르면, 뒷모습이 S라인이었다고 한다. 한의원 계속 다니고 찜질과 마사지 계속 해서 닷새 만에 직립보행이 가능해졌다. 그 사이에 거창하게 글을 쓰겠다는 다짐은 사라지고, 짧은 가을에 대한 단상들이 내게 다가왔다. (그런 생각들의 일부는 싱글의 시간측정법 첫 문단에 서술되어 있다) 더불어 회사의 상황들이 급히 변하면서 실질적으로 "나"란 사람이 주체가 아닌, 내 인생의 객체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닷새를 보내고 말았다. 


그래서 항상심에 대한 써둔 글이나 거창한 새 글 대신 이런 글로 70번째 글을 올리게 되었다. 삶이라는 시간 속에서 내가 주체가 되느냐 객체가 되느냐의 문제는 결론적으로 외부의 환경에 의한 것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살면서 휩싸이게 되는 많은 일들은 쉽게 스스로를 객체로 만들게 한다. 최근에 밤잠 깨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상황들은 내가 의도한 적 없는 상황들이고, 상황 내에서 "물리적으로" 내가 행사할 수 있는 권리가 크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는 쉽게 객체가 되어 이리쿵 저리쾅 하는 상처들을 얻게 되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내가 주체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나 하는 근본적인 의문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개개의 인간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염세주의자답게 그런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결국 개개인에게는 그냥 놔둘 것이냐, 사소하게라도 주체가 될 것이냐? 하는 문제만 남게 되는 것이다. 


염세주의자가 긍정적인 사람으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적어두었지만, 결국은 저런 생각을 한 후에 사소하게라도 주체가 되어야 겠다고 생각하는 편이기는 한데, 이번에는 별로 쉽지 않다. 이번 사건들은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되며, 때문에 그 스트레스도 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니까 말이다. 


그런 연유로 어제도 뒤적뒤적 시들을 읽다가 오랜만에 이 시가 마음에 들어왔다.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이어령

하나님,
나는 당신의 제단에
꽃 한 송이 촛불 하나도 올린 적이 없으니
날 기억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모든 사람이 잠든 깊은 밤에는
당신의 낮은 숨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너무 적적할 때 아주 가끔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기도 합니다.

사람은 별을 볼 수는 있어도
그것을 만들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별 사탕이나 혹은 풍선을 만들 수는 있지만
그렇게 높이 날아갈 수는 없습니다.
너무 얇아서 작은 바람에도 찢기고 마는 까닭입니다.
바람개비를 만들 수는 있어도
바람이 불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습니다.
보셨지요, 하나님
바람이 불 때를 기다리다가
풍선을 손에 든 채로 잠든 유원지의 아이들 말입니다.
어떻게 저 많은 별들을 만드셨습니까,
하나님
그리고 저 별을 만드실 때
처음 바다에 물고기들을 놓아
헤엄치게 하실 때
고통을 느끼시지는 않으셨는지요.
아 이 작은 한 줄의 시를 쓰기 위해서
코피보다 진한 후회와 발톱보다도 더 무감각한
망각 속에서 괴로워하는데
하나님은 어떻게 저 많은 별들을
축복으로 만드실 수 있었는지요.

하나님, 당신의 제단에 지금 이렇게 경건한
마음으로 떨리는 몸짓으로 엎드려 기도하는 까닭은

별을 볼 수는 있어도
그것을 만들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용서하세요, 하나님
원컨대
아주 작고 작은 모래 알만한 별 하나만이라도
만들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감히 어떻게 하늘의 별을 만들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이 가슴속 암흑의 하늘에
반딧불만한 작은 별 하나라도
만들 수 있는 힘을 주신다면

가장 향기로운 초원에
구름처럼 희고 탐스러운 새끼 양 한 마리를 길러
모든 사람이 잠든 틈에
내 가난한 제단을 꾸미겠나이다.

좀더 가까이 가도 되겠습니까, 하나님
당신의 발끝을 가린 성스러운 옷자락을
때묻은 이 손으로 조금 만져 봐도 되겠습니까.
아 그리고 그 손으로 저 무지한 사람들의
가슴에서도 풍금소리를 울리게 하는
한 줄의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단 한 가지만 청할 수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 되겠는가. 나는 내 삶에서 단 한 가지만 원할 수 있다면 무엇을 희망할 것인가. 주체가 될 것이냐 객체가 될 것이냐의 문제를 떠나서, 나는 무엇을 희망하는가. 


이 답을 찾는다면 나는 휘둘릴 이유가 없고, 밤잠 설치며 스트레스 받을 이유가 없다. 그 모든 것을 원하지 말고 단 한가지만 원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정의할 수 있다면 사실상 나는 자유로울 수 있다. 


고민은 밑도 끝도 없으나 늘 결론은 단순하다. 결국 삶이란 것은 69냐 70이냐 71이냐의 문제보다 훨씬 단순한, 단 한 가지의 희망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이번 환절기를 보내며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다. 재미난 우연이다.

Posted by Sophie03
[Library]2013. 9. 6. 00:34
어젯밤, 문득 가을이 오는 것에 대한 소소한 위로를 받고 싶은 욕심에 펴들었다가, 한겨울의 찬바람을 온 몸으로 느꼈다.



마종기 시인의 시를 읽다가 그런 느낌이 든 것은 처음이었다. 어쩌면 내가 좋아하는 "우화의 강"에 대한 강렬한 인상 때문에 바람이 더 차갑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삶이, 늘 익숙해지지 않는 것은 나혼자만의 상황이 아니구나, 하는 위로와, 최근에 내 마음 속에 찬바람이 불고 있었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나보다, 하는 생각이, 오늘밤 다시 시집을 읽으면서 들었다.

그래서 그 중 한 편을 기록해둔다.




익숙지 않다

마종기


그렇다, 나는 아직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익숙지 않다.

강물은 여전히 우리를 위해
눈빛을 열고 매일 밝힌다지만
시들어가는 날은 고개 숙인 채
길 잃고 헤매기만 하느니.

가난한 마음이란 어떤 삶인지,
따뜻한 삶이란 무슨 뜻인지,
나는 모두 익숙치 않다.

죽어가는 친구의 울음도
전혀 익숙지 않다.
친구의 재 가루를 뿌리는
침몰하는 내 육신의 아픔도,
눈물도, 외진 곳의 이명도
익숙지 않다.

어느 빈 땅에 벗고 나서야
세상의 만사가 환히 보이고
웃고 포기하는 일이 편안해질까.





하늘의 맨살

저자
마종기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2010-05-07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돌아갈 곳 없지만, 귀환을 꿈꾸는 삶의 노래!낮은 목소리로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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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ophie03
[Library]2013. 9. 1. 00:01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피쳐』가 베스트셀러가 되어 있을 때, 회사일로 무척 바빴고, 이런저런 여력이 없어서, 읽지 못했었다. 그리고는, 내 주변의 모두가 읽은 "너무나" 베스트 셀러일 경우에는 잘 안 읽게 되는 개인적인 특성에 따라, 읽지 않고 넘어갔었다. 그런데, 매번 신간이 나오는 더글라스 케네디가 궁금해져서,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2012년 9월에 『행복의 추구1,2』을 시작으로, 『모멘트』, 『템테이션』, 『리빙 더 월드』, 『파리 5구의 여인』, 『빅픽쳐』, 『더 잡』을 나열한 순서대로 읽었다. 『빅피쳐』는 2013년 7월이 되어서야 읽었다. 『빅픽쳐』도 『파리 5구의 여인』도 영화가 개봉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읽는 작품들이다. 특히 『빅피쳐』는 그동안 더글라스 케네디에 익숙해지기도 했고, 영화도 개봉한다고 하니, 이제 그 소설이 왜 베스트셀러가 되었는지 한 번 알아볼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나는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개봉한다고 하면, 소설부터 읽는다. 예외가 있다면, 해리포터는 1권만 그렇게 하고 늘 영화만 보거나, 둘다 건너 뛰었다. 영어로 읽어서 그런 면도 있지만, 해리포터는 이상하게 이미지가 상상이 되지 않아, 읽는 동안 애 먹었었다. SF는 상상이 되지만, 마법의 세계는 이미지화 할 수 없는 것이 나의 한계인가 보다 생각했었다.


다시 더글라스 케네디로 돌아와, 그의 작품들은 대개 비슷한 플롯의 구성이다. 잘 나가던 주인공이 어느날, 어떤 사건에 휘말려서야, 스스로는 모르고 있었지만, 본인이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었고, 그것을 깨달았을 때는 삶은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엄청난 절망의 순간이 오는데, 어떻게든, 살아지더라, 살게 되더라, 살아야 하더라, 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내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하는 일들이 주인공에게 일어난다. 

그런데, 오늘 글의 주인공인 『파리 5구의 여인』은 약간 다르다. 이제부터 스포일러가 될 것이니, 혹시 소설과 영화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읽기를 중단하여 주시기를 바란다.



파리5구의 여인

저자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출판사
밝은세상 | 2012-01-3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빅 픽처] 작가 더글라스 케네디의 로맨틱 스릴러! 아마존 프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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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시작할 무렵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우리는 현실에서 도피하려고 영화관을 찾지만 사실은 영화관에서도 현실을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영화 속에도 현실이 존재하기 때문이죠. 우리가 탈출하고자 하는 세계를 영화에서 다시 보게 되는 셈이랄까요."
우리는 삶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종종 도피를 시도한다. 누군가처럼 하루아침에 평생 동안 공들여 쌓아온 삶을 버리고, 갑자기 파리 행 비행기 표를 사기도 하는 것이다. (p9)



그런데 사실, 『파리 5구의 여인』은 소설 속에서나, 영화 속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초현실적 존재가 등장한다. 영화 속에서도 존재하는 현실이 소설에서는 초현실적인 존재로 등장한다. 삶을 옭아메는, 우연과 필연의 소용돌이에서 주인공은 정답을 찾을 수가 없다. 주인공에게 일어나는 비극들이 긴박하게 묘사되기 때문에, 소설을 읽는 동안, 갑갑한 숨이 차오르는 순간들을 몇 번 만나게 된다. 초현실적인 존재가 등장하므로, 어쩌면 현실에서 일어날 수는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주인공에게 일어나는 비극적 사건들은 또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는 현실성 때문에 읽는 동안 가슴이 답답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궁금했다. 영화는 이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긴박한 사건들, 복잡한 관계들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종종 소설을 영화화한 경우에는 그 관계들, 그 인과관계들, 주인공들의 심리 묘사 등이 삭제되고 시간이 단순하게 나열되어, 원작이 가지고 있는 무게감을 훼손하므로, 나는 사실 그 걱정을 하면서 영화를 봤다.




파리 5구의 여인 (2013)

The Woman in the Fifth 
6.4
감독
파웰 파울리코우스키
출연
에단 호크, 크리스틴 스콧 토머스, 요안나 쿨리크, 사미르 궤스미, 델핀 쉬요
정보
스릴러, 로맨스/멜로 | 프랑스, 폴란드, 영국 | 85 분 | 2013-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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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기대이상이었다. 복잡한 관계들을 단순화하면서도, 피할 수 없는 현실과 직면한 주인공의 심리를 잘 묘사했다. 에단 호크의 연기는 소설에서 느꼈던 갑갑함보다 더, 현실의 갑갑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본인의 가정을 파괴한, 본인 자신을 파괴한 그 비극을 어떻게 떠안고 살 것인가? 소설 속의 한 구절에 그의 답이 있다.



그렇다. 사람에게는 절대로 치유될 수 없는 비극이 있다. 다만 슬픔을 떠안은 채 적당히 적응하면서 살아갈 뿐이리라. 그러면서 차츰 상실감을 품고도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리라. (p190)



초현실적인 존재가 문제가 아니었다. 초현실적인 존재가 등장할 정도로, 그의 삶이 지속되는 동안 풀리지 않을 그의 비극은 그의 몫이 되었다. 소설에서는 사건 위주로 긴박하게 돌아가, 몇몇 구절로 그의 비극에 공감해야 한다면, 영화는 각색이 잘 된 시나리오로, 그리고 에단 호크의 좋은 심리 연기로, 그의 비극이 비단 그만의 비극이 아님을, 우리 모두에게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비극임을 보여준다. 특히, 마지막의 에단 호크의 이 표정은 사는 동안 종종 떠오를 것 같다.






그래서 혹시 더글라스 케네디를 좋아하신다면, 혹은 에단 호크를 좋아하신다면, 한번쯤 영화를 보실 것을 추천합니다. 소설은 읽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 그리고 소설의 표지 사진은 "파리 5구의 여인"과는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그에 비해, 영화 속의 크리스틴 스콧 토머스는 완벽한 캐스팅이다!

Posted by Sophie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