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brary]2013. 10. 30. 00:00


영화를 보고나서 가을밤길을 걸어오는데 불현듯 울컥하였다. 8살의 선택에 따른 인생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다가 불현듯...





영화 말미에 이르러서야, 왜 노인이 '미스터 노바디'인지 깨닫게 된다. 그리고 안나가 왜 니모를 첫사랑이며 마지막사랑으로 이야기 하는지 이해하게 된다.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고, 시간이 흘러가되 흘러가지 않는다. 올해는 '까밀 리와인드'나 '나인' 같은 타임슬립 류를 자꾸 보게 되더니, 10월말에 이르러서는 여러 차원에 동시에 존재하게 되는, 혹은 그럴 수 밖에 없는 '미스터 노바디'를 만나게 된다. (까밀 리와인드와 나인을 두고 글을 쓰려고 키워드만 준비해두었는데, 결국 미스터 노바디로 글을 쓰고 있다) 아쉽게도, 상영관이 적으므로, 흥행작이 되지 못할 것이므로, 그렇기 때문에 존재하되, 존재하지 못하는 "미스터 노바디"같은 영화가 될 것이므로, 그런 연유로 나는 글을 쓰고 있다. 


영화의 공식사이트(http://www.magpictures.com/mrnobody/#)에 가면 "미스터 노바디"에 관해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A young boy stands on a station platform. The train is about to leave. Should he go with his mother or stay with his father? An infinity of possibilities rise from this decision. As long as he doesn't choose, anything is possible. Every life deserves to be lived.


선택은 늘 어려운 것이다. 적절한 시기에 옳은 선택을 해야 한다는 중압감은 어른만의 것이 아니다. 어릴 때의 세상은 더 작고도 동시에 더 크기 때문에, 또한 옳다는 것에 대한 정의가 없기 때문에 더 어렵다. 사실 어른이 된다고 해서 옳다는 것을 명확히 아는 경우도 드물기는 하다. 


망각의 상징인 인중을 갖지 못한 니모는 과거를 기억하고 동시에 미래를 기억하기 때문에 어떤 선택도 하지 않은 것 혹은 하지 못한 것으로 나오지만, 사실 그것 역시 어떤 선택도 하지 않겠다는 선택을 한 것이다. 영화에서는 '츠쿠츠방'이란 체스용어로, 어떤 순간에도 말을 잃게 되는 순간에는 말을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사실 그제서야, 15살의 니모가 체스판을 앞에 두고 아버지와 대화를 할 때 왜 말을 넘어뜨렸는지 이해했다.)


삶을 지속해 오면서 어떤 선택도 하지 않겠다는 선택을 하고 살아가는 시기가 있다. 영화 속에서 화성에 가는 우주선을 타고 동면을 하듯이, 숨쉬기는 하되, 살아 있지는 않은 존재이기 때문에 아무런 선택도 하지 않기도 하고, 혹은 선택을 할 시기가 되지 않아 숨죽이고 선택하지 않기도 한다. 어쨌거나 선택이라는 것은 삶이라는 시간을 살아가는 동안에 작든 크든 언제나 시행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이 무슨 대수란 말인가? 118세의 니모가 이야기하듯, 각각의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옳은 것이다. 모든 길은 올바른 길이다. 모든 것은 다른 것일수도 있고, 그 의미보다 많은 걸 가질 수 있다. 


아마도 그래서 나는 울컥했을 것이다. 얼마전 누군가 "내게 좌절한 순간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는 좌절했습니다. 좌절하지 않을 만큼 안전한 선택만을 하고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요"라는 이야기에, 오랜만에 나는 내가 언제 좌절하였는가를 생각했었다. 오년쯤 전에 생각했었던 좌절의 순간과 지금 생각하는 좌절의 순간이 다르다. 그 사이에 좌절한 새로운 순간이 생겼다기 보다는 내 삶에 대해 조금은 너그러워졌기 때문인 것 같다. 스스로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should not을 반복하여 스스로 기죽이며 살던 모범생의 외투를 벗어 들고, 우연의 힘을 그리고 시간의 힘을 믿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이제서야, 뒤늦게, 강렬했던 선택의 기로에 선 과거의 나에게, 어떤 선택을 해도 다 괜찮다고, 혹은 어떤 선택을 하지 않아도 다 괜찮다고, 현재의 내가 이야기해 줄 수 있게 된 것 같다. 미래의 나도 현재의 나에게 그렇게 이야기해 주어야 할텐데... 8살의 니모의 세상에 안나와 엘리스와 진 이들 셋만이 존재했듯, 그렇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첫사랑이며 마지막사랑이었던 안나와 니모처럼, 현재의 나의 세상에 대해 미래의 나도 이해해 주겠지 뭐, 그러라고 이 글을 써두는 거니까.


 

Posted by Sophie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