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brary]2013. 11. 24. 01:02


블루재스민 이야기를 쓸까 말까 꽤 고민했다. 보통은 쓰려고 고민하다가 이래저래 살다보면 안쓰게 되는데, 이번에는 써도 될까?하는 의문이 들어서 고민했다. 늘 쓰려고 생각하면 떠오르는 첫문장이 "샌프란시스코가 아름답지 않았다"였고, 이후 이어질 이야기는 그야말로 "블루"하기 때문이다. 물론 머릿속에서 계속 의문을 던져주는 영화의 묵직감 역시 나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시작한다, 마침 지금의 나는 블루하다.



영화를 보고 샌프란시스코가 아름답지 않았다. 최근 유럽도시 3부작으로 설레게 만들던 우디 앨런이, 미국으로 돌아와, 샌프란시스코를 보여주는데 아름답지 않았다. 비단 진저가 차이나타운 부근에 살기 때문이 아니라, 재스민의 피앙세의 고급저택도 마음을 설레게 하지 않았다. 뉴욕도 마찬가지이다. 이상하게도 가상의 공간 같았지, 그곳이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 같지가 않았다.


재밌다. 다분히 동화적 스토리를 풀어낸 유럽도시 3부작은 현실속 바로 그 도시였는데, 너무도 현실적인 스토리를 보여준 블루재스민은 그저 뉴욕처럼, 샌프란시스코처럼 만들어놓은 세트장 같았다. 우디 앨런이 갑자기 우리를 붙들고 현실 세계로 돌아와 버렸다.




블루 재스민 (2013)

Blue Jasmine 
8.8
감독
우디 앨런
출연
케이트 블란쳇, 알렉 볼드윈, 샐리 호킨스, 바비 카나베일, 피터 사스가드
정보
드라마 | 미국 | 98 분 | 2013-09-25



서칭해 보면 이런 스토리로 영화를 소개해준다.


NEW YORK 명품을 휘감고 파티를 즐기던 뉴욕 상위 1%의 ‘재스민’! 사업가 ‘할’과의 결혼으로 부와 사랑을 모두 가지게 된 ‘재스민’. 뉴욕 햄튼에 위치한 고급 저택에서 파티를 열고, 맨해튼 5번가에서 명품 쇼핑을 즐기던 상위 1% 그녀의 인생이 산산조각 난다. 바로, ‘할’의 외도를 알게 된 것. SAN FRANCISCO 모든 것을 잃은 그녀, 화려하지만 우울하다! 씨네21


그런데 사실 샌프란시스코에서의 그녀는 화려하지 않다. 아니다, 그녀가 뉴욕에서는 상위 1%인지 조차 우리는 알 수 없다. 우디 앨런이 영화를 보는 동안, 진실이 무엇인지, 진심이 무엇인지,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재스민은 입양된 아이였고 자넷을 개명한 이름이다. 그녀는 졸업하기 전에 할을 만나 결혼했고 학위로 직업도 가지지 않고 유한 부인으로서의 삶을 살면 되었다. 뉴욕에서의 삶에서는 그렇게 많은 백을 들더니, 샌프란시스코로 와서는 오직 버킨백만을 들고 다닌다. 그녀가 지속하는 크고작은 거짓말들(자세히 밝히면 스포일러가 되니까)에는 늘 버킨백이 함께 한다. 그녀에게는 그 버킨백이 본인을 유일하게 지켜주는 방패였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녀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얹혀사는 동생의 이름이 진저라는 것도 재미나다. 버킨백을 포함한 에르메스 백들을 이미지로 프린팅한 백의 브랜드명이다. 진저는 늘, 내 형편에 나쁘지 않다, 내 상황에서는 이런 선택밖에 할 수 없다, 류의 말을 하면서 남자들을 만난다. 사실 진저는 늘 재스민에게 바른 소리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진저도 재스민과 유사한 삶을 살고 싶어한다. 그렇지만 스스로도 속이면서 상황에 만족한다, 그녀는 버킨백을 들 수 없으므로 진저백이라도 가져야 하니까.


사실 진저백이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굉장히 유머러스한 제품이다 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진저백 자체도 또 다른 차원의 구매욕과 명품욕구를 자극한다. 그렇기에 버킨백st.였던 진저백에도 진저백st.가 존재하는 것이다. st.는 결국 없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듯, 진실이 사실상 아무 소용이 없듯, 그래서 거짓이 난무하듯, st. 역시 계속될 것이다.


그렇다, 샌프란시스코의 재스민의 피앙세도 그랬다. 재스민의 진심 따위 볼 이유가 없었다. 재스민은 하나의 명품이었고, 그것을 확보하면 되는 문제였다. 알고 보니 재스민이 명품이 아니다 st.라서 화가 난 것이지, 재스민의 거짓말 자체에 화가 난 것이 아니었으리라. 


겉과 속, 진심과 거짓, 명품과 st. 그것의 구별이 가능한가. 


영화 속 마지막날, 재스민이 겨드랑이가 젖을 정도로 비틀비틀 걸어서 가던 때의 마음을 헤어릴 수 없으므로, 이후의 그녀의 변명을 이해할 수 없으므로, 살면서 계속 풀어야 하는 문제인지도 모른다. 역시 참 우리를 블루하게 만드는 재스민이었다. 


(첨언1. 나는 영화를 보면서, 지루하지도 않은데 자꾸만 시계를 봤다, 이 무거움에서 언제 벗어날 수 있나 하고. 한 호흡에 다 보기에는 영화가 무거워서, 중간에 끊어서 보고 싶을 정도의 그런 무게감이었다)


(첨언2. 케이트 블란쳇은 정말 최고였다. 그녀가 없었다면 만들어지지 않았을 그런 존재감이었다.)



Posted by Sophie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