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brary]2013. 11. 18. 23:36


내가 이 음악회를 간 것은 우연이었다.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이 포스터를 보고 (언제나처럼) 불현듯 예매했다.




나는 현악기를 좋아하지만, 바이올린 자체는 하이톤의 이미지가 강해서 독주를 듣고 싶은 마음은 사실 별로 없었다. 다만 그 유명한 파가니니를 연주하는데, "권혁주 Vs 파가니니"라는 슬로건에 취해 한번 가볼까 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나는 클래식에 대해 문외한이기 때문에 연주회는 대부분 우연히 "가볼까"하는 마음이 들 때 찾아가는 편이다. 

11월11일에는 운좋게 베를린 필하모닉 공연을 가게 되었고, 그 시간 역시 너무도 좋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토요일 오후에 예술의 전당으로 나들이를 가게 되었다. 


그런데 콘서트홀에 들어서니 덩그러니 의자 하나와 마이크 하나만 있었다. 그제서야 내가 무반주 독주회에 온 것이고, 90분동안 바이올린 소리만 듣게 될 것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공연 전에 내가 알고 있었던 것은 이 두가지 이다.



고난이도로 유명한 그의 <24개 카프리치오>의 악보를 본 당대의 바이올리니스트들조차 “이건 연주가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니콜로 파가니니 / 네이버캐스트 ☞ 전문)



휘파람소리 같은 하모닉스의 연속, 손에 쥐가 날 정도로 계속되는 트릴과 중음주법(두 세 음을 화음으로 한번에 연주하는 연주법), 활 털에 불이 날 정도로 튀겨대는 괴상한 운궁법 등 파가니니가 남긴 바이올린 악보를 보면 연주 불능에 가까운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중략) 

‘악마의 미소’라는 별명이 붙은 제13번은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중 24번과 더불어 가장 유명한 곡으로, ‘13’이란 숫자가 주는 악마적인 느낌 외에 3도 화음을 유지하며 쭉 내려오는 음형이 마치 악마의 기괴한 웃음소리를 연상시켜 흥미롭다. 마치 트럼펫의 팡파르와도 같은 14번의 매력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바이올린의 두 줄은 물론 세 줄도 한꺼번에 그어 연주해야하는 이 곡에서 트럼펫 주자들의 명쾌한 화음을 닮은 깨끗한 음색을 만들어내기란 쉽지 않다. 

(파가니니, 24개의 카프리스 / 네이버캐스트 ☞ 전문)



정말로 들어보니 그러했다.  파가니니 카프리스는 분명 바이올린 독주곡이고, 그래서 눈에도 딱 한 명의 연주자만 보이지만, 오케스트라의 소리 혹은 바이올린 서너대가 함께 연주하는 소리로 들린다. 그렇게 작곡한 파가니니도 대단하고 그런 연주를 정말로 하는 권혁주 연주자도 정말 대단했다.  




(이미지는 페이스북에서 다운 받았는데 아마도 리허설 당시에 찍은 사진인 듯 하다. 

출처 : Facebook Braum Page)




1부에는 1~13번의 곡을 연주했는데, 사실 연주자의 손가락과 활의 움직임만 눈에 보일 정도로 연주자의 움직임이 적었다. 이 바이올린리스트의 특징이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하고 인터미션 후 시작된 2부에서 연주자는 연주를 하며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생각했다. 아마도 1부의 그 적막감은 24곡을 혼자 연주해야 하는 책임감에서 기인했나 보다 라고.


나를 이 연주회로 이끈 것은 "20대 마지막"이 가지는 그 열정이었다. 20대를 마무리할 때의 그 느낌, 더는 청춘이 아니고, 더는 젊은이가 아니고, 더는 즐겁지 않을 것 같았던 그 느낌을 나는 기억한다. 삼십대 중반이 되고 나서도, 여전히 청춘일 수 있고, 여전히 젊은이 일 수 있고, 여전히 즐거울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 때는 나는 기어코 어른이 되고 말 것이라는 부담감, 그렇기에 가지게 되는 "20대 마지막이란 단어가 가진 열정"이 나를 공연장으로 이끌었는데, 정작 내가 공연에서 느낀 것은 책임감과 성실함이었다. 


권혁주 연주자는 바이올린의 신동이었다고 한다. 글 초반에 옮겨놓은 것처럼, 트릴이나 중음주법은 문외한이 들어도 정말 대단했다. 그는 처음부터 천재성을 지니고 이 세상에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내게는 자꾸만 뒤돌아보던 연주자가 마음 쓰였다. 이미지로 보이는 스크린에 새로운 곡이 시작될 때마다 곡명이 나오는데, 몇몇의 곡의 연주를 시작하기 전에, 연주자는 뒤로 돌아 그 스크린을 쳐다보곤 했다. 그 어느 다른 연주자와도 나누지 못하는 무대위에서의 고독함의 표출이었는지도 모른다. 바이올린의 신동이었어도, 그렇게 한 곡 한 곡을 손가락에 쥐가 날 정도로 계속 연주 하는 일, 카프리스 24곡, 한곡 한곡 꾹꾹 눌러 전곡을 연주하는 것은 천재성 덕분이 아니라, 고독의 순간을 성실성의 힘으로 눌러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연주를 듣는 동안 생각했다. 


그래서 손목이 아프도록 박수를 쳤다. 나와는 다른 "천재들의 세상"에 속한 연주자에 대한 환호의 의미보다는, 고독의 순간을 이겨낸 고마움의 의미, 너무도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준 감사의 의미가 컸다. 그래서 준비된 앙코르곡은 없지만 연주했던 곡중에 고르면 앙코르를 들려드리겠다는 멘트와 함께 낙점된 4번을 듣다가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1부 때 들었던 4번 연주에 비해 더 여유롭고, 아름답고, 풍부했다. 그 바이올린 연주가 주는 위안에 감동받았다. 나는 파가니니 연주를 들으러 갔다가 인생의 위로를 받고 돌아온 느낌이다.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권혁주 연주자가 십년후에 30대 마지막 파가니니 카프리스 전곡 연주를 해 주면 좋겠다. 그 때는 아마도 더 아름다운 전곡 연주가 될 것 이다. 삶이라는 시간 속에서 보다더 아름답게 변모할 연주자를 기대해 본다. 그리고 조용히 응원한다.



(이미지 출처 : Facebook Braum Page)





Posted by Sophie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