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nk+ing]2012. 12. 2. 00:50




고등학교 3학년 생일에 친구에게 선물받은 "좀머씨 이야기"로 시작된 파트리크 쥐스킨트(Patrick Sueskind) 읽기는 나를 전작주의자*로 만들었다. 바꿔말하면 내가 전작주의자가 되게 만든 작가이자, 전작주의자로서의 첫번째 대상이 된 작가가 쥐스킨트이다.


쥐스킨트의 모든 작품을 소장하고 읽고, "콘트라베이스" 공연을 보러 간다던가, "로시니 혹은 누가 누구와 잤는가 하는 잔인한 문제" 영화를 보러 간다던가, 등의 지지를 보내왔다.


그런데, 2000년에 향수가 번역되어 나오고,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영화가 만들어지고 한 이후에, 쥐스킨트가 사라졌다. 아무리 기다려도 다시 나타나지 않고 있다.


내가 쥐스킨트를 좋아하는 것은 그의 전 작품을 통틀어 나타나는 그의 사상이 좋아서이다. "God is in the details"를 떠오르게 하는  섬세함, 사소함, 열망, 집착 그리고 그것들이 응축되어 있다. 그런데도 늘 영혼이 살아 있다. 읽고 있노라면, 나는 이미 등장인물 바로 옆에서 숨소리를 듣고, 한숨을 느끼고, 절망을 흡수하게 된다.


작가가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에 더더군다나 그 등장인물들이 살아 숨쉬곤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완전히 사라지면 안 되고, 후속작들을 내주기만을 기다렸는데, 강산이 바뀌고도 그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때로 쥐스킨트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쥐스킨트를 그리워하고 있다. 예를 들어, "파트리크 쥐스킨트 돌아와요!"에 생각을 할 때면 "좀머씨 이야기"의 "Lass mich in Ruhe"('날 좀 내버려 두시오'로 번역되며, 독일어에서 'Ruhe'는 죽음에 가까운 고요를 의미한다.) 부분에 크게 감정 이입을 하면서 읽는다거나, 세상사 돌아가는 것을 볼 때면 읽게 되는 단편이 "깊이에의 강요"이다. 




깊이에의 강요

저자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출판사
열린책들 | 1996-05-0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깊이가 없다`라는 평론가의 말에 `깊이`가 무엇인지 구현하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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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는 전도유망한 아름다운 화가에게 평론가가 "그 젊은 여류 화가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고, 그녀의 작품들은 첫눈에 많은 호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그것들은 애석하게도 깊이가 없다"라고 이야기 한 이래로, 그 화가가 "깊이" 때문에 작품 활동을 하지 못하고 "깊이"에 집착하다가 결국은 자살하게 되는데 마지막에 그 평론가가 (본인이 그런 평론을 했다는 것을 까마득히 잊은 채) 이렇게 이야기한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젊은 사람이 상황을 이겨낼 힘을 기르지 못한 것을 다시 한번 다같이 지켜보아야 하다니, 이것은 남아 있는 우리 모두에게 또 한번 충격적인 사건이다. 무엇보다도 인간적인 관심과 예술적인 분야에서 사려 깊은 동반이 문제되는 경우에는, 국가 차원의 장려와 개인의 의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러나 결국 비극적 종말의 씨앗은 개인적인 것에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소박하게 보이는 그녀의 초기 작품들에서 이미 충격적인 분열이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사명감을 위해 고집스럽게 조합하는 기교에서, 이리저리 비틀고 집요하게 파고듦과 동시에 지극히 감정적인, 분명 헛될 수밖에 없는 자기 자신에 대한 피조물의 반항을 읽을 수 있지 않은가? 숙명적인, 아니 무자비하다고 말하고 싶은 그 깊이에의 강요를?" (pp16~17)



현대의 우리에게 깊이에의 강요는 이미 폭력이다. '나는 가수다'는 예능 프로그램인데, 가수들에게는 "예능출연자"다운 즐기는 모습 없이 긴장한 피순위자의 모습만 보여진다. 올림픽의 선수들에게 스포츠는 그들의 인생인데 여러 차원의 깊이에의 강요들이 이뤄진다. (예를 들어 축구의 독도 사태나, 손연재의 출국 취소 같은 사건들) 정치에서도 직장에서도, 무의미한 그러나 무자비한 깊이에의 강요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 순간이 감지될 때면 나는 쥐스킨트를 떠올린다. 사회 전반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깊이에의 강요에 대해, 그리고 쥐스킨트의 부재에 대해,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쥐스킨트가 왜 사라졌는지는 알 수 없다. 어떤 기나긴 Ruhe 속에 존재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생각한다. 섬세함으로 열망을 집착으로 보여주는 쥐스킨트라는 작가가 새로운 사소함으로 돌아와 주기를!


파트리크 쥐스킨트 돌아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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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작주의자는 사전에는 나오지 않는 단어로 한 작가의 전 작품을 소장하고 읽어 한 작가의 흐름을 읽어내는 사람을 의미함.  

이는 '전작주의자의 꿈' 을 읽으면서 알게 된 단어로,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책 읽기 성향이 전작주의자의 성향과 유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음.



전작주의자의 꿈

저자
조희봉 지음
출판사
함께읽는책 | 2003-01-22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현직 헌책수집가의 숨은 책 이야기. 한 작가의 모든 작품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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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ophie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