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nk+ing]2020. 2. 22. 03:36




엄마가 집에 있으니까 좋아?
응 좋아 유치원에 다녀왔을 때 엄마가 있어서 좋아.
그럼 엄마 언제 회사 갈까? 봄에 가? 여름에 가? 가울에 가?
그 중에 제일 늦게 가는 건 언젠데?
가을
그럼 가을에 가. 그 전에 가면 엉엉 울거야.

—-

엄마 아기 좀 맡기고 회사에 가
엄마 회사 가보고 싶어? (얼마전에 회사에 가보고 싶다는 대화를 나눈 적 있다)
아니 엄마 회사 다녀오라고
왜?
엄마 회사 못 갈까봐 그래

—-


2000.11.20.
내 인생의 첫 출근 날. 대학원 다닌 기간 외엔 언제나 직장인이었다. 첫번째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두번째 출산휴가와 육아휴직(현재 status)도 있지만...

첫 직장을 다니면서 생각했다. 직장 생활은 이십년만 하겠다고. 어느덧 스타트한 시점부터의 이십년이 코앞이다. 매년 기념일에 혼자 생각한다. 나는 잘 해 오고 있나. (열심히는 내 모토가 아니다. 잘이 내 모토이다)

그런데 요즘은 이십년 말고 더 다녀야 겠구나 생각한다. FIRE족이 못 된 것도 있지만. 이제사 여자매니저가 아닌 그냥 매니저가 되었는데, 내가 조금더 있으면 나의 후배들이, 그리고 내 딸들이 좀더 덜 버텨도 되겠구나 싶어서.

평생 명함을 가진 사람으로 살 거라고 나의 엄마에게 말했던 그 다짐대로, 이십년보다는 더 다녀야겠다. 우리/미래를 위해서.

* 우리의 어록에서 시작한 글이지만 직장 이십년 이야기라 이 폴더에!

Posted by Sophie03
[Think+ing]2020. 1. 4. 01:53
강익중님 작품은 원래 저 자리가 아닌데 첫째의 활동반경이 확대됨에 따라 피신...


2019년은 예상치못한 둘째의 임신과 출산이 제일 큰 일이었다. 첫째의 갑작스런 유치원 입학과 적응과정, 직장에서 의지하던 두 사람의 퇴사도 있었고, 친구의 (아직도 단어를 적는 게 어려운...) 영원한 떠남도 있었고. 그래도 마흔두살 임신의 과정, 출산의 과정, 그리고 이미 시작된 양육의 endless race가 제일 큰 일이다. 솔직히 임신을 알게 된 3월엔 한숨이 더 나왔고, 첫째가 짠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그 때부터 간절히 자매이기를 기도했었고 건강하기를 기도했었다. 그러다가 키우던 난이 일곱송이 난꽃을 피우는 걸 보고 어느 정도 걱정을 접었다. (나는 단순한 인간이다)

이제 기적같이 우리곁에 와서 꼬물거리는 둘째를 보노라면, 그리고 둘째를 사랑하는 첫째를 보노라면, 앞으로의 양육이 무척이나 두려우면서도, 축복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오늘 첫째 우리가 한 말.
“미래는 우리 가족 중에 나를 제일 좋아해. 자다가도 내 목소리를 들으면 내가 좋아하는 언니다 하면서 깨잖아” &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건 알겠는데 나보다 미래를 더 사랑하는 건 아닌가 생각해”
“아니야 미래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그렇지. 우리는 4년 한달 그리고”
“19일”
“그래 그만큼 엄마가 우리만 예뻐했는 걸. 미래는 그런 시간이 없잖아”
“그런가”

아직 언제 복직할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친절한 엄마 되기, 나의 이름을 잃지 않기(내 인생의 장기적인 모토. 의식하지 않으면, 생각보다 회사나 가정, 관계에 쉽게 매몰된다) 이 두가지 과제를 안고 2020년을 맞이한다. 새로운 decade!

 

 

 

Posted by Sophie03
[Think+ing]2019. 10. 15. 04:56




여름 가을 나는 두 명의 ‘그녀’를 떠나 보낸다 한 명은 친구 (사진의 그녀의 인스타) 한 명은 설리
아쉬운 것은 친구의 떠남이나 미안한 것은 설리의 떠남이다
친구의 인생이, 그녀의 소울메이트인 친구와 이야기했듯이, 늘 마지막이 없는 것 같은 YOLO의 인생이었음을 알기 때문에, 친구로써는 아쉽지만, 왜 하필 차가운, 머나먼 남아공 바다였니 하다가도 그녀가 무엇을 보고 싶었나 찾아보니, 마지막조차도 참으로 그녀답다 싶다. 언젠가 프로필 사진 (승무원 프로필 사진 같은)을 찍었을 때 왜? 냐고 물었더니 가장 젊은 날을 기억하고 싶었다고 대답했던 그녀. 이제와 나는 나도 그런 용기를 못 내서 아쉬워 한다. 이제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함을, 그녀의 삶을 곁에서 지켜보지 못함을 아쉬워 한다. 그 사고가 화나지만, 그녀의 마지막이 애통하진 않다. 그녀의 삶도 치열했으며, 더불어 아름다웠고, 그리고 그것은 그녀의 최선이었으리라.
그리고 어제 오후의 그녀. 그녀와 일면식도 없고 그녀의 팬은 아니었지만 그녀를 조용히 응원한 사람으로 애통하다. 잘 견뎌주고 있는건가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런 target이 되어야 했는가, 무엇을 잘못 했는가, 끊임없이 곱씹었을 그녀의 시간들에 가슴이 아프다. 젊디 젊은 그녀의 “젊음의 아름다움”이 이렇게 사그라들게 된데는 우리 모두의 크고 작은 책임이 느껴진다. 미안한 마음이 든다.
뜨거웠던 여름날의 친구와의 안녕, 차가운 바람이 부는 가을날의 그녀와의 안녕.
나의 친구, 그곳에서도 행복한 뜨거운 시간을 보내며 특유의 웃음을 호탕하게 웃고 있기를.
오늘의 그녀, 그곳에서는 상처받지 않기를, 자신을 잃지 않기를.
새벽잠을 깨 두 “그녀”의 영혼을 위해 짧은 기도를 한다.

Posted by Sophie03
[Think+ing]2019. 1. 2. 19:28



딸이 드디어 떡국을 먹었다(지만 떡보다 만두를 먹었다. 만두도 안 먹다가 이제사 먹는다) 그렇게 딸은 세돌 지만 다섯살
나는 마흔이지만 마흔두살이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생일 지나야 나이 먹는 걸로 정하긴 했다. 고등학교 절친 송년회에서 14년 고등학교 후배와 회사에서 절친이라고 했더니 친구들이 의심했지만 진짜 그렇긴 하다


결국 나이보다는 정신이며, 낡아지지 않는 것. 낡아지지 않기 위해 시간을 내는 것, 나의 존재를 소중히 여기는 것,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것.

그게 나의 인생의 모토이며 동시에 2019년의 모토이다.

나이를 잘 먹는 것, 그러기 위해 몸도 마음도 정진하는 것.

언제나 수련중인 것은 요가 뿐 아니라 인생 전반에 거쳐 다 적용되는 이야기

Happy New Year!

(인스타그램에 올린 짤막한 신년인사)

Posted by Sophie03
[Think+ing]2018. 12. 4. 19:30

그리운 신부님
12월이 되면 그토록 연락이 닿지 않던 신부님 생각이 난다 . 12월말에 병원에서 만난 신부님은 진통제를 먹을까 말까의 고민이 대림절 묵상이었다고 농담을 하셨었다. 그게 신부님과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이후에 차가운 병실 복도에서 서성이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상하게 올해 그 기억들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러다 읽은 글.
그리운 신부님

Posted by Sophie03
[Think+ing]2018. 11. 27. 05:01

언제나 마음 속에 있는 시리즈글. 꿈꿔도 됩니다 중 이 질문이 들어간 글​의 revise.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 3가지는 무엇입니까?"

이질문에 만 마흔의 나는
하늘(로 통칭되는 자연/ 그 모든 것을 포괄하는 하느님)
우리(로 통칭되는 가족)
그리고 나. 라고 대답하게 되었다.

언젠가부터 “나”가 그 위치를 차지하게 된 점에 나는 사실 감사하다. 그냥 나를 괴롭히지 않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이제사 더 부지런하지 않아도 더 똑똑하지 않아도 더 아름답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의 나도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지나고 보면 고등학생 시절 친한 후배들이었던 그들의 말 “누나가 얼마나 사랑스러운데요” 이 헛말이 아니었음을 이십년도 더 지나서야 깨닫는 내가 한심하기도 하지만 그게 나인 걸 뭘.

오늘도 천천히 나에게로 한 걸음 다가온다.

덧) 위 글의 B씨는 여전히 똑같은 저 항목을 읊었다. 사람(가족)이 되었고.

덧) ​



하늘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 멋진 세상

Posted by Sophie03
[Think+ing]2018. 4. 5. 09:18



아이가 생기니 내가 워킹맘이 되고, 요즘 주변엔 워킹대디도 있는데 언제나 용어는 워킹맘 뿐.
서울시에서 시행하는 역세권 청년주택에서 말하는 “이젠 안심하고 편히 키우세요”는 맘 대상인가? 어째서 카페 이름이 유아카페/어린이카페도 아니고 맘스카페인가?



그리고 이 정책 관련된 기사.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0&aid=0003138668

맞벌이 중 퇴사는 여자가 더 하니 엄마는 경력 단절이 되겠지만, 아동은 돌봄 단절, 엄마는 경력 단절 이라는 이야기는 곧 아동의 돌봄은 엄마의 몫이라는 것.
인터뷰 대상자도 모두 여성 뿐이고, 이모씨는 남성인 듯 싶은데 왜 괄호에는 남이 없는가.

사회가 그렇지, 사람들은 늦게 변하고, 요즘 30대 대디는 안 그렇기도 하고. (내주변엔 안 그런 40대 대디도 많고)

원래 정부와 언론이 가이드를 해줘야지, 이런 용어 말고, 예를 들어 자살이라는 단어를 안 쓰면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이 있고 이런 아티클 같은 거.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면 당연히 용어가 바뀌어야지. 그게 정신이 되고 문화가 되는 건 시간이 필요해도 시작은 언제나 그렇지. 정책의 시작은 용어인 걸, 설마 모를리가...

————-

이글은 출근길에 지하철 광고판 보고 쓴 글인데 오후에 본 기사...
http://m.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39232.html

진짜 매번 무슨 생각인 걸까. 서울시





Posted by Sophie03
[Think+ing]2018. 4. 4. 09:19

스무살에 만난 William Blake는 내게 충격 그 자체였다. 내가 좋아했던 그 많은 작가들이 ‘성장’의 메세지를 준 것과 달리, 그는 ‘성숙’의 메세지를 주었고, ‘억눌린 자’를 표방하였으며 시가 굉장히 서사적이었다. 아니 메타포를 이용하였지만 서사적이었다고 해야 하나.
덕분에 나는 다른 단계로의 확장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수많은 상황들을 경험하고 사람들을 겪으면서 종종 그 시를 읽곤 했다. 그냥 그게 내게는 정화작용이었다.

오늘 아침 출근길 SNS english 가 소개한 카툰을 보고 헉! 하였다.

https://zenpencils.com/comic/poison/

이 시가 이렇게도... 이해되는구나. 이런 카툰이 가능하구나. 했다.

Posted by Sophie03
[Think+ing]2018. 1. 17. 06:20

이 글을 쓰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작년 여름무렵인데, 결국 해를 넘기고야 글을 시작한다. 처음에 글 작성을 생각했을 때는 당연히 marketing folder였는데, thinking folder에 들어가야 하나 하는 고민이 든다. 기승전은 market 이야기인데, 마무리는 사람으로 끝날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일단 시작. 


요즘 세대라고 쓰려니, 고령화 시대에 요즘 세대가 어떤 연령을 지칭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나부터 드는 그런 시대를 살고 있다. 요즘 젋은 세대라고 고쳐쓰고 그들을 요즘은 millenials(밀레니얼세대, 관련 설명)라고 부른다. 그들은 80년초부터 2000년대 초까지 출생한 세대를 일컬는데, 그들이 소비의 주역으로 떠오르는 요즘, 그들에 대한 분석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백화점/골프/시리얼 사업의 하락세에 이들이 기여하고 있다, 이들을 대상으로는 어떤 offering을 해야 하는가 등등은 검색만 해 봐도 줄줄 나오니 그건 생략한다. 

사업기획자로써, 마케터로써, 근본적으로 이들을 설명하는 최고의 표현은 "산업화 혁명이후 처음부터 부모세대보다 못 사는 첫번째 세대"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경제적으로 부유해질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세대. 직장을 가지면 결혼을 하고, 빚내서 집을 사서 경제적 가치를 몇배~몇십배로 올려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기회라도 있었던 부모 세대와 달리, 직장을 가지면의 가정부터 맞지 않는 세대. 그들이 millenials이다. 

두번째 설명은, 특히 90년대 이후 출생자들에게 적용되는데, www을 배워서 알게 된 그 윗 세대와 달리, 정말로 world wide web이라는 그 사상이 담긴 인터넷이 처음부터 生이었던 세대이다. 사전을 찾아 영어단어의 뜻을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네이버 사전에서 뜻을 찾고, 매뉴얼을 읽어 사용법을 익히는 게 아니라 유투브에서 영상으로 사용법을 찾아보는 세대이다. 사전의 다양한 용례는 필요없고, 길고 긴 text도 필요없다. 내가 좋아하는 백과사전도 더는 필요 없다. 이들을 대상으로 할 때는 단순하고 명료한 comm.이 필요하다. 

하지만, 익명성에 숨는 이들에게 "우리가 분석해보니 당신에겐 이것이 필요한 것"이라는 답을 들이미는 것도 금물이다. 이전 세대와 달리 같음에서 안도하지 않고, 다름에 만족하기 때문에, 전 세대가 환호하던 명품이 millenials에는 필요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글로 이렇게 설명하는 것조차 그들은 싫어할 것이다) 


정작 내가 말하고 싶은 세대는 millenials가 아니다. 그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마케팅해야 하는지, 그들과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들은 X Generation 이후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지만 그들을 설득해야 하는" 대세(major generation)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세대는 X 세대와 millenials에 끼인 무명의 세대이다. X 세대는 1965년~1976년, millenials는 1980년~2004년생을 이야기하는데, 1977/1978/1979년생은 어디에서도 끼지못하는 무명세대 이다. (IMF 이슈로 한국은 1975/1976년도 애매하게 무명세대이기는 하다. 대학을 들어가서 배낭여행을 가려고 하니 IMF가 터지고 말았으니까.)  

사실 X 세대는 기성세대가 정의할 수 없는 탈권위적이고 냉소적인 세대라 하여, X 세대라고 명명된 것인데, 이제와 보면, 그들은 경제급성장기에, 원서만 내면 합격이 되고, 버티면 임원이 되는, 전 세대가 일궈놓은 밭에서 과실을 따 먹는 세대이다. 그래서 그들은 명품에 열광할 수 있었고, 좋은 차를 소유할 수 있었으며, 그러면서도 기성세대를 비판할 수 있었던 세대이다. 이제 그들은 사회와 직장에 헌신하지 않는 millenials에게 "우리때는 이러지 않았다"며 우리들은 삶을 열심히 살았노라고, 이런 식의 삶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노라고 이야기 하는 기성세대가 되었다.   

이 X세대들의 후배가 (내가 명명한) 무명세대 이다. 그들은 특징이 없으며, 워낙 coverage가 적어 세대 라는 표현을 붙여주기도 어렵지만, 그냥 그렇게 부르기로 한다. 그리고 이들은 millenials의 선배들이다. 아니다 선배들이 아니다. 그것은 X세대가 그들에게 강요하는 용어일 뿐, millenials는 사실상 선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냥 그들이다. 

이 명확한 두 세대에 끼인 세대가 무명세대일 뿐이다. 버틴다고 해서 임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하지만 X 세대인 선배들에게 헌신을 강요당하는 세대이다. 빚을 내서 집을 산다 한들, 남겨지는 건 정말 그 집이다. 운이 나쁘면 하우스푸어가 되고 만다. X 세대들의 1차 직업의 은퇴시기가 55세 전후라면, 이들은 50세를 넘기지 못할 확률이 높다. 

하지만 이들에게 일을 내릴 후배란 없다. millenials는 기본적으로 직장은 직장일 뿐이고,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그냥 동료일 뿐이지, 선후배로 설명되지 않는다. millenials는 부모보다 못 사는 첫번째 세대이기 때문이다. 자수성가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으며, 때문에 직장에서의 성공이 그들에게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millenials에게는 현재가 중요하고 경험이 중요하고, 이 직장은 시간을 보내는 일부이지, 삶의 한 부분이 아니다. 고로 이들에게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표현은 어불성설이다. 이제 우리는 그런 세대를 살고 있지 않다. 


내가 무명세대라고 명명하며 이들에게 주목하는 이유는, 내가 바로 그 세대이기 때문이다. 희생과 헌신을 강요하는 조직의 선배들이 받을 과실은 나의 과실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오랫동안 그들과 일해왔기 때문에 희생과 헌신의 강요를 당연시 하면 살아온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그것은 무명 세대에서 끝이다. 그 사람의 의욕으로 열심히 일하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millenials는 후배이기를 거부하고 희생과 헌신이라는 단어를 거부한다. 내가 이렇게 일을 배웠다고 그들에게 그런 방식을 일을 배우라고 말할 수는 없다. 나조차도 그런 것을 싫어한다. millenials는 목표가 분명한, 범위가 명확한 가이드를 내려주기를 바라며, 딱 거기까지만 일하겠다는 의지도 강하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명확함은 give-and-take이고 그건 직장과 그들간의 관계, 직장 내 직책자와 그들의 관계에도 여과없이 적용된다. 

그래서 무명세대들은 노선을 정해야 한다. X 세대 방향인지, millenials 방향인지 말이다. 도처에 있는 나의 지인들, 무명세대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결국은 개인이 노선을 정해야 하는 문제로 귀결되고 만다.위에서 이야기한 세대 이야기를 사업기획자의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이야기해주면(사업기획자의 자세의 기본은 객관성이다) 이제사 조직에서 무명세대들이 왜 힘든지, 본인이 왜 힘든지 명확히 설명이 된다고 한다. (매번 다 설명하기 어려워서 이 글을 적어두는 면도 없지 않다) 

이런 대화를 나누는 대부분의 지인들은 이미 어떤 선택의 단계에 있다. 이미 그런 나이에 와 있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는 철저히 개인의 몫이다. 어차피 무명세대로 어떤 결정을 해도 상관없다. 다만, 이번만큼은 본인을 위해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 개인적으로 나의 생각이다. 


결국 이 글을 thinking folder로 들어가야 겠다. marketing folder에 넣을 만큼의 내용은 이 글에 담지 않았다. 나의 영업비밀이니까! 

Posted by Sophie03
[Think+ing]2017. 10. 17. 14:17

말로 천냥빚을 갚는 사람이 있고, 말로 만냥빚을 지는 사람도 있다. 후자의 경우, 대개, 말꼬리 잡지 말아라 라고 말하지만, 본인이 말꼬리 잡힐 일을 만든다. 말꼬리 잡힐 말을 하니까 말꼬리 잡히는 것이라는 것을 그들은 끝까지 모를 것이다. 예를 들어, 오늘도 맛있다 와 오늘은 맛있다 같은 경우, 오늘은 맛있다는 말은 오늘만 맛있다는 말인가, 오늘은 맛있고 어제는 맛이 없었다는 말인가. 그냥 오늘도 맛있다 라고 말하면 되는 일을, 본인은 진실을 말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리라. 한국어의 뉘앙스의 차이는 사실상 조사에서 온다는 것을, 그들을 끝까지 모르며, 말꼬리 잡힌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냥 손쉽게 천냥빚 갚는 사람이 되면 되는 것을 모르고, 왜 천냥빚을 갚는 사람은 서비스 음식을 받고, 왜 본인에게는 왜 서비스 음식이 안 나오는 만냥빚을 지는 사람인지 모를 것이다. 그냥 아주 간단한 차이. 

Posted by Sophie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