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nk+ing]2012. 12. 15. 00:15


2008년 7월에 장마비가 오던 날 선운사로 템플스테이를 떠났었다.

어떤 여행지에서는 말그대로 숙면을 취하는 경우가 있는데, 선운사에서 그랬다. 동행인에게 미안할 정도로 자고 또 자고...

그러다가 템플스테이 담당 스님이 산책을 가자고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따라나섰다.

대중교통으로 선운사에 갔는데, 시내버스를 내려서도 한참을 올라간 터라, 또 "올라가리라고는" 생각 못했지만, 또 올라갔다.

그리고 나서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이 이 사진이다. 


(taken by FX36)


산 위에 이런 호수가 있다니... 하는 놀라움보다 더 놀라운 건, 이 곳의 공기였다.

이곳에서 부는 바람이 태고적부터 간직하고 있는 공기를 전달하는 듯 했다.

이후로도 어느 등산에서도 어느 들판에서도 아직 경험하지 못한 그런 바람이었다. 


그리고 저녁에 그 스님과 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때까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새로운 차원의 화두를 받게 되었다.

표현은 명확지 않으나 내용은 이러했다.


안 좋은 인연을 만났을 때, 사람들은 흔히 내가 무슨 잘못을 해서, 라고 이야기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인연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다. 

그래야 다음에 어떤 인연으로도 연결되지 않는다.




이후로 공부도 하고, 마음도 달래고, 하면서 어느 순간 나는 업장 소멸의 꿈을 꾸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사실 나는 카톨릭신자이고, 영생의 교리를 믿는다. (즉, 윤회철학은 카톨릭 교리와는 상반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불교 철학들에 대해 동의하고 실천하고자 마음 먹는데 그 중 하나가 업장 소멸의 꿈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연습을 한다.


나는 이 인연에서 자유로워 지고 싶다. 

좋은 인연으로든 나쁜 인연으로든 더 지속되고 싶지 않고, 그저 자유로워지고 싶다. 

상대가 나와 더 많은 인연을 쌓아 나와의 관계를 지속하려고 저렇게 자꾸 노력하지만, 

나는 이 모든 인연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 

더 이상은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러므로 미워하거나 증오하거나 무시하거나 할 필요도 없이 나는 그저 나에게 촛점을 맞추고 싶다.

그러니 지금은 내려놓아야 한다.


그리고는 사진 속의 태고적의 바람을 떠올린다. 그 공기는 언제나 '이 모든 것이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하는 그런 공기이다.





사실은 아마도 이렇게 생각해야 할지도 모른다. 

"내 입장에서의 생각이다, 상대의 입장에서는 다른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러니 내 입장을 내려 놓아야 한다."

그런데 해보니 대개는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다 보면 내 입장도 다시 살아나 내게 말을 한다. 


그러니 내 입장에서 이렇게 말해 준다. 

"그 때 그 태고적 공기를 생각해 보면 지금 내 입장을 들어주는 것이 꼭 맞는 일인지는 모르겠어. 그러니 나는 어느 순간 바람이 되는 것을 택할래"


OOO님과 이야기 하다가 문득, 지난번 포스팅인 [Sophie' Thought] 오이디푸스의 화살 에 등장했던, "남의 가슴에 못 박은 사람은 언젠가 대못 박히지만, 그 대못을 스스로 박으려고 노력하면 본인만 다친다"의 이야기를 해 주다가, 그렇다면, "스스로에게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하는가에 대해 금요일 밤에 기록해 둔다.


언젠가 상대의 입장도 쉽게 헤아려지는 순간이 오기를 바라면서!

Posted by Sophie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