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nk+ing]2012. 11. 25. 22:37

요즘 현상 중 하나가 사적 공간이다. 


과거에도 집 이야기는 있었다. 집 이야기가 나오면, 연예인이 어떤 집을 사서 어떻게 꾸몄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그러다 보면, 그 집의 인테리어와 가구의 협찬사는 어디인지도 주요한 이슈였고.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달라졌다. 


서점을 가보면 신간 코너에 집에 관한 책이 많이 깔려 있다. 서적들은 크게 두가지 카테고리인데, 내 집 짓기와 내 집 꾸미기이다. 스스로 집짓기를 한 사람의 이야기, 집을 짓는 사람들의 집짓기 이야기 뿐 아니라, 인테리어/공간 살리기와 관련된 블로거들의 글이 책으로 엮어 출간되기도 한다. 


TV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에서 본인의 집 설계를 한다든가, 땅콩집의 다큐가 나온다든가, 영화 '건축학 개론'이라든가, 모르는 사이에 집 이야기를 많이 보고 듣고 있다.


그런데 최근의 내 집 짓기의 주요 추세는 과거의 단독주택을 생각하면 흔히 떠오르는 정형화된 큰 비싼 집이 아니라, 작고 아담하지만 나만의 공간 그리고 마당이 있는 집이다. 재작년, 작년 즈음의 땅콩집 열풍으로 촉발된 집짓기는 나날이 다양해지고 있는데 주요한 욕구는 "작아도 좋다, 다만, 나(와 내 가족)의 개성에 맞는 집이었으면 좋겠다" 이다.

내 집 꾸미기에서 "내 집"은 소유의 개념이 아니라, 살고 있는 집의 개념이 강하다. 또한, 그 집 꾸미기가 과거의 어떤 가구를 사려면 논현동 가구 거리를 가야 하는 식의 "사물의 구매"에 촛점이 맞춰져 있지 않고, 어떤 "분위기"를 내기 위해서는 어떤 컬러를 쓰고 어떤 조명을 쓰는 등 "뉘앙스"가 강조되고 있다.


최근 공간 관련 책들도 프로그램들도 많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에 내가 얻은 결론은 이렇다.

첫째는 "사적" 공간에 대한 목마름이다. 한국전쟁이후 집은 소유의 개념이자 재산의 개념이지, "공간" 개념이 적었다. 때문에 ㅇㅇ동 ㅇㅇ평 아파트가 주요한 질문이었고, 빠른 시일 내에 많은 사람들의 소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서울을 막론하고 전국 방방곡곡에 아파트가 들어설 수 밖에 없었다.
이제 한국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들, 즉 한국전쟁 이후의 산업화의 역군이었던 자녀들이 어른이 되어 독립하게 되면서, 집은 소유라는 개념이 줄어들게 되었다. 더불어, 빈곤함에서는 자유로워 졌으나, 동시에 스펙 쌓기가 이십대의 중대 과제가 되어버린 이들에게는 무한경쟁의 상황에 던져진 채로 견디어 낼 것을 종용 받고 있다. 언제나 광장에 노출되어 있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일종의 동굴이며, 사적 공간인 "one's own room"이다. 때문에 언제든 숨어들어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기 위해서는 본인만의 분위기를 간직한 사적 공간이 있어야 한다. 그 욕구가 이제 트렌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둘째는 "획일화"에 대한 거부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ㅇㅇ동 ㅇㅇ평 아파트로 평가받을 수 밖에 없는 획일화된 전형적인 잣대가 아파트이다. 이미 삼십대, 사십대는 그 획일화된 잣대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때문에 "틀린 것이 아닌 다른" 것을 가지기 위해 비교가 불가한 "나만의 집" 짓기가 시작되었고, "나만의 방 꾸미기"가 시작된 것이다. "나만의"가 붙으면 (엄청한 부자의 경우에는 물론 돈으로 해결할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 보다는 개개인의 특성이 반영되어 나올 수 밖에 없다. 기둥 하나를 세울 때도, 벽면 하나를 페인트로 칠할 때도, 차별화된 "다름"이 나타나게 된다. 쉽게 생각하면 DIY의 개념이 집이라는 사적 공간까지 확대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참, 그런 측면에서 땅콩집의 인기는 사그라 들 것이다. 땅콩집도 넓게 보면 획일화된 주거 공간이니까.

셋째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야기한 집 소유의 의미의 퇴색이다. 개인의 능력으로 스스로의 집을 구입하는 것이 아주 어려운 일이 되었다. 때문에 소유한 집에 중후하고 비싼 가구를 구매해서 들여 놓는 것도 아주 어려운 일이 되었고, 세들어 사는 동안만의 "사적 공간" 확보를 위해서는 차별화된 집 꾸미기가 필요할 수 밖에 없다. 시멘트 바닥에 나무 바닥을 까는 것은 비용 때문에 할 수 없다 하더라도, 전등을 바꾸어 단다든지, 수납공간과 침대를 교묘하게 배치한다던지 하는 부분을 통해 "사적 공간"에 대한 일시적인 소유권을 표시하며 "살고 있는 공간"에 스스로의 정체성을 부여할 수 있으니까.

나는 요즘 출간되는 책들이 사적 공간의 아이디어를 파리에서도 뉴욕에서도 독일에서도 일본에서도 카페에서도 차용하는 것을 보며, 다양성에 대한 욕구들이 우리에게 새로운 차원의 사적 공간을 가져도 된다고 이야기 해주는 구나,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러니, 내게도 one's own room을 허해 주어야 겠다.

Posted by Sophie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