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nk+ing]2012. 12. 15. 00:22






대학생 때, 친구와 우연히 사회문제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반응이 이랬다, "니가 이런 것에 관심을 가질 줄은 몰랐어"

또 다른  친구에게서 "너도 의견을 이야기해, 어떤 편이 좋은지."라는 이야기도 들었었다.

그래서 생각했었다. 나의 사회/정치/교육적 노선을 다 밝혀야 하는가.



나는 사실 나의 의견을 명확히 밝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인문학쟁이 라서 그렇다. 여러 현상에 대해 여러 비평들과 의견들이 존재하며, 주류에 속한 자들의 의견이 대세로 받아들여지게 되지만, 그것은 살아남은 자들의 의견이며 입장일 뿐, 비주류에 속하는 자들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은, 가공된 형태의 현상의 정보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굳이 표현하자면 '사실과 진실의 차이'같은 진부한 용어로 설명되는 그것이다. 


그래서 보통 한 사건을 접할 때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난 다음에야, 나는 "나의 가치관"에 따른 판단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이것은 "나"만의 판단에 따른 의견일 뿐이라서 이 결론을 입밖에 내어 타인에게 이야기 하는 것이 껄끄럽다. 사람들은 보통 본인의 의견에 대한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 의견을 전달할 때 상대에게 수용할 것을 강요하게 되는데, 나는 그런 보이지 않는 수용의 강요를 싫어한다. 당연히 내가 의견전달자가 될 경우에도 그렇다는 것을 느끼기에, 그것을 전달하고 싶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정치에 있어서 내가 더더군다나 나의 노선을 잘 밝히지 않는 까닭은 크게 두 가지인데, 첫번째는 지지할 노선이 없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편가르기가 싫기 때문이다.


지지할 노선이 없다,는 말은 참으로 슬픈 말이지만, 내게는 그렇다. 나는 정반합의 논리를 믿는다. 역사에서도 인생에서도 언제나 정반합의 균형이 사회를 변화시켜왔고 삶을 변화해 왔다. 단, 정반합의 논리가 지속되기 위해 영원한 정도 영원한 반도 영원한 합도 없으며, 합이 정이 되는 순간 새로운 반이 등장하여 균형을 깨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순간 정이 반이 되기도, 합이 반이 되기도 하며 역학의 변화가 이루어 져야 한다. 즉, 영원히 지속가능한 균형이란 없어왔으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소한 균열로 인해 사회는 붕괴되며 변화되어 왔기에, 합이 정이 되는 순간이 오면 반드시 새로운 반이 나타나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논리를 정치에도 적용시켜, 나만의 방식으로 "보수와 진보"의 차이를  정반합의 원리로 설명한다. 보수는 정을 지키려는 무리, 진보는 반을 주장하는 무리, 그러나 정과 반의 과정을 거쳐 어느 순간 합의 순간이 오고, 또 다시 반이 나타나게 된다. 사실, 균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합의 균형점과 반의 시의적절한 등장이다. 고로 지속가능한 사회이려면, 보수와 진보가 공존해야 한다. 어느 한 쪽이 더 많은 권력을 갖는 순간이 오면 반드시 반대쪽이 그 권력을 흩뜨려 주어야 한다. 그래야 사회의 균형이 맞춰질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우리 나라에는 보수도 진보도 없다. 권력을 지키려는 자와 권력을 뺏으려는 자의 싸움이 부각되고 있을 뿐, 보수가 지키려는 것이 무엇인지, 진보가 깨뜨려 이루려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 정책공약이 없는 선거가 지속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양측에서는 보이지 않는 강요를 진행할 뿐, 나를 설득하려 들지 않는다. 아무도 설득하지 않으니, 어떤 노선도 지지할 수 없는 것 뿐이다.


둘째는 편가르기 때문이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보수와 진보는 정반합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화발전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회색영역인데, 어느 순간 어떤 진영이 회색영역으로 들어가는 순간이 있어야 한다. 서로 흑백논리로 싸우기 시작하면 고무줄 당기기가 시작될 뿐, 실질적으로 회색영역으로 들어와 융화 발전하는 순간이 있을 수가 없다. 그런데 회색 영역이 없다. 대승적 차원의 협의도 합의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킬 것을 지키고 싶은 양측이 존재할 뿐이다. 


그런데 강요한다. 너는 어느 편이냐? 물어보고, 반대편이라는 생각이 들면, 이 모든 사태는 다 네 탓이다,라고 이야기 한다.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탓인데, 본인 인생 살기 바빠서 남의 인생에 무관심하게 살아온 우리 모두의 탓인데, 라고 생각하지만 이야기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미 편가르기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편이 아니므로 너는 나쁜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어른에게 무슨 이아기를 더 해야 하는가.


균형의 논리에 따라, 다른 의견을 말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 무리도 있어야 한다, 반대의견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남의 탓을 하는 것은, 초등학생 때나 하는 일이여야 한다. 




그래서 나는 회색 영역에 서 있다. 고심하고 고민하여 투표하러 간다. 그리고 또 고심하고 고민한다. 소리를 내지 않는다 해서 생각이 없는 것도 의견이 없는 것도 아니다. 다만, 설득이 아닌, 편가르기에 대한 반발로 회색영역에 서서 고민하고 또 고심하는 것 뿐이다. 양쪽이 모두 설득해야 타당하지만, 실제로는 양쪽이 모두 없애버리고 싶은 바로 그 회색 영역에 서 있을 뿐이다.


Posted by Sophie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