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use]2013. 9. 1. 09:30



"이튿날,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밖으로 나가 해변을 따라 빗속을 걸어 등대까지 산책을 하던 중" (p10)


이 구절을 읽고, 나도 모르게, 바르셀로나 해변에 가 있었다. 그 시간에 대한 그리움으로 순간 나는 바르셀로나 해변가의 빗속에 서 있었다.


2011년 2월에 나는 출장으로 바르셀로나에 가 있었다. MWC 기간이니, 당연히 시내의 호텔은 가격이 너무 비싸 회사의 출장비 규정에 따라 시내에 투숙할 수는 없었다. 어렵게 잡은 호텔이 바르셀로나 시내에서 40~50분 떨어진 바닷가에 위치한 호텔이었다. 그 때가 바르셀로나 세번째 방문이었는데, 처음으로 외곽에 호텔이 잡혀 처음에는 별로 달갑지 않았다.


그런데 호텔에서 걸어서 10분, 별장과 같은 2층집들을 지나면 바다에 나갈 수 있었다. "덤"과 같은 시간이었다. 돌아오는 날 아침에 비가 왔다. 오후 비행기라서 오전 동안 호텔에서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던 중에, 나는 불현듯 비오는 바다 생각이 나서 홀로 바다로 나갔었다. 우산이 바람에 휘어질 정도의 날씨라서, 바다에 도착하니, 강한 파도 소리와 비 소리, 그리고 우산이 바람에 휘날리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그곳에 서 있었다. 


그 때의 감정을 무엇이라고 설명해야 하나... 나는 그 바닷가에서 일출도 봤고, 그 시간이 꽤 감동적이었지만, 사실 그 시간이 더 좋았다. 카메라를 안 가지고 나가, 아마도 당시에 가지고 있던 폰으로 사진을 찍었겠지만, 사진으로 남겨질 수 있는 시간은 아니었다. 마음 속 깊이 가지고 있던 응어리가 바람에 풀어져 날아가는 듯 했다. 살면서 간직하고 있던, 나도 모르는 설움이 어느 순간 흩어져 나는 무장해제가 되고 말았다. 몸을 가누기도 어렵던 그 바람 덕분에, 나는 자연의 위로를 받았다. 그래서 『여름거짓말』에서 저 구절을 읽는 순간, 잊고 있었던, 그 시간의 바람 소리가 되살아났고, 그 때의 위로를 다시 한 번 받을 수 있었다.




여름 거짓말

저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출판사
시공사 | 2013-07-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올 여름 놓쳐서는 안 될 걸작 중의 걸작” _SWR(Sudw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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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작품은 『책 읽어주는 남자』를 학부 시절에 읽은 이후에 참으로 오랜만에 읽었다. 『여름거짓말』은 7편의 단편 소설로 이루어져 있고, 첫번째 순서로 수록된 작품이 "성수기가 끝나고"이다. 성수기가 끝나고 바닷가 휴양지로 휴가를 떠난 주인공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주인공, 비오는 해변을 가더니, 일출을 보러도 바닷가에 간다.


드디어 그는 해변에 도착했다. 태양은 황금빛으로 솟아올랐다. 바다도 붉게 들끓고 하늘도 벌겋게 타올랐다. 잠시 동안 그 모습이 이어졌다. 결국엔 구름이 모든 것을 꺼버렸다. (p29)


태양의 일출이 주는 위로. 그 찰나의 순간을 기다리는 영겁의 시간. 일출을 기다려본 사람이면 누구나 그 기분을 이해할 것이다. 삶의 순간순간이 다른 색인 이유, 혹은 다른 색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설명되는 순간이다. 










30분 동안 찍은 사진들 중에 추린 사진들. 2월의 바르셀로나의 겨울의 바닷가에서의 한시간여, 태양을 보던 순간의 추위는 저 황금빛 태양으로 사라졌다. 삶의 찬란한 순간들에 숨겨진 어둑어둑한 시간에도, 어쩌면 태양은 늘 이렇게 감동적으로 우리위로 떠오르고 우리를 보듬어 주는지도 모른다. 하늘과 바다와 태양 뿐이지만,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다운 시간들을 언제나 선물하면서! 






Posted by Sophie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