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use]2013. 11. 21. 23:30


나는 좋아하는 것, 행복하게 하는 것이 워낙 많기도 하지만, 그 중에는 '겨울산책의 즐거움'이라는 것도 있다. 나의 모순이기는 한데, 우선 나는 추운 날씨를 잘 못 견딘다. 기본적으로 체온이 높은 편이 아니고, 외부의 찬 공기(에어콘/찬바람)에 의해 쉽게 한기를 느끼는데다 바로 회복을 못 한다. 아주 가끔이지만 어떤 밤에는 자다가 급히 추위가 느껴지면 임기응변으로 목과 발에 드라이기로 뜨거운 바람을 불어넣어야 덜덜덜 떠는 것을 그칠 수 있다. 어린시절 6년동안 강원도에서 살았는데도 도무지 변화가 없는 체질이다. 그런데 또 이상하게도 겨울의 차가운 공기를 좋아한다. 말그대로 콧끝시린 그 시간의 공기를 사랑한다. 특히 겨울산책에서 느끼는 그 상쾌함은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다. 


그래서 나는 이런 식이다. 아침 출근길에는 너무 추워서 몸을 한껏 웅크리고 걸어가는데, 저녁 퇴근길에는 약간 룰루랄라하면서 밤에 잠시 산책을 나가볼까 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말로 산책을 나가면 그네도 탄다. 찬바람을 가르며 그네를 타는 기분은, 한겨울 여의도고수부지에서 아이스크림 먹기를 즐기던 나의 중학생 시절의 행복감과 맞먹는다. 


그래서 주말에 눈을 뜨면 어서 산을 가야지 하고 마음을 먹는다. 하기야 4계절 내내 늘 다른 핑계로 산을 가지만, 다른 계절과 달리 겨울에 산을 가기 위해서는 거쳐야할 단계가 조금 길다. 일단 눈을 뜨고 산을 가야지 마음 먹지만, 이불에서 나오는 순간 추워서 가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하다가, 결국에는 상쾌한 겨울산책의 즐거움을 만끽하기 위해 온갖 중무장을 하고 산으로 간다.


겨울산책에는 늘 그리움이 묻어 있다. 알프스 겨울 공기에 대한 그리움, 눈길을 걸어 산을 오르며 외로움을 달래던 시간에 대한 그리움. 지금 생각해 보면, 그곳이 스위스가 아니라 서울이었어도 겨울이 주는 외로움을 느꼈겠지만, 그 때는 그저 외로운 이십대였다. 그래서 St. Gallen에 머무는 주말이면 집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도시의 뒷산으로 올라갔다. 


아래와 같은 등산로의 초입을 지나 오르기 시작하면 숲이 나오는데, 아쉽지만 숲 사진을 찾을 수가 없다. 나는 이 등산로 입구를 참 좋아했었는데, 사람들이 줄지어 올라갈 때 이상한 온기를 느끼고 했다. 물론 나이를 가늠할 수 없고 St.Gallen에는 희귀한 동양인 여자애가 지역민처럼 입고 산을 오르는 풍경이 신기하여서인지 눈인사를 잘 해줘서 일 수도 있다. (반대로 거리에서는 관찰의 대상이었다)





스위스에서 7번째로 큰 도시인 St. Gallen은 양쪽에 산을 두고 긴 도시 형태를 이루고 있다. 한쪽 산 중턱에 내가 살던 집이, 반대쪽 산 중턱에 내가 다니던 학교가 위치해 있었다. 그래서 산에 오르면 우리집 지붕도 보이고 멀리에 학교도 보였었다. 






아래 사진의 평평한 곳은 수영장이다. 아쉽게도 나는 겨울에만 머물렀기 때문에 눈덮인 수영장만 보고 돌아왔다. (사실 산책로 옆을 지나던 승마하던 사람들 사진을 넣고 싶었지만 찾아지지가 않아 수영장 사진으로 대체)



(네장의 사진 모두 2004년 1월, St.Gallen, IXUS400)


내가 만난 스위스 사람들은 "감기 걸리면 늘 숲에 가야 한다, 맑은 공기를 마시면 감기가 낫는다, 자연의 치유력을 믿으라"고 이야기하며 집에 있는 나를 등떠밀어 나가게 하거나 굳이 밖으로 불러내서 숲으로 데리고 갔었는데, 나중에는 자발적으로 내가 알아서 산에 오르고 있었다. 실제로 숲에 다녀오거나 산에 다녀오면 늘 감기가 호전되어 있었고, 나도 그 때부터 자연이 가지고 있는 놀라운 치유력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었다. 서울에서도 감기기운이 있을 때 종종 산책길에 오른다. 많이 껴입고 핫팩을 붙이기도 하고, 장갑도 두겹씩 끼는 등의 대비를 충분히 하고 산에 다녀오면, 감기기운이 물러간다. 상쾌한 기분은 덤이다. 


최근 2~3년간 알프스의 겨울이 무척이나 그립다. 차갑고 신선한 공기, 펑펑 내리는 눈, 그 핑계로 산책후에 마시는 스위스 우유에 탄 핫초코. 그 상쾌함. 이상하게 겨울에 왔던 폭풍도 그리운 것을 보니, 겨울 스위스에 다녀오긴 해야 겠다. 




Posted by Sophie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