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use]2013. 3. 1. 01:45




자신의 감수성 정도는 스스로 지켜라 


- 이바라키 노리코 

바삭바삭 말라 가는 마음을 남 탓으로 돌리지 마라
스스로 물주기를 게을리해놓고

점점 까다로워져 가는 걸 친구 탓으로 돌리지 마라
유연함을 잃은 건 어느쪽일까

뜻대로 되지 않아 짜증나는 걸 가족 탓이라고 하지 마라
무엇이든 서툴었던 것은 나

초심이 사라져 가는 걸 생활 탓이라고 하지 마라
애당초 의지가 허약했을 뿐

안된 일을 모두 시대 탓을 돌리지 마라
간신히 빛나는 존엄의 포기

자신의 감수성 정도는 스스로 지켜라
어리석은 사람아 






올 겨울 친구의 싸이에서 보고 옮겨적어두었는데 계속 생각나는 시이다. 

법인 통합 이후 회사의 절친무리와 저녁 식사를 하면서 나를 비롯한 사람들의 내상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다. 다들 일 잘 해서 인정도 받고 회사에 로열티도 높은 사람들인데도 내상은 비껴갈 수 없는 것인 듯 하다. 나도 아직 작년의 고통을 모두 극복하지 못 했는데 새로운 상처를 안고 한 해를 시작하고 있는 듯 해서 다소 자신 없고 그래서 나의 감정에 numbness하고 싶은 게으른 심리가 있다. 오늘도 이렇고 저렇고 한 하루를 보내고 나서, 방에 앉아서, 자신의 감수성 정도는 스스로 지켜야지 라는 생각이 들어, 시집을 뒤적이게 되었다. 바삭바삭 말라가는 마음에 스스로 물주기 위해 가장 쉬운 방법은 시집을 휘리릭 읽는 것이니까. 그러다가 이 구절을 읽었다.







사진관 진열장

아이 못 낳는 아낙이

남의 아이 돌사진 눈웃음지며 들여다본다.







순간의 꽃

저자
고은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01-04-30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1958년 현대문학에 봄밤의 말씀, 눈길, 천은사운 등을 추천받...
가격비교






아차차. 오늘의 시집 읽으며 바삭바삭 말라가는 마음에 스스로 물주기는 실패이다. 나의 심정이 아낙의 행위에 감정이입을 하게 되니까. 오늘 있었던 일 중에 하나가 떠오르며, 나도 순간 남의 아이 돌사진을 들여다 보게 되었다. 욕심 낸다고 해서 쉽게 손에 넣을 수 없는 것, 사진관 진열장 앞에 서서 남의 아이 돌사진을 들여다 볼 수 밖에 없는 것. 부러운 것. 아차차 오늘의 시집 읽으면서 바삭바삭 말라가는 마음에 스스로 물주기는 실패이다. 







그렇다면 오늘은 사진을 봐야 하는 날. 책장에 꽂힌 시집 하나를 꺼내들고 휘리릭 읽어내리는 그 마음으로, 저장된 사진들을 휘리릭 보다가, 오늘 당첨된 사진은 '바르셀로나 구시가 오래된 우체국 건물이 있는 광장의 밤 하늘 사진'이다. 저 돌길을 걸을 때의 습도, 온도, 바람, 내 발걸음 소리. 촉촉한 광장. 보고만 있어도 위로가 되는 그런 광장의 하늘. 




(바르셀로나 구시가 오래된 우체국 건물이 있는 광장2011년 2월, FX36)




그래서 이 글의 카테고리가 Pause로 결정되었다.

Posted by Sophie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