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otation]2016. 12. 27. 09:22

웃어, 이유없이,
그래도 웃어,
어렵지. 그래 쉽지 않지,
그래도 웃어. [피나바우쉬 네페스 中]

워낙 인상적인 공연이라 장면들도 기억 나지만
사실 2008년 3월의 그 음울하던 생일이라는 시간에
찾았던 공연에서 오랫동안 뇌리에 박혔던 것은 이 대사이다. 그 시절의 나를 일으켜 세웠던 것들 중 하나. 이 공연 저 문장.


얼마전의 KBS 드라마 스페셜 "웃음실격"을 보다가 잊고 있었던 이 공연 저 문장이 떠올랐다. 웃음이 없는 사람이 웃길려고 노력해봐야 소용 없다. 본인이 웃어야 남을 웃길 수도 있다. 즉, 웃음이 목적이 아니라, 환심을 사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웃음 그 자체가 일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

웃기 힘든 현실, 들뜨지 않는 연말. 지금 우리는 모두 웃음 실격의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그래서 그냥 웃음이 필요하다. 피나 바우쉬 공연의 대사처럼, 그냥.

​​웃어, 이유 없이, 그래도 웃어, 어렵지. 그래 쉽지 않지, 그래도 웃어.

# "웃음실격"의 오프닝은 중령아빠와의 식사시간. 피디의 개인적인 오마주라고. 가족인 피디가 만드는 드라마는 늘 깨알재미가 있다.

Posted by Sophie03
[Quotation]2014. 1. 15. 00:06
제목 : 괜찮다, 다 괜찮다.
부제 : 신년계획에 관한 변명



1월을 맞이하고 내가 꽤 힘들어하는 대화는 늘 "신년계획에 관한 질문"이었다. 물론 "올해는 결혼해야지" 대화도 있는데, 그건 싫어한다.
신년계획에 대한 대화는 늘 이런 식이다. 본인의 신년계획을 말하고 내게 물어보거나, 본인의 신년계획을 말하지 않고 곧바로 내게 물어본다. 어떤 종류의 유형의 질문이든,  나는 신년계획을 대답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1월의 나는 신년계획을 세우지 않기 때문이다. 아주 가끔 신년계획을 세우는데, 그것은 12월에 여행을 떠나 시차적응에 실패해서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길 때 뿐이다. 얼마전의 글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나는 12월 31일 23시 59분 59초와 1월 1일 0시 0분 1초는 단지 2초 차이일 뿐, 특별한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1월1일 새로운 태양에도 큰 감흥을 느끼지 못 하고, 1월이면 남들 다 세운다는 신년계획도 세우지 않는다. 
나의 핑계는 단순하다. 나의 현재의 계획은 겨울에 적응하는 것이다. 나는 추위에 약하고, 자칫하면 감기에 걸리는데, 감기에 걸리면 한달이상 앓기 때문에, 나는 그저 겨울에 적응하고 감기에 걸리지 않기 위해 나의 시간을 보낸다. 새로운 결심을 하고 스스로를 혹사하다가 감기에 걸려서 1,2월을 허비하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더 솔직히 말해서 12월 25일과 1월 1일은 딱 7일차이이기 때문에 연달아 두번의 주의 같은 요일에 연휴로 쉬게 되고, 12월중하순에는 조직개편 이슈로 업무의 강도가 상대적으로 낮아지는데, 그리고 나면 1월부터는 회사에서 새로운 조직과 새로운 목표를 두고 바로 업무 속도에 박차를 가하기 때문에, 나로써는 그 기간동안 회사에 새롭게 적응하며 회사의 방향성과 속도에 나를 맞춘다. 1월에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겨울과 회사에 대한 새로운 적응.
그런데 나도 New Year's Resolutions을 작성한다. 다만 3월에! 3월에는 늘 신학기가 시작되었고, 새로운 교과서를 받았고, 새로운 공책을 시작했다. 그래서 학교에 다닌 18년동안 늘 3월에 "시작"이 있었고 그 때 적응된 생체리듬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거기에 덧붙여 학교에 다닐 때도 나의 시작은 3월2일이 아니었고, 3월17일 이후이다. 내 생일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한다. 그런 면에서 생일파티를 하기에는 상당히 부적절한 3월생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성장했지만, 나의 생일은 굉장히 좋은 날짜라는 걸 인정할 수 밖에 없다. 3월부터 12월까지 딱 10개월동안만 New Year's Resolutions을 실천하면 된다. 
그런데 지금 New Year's Resolutions을 늘어놓을 수는 물론 있다. 나의 계획들은 한번 세우면 대부분 지속되며 새해를 맞이한다고 특별히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1주일에 한권의 독후감 작성하기, 꾸준히 운동하기(주중 1~2회, 주말 2회), 물 많이 마시기(하루에 1리터이상), 밀가루 단식, 가계부 쓰기, 행복하기 위해 노력하기,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행복바이러스를 지닌 사람이 되기, 한글로 완결된 한 문장을 쓰기, 등등. 이 모든 계획이 한번도 1월1일을 기점으로 시작한 적도, 사실 3월을 기점으로 시작한 적도 없다. 어느날 마음을 먹으면 당장 그 계획을 시행할 따름이다. 그리고 그냥 그것을 꾸준히 지속한다. 특별히 무엇을 이루겠다거나 milestone에 해당하는 거창한 목표를 세우지 않는다. 나는 내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기 때문에 그런 목표를 세웠다가는 자아를 상실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과거의 내가 그래왔고,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으므로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 지금의 나는 스스로에게 "괜찮다, 다 괜찮다"라고 그저 말해줄 따름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꾸준하기 그지 없는 나의 삶의 방식을 스스로 인정해 줘야 했고, 일등에 특별한 욕심이 없는 나 자신을 용서해 주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훌륭한 사람보다는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 성취에 목적을 둔 사람보다는 시간을 소중하게 사용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한 것은 나의 "꾸준한" 장점을 스스로 칭찬해 주고, 조바심 내는 스스로에게 "괜찮다, 다 괜찮다"라고 말해준 것 뿐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은 구절이 바로 제목이다.



1월에 신년계획 따위 세우지 않아도 괜찮다 다 괜찮다. 결국 중요한 것은 시간에 끌려 12월 31일 23시 59분 59초를 맞이할 것이냐, 나의 인생을 내가 주도하여 1월 1일 0시 0분 1초를 맞이할 것이냐의 문제일 따름이니까.





괜찮다 다 괜찮다

저자
공지영, 지승호 지음
출판사
알마 | 2008-08-18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선생님 때문에 내 인생이 달라졌어요. 선생님, 꼭 한 번만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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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ophie03
[Quotation]2013. 8. 23. 06:30



오래된 친한 지인들과의 약속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있는 날들이 있다. 사실 연속적인 약속은 피하는 편이지만, 다 사연이 있는 약속들이라, 어느 하나 취소하거나 불참할 수 없어 차례차례 참석했다. 그런데 그 줄줄이 사탕 중 어느 모임에서는 나는 상처받았고, 어느 시간에서는 나는 이야기했고, 어느 시간에서는 훗훗훗 하며 웃었다. 그 줄줄이 사탕 이야기 시작. 

나는 왜 상처받았는가? 사실 딱 그 날, 그 시간, 그 장소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나는 어느사이엔가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에 대한 고정관념들이 나로 하여금 말하지 못하도록 했다. 너는 잘 살고 있으니까, 너는 삶이 편하니까, 너는 긍정적인 사람이니까, 너는, 너는, 너는! 어디선가는 나도 나의 이야기를 하고, 나도 힘든 구석이 있다고 말해야 하는데, 어디에서도 작은 틈새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내 이야기를 귀기울이기에는 다들 자기 삶이 바빴다. 그래서 들어주는 누군가가 내가 되기를 희망했고, 그들의 "당나귀귀는 임금님귀"에 대한 희망을 내게 강요했다. 어쩌면 그렇기에 나의 삶이 괜찮아 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나의 삶에 대해 말하지 않으므로 말이다. 

그날도 "나는 요즘 이렇고, 그래서 저렇다"라는 근황을 두 문장만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그 두 문장을 말할 여지를 주지 않았다. 울컥 눈물이 올라왔다. 나도, 나도, 나도 할 말이 있다고, 나에게 가지고 있는 "너다운 것"은 당신들의 희망사항이지 나의 본 모습이 아니라고. 나의 본 모습을 봐줄 생각도 나의 마음의 소리를 들어줄 생각도 없다면, 이제 당신들은 나의 오래된 지인이지, 친한 지인이 아니라고. 나의 온 마음과 나의 온 몸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는가? 나는 사실, 그 두 문장만 이야기하면 되었다. 나의 근황토크라는 것이 뭐 별 게 있겠는가? 나는 꼬물거리는 어린아이를 가진 엄마도 아니고, 활화산이었다가 휴화산이었다 하는 실시간성 트러블메이커인 시댁을 가진 며느리도 아니고, 그냥 회사를 다니는 회사원이니까. 그들이 이야기하는 그 각양각색의 이야기들에 상응하는 특별함이 없으므로 나에게 들을 이야기가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그들은 언제나 변화하는 하늘과 같지만 나는 그냥 흙같은 존재인 것이다. 그렇기에 나의 이야기는 의미없이 느껴지는 것이겠지만, 또 그렇기에 나의 이야기는 길어지지 않는다. 그냥 두 문장만 하면 되었다. "나는 조만간 칠순인 어머니를 모시고 가을에 여행을 갈 예정이야, 그래서 비행기에도 숙소에도 돈이 많이 들어서 요즘 가난해." 이 두 문장만 이야기하면 되었다. 나의 특성상 이 두 문장만 이야기하면 그것으로 끝이었을 텐데, 나의 두 문장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런데, 사실, "아 그렇구나, 너는 어머니와 여행할 예정이라 돈이 많이 드는구나" 이 두 문장이면 끝나는 것이었다. 그랬으면 여전히 나의 오래된 친한 지인이었을 것이다. 나를 안다면 내가 더 이상 어떤 어리광도 부리지 않을 것이라는 것 쯤 알고 있지 않은가. 

그다음에 만난 나의 오래된 지인에게 위와 같은 이야기를 하며, "아마도 나는 무한도전(270회) 무한상사편에 나오듯 "아, 그렇구나, 그랬었구나" 그 말 한마디를 듣고 싶었던 것 같은데, 그런 바람조차 잘못인 것 같았다"고 하니, 그 지인이 들려준 이야기는 이러하다. 

내가 그간의 성과를 보다가 "이부분들은 잘 안 되었지만, 이 부분이 개선되었다니 희망은 있어 보이네요" 라고 말을 했는데, 한 직원이 눈물을 흘렸어. 모두가 안 된다고 잘 못 했다고 해서 기 죽은 채 직장생활 하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개선된 한 부분을 이야기 해 주자 울컥한 것 같아. 아마도 그 직원에게 "이 부분이 개선되었다니"는 "아 그렇구나 그랬었구나"의 효과가 있었던 것 같네. 

Facebook에서는 like를 누르고, 싸이월드에서는 공감을 누르고, Instagram에서는 하트를 누르지만, 정작 우리의 진짜 삶에서는 "공감"에 인색하다. 승자가 없이 패자만 그득한 세상에서 타인에게 공감하기에는 개인의 상처들이 많고, 모두의 삶은 고단하다. 각자의 삶은 누구에게나 치열하며, 그렇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다. 다만 공감할 수 있다. 마음 속 깊이 "그래도 나의 삶보다는 너의 삶이 더 좋다"라는 생각이 들지라도, 혹은 그 반대의 생각이 들지라도, 적어도 "아, 그렇구나, 그랬었구나" 정도의 공감을 전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나에게 요구하는 "임금님귀는 당나귀귀"는 들어줄 누군가, 고개 끄덕여줄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것이고, 결국 고개를 끄덕여주거나 "그렇겠네, 힘들었겠네" 정도의 공감이면 끝나는 역할이다. 내가 특별히 무엇을 하겠는가. 그리고 내게도 그저 "아, 그렇구나" 정도만 해 줘도 고마웠을 것이다. 승자와 패자의 세상이 아닌, 지인과 이웃의 세상에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만드는 가장 단순한 문장은 아마도 "아, 그렇구나"일테니까 말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기 위해 무한도전 270회를 다시 보았는데, 다시 보니, 결국 서로 이해는 안 되고,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지만, 그래도 저 말이라도 해 주니 다행이다 싶었다... 사실 삶이 이해와 오해의 연속이면 그나마 다행아닌가? 물리적 단절이든 정서적 단절이든, 단절이 가장 무서운 것이 아닌가.

Posted by Sophie03
[Quotation]2013. 6. 26. 23:03



재미난 우연. 

어제의 서른다섯생일에 관한 글을 쓰고 아침 출근길에 아이팟을 켰더니 이런 가사가 귀에 들린다.



빨간 거 없고 시커먼 내 달력 봐라
생일 같은 거 안 챙겨도 노프라블럼이야



이 노래, 어제 회사짝꿍과 대화하다가 들어보라며 권했던 그 노래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 

그래서 재미난 우연에 힘입어 실없이 노래를 소개하는 글을 쓰고 있다. 나는 사실 삶이 어이없을 때나 누군가 내 인생을 두고 가타부타 이야기할 때 이 두 부분을 듣기 위해 이 노래를 무한반복하게 된다.



내도 니랑 똑같은 인간으로 다녀
삶이라는 이 영화에 내는 그냥 단역
말 그대로 내가 할 수 있는 건 딱 한가지여
그저 살아가는 것. 나쁜 마음 안가져



뭐 단역이라는 것에는 꼭 동의할 수 없다. 모두의 인생은 스스로에게는 주역이어야 한다. 스스로에게 대상주기(☞click) 글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나 이외에는 큰 관심 가지고 지켜보지 않는 스스로의 삶에 대해서 스스로 관심을 가지고 위로와 격려를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우리의 일상에 필요한 것은 혹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살아가는 것" 뿐이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만의 희망을 잃지 않고 다독여주며 "본인의 모습 그대로" 그저 살아가는 것 뿐이다. 때로 할 수 있는 것이 버티어내는 것 뿐인 시간이 오더라도, 결국은 그저 살아내야만 하는 것이다.



그니까 잘 살아가는 내를 가만 놔 둬
내 앞 날에 신경끄고 니 뒤나 봐라 쫌
니는 내한테 말하지 "그건 너답지 않어"
허이쿠? 그럼 도대체 내 다운게 뭔데?



나도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설명하기 꺼려한다. 사람이란 한 마디로 규정될 수 없다. 타인이 보는 나는 스스로 보고자 하는 모양으로 결정되어 있다. 

예를 들어 거창한 계획 같은 것을 가지고 살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내가 가진 이미지에 의거하여, 나만의 숨겨지고 거창한 계획이 있을 거라고들 생각한다. 그리고는 본인에게만 말해보라고 이야기 한다. 그래서 내가 첫 직장을 그만 두고 9개월간 난생처음이자 지금까지는 유일하게 "무소속"의 기간으로 살았을 무렵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무작정 회사를 그만 두는 것은 너답지 않다. 분명 어떤 계획이 있을 것이니 나에게만 말해봐라'였다. 

그 때부터 누군가에게 나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꺼리게 되었다. 사람은 타인의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듣지 않고 타인의 모습을 곧이곧대로 보지 않는다. 스스로 믿고 싶은 대로, 보고 싶은 대로, 듣고 싶은 대로 타인을 이해하게 된다. 물론 나라고 예외는 아니겠지만, 되도록이면 이건 너답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결국에는 스스로가 본연의 모습대로 살아내는 것 뿐 다른 왕도는 없다. 노래의 후렴구처럼 "한방"이 없을지라도, 삶은 어떻게든 흘러간다. 그 흘러가는 삶을 속절없이 보낼 이유야 없지 않은가. 서른다섯생일이 엉망진창이었다고 하더라도 상관없다. 나는 또 내게 주어진 시간을 나만의 방식으로 꾸준하게 살아가면 된다. 






듣기 ☞ click

Posted by Sophie03
[Quotation]2013. 1. 11. 23:00



Too Good to Leave, Too Bad to Stay


솔직히 말하면 오늘의 인용어구는 이것이 전부다. 나는 이 문구를 '10년 12월 뉴욕여행 중에. 뉴욕 지하철의 옆자리 백인여성이 손에 들고 있는 페이퍼백의 책 내부의 상단에 인쇄되어 있는 것을 본 것이 전부이다. 나는 사실 Too Good to Leave, Too Bad to Stay 이 한 챕터의 제목이라고 생각해 왔다. 지금 이 글을 시작하며, 아마존에서 검색을 해보니 이런 제목을 가진 책이 있다. Too Good to Leave, Too Bad to Stay: A Step-by-Step Guide to Help You Decide Whether to Stay In or Get Out of Your Relationship. Paperback이 맞다는데, 97년 초판에 재고도 17권이라고 하니 이 책이었는지 어느 소설책의 챕터 제목이었을지는 모르겠다. 사실 상관없다. 이 문구를 눈으로 본 것은 '10년 12월이지만, 선택의 순간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나의 판단의 기준이 되어 주는 표현이니까.


내게 있어서 Too Good to Leave, Too Bad to Stay의 반댓말은 Equilibrium이다. Equilibrium은 내가 꽤 좋아하는 단어이다. 평형의 상태를 잃고 혼란 속에 있으면 이 단어를 떠올린다. 완벽하고 고요한 균형상태를 즉각적으로 떠올리게 하는 마법의 단어 중 하나이니까. "지속가능한 균형상태"의 의미가 강한 Equilibrium과 달리, "일시적인 균형상황"인 Too Good to Leave, Too Bad to Stay가 머릿속에 떠올리면 별로 유쾌하지는 않다. 스스로 이 상태에 있다는 생각이 들면, "더 행복해 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더" 행복해진다는 것은 현재는 별로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행복이란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으니까. 돈이 더 많아지면 더 행복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돈이 더더 많아져야 하기 때문이다. 성적이 더 오르면 더 행복해지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성적이 더더 올라야 하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혹시 올A(혹은 올백점)을 맞았어도 더 행복해지지 않는다, 다음번에도 올A를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행복에 있어서 "보다"의 개념을 사용할 때는 행복의 소유 개념이나 성취의 개념이 포함되어야 하는데, 근본적으로 행복은 개념적인 것이므로 비교우위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 개인적인 의견이다.


Too Good to Leave, Too Bad to Stay의 상태가 되면 생각이 시작된다. 나는 무엇에 만족하고 무엇에 불만족하는가. 이 일시적인 균형 상태는 유지 가능한 것인가. 나는 이 일시적인 균형 상태를 이번에는 묵과할 수 있는가. 등등의 의문들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이 질문들의 답을 찾아야만 다음 단계인 실행의 단계로 이동할 수 있다. 


굳이 이 글을 오늘 쓰는 이유는, 얼마전 지인에게 "나 회사를 옮겨야 할까"의 질문을 받았고 일주일 정도 그 질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일시적인 상황이긴 하지만, Too Good to Leave, Too Bad to Stay의 상태에 있지만, 그 상태에 있는 것이 편하면서도 그저 불편해서 떠나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 듯 했다. 그런데 대개의 경우 회사가 문제가 아니다. 회사를 다니면서 Equilibrium의 상태에 접어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도시에서 현대인의 삶을 사는데 Equilibrium에 도달하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늘 시한폭탄 같은 삶속에서 쫓고 쫓기며 살아가는 것이 현대인의 숙명이라면 숙명이니까. 그래서 생각해 내야 한다는 것이다. 회사를 옮기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회사 생황에 적응하기 위해 chaos 상태에 접어들면서, Too Good to Leave, Too Bad to Stay의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대부분의 경우 그 해답은 본인이 쥐고 있는데 말이다. 


내게는 늘 좋은 성찰과제가 되곤 한다. 그리고 회사를 그만 두고 싶은 주변인들에게 좋은 화두가 되곤 한다. Too Good to Leave, Too Bad to Stay.











Posted by Sophie03
[Quotation]2012. 11. 28. 00:04





"만물이 다 한 가지라는 것을 명심하게. 또한 표지가 말하는 것을 잊지 말게. 특히 자네 자아의 신화의 끝까지 멈추지 말고 가야 해.

자네가 길을 떠나기 전에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하나 있네.

어떤 상인이 행복의 비밀을 배워오라며 자기 아들을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현자에게 보냈다네. 그 젊은이는 사십 일 동안 사막을 걸어 산꼭대기에 있는 아름다운 성에 이르렀지. 그곳 저택에는 젊은이가 찾은 현자가 살고 있었어. 그런데 현자의 저택 , 큼직한 거실에서는 아주 정신없는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어. 장사꾼들이 들락거리고, 한쪽 구석에서는 사람들이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누고, 식탁에는 산해진미가 그득 차려져 있더란 말일세. 감미로운 음악을 연주하는 악단까지 있었지. 현자는 이 사람 저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 젊은이는 자기 차례가 올 때까지 두시간을 기다려야 했지. 마침내 젊은이의 차례가 되었어.현자는 젊은이의 말을 주의깊게 들어주긴 했지만, 지금 당장은 행복의 비밀에 대해 설명할 시간이 없다고 했어. 우선 자신의 저택을 구경하고 두 시간 후에 다시 오라고 했지. 그리고는 덧붙였어.
'그런데 그전에 지켜야 할 일이 있소.'
현자는 이렇게 말하더니 기름 두 방울이 담긴 찻숟가락을 건넸다네.
'이곳에서 걸어다니는 동안 이 찻숟갈의 기름을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 되오.'
젊은이는 계단을 오르내릴 때도 찻숟가락에서 눈을 뗄 수 없었어. 두 시간 후에 그는 다시 현자 앞으로 돌아왔지.
'자, 어디......'
현자는 젊은이에게 물었다네.
'그대는 내 집 식당에 있는 정교한 페르시아 양탄자를 보았소? 정원사가 십년 걸려 가꿔놓은 아름다운 정원은? 서재에 꽂혀 있는 양피지로 된 훌륭한 책들도 좀 살펴보았소?'
젊은이는 당황했어. 그는 아무 것도 보지 못했노라고 고백했네. 당연한 일이었지. 그의 관심은 오로지 기름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앉는 것이었으니 말이야.
'그렇다면 다시 가서 내 집의 아름다운 것들을 좀 살펴보고 오시오.'
그리고 현자는 이렇게 덧붙였지.
'살고 있는 집에 대해 모르면서 사람을 신용할 수는 없는 법이라오.'
이제 젊은이는 편안해진 마음으로 찻숟가락을 들고 다시 저택을 구경했지. 이번에는 저택의 천장과 벽에 걸린 모든 예술품들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어. 정원과 주변의 산들, 화려한 꽃들, 저마다 제자리에 꼭 맞게 놓여있는 예술품들의 고요한 조화까지 모두 볼 수 있었다네. 다시 현자를 찾은 젊은이는 자기가 본 것들을 자세히 설명했지.
'그런데 내가 그대에게 맡긴 기름 두 방울은 어디로 갔소?'
현자가 물었네. 그제서야 숟가락을 살핀 젊은이는 기름이 흘러 없어진 것을 알아차렸다네.
'내가 그대에게 줄 가르침은 이것 뿐이오.'
현자 중의 현자는 말했지.
'행복의 비밀은 이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보는 것, 그리고 동시에 숟가락 속에 담긴 기름 두 방울을 잊지 않는 데 있도다.'"



pp60-62



연금술사

저자
파울로 코엘료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01-12-0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1987년 출간이후 전세계 120여 개국에서 변역되어 2,000...
가격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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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인연. 

열정적이라 더 불안했던 두살 아래의 그 친구가 내게 책을 읽어보고 싶노라고 이야기 했었다. 십여년 전의 내가 그 친구에게 건네줄 수 있는 책이 연금술사였다. 그리곤 책 한권을 처음으로 끝까지 다 읽었노라고 이야기 하던 그 친구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그 친구는 사실 그 때는 그 책을 이해할 수 없었노라고 이제야 이야기 했다.

이 에피소드를 이야기 해 주면서 "OO아, 이제 이 이야기가 이해되지?"하고 물었다. 이제 이 에피소드를 이해하고, 나아가 '아름답게' 살아내고 있는 그 친구에게 칭찬과 격려와 그리고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아픈 척 하지 않고, 어리광 부리지 않고, 묵묵하게 살아내고 있는 그 친구의 열정이 나는 참 좋다.

Posted by Sophie03
[Quotation]2012. 11. 26. 23:54


나는 나의 학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렇기 때문에 다행스럽게도 기대하지 못한 순간에 상상을 뛰어넘는 좋은 은사님들을 만나, 인문학에, 사회과학에 관심을 가지고 지금껏 살아오고 있다. 삶에의 몇몇 키워드를 주셨고, 또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하게 하는 잊지 못할 은사님들 중 한 분이 정치외교학과 진덕규 선생님이시다. 


선생님께서는 참으로 잊지 못할 말씀들을 해주셨는데 노파심이 아니라, 진정 학생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해주신 말씀들이 참 많다. 그래서, 아 그 때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라고 떠오르는 것들이 종종 있고 지금은 이미 그 가르침이 이미 삶의 가르침이 되었다.


그 중에 하나가 "기부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이다.

기부에 관한 이야기는 요즘 많이 이야기가 되지만, 선생님이 이어 말씀하신 내용은 이렇다.


"기부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여러분은 많은 것을 받았고, 또 많은 것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회에 나가 돈을 벌게 되거든 반드시 기부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기부를 할 때는 꼭 세 가지를 위해서 하십시오. 여성을 위해서, 장애인을 위해서, 그리고 정치를 위해서 하십시오. (여성을 위해서/장애를 위해서 기부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신 후에) 왜 정치를 위해 기부를 해야 하냐하면, 여러분들이 정치에 기부를 하면 나쁜 돈을 받지 않아 정치가 더 나아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부를 하기 위해,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아지면 정치가 더 나아질 수 있습니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시는데다, 이미 이 이야기를 들은지 적어도 13년은 지났으므로 표현이 정확치 않아 좀 아쉽지만, 어쨌든 선생님의 이 말씀은 마음에 남아 종종 생각하게 한다. 


물론 숙제도 하고 있다. 어릴 적부터 장애인 단체에 기부하는 것이 가풍이라, 그것은 하고 있었는데, 그것 외에, 한국으로 시집와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이주여성들을 위해 기부를 하고 있다. 문제는 "정치"이다. 


어느 정치 단체에 기부를 해야 하는가는 내게 늘 너무 어려운 숙제였다. 매년 소득공제를 마감하게 되어 기부금 영수증을 받아들 때면 올해도 정치에 아무런 기부를 하지 못 하고 살고 있음에, 선생님께 죄스러운 마음을 갖게 된다. 기부하는 것이 얼마나 큰 관심을 쏟게 하는지 선생님의 혜안에 놀라면서 또 뚫어지게 정치판을 바라보게 된다.


사실 나는 기부하고 싶은 정치인을 만나지 못해서, 가난하여 꿈꾸지 못하는 빈민국 청소년을 위해 기부하고 있고, 가난하여 꿈꾸지 못하는 한국의 학생들에게 기부하고 있다. 언젠가 이들 중에 정치인이 나와 꿈꾸는 사회를 만들어주기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지만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좋은 정치인이라는 마음이 들게 되면 그가 계속 좋은 정치인일 수 있도록 기부를 할 생각이다. 존경하고 잊지 못할 은사님께서 하신 말씀이니 그래야 한다.


요즘 같은 선거철이 오면 더더군다나 선생님을 떠올릴 수 밖에 없다...





# 종종 선생님의 이름을 검색하여 선생님의 강연록을 읽곤 하는데, 여러 말씀들, 선생님의 마지막 강연록은 언제 읽어도 힘이 되고, 후배들이 더는 그 분의 좋은 가르침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슬퍼지기도 한다. 선생님의 강의를 들을 수 있었음에 두고두고 감사한다. 



Posted by Sophie03
[Quotation]2012. 11. 25. 22:12

"세상에 나쁘기만 한 일은 없습니다"


이 말은 KBS 드라마 '그저바라보다가'에서 구동백(황정민)이 한지수(김아중)에게 하는 말이다. 시청률은 그렇게 높지 않았지만 좋아할 수 밖에 없는 드라마였다. 구동백이 머리가 복잡할 때는 우체국에서 소인을 찍습니다 했던 그 말과 세상에 나쁘기만 한 일은 없습니다 라고 한 말은 살면서 종종 스스로에게 되뇌여 해 주는 말이다.


어감은 흔히 이야기 하는 '새옹지마'와는 다르다. '새옹지마'는 길흉화복은 예측불가하게 바뀌어 좋은 일에 좋아할 이유도 슬픈 일에 슬퍼할 이유도 없다는 의미가 더 강한 반면, "세상에 나쁘기만 한 일은 없습니다"는 나쁜 일이 일어나면 동시에 그 안에 좋은 일도 있다는 의미가 더 강하다. 즉, 이번에 힘들었으니 다음번에 괜찮을거야 라고 말해주기 위해서 쓰는 문장이 아니라, 지금 참 이렇고 저렇고 후지지만 그래도 괜찮아, 왜냐하면 이 일에도 잘 살펴 보면 좋은 의미도 있으니까, 라고 말하고 싶을 때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문장이다.


동백이는 지수에게 이렇게 이야기 했다. 

"세상에는 정말 나쁘기만한 일은 없는 거 같습니다. 또 슬프기만 한 일은 없는 것 같고요. 지수씨 행복하고 싶으시죠? 그럴려면..웃는 것 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항상..웃으실 거죠?"


나는 사실, 올초에 스스로를 자책하며, 왜 그랬을까? 생각도 많이 했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던 순간이 있다. 그 사건은 아직 정리되지 않았는데, 그 때 스스로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이, 이 말 밖에 없었다. "세상엔 나쁘기만 한 일은 없다"

이상하게도 "인간사 새옹지마"가 떠오르지 않고 "세상엔 나쁘기만 한 일은 없다"는 문장을 되뇌인 것에 대해서 최근에야 답을 찾았다. 짧고도 긴 인생 살아 오면서, 인생에는 "끝"도 없고 "비상구"도 없고, 잠시 잠깐 pause 버튼을 누르고 쉴 수 있지만, 그것도 일시적인 상황일 뿐, 지속적으로 play 버튼이 눌러져 있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인생을 살아내는 것이 내가 삶을 살면서 하고 있는 큰 숙제임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제서야 뼛속깊이 깨달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번에는 좋은 일이 찾아올 거야 하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이 일도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을 거야 하고 생각하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잘 생각해 보면, 잘 돌이켜 보면, 한 걸음 멀리서 그저바라보다가 알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 나쁘기만 한 일은 없습니다" 




그저 바라 보다가

정보
KBS2 | 수, 목 22시 00분 | 2009-04-29 ~ 2009-06-18
출연
황정민, 김아중, 주상욱, 전미선, 이청아
소개
우체국 말단 공무원인 평범남이 어느날 갑자기 운명처럼 만난 톱스타와 6개월간 계약 결혼을 하게 되면서 펼쳐지는 유쾌한 로맨틱 ...






Posted by Sophie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