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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9.13 [Sophie' Library] 이번 환절기
[Library]2013. 9. 13. 21:00



써둔 글을 뒤로 하고, 70번째 글을 시작한다. 사실 글목록에서 69를 확인하고는 70번째 글을 멋지게 써야지 생각하고는, 환절기를 맞이했다. 내게 환절기란 휘리릭 스쳐지나가지 않고 확실히 본인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존재인데, 일단 체력적으로 쉽게 변화하는 환경에 변화를 못 해서 몸 구석구석이 이상신호를 보낸다. 그리고 옷을 좋아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의 옷은 환절기 옷이다. 골골 하면서도, 환절기에만 입을 수 있는, 아지랭이 같이 사라지는 짧은 순간을 빛나게 해주는 예쁜 옷들이 늘 나를 기쁘게 해 준다. 


어쨌든 거창하게 글을 써야지, 어떤 글을 쓸까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사무실에서 말고는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이유가 정확치 않지만, 허리쪽 근육이 뭉쳐서 앉았다가 일어나면 직립보행이 안 되서, 증언에 따르면, 뒷모습이 S라인이었다고 한다. 한의원 계속 다니고 찜질과 마사지 계속 해서 닷새 만에 직립보행이 가능해졌다. 그 사이에 거창하게 글을 쓰겠다는 다짐은 사라지고, 짧은 가을에 대한 단상들이 내게 다가왔다. (그런 생각들의 일부는 싱글의 시간측정법 첫 문단에 서술되어 있다) 더불어 회사의 상황들이 급히 변하면서 실질적으로 "나"란 사람이 주체가 아닌, 내 인생의 객체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닷새를 보내고 말았다. 


그래서 항상심에 대한 써둔 글이나 거창한 새 글 대신 이런 글로 70번째 글을 올리게 되었다. 삶이라는 시간 속에서 내가 주체가 되느냐 객체가 되느냐의 문제는 결론적으로 외부의 환경에 의한 것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살면서 휩싸이게 되는 많은 일들은 쉽게 스스로를 객체로 만들게 한다. 최근에 밤잠 깨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상황들은 내가 의도한 적 없는 상황들이고, 상황 내에서 "물리적으로" 내가 행사할 수 있는 권리가 크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는 쉽게 객체가 되어 이리쿵 저리쾅 하는 상처들을 얻게 되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내가 주체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나 하는 근본적인 의문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개개의 인간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염세주의자답게 그런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결국 개개인에게는 그냥 놔둘 것이냐, 사소하게라도 주체가 될 것이냐? 하는 문제만 남게 되는 것이다. 


염세주의자가 긍정적인 사람으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적어두었지만, 결국은 저런 생각을 한 후에 사소하게라도 주체가 되어야 겠다고 생각하는 편이기는 한데, 이번에는 별로 쉽지 않다. 이번 사건들은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되며, 때문에 그 스트레스도 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니까 말이다. 


그런 연유로 어제도 뒤적뒤적 시들을 읽다가 오랜만에 이 시가 마음에 들어왔다.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이어령

하나님,
나는 당신의 제단에
꽃 한 송이 촛불 하나도 올린 적이 없으니
날 기억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모든 사람이 잠든 깊은 밤에는
당신의 낮은 숨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너무 적적할 때 아주 가끔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기도 합니다.

사람은 별을 볼 수는 있어도
그것을 만들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별 사탕이나 혹은 풍선을 만들 수는 있지만
그렇게 높이 날아갈 수는 없습니다.
너무 얇아서 작은 바람에도 찢기고 마는 까닭입니다.
바람개비를 만들 수는 있어도
바람이 불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습니다.
보셨지요, 하나님
바람이 불 때를 기다리다가
풍선을 손에 든 채로 잠든 유원지의 아이들 말입니다.
어떻게 저 많은 별들을 만드셨습니까,
하나님
그리고 저 별을 만드실 때
처음 바다에 물고기들을 놓아
헤엄치게 하실 때
고통을 느끼시지는 않으셨는지요.
아 이 작은 한 줄의 시를 쓰기 위해서
코피보다 진한 후회와 발톱보다도 더 무감각한
망각 속에서 괴로워하는데
하나님은 어떻게 저 많은 별들을
축복으로 만드실 수 있었는지요.

하나님, 당신의 제단에 지금 이렇게 경건한
마음으로 떨리는 몸짓으로 엎드려 기도하는 까닭은

별을 볼 수는 있어도
그것을 만들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용서하세요, 하나님
원컨대
아주 작고 작은 모래 알만한 별 하나만이라도
만들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감히 어떻게 하늘의 별을 만들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이 가슴속 암흑의 하늘에
반딧불만한 작은 별 하나라도
만들 수 있는 힘을 주신다면

가장 향기로운 초원에
구름처럼 희고 탐스러운 새끼 양 한 마리를 길러
모든 사람이 잠든 틈에
내 가난한 제단을 꾸미겠나이다.

좀더 가까이 가도 되겠습니까, 하나님
당신의 발끝을 가린 성스러운 옷자락을
때묻은 이 손으로 조금 만져 봐도 되겠습니까.
아 그리고 그 손으로 저 무지한 사람들의
가슴에서도 풍금소리를 울리게 하는
한 줄의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단 한 가지만 청할 수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 되겠는가. 나는 내 삶에서 단 한 가지만 원할 수 있다면 무엇을 희망할 것인가. 주체가 될 것이냐 객체가 될 것이냐의 문제를 떠나서, 나는 무엇을 희망하는가. 


이 답을 찾는다면 나는 휘둘릴 이유가 없고, 밤잠 설치며 스트레스 받을 이유가 없다. 그 모든 것을 원하지 말고 단 한가지만 원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정의할 수 있다면 사실상 나는 자유로울 수 있다. 


고민은 밑도 끝도 없으나 늘 결론은 단순하다. 결국 삶이란 것은 69냐 70이냐 71이냐의 문제보다 훨씬 단순한, 단 한 가지의 희망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이번 환절기를 보내며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다. 재미난 우연이다.

Posted by Sophie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