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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6.07 [Sophie' Story]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Story]2013. 6. 7. 22:51



작년말에 친구가 개인적인 설문을 진행했었다. 본인을 좋아하는지,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본인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지 의 질문으로 그녀와 친한 사람들에게 설문을 진행하였는데 생각못했던 결과에 놀랐다고 한다. 친구가 생각했던 '본인을 좋아하리라고 생각했던 이유'와 친구들이 말한 '좋아하는 이유'가 달랐다고 한다. 본인의 예상답변이 아닌, 친구들끼리의 대답이 비슷했고 인상적이였다고, 내게도 한번쯤 진행해볼 것을 권유받았었다.


나도 올해말쯤 한번 해봐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회사에서 교육을 받게 되었고, 그 집합교육의 과제가 평소 잘 알고 자주 접촉하는 지인에게 본인의 강점이나 잠재력, 또는 그들과의 관계에서 기여한 점을 두 가지만 구체적으로 써달라고 한 후에 정리하여 오는 것이었다. 과제를 핑계 삼아 나도 설문을 진행하였다.


이 과제를 부탁하는 것부터가 하나의 미션이었다. 누구에게 어떻게 부탁할 것인가. 나는 관계에서 어떤 기여를 하고는있는가 하는 고민도 당연히 들었다. 부탁하고 난 이후에 답을 기다리는 시간도 떨림의 시간이었다. 칭찬이 인색한 나라에서 자란 내게, 타인에게 듣는 나의 장점이란 무엇일까. 대부분 업무적인 답변들을 기대했고, 또 그렇게 오기도 왔다. 


일단은 이런 답변이 나와서 놀랐다. 나는 숨긴다고 숨기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다 알고 있었구나 하고 깜짝 놀랐다. 


그런데 몇몇 놀라운 문구들도 있었다. 


· 논리적/분석적 사고 방식과 감성적 공감능력이 Balance있게 뛰어남


· "broad & in-depth한 지적 탐구에 대한 열정 ^^ : 호기심을 갖는 분야가 워낙 다양하고, 그럴 경우, 어느 수준까지 그 분야에 대해 알고 있어야 직성이 풀리는 편임(듯함..ㅋㅋ)"


그래야 하는 성격이긴 하다. 정확히 이야기 하면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싫어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건 내가 좀 아는데"하면서 지어낸듯한 이상한 이야기 하는 문화를 싫어한다. 그리고 계속 공부하는 것이 즐겁다. 그것이 와인이든, 서양문화사든, 스페인어든, 나는 모르는 것이 많고, 새로운 것을 알아갈 때 무척이나 즐겁다.


그런데, 사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따로 있다. 나에게 이 설문을 권유해주었던 친구가 보내온 답변, 나는 생각도 못 했던 답변, 그 답변을 읽다가, 어느 순간 문득, 내 삶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친구(=Sophie03)의 가장 큰 강점은 정확한 판단력과 디테일 그리고 따듯한 마음씨이다. 같이 일을 해본 적은 없지만, 상황 설명을 듣거나 같이 여행을 가보면 상황을 정확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와인 스터디 하면서 느낀 건데 디테일하고 꼼꼼하게 열심히 준비를 해서 감동받았다. 친구는 관심분야가 있으면 깊이 파고드는 성격이어서 디테일에도 강한 것 같다. 보통 이런 사람들은 좀 냉정하거나 이기적인 사람이 많은데 친구는 마음이 따듯한 사람이다. 그래서 자기 일을 똑바로 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도 배려할 줄 안다.

 

친구는 나에게 나침반 같은 사람이다.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그리고 불합리하게 행동하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친구처럼 똑바로 생각하고 마음씨도 따듯한 사람이 있다는 건 마음속으로 큰 위안이 된다. 친구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문제가 있을 때 막 하소연 하는 타입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정말 혼란스러운 상황에 처했을 때 그녀를 찾아간다면, 그녀는 정확한 판단력과 따듯한 마음씨를 가진 나침반처럼 올바른 길을 보여줄 것 같다. 


나침반이라니... 그 단어만으로도 사무실에서 나는 눈물이 핑 돌았었다. 그리고 이 글을 쓰기 위해 내 방에 앉아 있는 동안에도 눈물이 핑 돌았다. 나를 나침반이라고 생각해주는 친구가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내가 이 세상에서 존재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친구가 내게 이 설문을 권유해 준 이유는 아마도, 내가 상상하는 것보다 내가 더 사랑받는 존재이며, 귀히 여김을 받는 존재라는 것을 주변사람들을 통해 깨달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이 친구의 설문의 답을 보내며, 친구를 진심으로 응원했던 것 같다. 어느 사이엔가 친구와 나 사이에 서로 물길이 트였나보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 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이 나의 친구이다.



우화의 강



마종기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서로 물길이 튼다.

한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풀렁이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어야겠지만

한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 수야 없겠지.


긴 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

몇 해쯤 만나지 못해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큰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 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 싶다.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저자
마종기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2004-03-08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1959년 '현대문학'추천으로 등단한 마종기는 등단한지 45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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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도 추천한다. 설문을 진행해 볼 것을. 스스로 얼마나 사랑받는 존재인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기 어려울 때에, 주변인들의 힘을 빌어 스스로를 다시 한 번 사랑할 용기를 가져볼 수 있도록 설문을 진행해 볼 것을 추천한다.


Posted by Sophie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