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2013. 5. 21. 20:53



페이스북에 밀가루를 끊었다고 올리자 왜 그러는지 오랫동안 질문을 받다가, 최근에 재미삼아 스페인어를 배우고 있다고 올린 이후로는 왜 스페인어를 배우냐는 질문을 받고 있다. 언젠가의 글(☞click)에 쓴 것처럼 그냥 재미있어서 하는 것 뿐이다. 특별히 스페인어를 배워서 회사에서 인정받겠다는 실용적인 마음이 있지도 않고, 사실 스페인에 가거나 라틴아메리카에 가더라도 영어부터 말할 것이다. 그냥 나는 언젠가 다짐했다, 죽기 전까지 스페인어/이태리어/프랑스어를 말하고 시를 이해할 수 있는 정도로 세가지 언어를 배우리라고. 그냥 내가 즐거우려고. 


그런데 사실 내가 알고 있는 나는 그것이 무엇이든 시작만 하면 꾸준히 한다. 나의 가장 범생이적인 특성은 꾸준함이다. 나의 꾸준함은 성실함과는 다르다. 요가를 정기적으로 '12년1월부터 시작하였는데, 지금까지 회사일이 바빠서 한달, 감기가 심해서 한달 빼먹고는 꾸준히 다니고 있다. 어제 일과 후에는 요가를 가기 싫은 마음이 있었지만 요가를 다녀왔다. '일주일에 두 번 요가'가 스스로의 기본 계획이고, 월요일에 가지 않는다 해도 금주 언젠가 두 번은 가야 하기 때문이다. 밀가루를 끊은지는 100일쯤 되었다. 지난번 글(☞click&click)에도 썼듯이 앞뒤 재지 않고 시작했는데, 하다보니 그냥 계속 하고 있다. 스페인어 공부도 마찬가지다. 죽기 전까지 시를 읽어야 하니까, 하는 커다란 사명감 보다는, 회사에서 스페인어 강좌가 개설되길래, 원래는 이태리어부터 배우고 싶었지만, 스페인어 공부 부터 시작했다. 3월에 시작해서 지금까지 전출을 했고, 첫번째 종강을 했다. 그리고 다음주에 두번째 학기가 시작한다. 그런데 사실 성실하게 예습/복습을 철저히 하지도 않았고, 그저 일과시간 이후에 교실로 쓰이는 회의실에 가서 수업을 들었고, 이제 단순한 현재형 문장을 말할 수 있다. 


나의 꾸준함에는 사명감이 없다. 그저, 어릴 때부터 써온 독후감을 어른이 되어서도 쓰고 있고, '일주일에 한권 책읽기'도 매년 하고 있다. 그냥, 그저, 하고 있는 것 뿐이다. 중간에 중단한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중국어 였다. 학부 때 한 번, 회사원일 때 한 번, 두 번을 포기했는데, 그 때 깨달았다, 나는 알파벳으로 된 언어를 배우는 것을 즐거워한다는 것을. 이후로 그냥 중국어는 시작하지 않기로 했다.


솔직하게 이야기 하면, 나는 스페인어를 배우면서 재미있다. 성실하게 외워야 하기 때문에 외우는 것은 아니고,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 위해 쉬고 있던 뇌가 움직이는 것이 느껴지는 것이 즐겁다. 그냥 즐겁다고 생각하면 꾸준하게 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솔직하게 이야기 하면, 나는 독후감을 써두는 것이 재미있다. 내가 읽은 책들이 비물리적으로 쌓여 하나의 서재를 이룬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그리고 언젠가 어느 구절이 떠올랐을 때 그 책을 읽고 나는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보는 일이 즐겁다. 나의 꾸준함으로 인해 나는 늘 쉽게 즐거워 진다. 이것이 나의 꾸준함의 미학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종료일을 정하지 않고 시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저 꾸준한 것으로도 나는 살아있는 이유가 있으니까. 그리고 세상 일은 원래 이진법으로 깔끔하게 설명할 수도 없으니까.

 

Posted by Sophie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