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가루끊기]2013. 9. 16. 20:00


내게 있어 과자의 효용은 높은 편이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술 생각은 안 나도 과자 생각은 난다. 술은 기분이 좋을 때 마셔야 한다는 개인적인 원칙 때문이기도 하고, 또 대부분 집중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순간은 회사에 있는 시간들이 대부분인 까닭이다.

밀가루 끊기를 7개월을 넘기면서, 그냥 과자 카테고리를 먹고 싶은 순간도 있고, 특정 과자를 먹고 싶은 위기도 있다. 특정 과자란 짭조름한 새우깡, 자갈치, 오징어집 등이나 영원한 진리인 바나나킥이나 맛동산 등등 때에 따라 갑자기 "바로 그 과자"가 먹고 싶어진다. 


고민 끝에 찾아낸 솔루션들. 바삭함이 필요하다면 감자칩 종류를 먹으면 된다. 편의점에 가서 감자 95% 정도의 과자들을 찾아내면 된다. 스윙칩이나 수미감자, 눈을 감자, 자가비 등을 먹으면 된다. 나는 수미감자를 제일 좋아하고, 자가비나 눈을 감자는 왠만하면 먹지 않는다, 너무 딱딱해...


그렇지만 사람의 욕구는 그렇게 쉽게 충족되는 것이 아니다. 과자를 생각하면 "바삭함" 외에 "기름에 튀긴" 고소한 맛이 함께 떠오른다. 맛동산이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는 튀긴 후에 시럽을 입혔기 때문에, 바삭함과 고소함과 달콤함을 한번에 충족시킨다는 점이다. 그런데 밀가루를 끊으면 맛동산을 먹을 수가 없다.


그런데 밀가루를 끊은지 반년만에 찾아낸 것! 쌀로 만든 쌀로별이 있었다. 사실 나는 불신의 아이콘이니, 당연히 밀가루를 믹스해서 사용한다고 믿고 있었는데, 어느 날 슈퍼에서 쌀로별 찹쌀유과의 원재료를 보고는 내가 먹어도 되는구나! 하는 사실을 발견했다. 물론 한 봉지를 사다가 다 먹는데 3주 정도 걸리긴 했지만, 반년만에 바삭하고 고소하고 달콤한 과자를 먹는 사실에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다. 밀가루를 끊어도 과자를 먹을 수 있다!!!


여기서 단 한 가지, 다이어트 목적으로 밀가루를 끊는다면, 칼로리를 생각해서 먹으면 안 된다는 점. 나는 건선 등의 피부 알러지 때문에 밀가루를 끊고는 그 상태를 유지 중이지만, 기름에 튀기지 시럽을 발라서 칼로리가 높은 과자(120g에 620kcal)를 먹는 것은 다이어트-밀가루간의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니까. 사실 나는 요즘 내가 밀가루를 끊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 요가를 계속 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 주말마다 산책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그저 괜찮을 것 같아서!가 아닌 명확한 이유가 있게 마련인데, 그저 두루뭉실하게 이야기 하면서, 쉽게 주객을 전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면서. 


밀가루를 끊은지 7달을 넘기고, 요가를 정기적으로 해온지 1년 9개월을 넘기고 나니, 그 두 가지 시너지 효과로 살이 빠졌다. 그 두 가지 외에는 먹는 양도 그대로, 산책/등산을 하는 양도 그대로인데, 살이 빠지고 있으니, 밀가루 단식과 요가의 효과인 셈이다. 엄청난 노력을 하지 않고도 살이 빠지는 부분에 대해서는 꽤 감사한다. 더군다나, 등/허리의 살이 빠지는 부분에 대해서는 기분이 좋다. 예쁜 옷을 입기 좋아하는 여자이다 보니, 당연히 기쁘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밀가루를 끊는 목적이 다이어트가 아니었으므로, 스트레스의 순간에, 다른 방면으로 스트레스를 분출하기 전에 감자칩 한 봉지로 위안이 된다면 당연히 허락해야 한다. 


그런데 가끔 나는, 스트레스의 순간에 편의점에 가서 혼자 방황한다. 나는 무엇을 먹을 수 있는가?의 고민을 하면서. 사실상 나는 밀가루를 끊은 것이기 때문에, 아이스크림 하나를 먹어도 되고, 초콜렛 하나를 먹어도 되고, 감자칩 한봉지를 먹어도 된다. 그런데 마치 내가 단식을 하는 사람 같은 강박관념에 아무 것도 먹을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는 추가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나는 밀가루 단식 중일 따름인데 말이다.


그러니, 업무의 스트레스라면 감자칩 한 봉지를 먹어 버리자, 밀가루 단식을 '모든 고칼로리 음식들의' 단식이라 착각하여 단식 스트레스를 더 받지 말고, 쉽게 생각하고 나에게 아이스크림 하나를 허락해 버리자. 그것이 밀가루 단식을 지속하는 아주 손쉬운 방법이다. 사실 평소 "양"에 대한 욕심이 없으므로, 쌀로별 한 봉지를 먹든, 아이스크림 하나를 먹든, 그 섭취가 폭식의 계기(trigger)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히 알고 있으니, 먹어줘도 상관이 없다는 것은 내게 있어 행운이기는 하다. 


# 지금 먹고 싶은 밀가루 음식은 두둥.... 바로 "콘칩"이다.



 

Posted by Sophie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