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가루끊기]2013. 6. 22. 23:15


밀가루 끊기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흔히 예상하듯이 끔찍하거나 세상에 먹을 것이 없어 허기져 죽을 판도 아닌데, 주변사람들이 자꾸만 먹고 살 것이 없지 않냐는 질문을 계속 해 주고 계신 관계로, "혹여나 밀가루를 끊어볼까 결심해볼까 생각은 들지만 쉽게 마음 먹을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나의 대체제에 대해 써볼까 한다. 


나도 밀가루를 좋아하는데, 대부분의 종류를 다 좋아한다. 


그 중에 가장 좋아하는 것은 역시 면 종류이다. 국수집을 차려도 될만큼 인상적인 잔치국수와 비빔국수를 끓이시는 엄마의 자녀라면 겨울에는 잔치국수를 먹고 싶다고 하고 여름에는 비빔국수를 먹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둘 다 해 주신다... 진짜 맛있기 때문에 일인분은 안 되는 양이긴 해도 두 그릇 다 먹을 수 밖에 없다. 파스타도 진짜 좋아한다. 다양한 종류의 면들을 다 좋아하는데 엔젤헤어도 좋아한다. 칼국수, 우동, 모밀, 냉면, 쫄면 모두 사랑한다. 하지만 요즘 내가 먹는 것은 쌀국수 뿐이다. 국물이 먹고 싶으면 쌀국수, 별미가 먹고 싶다면, 팟타이나 팟씨유 등의 대안이 있다. 물론 자장면을 대체하거나 라면을 대체하는 자극적인 맛은 기대할 수 없지만, 국수의 기본인 "후루룩" 면발을 빨아올리는 느낌만으로도 좀 행복해진다. 그리고 최근에 우래옥에서 순면냉면을 먹고 행복해서 눈물을 흘릴 뻔 했다. 아주 맛있었다! 자주 가지는 못 해도 밀가루를 안 먹어도 냉면을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있어서 다행이다. 사실 나는 연속 3끼를 전부 냉면으로 먹을 수 있는데 여름이 오니 냉면을 못 먹어서 어쩌지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고 있었는데 다행히 우래옥 냉면을 먹게 된 것이다. 


그 다음은 빵이다. 여러종류의 빵을 다 좋아한다. 누군가처럼 매일매일 빵을 먹지는 않아도 회사 다니고 외부 약속 있다보면 일이주에 한번은 꼬박꼬박 빵을 먹어왔다. 그런데 빵을 못 먹는다. 좀전에 책을 읽다가 도넛 이야기가 나와서 또 입맛을 다셨다. 밤앙금, 팥앙금이 들어간 빵도 먹고 싶고 프레츨도 먹고 싶고 보카디요도 먹고 싶고 프렌치 토스트도 먹고 싶고, 쓰다 보면 밤 샐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위스 독어권 지역의 특산물(사진)도 먹고 싶다. 계피향이 나는 이 빵은 차가운 날씨가 되면 따뜻한 차와 함께 한 모금 베어 물고 싶은 그런 빵이다. 한국으로 돌아올 때 생갈렌 시장의 전통적인 빵집에서 따로 주문해서 가지고 왔었는데... 갑자기 생각난다.


(친구가 왔을 때 취리히로 놀러갈 때의 간식으로 사서 먹은 것, 벌써 9년전...)


문제는 빵은 대체제가 없다. 사실 "계란과 고구마로만 만드는 빵"이 존재하기는 한다. 폭신폭신한 식감이 어느 정도 밀가루와 닮아 있다. 하지만 만들기 위해서는 계란 흰자로 머랭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노력에 비하면 만들 수 있는 양도 한정적이고, 그리고 밀가루 빵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달콤한 향이 없기 때문에 왠만해서는 추천하지 않는다. 폭신폭신한 식감을 포기한다면, 그래도 달콤한 디저트가 먹고 싶다면 나는 머랭과 마카롱을 추천한다. 다만 다이어트를 위해 밀가루 단식을 한다면 칼로리를 보고 가슴 쓸어내릴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감기에 걸리면 먹는 음식이 다르던데, 나는 감기 초기에는 늘 어묵탕을 끓여먹는다. 무와 양파와 파, 다시마와 멸치를 넣고 국물을 우린 후 한번 데쳐서 기름기를 뺀 어묵을 넣고 끓여서 국물까지 마시고 나면 초기 감기는 쉽게 잡을 수 있다. 그런데 어묵에 밀가루가 들어간다. 이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왜? 정말? 하는 눈빛을 보내는데, 그런 모양을 가지려면 당연히 밀가루가 들어가야 한다. 아무튼 어묵을 못 먹는 것은 언제나 큰 일이다. 아직도 대체제를 못 찾았다. 


그리고 만두와 딤섬. 혀가 데일 듯 뜨거운 딤섬에 간장에 절인 생각을 얹어서 먹는 즐거움의 대체제 역시 아직 못 찾았다. 만두소만 좀 먹으면 그건 만두가 아니고 동그랑땡 재료를 먹은 것 같아서... 왠지 불편하다. 감자만두가 판매 중이라서 열심히 찾아봤지만 밀가루와 전분을 섞어서 만두피를 만든 것이란다. 그래서 포기하고 만들어 볼까 고민하며 찾아보니 유아식 레시피로 찹쌀가루를 묻혀서 굽거나 찌면 된다는데, 아직까지는 도전해 보지 않았다. 곧 만들게 될지도 모른다. 


사무실에 있으면 과자가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스트레스의 환경에 아삭아삭 매콤달콤한 자극적인 과자를 본능적으로 찾게 된다. 그래서 오랫동안 그냥 찾다가 본능에 굴복하고 최근에 감자스낵을 몇번 사먹었다. 구성표를 잘 보면 밀가가 안 들어간 과자는 감자가 90퍼센트 이상 들어가 있다. 이 역시 다이어트 목적의 밀가루 단식이라면 추천하지는 않겠지만, 새우깡 때문에 밀가루 단식을 포기할 지경이라면 추천한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얼마전에 사무실에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새우깡을 먹어서 정말 죽을 뻔 했다. 결국에는 한 개 입에 넣었다가 뱉었다. 여전히 겨우 이 새우깡으로 밀가루 단식을 중단할 수는 없다는 마음과 함께, 입에 들어갔을 때 기대만큼 아주 맛있지는 않고 그냥 새우깡 맛이라는 것에 안도하고는 뱉어낼 수 있었다. 나의 미덕은 역시 꾸준함이다.


그런데 자극적인 것은 좀 다른 문제이다. 과자의 자극적인 향이 그리울 때면 나는 비첸향을 먹는다. 2월10일 이후로 한 3번 정도 사서 먹었다. 비첸향을 먹고 나면 늘 몸이 붓는 것이 나트륨의 섭취를 과다하게 하는 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비첸향 정도는 허가해 줘야 적절한 스트레스 관리가 된다. 비첸향은 과자 뿐 아니라 너구리와 신라면, 비빔면의 대체제 역할까지도 하게 되니 어쩔 수 없이 종종 먹어줘야 한다.


그런데 사실 밀가루를 못 먹으면 가장 불편한 것은 간편식을 해야 할 때이다. 샌드위치를 먹거나 빵을 먹거나 시리얼을 먹거나 혹은 에너지바나 초콜렛바 등등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 많은데, 밀가루 단식 중이라면 이 모든 것을 다 못 먹고 오직 고구마나 계란, 바나나 등으로 대체해야 한다. 사실 늦은 오후 급한 허기에 편의점에 가서 매장을 둘러만 보고 돌아올 때의 기분은 좀 우울하다. 살 수 있는 것이라고는 바나나 뿐이다. 이 모든 맛있는 것들을 포기하고 돌아올 때면, 늘 편의점에 건의하고 싶어진다. 떡을 판매하라고! 간편식을 해야 하는 것 때문에 밀가루 단식을 포기할 판이니 떡을 판매하라고. 


그렇지만 결국 나는 견과류를 집어들고 돌아오게 된다. 나는 밀가루 단식 중인 사람이니까. 나의 미덕은 꾸준함이니까.


※ 쓰고 보니 밀가루 단식을 고민하는 사람에게 절망만 안겨 준 것 같다. 그래도 해 보면 할 만한데!


Posted by Sophie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