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에 쓰지만 12일 이야기. 나는 추위를 많이 타지만 겨울산책을 좋아한다. 낮에 또 겨울산책을 다녀왔다
요즘 나의 점심시간 산책은 남산공원이나 남대문 시장이 아닌 약현성당이다. 카톨릭 신자니까 당연하겠지만 나는 성당을 좋아한다. 성당의 건축스타일을 보는 것도 빛이 들어오는 성당에 앉아 있는 것도 좋아한다. (오늘과 지난번에는 성당 문이 닫혀 있어서 성당 안에 앉아 있지는 못 했다)
오늘의 단상들.
오늘은 제멋대로 십자가의 길 기도를 했는데 예수님께서 세 번째 넘어지심에서 또 멈추게 되었다. 예수님도 세 번을 넘어져 또다시 일어나셨는데 나도 세 번쯤 넘어질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예수님의 위로이다. 그런 생각을 또 했다. 꽤 오래 십자가의 길을 하면 그 항목에 멈추게 되는데 나의 일상이 더 나아가고 있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나의 현재의 시기가 그럴 수 없어 갑갑한 시기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시간을 견디고 살아내야 한다. 나도 넘어지고 일어서고를 반복해야지, 나의 일상이라도 별 것 있나. 싶은 그런 생각들을 하였다…
그리고, 문득, 평일낮에 성당을 거니는 삶이, 현재 내가 힘들기 때문인가, 내가 위로받고 싶어서인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결국 십자가의 길 이야기와 맥락이 같은 것일 수 있으나, 조금 다른 것은, 평일 낮 성당하면 늘, 명동성당에서 어린아이를 데리고 와서 흐느껴 울던 그 젊은 엄마 생각이 나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는 미혼이었지만 그 엄마보다는 나이가 있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휴지를 건네주는 것, 그리고 짧은 화살기도였다. 그제서야 나는 “마음이 슬퍼서 위로할 수 없고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내릴 때 주님은 우리 연약함을 아시고 사랑으로 인도하시네.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네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를 이해하게 되었었다, 꼭 나를 아는 사람이 나만을 위해 기도해 줄 필요조차 없다. 내가 이 찬양을 부르며 누군가 눈물 흘리는 누군가를 위해 기도할 때 또 나를 모르는 누군가의 기도는 나를 위로한다. 그리고 기도조차 할 수 없을 때 전구자 성모님이 또 대신 기도를 해주신다. 삶이 꼭 일대일일 필요가 없다… 뭐 그런 생각을 하며 성당을 돌고 또 돌았다.
사실 나는 이런 날씨에 파리를, 뉴욕을, 걸었었다. 겨울의 스위스를 살았었고. 옷은 따뜻하고 입고 코끝이 시린 겨울날을 걷고 마시는 따뜻한 커피는 언제나 삶의 작은 위로가 된다. 찬바람이 부는 성당 마당을 걷는 것조차 작은 여행이고 큰 위로이다. 회사 옆에 아름다운 성당이 있다는 것은 나에게는 축복이다.